변윤희
간만에 조익이와의 술자리 그 녀석의 수다를 듣는 건 역시 그리 유쾌하진 않다 장지에 혼합재료, 97x162cm, 2010
변윤희
내 속을 게우듯 머릿속 또한 비워졌으면 장지에 혼합재료, 145.5x90cm, 2010
변윤희
다시 어디론가 향하는... 장지에 혼합재료, 80x100cm, 2010
변윤희
아,,주인의 눈초리마저 따갑다 장지에 혼합재료, 97x162cm, 2010
변윤희
아..내일 아침 해장할 라면과 피 같은 술을 놓치고 만다 장지에 혼합재료, 45.5x53cm, 2010
변윤희
잠시 전봇대에 기대어 담배 한 모금과 숨을 몰아 쉬어보지만... 장지에 혼합재료, 2010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공동생활의 원리인 도리(道理)이며, 사회 통념, 선량한 풍속의 사회 질서, 신의 성실 원칙 등을 지키며 살기 위해 개개인 스스로의 내면 욕구 조차 잊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정한 규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원초적인 욕구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소 불편한 소재거리로 자리하곤 합니다. 더욱이 윤리와 통념이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는 자제하지 못하는 식욕이나 섹스와 같은 욕구들은 불온하게 여겨지며, 여기에 가해지는 제약이나 은폐 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상에서의 표현의 영역은 윤리나 통념에 의한 자기 검열로 이어지는 구조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겪는 불안과 과도한 경쟁 관계에 놓인 상황을 욕구 시리즈로 풀이하여 작가 변윤희는 작품을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욕구들을 솔직하게 끄집어내어 때로는 과장되게, 그리고 더러는 코믹하게 현대인의 초상을 대변하듯 이야기하여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마냥 웃을 수 밖에 없는 약간은 불편한 공감을 자아낼지라도 .......
이번 전시 작품에서는 앞서 선보였던 식욕과 성욕에 관한 작업들의 연장 선상으로 제작된 것이며, 특정 인물을 설정하여 이 인물들의 감정 해소 과장을 연속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감정의 변화에 따라 인물의 색 또한 달라지고 있습니다. 표현 방법은 한국화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 온 원색계열의 색과 채색의 농담(濃淡)이 되었으며, 데포르마숑(déformation_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 묘사에서 이것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기법)이 도입된 다양한 군상들에 각각의 이야기와 표정이 더해져서 대중들과 좀 더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사유가 가능하기 위해선 대상화가 전제 되어져야 한다. 즉 사유란 언제나 그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인 것. 여기서 그 무엇인가를 오브제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우리는 사유를 할 때 무엇인가를 대상화하고 오브제화한다. 일종의 인식의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문제는 이처럼 사유를 진행할 때 미처 대상화되지 않은 채, 오브제화되지 않은 채, 인식의 레이더에 붙잡히지 않은 채로 남겨진 그 무엇, 결여되고 결핍된 채로 남겨진 그 무엇, 해명되지 않은 채로 남겨진 그 무엇이 있는데 자크 라캉은 그것을 오브제a로 명명한다. 완전한 사고의 불가능성 내지는 사유의 불완전성을 지칭하는 이 말은 동시에 존재론적인 결여의식과 결핍의식을, 그리고 특히 욕망을 지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욕망은 존재론적인 결여의식과 결핍의식에 연동된 것으로서, 도무지 해소되거나 채워질 수가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이며 선험적인 조건이다. 이에 반해 욕구는 생물학적 현상 내지는 생리적 현상으로서 근본적으로 해소되거나 처리될 수 있는 것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현실의 자장에 속한다(그 자체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때론 종교적인 거대담론의 자장에 속하는 욕망과는 비교되는).
변윤희는 이 가운데 식욕과 성욕 같은 욕구를 테마로 한 그림을 선보인다. 그의 그림이 관념적이기보다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것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욕구가 현실의 자장에 속하고, 때론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의 구조에 대한 인식에 관련되는 것인 만큼 그 구조에 연유한 공공연하거나 잠재적인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 욕구를 소환한다. 이를테면 흔히 거식증과 폭식증을 단순한 음식에 대한 생리적 반응과 현상으로 보기 쉬운데, 사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음식과는 무관한 어떤 심리적 징후가 우연하게 음식에 대한 반응으로 전이된 경우로 봐야 한다(허전함을 허기로 착각한 어느 날). 그리고 성욕이 해소되고 통어되는 메커니즘은 식욕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이를테면 성욕은 공공장소에서 개인의 인격을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기능한다든지(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대개는 금욕이 요구되는 삶의 최전선에서 질서와 유대를 강화시켜주는 수단이 된다(열혈남아).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혹은 본성)이면서, 좀 거창하게 말해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이고 원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욕과 성욕은 여러 경로로 사회와 제도에 의해 억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로써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의 직접적인, 그리고 유비적인(혹은 암시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변윤희는 식욕과 성욕을 매개로 바로 이런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을 그린다. 그러므로 때로는 과장되게, 그리고 더러는 코믹하게 그려낸 이 병리적 현상의 지점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을 넘어 현대인의 보편적인 초상으로까지 확장된다. 설핏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약간은 불편한 공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배설의 욕구를 주제화한다. 식욕과 성욕에 연이은 욕구 시리즈의 또 다른 버전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된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만원버스에 몸을 싣는다. 이리저리 떠밀리며 힘겹게 몸을 가누던 나는, 오늘 만큼은 한잔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제도 한잔했나? 잘 기억나지가 않는다. 아무려면 어때. 어차피 별반 중요한 일도 아닌걸.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해 가끔씩 들르던 포장마차로 불러낸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친구는 대박을 낚았는지 어쨌는지 연신 지 자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겨운 놈. 그의 기분은 증권 그래프를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한다. 그의 기분이 그려내는 그래프는 바이오리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은 지겨울 때가 많지만 아주 가끔씩은 재밌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말고는 별반 대타도 없는 것이어서 나는 꽤나 참을성 있게 그의 수다를 경청해주는 편이다. 오늘도 그는 지 혼자만 있는 양 연신 거품을 물다가 진이 빠졌는지 풀이 죽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고 꽤나 취한 나는 제법 한산해진 버스를 타고 재차 집으로 간다. 집? 속이 갑갑한 탓도 있지만 이보다는 불현듯 목적지가 애매해진 나는, 중도(아니면 집? 종점?)에서 내려 해장을 위한 라면과 술을 산다. 그리고 담배를 한대 피운 것도 같고, 구토를 한 것도 같고, 그 와중에 라면과 술을 길에 흘린 것도 같고, 더욱이 끔찍한(?) 일은 아침에 보니 그녀와 같은 침대에 자고 있었다는 것. 오늘도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야겠지. 그리고 현실과 몽중을 왔다 갔다 하겠지.
본의 아니게 소설을 썼다. 아니, 소설을 쓴 것은 필자가 아닌, 작가다. 엄밀하게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 일종의 그림소설을 쓴 것이다(아니, 그린 것이라고 해야 하나). 그림소설의 형식이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름 새로운, 혹은 의미 있는 시도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작가의 그림소설은 이야기그림의 전통적 형식인 파노라마 그림의 형식을 전용하고 재해석하고 재구성해 보여준다. 물론 서사적 그림이 있지만, 작가의 그림소설과는 그 부류가 다르고 그 성질이 다르다. 하나로 연이어진 어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과 경과를 한눈에 보여주는 매체들, 이를테면 만화와 영화와 생리적으로 가깝다. 다시 말해 작가의 그림은 만화의 컷을 상기시키고, 영화의 미장센(의도적인, 짐짓 만들어낸, 연출된 장면)을 닮았다. 그리고 그 자체 시간의 경과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사적이고 문학적이고 특히 연극적이다. 일종의 상황극을 연출해 보여주는 것인데, 그 상황극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공감으로서 와 닿는다. 즉 그림에 나타난 나 혹은 그는 우리들 중 누구일 수도 있고, 따라서 흡사 나의,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고 듣는 것 같다.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식욕과 성욕, 그리고 배설의 욕구는 불가피하게 스트레스와 연동된다. 욕구는 대개 실현되고 충족되기보다는 억압되고 통어되는 경우로서 현상하기 때문이다. 욕구가 곧잘 병리적 현상의 원인이나 계기로서 작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기를 실현하려는 욕구와, 그 욕구를 통어하려는 제도, 그리고 그 통어로 인해 억압된 스트레스가 상호 작용하는 관계를 엿보게 하고, 제도와 개인과의 관계를 엿보게 한다.
식욕과 성욕과 배설 등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테마로 한 변윤희의 작업은 이처럼 욕구에 반영된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을 대개는 풍자적으로, 해학적으로, 직설적으로 풀어낸다. 실제나 현실 그대로라기보다는 실제나 현실을 일정 정도 과장되고 극화된 형식으로 풀어냄으로써 주제를 쉽게 전달하면서도 현실성을 잃지 않는 미덕이 있다. 그 미덕만큼이나 다른 한편으론 상대적으로 더 암시적인 방식이 또 다른 질감의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984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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