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배종헌
창동표착일록倉洞漂着一錄 #0001-No.2_콘크리트 균열과 도시 먼지 A note of drifting ashore on Changdong, #0001-No.2_Concrete cracks and city dust 2023, oil on birch plywood panel, 45x150cm
배종헌
콘크리트 정원_콘크리트 균열과 도시 자생 식물들 Concrete garden_Concrete cracks and unknown native city plants 2022, oil on canvas, 145.1x112.3cm
배종헌
무행無行_미장이의 장식벽, 그 시멘트 벽의 균열, 페인트 박락, 생채기 Trying Nothing_cement wall decorated by a plasterer, crack, peeling paint, scratches 2023, oil on birch plywood panel, 162.2x112.1cm
배종헌
무행無行_시멘트 벽면의 자동차 타이어 마찰흔, 자동차가 긁고 지나간 자국, 시멘트 거푸집흔 Trying Nothing_Car tire friction marks on the concrete wall, car scratch marks, cement form marks 2023, oil on birch plywood panel, 112.1x162.2cm
배종헌
전시전경
배종헌
전시전경
11월 4일 토요일, 파주 헤이리마을의 갤러리 소소에서 배종헌 개인전 《무행無行》이 개최된다. 2018년 배종헌 개인전 《흔적기관》으로 작가와 인연을 맺은 갤러리 소소는 5년의 시간 동안 더욱 깊어진 작가의 예술적 사유를 풀어내는 이번 전시를 마련하였다.
별 볼 일 없는 일상과 장소, 주변의 환경 자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군의 개념적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온 배종헌 작가는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왔다. 텍스트, 드로잉, 사진, 영상, 설치 등 형식과 소재에 제한을 두지 않는 그의 폭넓은 작업세계에서 겹겹이 쌓은 물감을 긁어내어 산수로 완성하는 특유의 회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시멘트 벽의 갈라진 틈이나 얼룩, 골목길 구석의 잡초 등에서 아름다운 산수의 모습을 찾아내 화면으로 옮긴 회화는 현실적인 삶과 예술의 공존을 꿈꾸는 한 예술가가 구현해 낸 이상세계의 현현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스코틀랜드의 글랜피딕 레지던시에서의 입주작가 생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한 회화들로 구성되었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 조우하게 된 예술적 사유의 무한한 자유를 겪은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은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감동과 함께 큰 영감을 주었다. 아무도 가꾸지 않은 그곳에 스스로 피어난 식물들이 가진 아름다움에 그는 ‘무행無行’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것은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되었다.
배종헌 작가가 처음 자신의 방치된 마당의 잡초들을 보고 이를 소재로 작업한 <콘크리트 정원_콘크리트 균열과 도시 자생 식물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원>을 비롯해, 시멘트 벽의 균열이나 생채기 등에서 산수를 떠올리는 <무행無行> 연작, 그리고 현재 입주작가로 생활하고 있는 창동레지던시 주변에서 소재를 찾은 <창동표착일록>까지. 《무행無行》은 산과 개천이 있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 자연과 상호 교감하는 삶의 가치를 몸으로 체득한 한 소년이 지금껏 꾸고 있는 예술을 향한 꿈을 함께 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작년 서울 전시관 더 소소를 개관한 이래 잠시 휴식하고 있던 헤이리의 전시공간을 깨울 의미 있는 기획전, 《무행無行》은 헤이리마을의 갤러리 소소에서 12월 3일까지 한달 간 진행된다.
■ 갤러리 소소
배종헌의 무행無行
- 이미 완성된 그곳으로의 초대
무행(無行). 아무데도 가지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럼에도 그곳에 있는. 배종헌은 자신의 근작을 이렇게 명명하고 전시제목으로 올렸다. 그가 수개월의 해외 레지던시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익숙한 그곳에는 풀들이 자라나 있었다고 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잡풀의 씨앗들이 자리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 뿌리를 박아 제멋대로 자란 모양을 흐뭇하게 바라본 그는 그 광경에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것은 <콘크리트 정원>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원>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곧 <무행>이 되었다.
배종헌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는 창작을 위해 길을 떠나거나 멀리 시선을 던지지 않고 익숙한 곳을 걸으며 가까운 곳을 유심히 바라본다. 골똘히 바라보며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가는 그의 눈에는 온갖 것들이 보인다. 그것은 보일 뿐만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생성하기 시작한다. 그가 그렇게 발견한 장면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다양해서 기록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연구의 모양을 갖출 때도 있으며 시가 되기도 한다. 조형적으로는 사진, 영상, 설치, 회화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든다. 규정하기 힘든 자신의 작업을 그는 끊임없이 정리하고 연결하여 체계를 갖추어나간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그만의 방식이다.
이렇게 예술에 대한 생각과 행위를 멈추지 않는 그가 이번 회화 작품에 특별히 ‘무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가 찾는 아름다움의 어느 일면을 주목하게 한다. 오래된 콘크리트의 균열에는 이름 모를 꽃이 피고, 누구도 가꾸지 않은 내버려둔 땅은 정원이 된다. 어느 미장이가 솜씨를 발휘해 마감한 담벼락에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미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멘트 벽의 온갖 생채기와 벗겨진 페인트, 쌓인 먼지에는 아득히 먼 산수가 그려진다. 사람이 만든 것과 자연이 두고 간 것, 시간이 만들어낸 것,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생겨난 아름다움이 자리를 잡아 그곳에 있다. 배종헌은 ‘무행’이라는 이름으로 그 아름다움을 기리는 것이다.
그러나 길가의 벽을 보는 무심한 눈에는 그저 오래된 시멘트 덩어리와 갈라진 균열, 마구 자란 잡초만이 보인다. 오직 그것을 보고 듣는 배종헌만이 그렇게 주장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든다. 프레임의 크기를 면밀히 결정하고, 속색과 겉색을 미리 결정해 겹겹이 물감을 올리며, 적합한 도구를 찾아 손에 맞게 길들여 화면에서 형태를 긁어낸다. 테두리까지 곱게 칠한 후 제목을 새기는 마무리까지 깔끔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미를 발견하고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무행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행(行)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배종헌은 작품의 원천이 되는 균열과 먼지, 시멘트 거푸집흔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완성되어 그곳에 있는 아름다움임을 천명한다.
결국 우리는 그가 가리킨 자리에서 무행의 미를 찾는 한 예술가의 행을 본다. 그리고 그 행을 좇아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한 자락을 본다. 배종헌은 여행이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며, 그렇기에 일종의 예술적 체험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의 무행無行은 미의 사건을 만들기 위한 행行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모든 예술작업은 이미 완성된 아름다움의 공간, 예술의 사건으로 우리를 부르는 초대장이다. 초대된 우리는 잠시 그의 눈을 빌린 여행객이 되어 그가 만든 예술의 정원을 거닐어 본다.
전희정(갤러리 소소)
작가노트
콘크레투스의 벽
자라는 벽이 있어
돌이 자라
풀이 자라
나무가 자라
개울의 강과 바위의 언덕도 자라
꿈꾸는 돌
춤추는 풀
노래하는 나무
거니는 강
생각의 언덕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무엇이 되
함께 자라는 벽이 있어
늙은 벽이 있어
돌은 바위 되
풀은 들판 되
나문 숲이 되
강의 바다와 언덕의 산은 늙어
더럽혀진 바위
할켜진 들판
부딪는 숲
마모의 바다
박락의 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억을 더듬는 회복의 주름
함께 늙은 벽이 있어
촉촉한 새벽이 깨어나
배종헌
1969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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