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구리와 손

2023.11.08 ▶ 2023.12.09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및 학고재 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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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계산 2023, 캔버스에 유채, 116.8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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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무거운 하늘 2023, 캔버스에 유채, 227.3x18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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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수집가 2023, 캔버스에 유채, 116.8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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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초원 2023, 캔버스에 유채, 116.8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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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구리머리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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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껍질 2023, 캔버스에 유채, 80.3x65.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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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물의 언어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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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바보 같은 하늘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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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별수 없지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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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에메랄드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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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작은 산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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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제작자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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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화가의 호흡 2023, 캔버스에 유채, 80.3x65.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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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수

    옥수수의 기억 2023, 캔버스에 유채, 130.3x193.9cm

  • Press Release

    구리와 손
    이현경ㅣ 신한갤러리 큐레이터

    관념의 숲: 사라지는/소멸하는 변화의 잔상들
    《구리와 손》은 불가항력적인 사라짐과 소멸의 흐름 아래 놓여 있는 대상과 풍경을 그려왔던 작가가 오랜 시간 작업하며 수행적으로 걸어온 시간의 궤적들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작가는 만드는/만들어지는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자신의 작업과 연결 지으며 주로 유채색으로 시각화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시명 《구리와 손》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의외의 조합인 두 단어 ‘구리’와 ‘손’을 빌어 현재 작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작업 방향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선택된 단어들로 이는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인간이 다룬 가장 오래된 금속 물질인 구리는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인류 발전에 일조한 물질로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너른 시간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오래전부터 조각 등 창작의 재료로 쓰였다. 한편 손은 예술가에게 있어 구상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개이자 실질적으로 창조물을 구현해 내는 행위의 주체를 상징한다. 이는 최근 작가가 이야기하는 ‘만드는 자와 만들어진 자’ 개념과 연결되며 무언가를 만들고 부수는 성취와 실패의 과정들이 기존 '사라짐과 소멸'의 맥락과 같은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무채색의 무수한 선들로 밀도 있게 숲의 세계를 담았던 박광수는 2021년 <따뜻한 만들기> 작업을 시초로 유화를 주 매체로 하여 색이 담긴 풍경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펜의 굵기, 압력, 속도 등을 달리하며 채색된 작품들은 작가가 실험해 왔던 시간만큼 선들을 세밀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쌓아 올리며 이번 개인전 주요 작업으로 선보인다. 박광수는 전시 공간과 캔버스 크기에 비례해 시간과 도구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자신이 줄곧 사용하던 펜에서 벗어나 직접 만든 수제 펜을 사용한 드로잉, 회화와 애니메이션 등의 작업을 한다. 작업 과정에서 그는 도구의 발전을 모색하는 인류의 모습처럼 작업에 용이하게 펜을 새롭게 정비하고 물질적 속성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작업 방식을 다변화한다. 작가에게 변화된 재료는 그것의 속성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었으리라.

    이번 전시 대부분의 작품은 기존에 작가가 주로 사용했던 먹, 잉크, 아크릴 등과 달리 유화로 작업 되었다. 작가가 유화를 대하는 태도는 흥미로운데, 작가는 물감이 굳는 시간 동안 마치 점토와 같이 유연한 상태의 재료를 주무르듯 선이 그어진 뒤 또 다른 궤적들을 그리며 선을 겹치고 긁어 파내고 없애 화면 안에서 공간감과 납작한 부피감을 만들며 빠르게 선들을 세우거나 무너뜨린다. 이는 《기대는 그림》(2020)에서 <덩어리> 시리즈를 그리며 주로 사용한 오일 스틱의 쉽게 물렁물렁해지고 녹아 흘러내리는 물성과도 연결된다.

    작가는 물감이 굳기 전 색과 선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최대한 빠르게 결정한다. 작가의 움직임은 곧 선으로 이어지고 선들은 좀 더 즉각적인 변화를 야기하며 때론 배경이 때론 형상이 때론 존재의 부분 혹은 전체가 된다. 이처럼 박광수의 작업 속 생동하는 선과 색들은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창출해 나가며 연결점을 갖고 움직임의 궤적들을 화면에 고스란히 쌓는다.

    형상과 배경의 경계는 허물어지더라도 비교적 적확한 선이 중첩된 형태와 그 궤적들을 남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던 이전과 달리 채 마르지 않은 물감의 색들은 이후 생성된 선들에 의해 지워지고 색과 색은 뒤섞여 다른 색이 창조되기도 하며 의외성을 기반으로 한 충돌과 긴장감을 만들어 소란스럽게 발광한다. 색 그리고 풍경은 그렇게 관계 지어지고 변화의 감각들을 끊임없이 일으키며 사라지거나 드러나는 풍경들을 만든다. 이처럼 작가는 재료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숲의 세계를 이루는 선과 색들을 만들어 내고 이미지들을 불연속적으로 이어 붙인다. 이런 박광수의 작업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을지언정 추상화와 구상화, 풍경화와 인물화, 일상과 공상 등 언뜻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들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우리가 무심코 범주화했던 고정 관념에서 탈중심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박광수의 작업에는 항상 숲이 자리한다. 작가에게 숲은 자신의 내면을 담고 있는 공간이자 무수한 불가항력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내포하지만 실재의 시간성과는 요원(遙遠)하며 불연속적인 내면의 시간 안에 작가의 몸짓과 떨림이 반영된 무수한 개체들이 ‘어두운 숲’을 헤매듯 켜켜이 쌓이고, 수많은 선의 궤적은 마치 이 환영의 공간에서 미지의 생명력을 가지고 일순간 진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광수가 그리는 풍경에서 생동하는 선들은 존재를 포함하여 모두 불완전한 형상과 배경이 중첩되며 사라지고 드러나는 변화의 상태를 시각화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로 인해 새로운 변화들이 파생되는 흐름 아래 있다. 풍경은 그렇게 고정되거나 불변하는 세계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념의 숲 자체로 그 세계 안에서 불안하게 꿈틀대며 확장해 가고 있다.


    구리와 손: 만드는/만들어진 덩어리
    《워킹 인 더 다크》(2014)부터 박광수의 작업에는 꾸준히 숲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형상이 등장한다. 존재는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 상상과 현실이 뒤섞여 만들어진 불완전한 시공간에서 작가가 창조한 불연속적 시간성을 내포하며 풍경 속 요소와 색들을 머금고 있다. 과거 작가는 소멸이나 사라짐에 집중하며 이러한 불가항력적 불안의 상태를 어둠 속 사라지는 인물의 뒷모습(<검은 숲속>(2014~)), 희미한 얼굴(<부스러진>(2017~)) 등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물은 배경과 경계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작업들을 살펴보면 여전히 경계가 모호한 인물들도 있지만 인물의 크기, 연령, 표정 등 다변화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인물과 배경의 경계가 좀 더 뚜렷하게 구분돼 보이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풍경 안의 불가항력적인 상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어서도 변화를 보인다. 이전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가혹한 상황에 대해 주로 관망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취했다면 이번 전시 작품 속 존재 대부분은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관찰, 모색하는 등 자신의 상황을 수긍하는 한편 무언가를 구상하고 제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단단한 기둥 같은 두 손을 이용하여 흙을 긁어모으거나(<작은 산>(2023)), 손에 쥔 돌을 관찰하고(<에메랄드>(2023)), 나무껍질을 뜯고 있다(<껍질>(2023)). 이처럼 박광수의 그림 속 인물들은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록 실패를 예감할지언정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대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따뜻한 만들기>(2021) 작업에 대해 박광수는 “그림 안에는 불완전한 덩어리와 그것을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만드는 또 다른 덩어리인 인간이 등장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만드는 자, 만들어진 자 모두를 '덩어리’로 통칭하며 작가가 이 둘의 관계를 표현하며 파생되는 여러 의미들을 내포한다. 한편 불완전한 덩어리는 형성되기 이전의 상태를 연상시키며 불완전한 상태의 덩어리이기에 무언가로 명명되기 위해 형성되어 가는 과정 혹은 이후 마주하게 될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펜 드로잉 시리즈 100여 점 원본과 271점을 모아 만든 작품집을 전시한 개인전 《크래커》(2021) 역시 작업에 수많은 덩어리가 등장하는데 작가에게 검은색의 덩어리는 가득 차거나 비어 있는 등 중의적 상태로서 상상의 실마리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그는 <망치질>(2021), <코 만들기>(2021) 등 만드는 행위와 관련된 작업들도 꾸준히 선보였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있어 ‘만드는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 것일까? 그의 인터뷰 내용을 빌어 추측해 보자면 ‘무언가를 품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가 생기면 가슴 속에 품고 계속 쓰다듬고 바라보며 어루만지곤 한다. 그림 속 대상들 역시 신체의 몸짓을 통해 무언가를 만지거나 감각한다. 이때 손은 대상과의 교감과 더불어 촉각적 감각을 야기하는 중요한 신체적 요소이다. 창작의 발상은 머리에서 나오지만 결국 그것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세워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손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 속 인물의 손은 유독 크고 정성스레 묘사되어 있다.

    <구리머리>(2023)에서 인물은 손으로 머리 형상을 감싸 안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투명한 몸체를 가진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자는 붉은 구리색(Iridescent Copper) 물감으로 눈, 코, 입을 갖추고 자신을 만든 자를 응시하는 듯하다. 그렇게 시점이 교차되고 주체와 객체가 전복되며 이는 시공간성이 파편화되어 뒤섞여 있는 작가의 풍경과 연동된다. 마치 “방금 만들어진 듯한 열감이 있는 인간의 형상”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을 그리기 전 작은 크기의 캔버스에 비슷한 구도와 느낌으로 그려진 작품에는 그저 구리 덩어리처럼 보였는데 <구리머리>(2023)에서는 구리 덩어리를 매만져 살갗이 만들어진 듯한 느낌과 좀 더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두상의 형체를 띄고 있다. 작가에게 존재는 작가 자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각과 정서들을 기반으로 불가항력적인 상황들에 대응하며 긴 시간성을 담고 움직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상(像)을 은유한다. 작가는 그렇게 만드는 자, 만들어진 자에 대한 사유와 동시에 보다 근원적으로 창작에 대해 사유하며 존재를 둘러싼 고민과 너른 생각들로 작업을 이어간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이번 전시에는 가장 큰 작업이자 전시명과 동일한 <구리와 손>(2023)이 있다. 불연속적인 시공간에서 인물은 몸의 일부분이 배경과 동화되며 시간성을 투영한 듯 그대로 투과되어 보인다. 작가는 “이제까지 그린 그림에 나오는 모든 만드는 행위들의 결과물 같은 존재”라고 했다. 둔덕 위 마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소진된 듯한 텅 빈 표정으로 서 있는 자는 자신의 얼굴보다도 큰 거칠고 투박한 손과 발에 무언가가 잔뜩 묻어 있다. 존재가 발 딛고 있는 시공간이 비록 소멸되고 사라지더라도 인물의 손, 발에 묻어 있는 실제 구리 안료의 흔적들은 물질 그 자체가 실재하고 있었음을, 그리하여 결국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인 물질과 그 존재가 여기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오래전 《맨 온 필로우》(2012) 연계 인터뷰에서 작가는 “드로잉은 모르는 길을 설명하기 위해 냅킨 위에 그린 약도와 같다.”라고 말했다. 드로잉은 작가에게 창작 과정을 내포하며 빠르게 날 것의 것들을 기록, 수집하는 원초적 행위이다. 이후로도 박광수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드로잉을 지속해 왔다. 이를 기반으로 작업의 외연을 확장해 가고 있는 박광수에게 드로잉은 여전히 수많은 선으로 이미지를 더듬어 가며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담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방향키가 되어준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만의 지형도를 그려가며 지도 속을 걸어가는 여정 중에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예술 행위에 대한 가치를 긍정하며 그는 방향키의 무게중심을 내부에 정박시켜 단단한 태도로 창작의 여정을 이어 나갈 것이다.


    작가 노트

    내가 자란 곳에서는 마른 식물이 타는 냄새가 났다.

    논과 밭이 많았던 마을의 사람들은 가을을 지나 겨울 끝 무렵 다음 농사를 위해 곡식을 수확하고 남은 볏단이나 마른 식물들을 논, 밭두렁과 함께 태우는 일을 했다.
    그들은 불이 멀리 번지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불을 놓았다고 나중에 들었는데, 그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식물이 타는 냄새는 흙, 해충, 그들의 마음과 섞여서 더 넓고 진하게 마을을 가득 채웠다. 찬 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연기의 깊고 어두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있다.

    - 내 그림 속 풍경은 주로 자연의 원초적인 상태로 확정되지 않은 채 꿈틀거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모습은 세계의 시작과 끝이 맞닿은 지점 어딘가의 순간처럼 보인다. 그림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그곳에서 긴 시간성이 신체화된 형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많은 경우 본인이 처한 가혹한 상황을 감내해 내고 있다. 그 끝은 대부분 실패인데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에서 색들이 충만하게 매혹적이기도 위협적이기도 하며 서로 간의 강렬한 충돌로 그 세계가 극단적이길 원한다.

    - 나의 그림은 많은 경우 이편과 저편으로 형상과 영역이 정확히 나뉘어 있지 않고 서로에 관여하고 침투하고 파편화되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일렁이며 빛나는 물 표면의 잔상, 음습한 음식물 쓰레기 더미나 파헤쳐진 동물의 장기처럼 물과 습기에 관심이 간다.

    - 물감의 모든 색을 섞었을 때 검은색이 되는 점을 좋아한다. 반대로 검은색을 해체하면 잘게 부서지듯이 많은 색이 나올 것 같다는 시적인 상상을 해본다.

    - 물감을 사러 갔을 때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다.”라는 색이 있다. 주로 빛나는 광물이나 이상한 식물을 연상케 하는 색들이 나에게 그렇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작은 돌을 발견하고 집어 드는 순간과 매우 비슷하다.

    - 내가 좋아하는 물감 중에 Iridescent Copper라는 이름의 물감이 있다. 이것을 사용하여 그린 존재들은 방금 만들어진 열감이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구리는 인간이 다룬 가장 오래된 금속이다. 과거의 생활과 신화에서부터 현대의 산업과 디지털 환경까지 이어져 이 세계에 널리 퍼져있다는 점에서 구리가 가진 시간성과 보편성이 좋았다. 나에게 구리는 금속 자체라기보다 만드는 자와 만들어진 자의 관계에 대한 상징이자 은유로 다가온다.

    - 캔버스에 불완전하게 맺혀있는 색들이 좋다. 그것은 온전히 개체를 지정하는 고정점을 만들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교차하며 색이 산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거친, 다듬어지지 않는, 막 나온 듯한, 눈부신 잔해의 파편들을 불연속적으로 이어 붙인다.

    - 내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은 많은 경우 이 상황을 뒤엎고 싶은 욕망과 두려움이 충돌하고 있다. 상이 무너지고 깨지는 건 내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아주 잘 전달해 주는 표현법이다. 과거부터 써온 나의 작업 노트를 보면 불안과 절망, 좌절의 흔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확실하게 큰소리로 외치는 사람이 아니다. 중얼거리고 머뭇거리며 겨우 작은 용기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매번 그림을 그릴 때는 이런 모습에 균열을 내어 약진하거나 약진에 실패하여 다시 원래의 본성으로 돌아오곤 한다. 내 그림에 인물은 내가 아니다. 나는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인간의 보편성을 추적해 보고 싶다.

    전시제목박광수: 구리와 손

    전시기간2023.11.08(수) - 2023.12.09(토)

    참여작가 박광수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및 학고재 오룸)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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