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제도화된 일상: 화성N지구에서
제21회 우민미술상 수상작가전 《화성N지구에서》는 거대한 도시 풍경의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제도와 법규들을 평면이나 설치 작업으로 다루며 현대사회의 ‘제도화된 풍경’을 이야기해온 작가 김지은의 개인전이다. 그는 그동안 거주하거나 경험했던 주변 환경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조사하고 분석해 고유의 장소성과 가치를 탐구해왔다. 그의 작업에서 ‘일상’과 ‘풍경’의 의미는 ‘땅’이라는 맥락을 통해 확장되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김지은은 거시적 도시 환경에서 보다 일상적 공간으로 나아가, 장소성이 제거되고 기능적으로 배치된 신도시(택지개발지구)와 아파트 단지 안에서의 삶을 비장소(non-places)*의 맥락에서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는 2017년부터 거주하고 있는 화성시 봉담 택지지구에서의 삶을 한국형 서버비아(suburbia)*의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신도시는 택지개발촉진법으로 대변되는 국가주도의 도시 개발이 단기간에 다량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확대해온 택지지구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자본 논리에 따라 택지가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신도시가 확장되는 추세 속에서 삶의 공간은 제도와 법규, 인간의 욕망, 상품 논리에 따라 상품화 및 획일화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맥락에서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장소성을 잃어버린 현대 도시 내 실존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는 토지이용계획도, 배치도, 평면도(floor plan) 등으로 나타나는 제도화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회화와 드로잉, 사진 콜라주 등을 통해 낯설고도 친숙하게 드러낸다. 작업에서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모델하우스의 거실 공간은 일종의 ‘비장소의 플랫폼’으로 제시된다. 실내 인테리어의 표본처럼 사용되며 구매자의 집에 대한 욕망을 가상적으로 실현해주는 모델하우스와 이케아 쇼룸은 외부공간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단절된 채 내부 공간에 집중하는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나아가 가장 사적인 공간까지 제도화된 측면을 드러내며 실제 바깥 풍경과 충돌하며 그 간극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뿐만 아니라 화성 탐사 로봇이 전해준 화성의 이미지나 거리뷰, 위성사진과 같은 기계적인 프로세스에 의해 찍혀진 사진들을 콜라주에 사용한다. 창이나 TV, 벽면에 걸린 그림들은 화성 탐사 로봇이 전해온 화성의 이미지로 바뀌거나 실제 모델하우스가 철거된 직후의 현장을 포착한 장면, 또는 택지개발지구를 벗어나면 펼쳐지는 어수선한(또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바뀌어 안과 밖의 상황을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는 장소/비장소의 모순과 가상공간에서의 새로운 장소성을 콜라주적 방식으로 종합하며 합리성으로 포장된 제도화된 공간의 불합리성을 누설한다.
제21회 우민미술상 수상작가전 《화성N지구》에서 작가 김지은은 도시 거주공간에서 펼쳐지는 제도화된 일상 풍경에 대한 고유의 시선을 통해 변화하는 도시 풍경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한다. 이번 전시는 ‘제도화된 풍경’에서 ‘제도화된 일상’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다. 이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비장소(non-places): 전통적인 장소의 요건인 관계성, 역사성,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곳
*서버비아(Suburbia): 자동차 중심의 미국 교외 지역의 생활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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