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섭: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
2023.12.15 ▶ 2024.01.14
2023.12.15 ▶ 2024.01.14
전시 포스터
한진섭
김대건 신부님 2023, Bianco Carrara, 27 x 19 x 58 (h)cm, 10.6 x 7.5 x 22.8 (h)in
한진섭
착한 목자와 착한 양들 2022, 대리석, 38 x 29 x 92 (h)cm, (좌) 38 x 17 x 30 (h)cm, (우) 40 x 18 x 32 (h)cm
한진섭
십자가 은총의 빛 2000, 대리석, 43 x 43 x 113 (h)cm, 16.9 x 16.9 x 44.5 (h)in
한진섭 개인전, 가나아트에서 10년 만에 개최
한국 작가 최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 설치
김대건 신부 성상(聖像)과 성가족상, 성모자상 등 주요 성상 조각 30여점 출품
가나아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 한진섭(Han JinSub, b.1956)의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S. Andreas Kim TaeGon, unveiled at the Vatican)》를 2023년 12월 15일부터 2024년 1월 14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개최한다. 한진섭은 한국 작가 최초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 조각상을 세우는 성과를 이루었다. 2014년 이후 약 10년 만에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하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 일련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며, 나아가 한진섭이 추구하는 예술 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진섭은 197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1981년 동 대학원 조각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 현대 조각의 1세대인 전뢰진(田雷鎭, b. 1929)과 유영교(劉永敎, 1946-2006)에게 사사했다. 같은 해 이탈리아 카라라로 건너가 카라라 국립 미술아카데미(Accademia di Belle Arti di Carrara) 조각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3년 이탈리아 피사(PISA) 국제미술공모전과 카라라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1등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 일본 하코네미술관에서 개최된 로댕미술대상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1997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감사장,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감사장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그의 작업은 프랑스 대통령궁(Palais de l'Élysée), 툴루즈 미술관(Muséum de Toulouse), 일본 하코네미술관(Hakone Open Air Sculpture Museum),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시립모형미술관(Pietrasanta City Museum for Model and Miniature), 카스텔란자 시립미술관(Castellanza City Museum)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있다.
반세기 동안 돌이라는 하나의 물성에 천착해 온 한진섭 작품의 맥을 관통하는 궁극적인 주제는 ‘삶’이다. 작업 초기에는 구상을 바탕으로 한 인체 중심의 조각을 선보였으나 2007년 해태제과의 의뢰를 받아 해태상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동물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십이지(十二支)를 주제로 동물상을 만드는 등 동물을 의인화한 조각을 제작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특수 재질로 만든 모형에 조각 낸 돌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드는 붙이는 석조(石彫) 시리즈를 제작하며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한진섭은 찰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난 후 석고나 폴리를 뜬 다음 그대로 옮겨 돌 조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1/5 크기의 작품 모형 조각을 먼저 만들어 공간과의 배치를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물 크기의 조각을 제작하는 것은 다른 조각가들과 구분되는 그만의 특징이다. 그는 화강암, 현무암, 대리석 등의 석재(石材)를 주로 사용하며 돌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입하고 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 속에서 형상을 꺼내고, 생명을 불어넣어 재창조하는 한진섭은 한국 조각의 전통적인 재료와 작업 방식, 서구 조각의 현대성과의 조화를 추구하며 조형 세계를 구축해왔다. 인체를 면으로 분할하여 단순화한 대칭적인 구도의 인물상을 집중적으로 작업해 온 그의 조각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둥근 형태를 하고 있으며 온화한 곡면이 가장 큰 특징이다. 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인위적으로 숨기지 않고 결과 질감을 살린 부드러운 마티에르 처리로 질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재료 자체가 갖는 물성을 존중하며 작업해오고 있는 한진섭에게 ‘돌’은 단순한 물질적 재료가 아니며 그 이상의 고유한 영역을 펼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단일 재료 사용과 망치와 정을 사용한 전통적인 제작 방식에서 장인(匠人) 정신이 돋보인다.
2년여의 걸친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과정 소개
바티칸에 설치된 것과 동일한 형태의 60cm 크기 김대건 신부상 제작
본 전시는 2023년 9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및 설치 과정을 보여주며 한진섭이 독자적으로 구축해온 그의 예술 세계를 반추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먼저 1전시장은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위해 바티칸 교황청에 제출하였던 모형 샘플들과 제작 과정을 기록한 영상 및 사진 자료, 연표를 비롯해 9월 16일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진행되었던 마우로 감베티(Mauro Gambetti, b.1965) 추기경(성 베드로 대성전 수석 사제)의 감사 미사와 축성식 현장을 공개하는 아카이브 형태로 구성하였다. 이어서 2∙3전시장에서는 그동안 한진섭이 작업해온 소품 위주의 성상(聖像) 조각을 포함하여 약 30여점을 선보인다. 그 중에서도 3전시장에는 바티칸에 설치된 것과 동일한 형태의 60cm 크기 조각상 〈김대건 신부님〉과 바티칸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시 사용한 돌의 일부(Bianco Carrara)를 함께 소개하며 그동안 고민을 거듭해 온 그의 시간과 노력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한국 가톨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성상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 벽감에 설치되었으며, 이 벽감은 550년동안 비워져 있던 자리였다. 김대건 신부 성상은 높이 3.77m, 가로 1.83m, 세로 1.2m 크기의 전신상으로, 갓과 도포 등 한국 전통 의상을 입고 두 팔을 벌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톨릭의 성지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은 가톨릭 교회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兪興植, b.1951) 라자로 추기경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힌 것이 단초가 되며 이루어진 일이다. 한진섭은 2022년 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비앙코 카라라를 채석하는 대리석의 고장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라라(Carrara) 지역에서 5개월동안 돌을 찾았으며, 2023년 1월부터 2023년 8월 말까지 이탈리아 서북부 도시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 머물며 8개월에 걸쳐 김대건 신부 성상을 제작하였다. 1년여간의 모형 제작 기간과 대리석을 찾고, 돌 조각을 한 기간을 합하면 작업 기간은 총 2년이다.
한진섭은 이번 전시를 위해 바티칸에 설치된 것과 동일한 형태의 김대건 신부상을 60cm 크기로 한번 더 제작했다. 작업은 큰 성상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으나, 결국 한국에서 최근까지 작업하여 완성하게 되었다. 작은 크기지만 큰 성상 제작 못지 않게 공이 많이 들었다. 한진섭은 “오히려 이 작업이 더 어려웠어요. 같은 것을 두 번 하니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라고 말하며, “이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바티칸의 김대건 신부상이 내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서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밝혔다.
한진섭은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작업을 맡기 전에 하우현 성당에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 버드내 성당에 정하상 바오로 성상 그리고 대전교구청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상을 제작한 적이 있으며, 세 성상 모두 한국의 전통 의상인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있다. 이는 기존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교한 사실 조각으로 그의 작업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한진섭은 천주교 신자이면서, 돌 조각을 오래 해왔고, 이탈리아에서 10년동안 유학을 한 경험이 있으며, 또 이탈리아 현지에서 작업이 가능한 작가였기 때문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되는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맡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그는 “어쩌면 제게 일어났던 일들이 결국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신부상을 세우기 위한 훈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다 신의 계획이 아니었을까요?”라고 회고한다.
한진섭은 “사람들의 삶 속에 가까이 다가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삶에 대한 따뜻하고 친근한 정서가 담긴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 노력의 결실이 한국 작가 최초로, 바티칸에 김대건 신부상을 세우는 성과로 피어나 전 세계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알리는 계기가 되고, 관람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가나아트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S. Andreas Kim Taegon, unveiled at the Vatican)》를 개최하며, 한진섭이 2년 동안 작업한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과정을 보여주고,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탐구하며 전통적인 표현 방식을 고수해 온 한진섭의 석재에 대한 응축된 열정을 재조명해보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가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평화로운 시간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 가나아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
고종희, <한양여자대학 명예교수, 서양미술사학자>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이 세워졌다. 바티칸에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 세워진 것은 김대건 신부가 처음이다. 축복식 주례를 담당한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총책임자이자 예술성 장관인 마우로 감베티(Mauro Gambetti) 추기경은 지금까지는 베네딕토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등 수도회 설립자 성인상들이 이곳에 세워졌는데 “김대건 신부를 시작으로 각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성상을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실 것”이라고 공표했다. 김대건 신부로 인해 2000년 가톨릭교회의 전통이 바뀌게 된 것이다.
김대건 신부, 유흥식 추기경,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조각상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전교구장 시절 그는 교황청의 부르심을 받고 2021년 8월 2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했다. 대건중, 고등학교를 나온 유흥식 추기경은 학창시절부터 김대건 신부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유흥식 추기경이 바티칸에 장관으로 부임하고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김대건 신부의 성상을 바티칸에 세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금년 5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전 세계인에게 김대건 신부의 삶과 신앙에 대한 강론을 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김대건 신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공경하고 있었다. 교황이 이처럼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된 것은 2014년 8월 14일~18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차 대전교구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때 대전교구의 교구장이 유흥식 추기경이었으니 두 분 사이의 신뢰가 쌓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을 들은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의 제작진이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서 한진섭 조각가가 김대건 신부 성상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취재가 가능한지 연락이 왔다. 그 무렵 한진섭 작가는 성상 작업이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여서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고, 작품이 완성된 후 Rai의 기자가 피에트라산타 작업장을 방문하여 취재를 하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뉴스 시간에 방영함으로써 이탈리아인들에게 바티칸에 설치할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한진섭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
바티칸에서 한진섭에게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 모형과 이력서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총 세 점의 모형과 자려들을 보냈다. 그 후 수개월 동안 연락이 없다가 2022년 7월 바티칸에서 최종 심사를 위한 참석 통보를 받고 한 점의 모형을 추가로 들고 바티칸을 방문하였다. 그 자리에는 바티칸 예술 총책임자 잔데르(Zander) 씨, 바티칸 공식 건축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한진섭 작가, 그리고 필자가 통역관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나서 20일 정도 후에 2차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때는 4미터 가까운 조각상의 제작과 설치를 작가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질문했고, 한진섭 작가는 정확하게 답변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한진섭 작가가 돌 조각에 정통한 조각가이고, 이 거대한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4개의 모형 중 양 팔을 벌리고 있는 현재의 모형이 선정된 이유는 김대건 신부 조각이 베드로 대성당 벽감 안에서 영원히 모셔져야 하므로 눈, 비를 피할 수 있는 형태가 선택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한진섭 작가는 이 조각상을 대전교구청을 위해 이미 한 점 제작한 경험이 있었고, 가장 애정을 담은 형태였기에 만족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바티칸에서는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이탈리아 작가가 맡기를 원했다고 한다. 베드로 대성당 예술 총책임자인 감베티 추기경은 바티칸 벽감 조각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이탈리아 조각가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한국 조각가가 과연 이 엄청난 조각상을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한국 성인의 조각은 한국 조각가가 제작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며 바티칸 관계자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한국 조각가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유흥식 추기경이 바티칸 장관으로 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유흥식 추기경은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바티칸에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였고, 교황께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삶을 이야기해드렸으며, 마침내 그의 성상을 바티칸에 모실 수 있게 함으로써 김대건 신부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공경을 받는 글로벌 성인 반열에 오르게 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냈다.
성상 주문은 바티칸에서 하였고, 작품 제작에 필요한 경비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지불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22년 10월 추계정기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님 조각상 비용을 국내 천주교 모든 교구가 함께 지원하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로 바티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조각상 제작이 공식화되었고 언론이 관심을 갖고 취재하기 시작했다.
작품 제작소
한진섭이 김대건 신부상을 만든 제작소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라는 마을에 있는 니콜라 스타제티 제작소다. 마을 이름인 피에트라산타는 피에트라(돌)와 산타(성스러운)의 합성어다. 피에트라산타는 한진섭 작가가 유학시절 10년 동안 일했던 바로 그 마을이다. 헨리 무어, 세자르, 보테로,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하여 전 세계 조각가들의 돌 조각이 바로 이 마을에서 제작되었다. 80년대 초 유학을 왔던 故 유영교 선생이 로마에서 살다가 이곳이 돌조각의 메카임을 알고 자리를 잡은 후 한진섭, 이양자, 박헌열, 김창곤, 박용남, 조병섭, 유형택, 김동우, 故 이종빈, 故 김호룡 등 20 여명 가까운 유학 초창기 조각가들이 가족과 함께 80년대 초 카라라 아카데미에서 유학을 했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지금도 한‧이조각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경재를 비롯하여 박승완, 김성일, 최윤숙, 박대규, 김준호 등이 카라라와 피에트라산타 등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 중 이경재는 피에트라산타에서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이탈리아 제작소를 소개했고 한진섭 작가가 제작소를 선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마침내 돌을 찾다
바티칸에서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을 공식적으로 의뢰받은 후 착수한 첫 번째 업무는 대리석 원석을 찾는 일이었다. 작품의 높이가 무려 3미터 70센티미터, 폭이 1미터 80센티였으므로 대리석 블록은 그보다 더 커야 했고 길이가 최소 4미터 폭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원석을 찾아야 했다. 이 같은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 돌을 찾는다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별 하나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학교 운동장의 몇 배나 되는 넓은 평지에 수천 개의 원석들이 촘촘히 쌓여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결국 카라라와 베르실리아 지역 일대를 찾아 헤멘 결과 12월에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서 대리석을 찾을 수 있었다. 돌을 찾기 시작한지 5개월 만이었다. 한진섭 작가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사람 속을 알 수 없지만 돌 속은 더 알 수 없다.”
작업을 하다보면 겉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무늬나 크랙(금)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크랙이 있으면 조각이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작업 중이라도 중단하고 새 돌을 찾아야 한다. 작업을 완성하고 한진섭은 말했다. “이 돌은 미켈란젤로가 작업한 스타투아리오(Statuario) 대리석보다 더 단단하고 색상도 더 하얗고 좋습니다.” 2023년 1월 초 가슴을 조이며 돌을 찾다가 마침내 색상이 아름답고 무늬가 없으며 크기가 가능한 대리석 블럭을 발견했다. 눈에 보이는 측면과 위쪽 부분은 상태가 좋았다. 땅과 닿아 있는 아래쪽을 확인하기 위해 대형 기중기로 들어 올리니 아래쪽에도 금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OK 신호가 떨어졌다. 작업장 주인은 작업장 이름을 돌 위에 찜했다. “OK STAGETTI”
구매한 원석은 그날 즉시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큰 덩어리들을 떼어내는 전문 업체로 옮겨졌다. 해가 질 무렵 업체가 있는 산골 마을에 도착했는데 석양에 물든 산들의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피에트라산타를 포함한 이 일대는 베르실리아(Versilia)라고 불리며 앞에는 지중해 바다, 뒤에는 아름다운 산이 있다.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 마싸(Massa), 카라라(Carrara)로 이어지는 약 30km의 지역으로 가히 지상천국으로 불릴만 하다. 이 지역은 카라라 대리석 산에서 채취한 대리석 블록을 판매하는 가게, 그것을 가공하는 업체, 돌을 조각으로 만드는 제작소, 대리석 조각을 위한 공구 가게 등 지역 전체가 대리석으로 특화된 마을이다.
2023년 5월이 되니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가 윤곽을 드러냈다. 이제부터는 작가가 직접 작업을 해야 한다. 두루마기 입은 모습을 돌로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이탈리아 조각가들은 한복의 구조와 모양새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모형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지만 정확한 표현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진섭은 김대건 조각상의 아래쪽부터 가슴 부분까지 한 땀 한 땀 조각을 해 나갔다.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정교한 사실조각이었다. 신발, 한복 바지, 대님에서 영대와 두루마기를 맨 끈에 이르기까지 얇은 천이 바람에 살짝 휘날리는 듯한 섬세함에서는 사실조각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손등에는 피부 속 보이지 않는 뼈대와 혈관까지 표현했고, 손가락 마디의 주름과 손톱도 이보다 더 정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체와 부분 모두 대리석 조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뼈대와 살갗처럼 느껴졌다.
허리까지 작업을 마친 후 이번에는 머리에 쓴 갓부터 얼굴을 거쳐 갓끈과 두루마기와 저고리의 동정, 두루마기를 묶은 끈, 옷고름, 턱 밑에 단단히 묶은 갓끈, 양팔을 벌린 한복의 자연스러운 주름, 매끈한 영대가 한진섭의 손을 거치며 대리석 조각에서 실물로 변신해 갔다.
돌아가신 김대건 신부가 부활하신 듯 생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정점은 얼굴이다. 한진섭은 25세에 순교한 청년 김대건 신부를 표현하고자 했다. 얼굴에는 김대건 신부의 이목구비와 외모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성인의 혼을 담아야 했다. 25세에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고, 용감하며, 담대한 모습. 초상조각은 주인공의 얼굴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성품과 영혼까지 불어넣어야 한다. 잘생긴 코, 살짝 다문 입에서 성인의 기백이 느껴졌다. 얼굴 전체가 너무나 섬세하여 리얼리즘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눈동자였다.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은 김대건 신부의 용감함과 담대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눈을 통해 완성되었다. 한진섭이 만든 김대건 신부의 얼굴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은 얼굴에 담긴 25세 청년의 아름다움과 기백, 담대함이 표현되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까지 보여준 것이다. 한진섭은 김대건 신부상의 앞모습뿐만 아니라 뒷모습도 너무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조각했다. 뒤태가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상을 나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뒷모습은 작품을 벽감에 설치하고 나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원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섭은 뒷모습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였다.
작업을 하다가 한진섭은 4미터 가까운 높이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는데 단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작가가 말하기를 늘 김대건 신부님이 옆에 계셨고, 떨어질 때도 받쳐주었다고 믿고 있다. 나 역시 한진섭의 김대건 조각상은 조각에 평생을 바친 조각가의 저력과 실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동안 한진섭은 이런 사질적인 작품을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문(銘文)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프란치스코 S.ANDREAS KIM TAEGON
교황님 PRESBYTER ET MARTIYR
문장 (COREA 1821-1846)
A.D.MMXXIII
조각의 좌대 부분에는 위와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위에서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생몰년, 2023(제작연도), 그리고 왼쪽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문장(재임 교황 문장)이다. 명문의 내용과 순서는 바티칸에서 정해진 룰을 따랐다. 명문을 위해 글자 디자인이 필요했다. 나는 세례를 받은 지 몇 달 되지 않은 김진선씨에게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세체가 탄생되기를 기대하면서 훈민정음체를 응용한 서체와 그와 어울리는 영자 서체 디자인을 부탁했다. 그녀가 디자인한 한글 서체는 바티칸 측에서 허락을 했으나 영자 서체는 그들이 원한 Times New Roman 서체로 바꿨다. 이 몇 줄의 명문이 결정되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바티칸의 명문은 서체, 크기, 줄 간격, 위치 등이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내 바티칸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감베티 추기경이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운송
8월 말 마침내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완성되었다. 아직은 조각상이고 축복식이 끝나면 성상이 될 것이다. 이제 조각상을 베드로 대성당 벽감으로 운송해야 한다. 대리석 조각은 작은 충격에도 깨질 수 있는 유리와 같다. 이 거대한 조각을 손상 없이 수 백 킬로를 운반할 것을 생각하니 작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천사가 나타났다. 상자를 짜는 조반니(Giovanni)라는 장인(匠人)이다. 그는 수제자를 데리고 성상의 몸통이 움직이지 않도록 무게를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가장 아날로그 적이며 놀라운 방식으로 조각을 꼼짝달싹 못하게 고정시킨 후 거대한 상자로 덮었다. 이 방식이라면 몇 백 킬로든 몇 천 킬로든 안전하다고 했다. 9월 4일 김대건 신부 조각상은 바티칸의 설치 전문 회사 민구치(Minguzzi)가 보낸 대형 트럭에 실려 로마로 떠났다.
설치
2023년 9월 5일 니콜라와 그의 아들 세바스티아노, 그리고 한진섭 부부가 작품을 설치할 바티칸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20여 명의 민구치 회사 직원들이 작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품을 설치할 벽감 아래에는 집 한 채도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은 철봉으로 만들어진 기초공사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을 보자 작가는 걱정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너무나 튼튼한 기초공사였기 때문이다.
첫 작업은 막 도착한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들어있는 나무상자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강을 건넜으니 배를 버려야 한다. 목재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상자는 조심스럽게 해체되었다. 작업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수십 명의 직원들은 각자의 맡은 일에 충실했다. 설치의 총 책임자는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민구치 회사의 대표 민구치씨였다. 그날 안전한 설치작업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 거액이었다.
대형 크레인으로 김대건 조각상을 들어올려서 설치를 위해 미리 준비한 벽감 앞에 내려놔야 한다. 이 때 조각은 정확하게 벽감의 중앙에 놓여야 하고 바닥과 180도 수평이 유지되어야 파손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첫 번에 공중에 들려진 조각이 벽감의 중앙에 정확하게, 그리고 살포시 내려왔다. 나는 이 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바닥과 좌대 밑바닥이 완벽하게 평행을 이루면서 마치 발레리나가 착지하듯, 거대한 석상이 살포시 바닥에 놓이는 순간을 지켜봤다. 여기서부터 장인들은 기계를 쓰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조각을 조금씩 안쪽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일꾼들도 바티칸 직원들로 전원 교체되었다. 벽감 안에 넣는 작업 방식은 2천 년 전 로마시대부터 사용했던 비누칠 방식이라고 했다. 제작부터 운송, 설치까지 이들 로마인의 후예들은 2천년 전 로마제국 선배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음을 목격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각상이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벽감 안에 손톱만큼의 손상도 입지 않은 채 쏘옥 들어갔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딱 맞았다.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성상의 위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조각상이 설치된 곳은 베드로 대성당 정면을 바라본 상태에서 오른쪽 벽 쪽이고, 정면에서 아주 가깝다. 원래 이곳은 프란치스코, 베네딕토, 도미니코 등 수도회 설립자 성인들의 성상이 모셔진 곳인데 어찌 된 일인지 가장 좋은 명당자리가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 지 500년이 지나도록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하느님은 우리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위해 이 자리를 비워 놓으신 것일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상 축복식
2023년 9월 16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상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그날은 성인이 순교한 지 177년 된 날이었다. 오전 10시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 오후 3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주례 성 베드로 대성당 미사, 그리고 성상이 모셔진 현장에서 감베티(Gambetti) 추기경에 의해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오전 10시 클레멘세 8세 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식이 시작되었다.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을 위해 한국에서 오신 50여 명의 국내 및 이탈리아 현지 한국인 사제들, 염수정 추기경, 이용훈 주교회의의장, 서상범 추기경 등 여러 고위성직자와 대통령 특사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그리고 한국에서 온 공식사절단과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한인 사제, 교민, 가톨릭신문사 등 총 500여명이 이 홀에 모였다. 한국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과 악수하며 알현의 기회를 주셨다. 교황님의 따뜻한 음성과 악수에 모두가 감동한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축복식에 앞서 3시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주례로 김대건 신부 바티칸 성상 설치 감사 미사가 있었다. 미사가 열린 곳은 평소에는 일반 관광객이 입장할 수 없는 성당의 가장 앞쪽이었다. 바티칸에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를 가능하게 하신 유흥식 추기경은 아마도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큰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미사를 집전하셨을 것이다.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잊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베드로 성당을 나오는데 장관이 펼쳐졌다. 드넓은 베드로 성당에 가득했던 관광객들이 마치 홍해가 양쪽으로 갈라지듯 길을 터 놓았다. 미사를 마친 고위 성직자들과 60여명의 사제들이 두 줄로 열을 지어 먼저 나갔고, 일반 참가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행렬이 끝날 때까지 베드로 대성당 입구는 닫혀 있어서 관광객들은 밖에서 기다리면서 이 장엄한 장면을 지켜보았다.
축복식
성 김대건 안드레아 조각상이 모셔진 베드로 대성당 외벽에 도착했다. 이곳의 위치는 성당 안쪽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있는 쪽의 바깥 부분이라 생각하면 거의 맞을 것이다.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는 역대 교황님들과 성인들의 무덤이 모셔져 있는데 김대건 신부상이 있는 곳에는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이 있다. 김대건 신부의 시성식을 준비한 바로 그 교황이시다. 그 분은 1984년 여의도 광장에서 103인의 한국인 성인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시고 그들 사이에 김대건 신부도 계셨다.
축복식의 주례는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이 맡았다. 그의 공식 직함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수석사제(Arciprete)이자 성 베드로 대성전 예술 총책임자(Presidente della Fabbrica di San Pietro)다. 영어의 President of Factory of Saint Pieter에 해당한다. 축복식이 거행된 김대건 신부 성상 앞에 감사 미사에 참례했던 모든 분들이 다 모였다.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인파로 빽빽했다. 축복식을 거행한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은 지금까지 이곳에는 수도회 설립자들이 모셔졌으나 “김대건 신부를 시작으로 각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성상을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대건 신부 성상으로 인해 유서 깊은 바티칸의 전통이 바뀌게 된 것이다.
연혁《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S. Andreas Kim TaeGon, unveiled at the Vatican)》
2021. 9 김대건 신부와 유흥식 추기경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프란치스코 교황께 성상 봉헌 의사를 밝혔다.
2021. 12 바티칸 교황청에 자료 제출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위해 필요한 자료 제출 요청을 받았다.
2022. 3 모형 제출
여러 자세의 모형안을 받아보고 싶다는 의뢰를 받아 3개의 모형을 제출했다. 대전교구청 성상 제작에 쓰였던 모형을 약간 변형하여 바티칸에 제출했다.
2022. 7. 18 바티칸 교황청 1차 회의
기존에 제출한 두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형태의 모형,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있는 형태의 모형, 왼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동적인 형태의 모형과 회의 참석 날 직접 들고 간, 오른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으로 자세를 교정한 모형 샘플을 포함하여 총 4개의 모형을 바탕으로 바티칸 교황청 관계자들과 1차 회의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는 바티칸 예술 총책임자 잔데르씨, 바티칸 공식 건축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조각가 한진섭, 고종희 한양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2022. 7. 28 바티칸 교황청 2차 회의
바티칸 교황청 관계자들과 2차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한진섭이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위한 작가로 최종 결정되었다. 여러 개의 모형 중 오른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자세의 모형은 설치 장소가 외부인점을 고려했을 때 눈과 비, 바람, 햇빛에 노출돼 시간이 지나면서 색감 등 변형의 우려가 있어 탈락되었다. 총 4개의 모형 중 맨 처음 제출했던 두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형태의 모형으로 최종 선정되었다.
2022. 8. 1 카라라(Carrara)에서 돌을 찾기 시작하다
* 카라라(Carrara)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 북부, 마사카라라 현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이탈리아 최대의 대리석 산지다. 양질의 대리석이 수천 년간 채굴되고 있는 석재 산업과 예술의 본 고장으로 전 세계 유명 작가들이 모여 예술 활동을 하는 지역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도 카라라 대리석을 사용했다.
2022. 8. 1 작업장 선정과 팀원 구성 완료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로 이동하여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위한 작업장을 찾고, 팀을 구성했다. 한∙이 조각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경재씨의 추천으로 스타제티 스튜디오(Marble Studio Stagetti)를 작업소로 선정하게 되었다. 대표인 니콜라 스타제티를 비롯한 이탈리아 장인 2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2022. 10. 13 한국천주교주교의회 추계정기총회
한국천주교주교의회 추계정기총회에서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비용을 16개 교구가 지원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발표 이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각 제작이 공식화되었다.
2022. 12. 16 한국천주교중앙협의와 계약 체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와 조각상 제작 지원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
2023. 1. 9 마침내 돌을 찾다
실외에서도 강하게 버틸 수 있으며 무늬와 크랙이 없는 따뜻한 느낌이 드는 높이 4.5m, 폭 2m 크기의 통 대리석(비앙코 카라라, Bianco Carrara)을 최종 선정했다. 눈에 보이는 위쪽과 측면은 상태가 좋았다. 아래쪽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대형 기중기로 들어 올렸다. 다행히 크랙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최종 선정된 원석 위에 작업장 주인인 스타제티는 돌 위에 ‘OK, STAGETTI’라고 적었다.
2023. 1. 9 축성식
대리석이 선정된 후에 피에트라산타 성당에 계신 주임 신부님께 연락을 드려 축성식을 진행했다.
2023. 1. 9 공식적으로 이 날이 제작 첫날이다
2023. 1. 10 – 1. 31 절단작업 시작
최종 선정된 대리석은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큰 덩어리들을 떼어내는 전문 업체로 옮겨졌다. 높이 4.5m, 폭 2m 크기의 통 대리석을 와이어로 절단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2023. 2. 1 – 4. 30 형태 구성
김대건 신부 성상의 전체적인 큰 형태를 잡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2023. 5. 1 – 6. 30 균형잡기
기울기나 비례 등 균형을 잡는 작업을 하기 위해 눕혀져 있던 조각을 세워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2023. 5. 24 이탈리아 국영방송국 RAI의 취재 요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바티칸 광장에서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강론을 하셨는데 그 소식을 들은 이탈리아 국영방송국인 RAI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김대건 신부님의 형상을 보여줄 수 없어 정중히 거절했다. 더 완성이 되면 다시 취재를 오겠다고 했다.
2023. 7. 1 – 7. 31 디테일 묘사 작업
김대건 신부의 머리와 손, 갓신의 형태에 디테일을 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대건 신부님의 형상은 한국의 전통 의상인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사제직을 상징하는 영대를 두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한국의 미를 보여주는 부드러운 곡선과 양감을 강조하는 것에 집중했다. 단단히 묶은 갓끈, 두루마기의 동정과 고름, 가슴께에 묶은 세조대의 매듭과 술, 양 팔을 벌린 자세에서 드리워지는 한복의 자연스러운 주름, 매끈한 영대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벽감에 설치하고 나면 앞으로는 볼 수 없을 뒷모습에도 두루마기의 주름을 살려 마무리했다.
2023. 8. 1 – 8. 28 얼굴 묘사 작업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순교한 청년 김대건 신부를 표현하고 싶었다.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고, 용감하며, 담대한 청년의 기백과 깊은 신앙심이 느껴지는 감정을 묘사하고자 했다.
2023. 8. 1 – 8. 25 명문(銘文)을 새기다
김대건 신부 성상 좌대 부분에 들어갈 명문을 제작했다. 위에서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생몰년, 제작연도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 문장(재임 교황 문장)이다. 명문의 내용과 순서는 바티칸에서 정해진 룰을 따랐다. 명문을 위한 글자 디자인은 세례를 받은 지 몇 달 되지 않은 김진선씨에게 요청했다. 한글 서체는 훈민정음체를 응용하여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으로 디자인을 요청했다. 영자 서체는 바티칸 측에서 원한 Times New Roman으로 디자인했다. 바티칸의 명문은 서체, 크기, 줄 간격, 위치 등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2023. 8. 9 작업 중에 떨어지다
작업을 하다가 4m 가까운 높이에서 떨어졌으나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4m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뼈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쳐야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떨어질 때 김대건 신부님이 밑에서 받쳐주신 거라는, 항상 같이 계셔주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2023. 8. 19 RAI의 두번째 취재 요청
지난 5월, 김대건 신부님의 형상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첫번째 취재 요청을 거절했는데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에 이탈리아 공영 방송국 RAI에서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2023. 8. 29 김대건 신부 성상 완성
8개월에 걸친 긴 여정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2023. 8. 30 – 9. 3 이동 및 설치 작업 준비
김대건 신부 성상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제일 걱정되고 힘들었던 부분이다. 발목으로 조각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데다 넓고 얇은 갓, 양 옆으로 벌리고 있는 팔, 손목과 손가락이 부서지거나 문제가 생길까 봐 고민이 많았다.
성상의 몸통을 고정할 수 있는 상자는 조반니라는 장인에게 맡겼다. 발목에 힘이 쏠리지 않도록 무게 중심 분할이 가능한 상자를 제작하겠다고 했다. 상자를 보니 그제서야 안도감이 생겼다. 완벽하게 작품을 옮겨갈 수 있는 전문가가 피에트라산타에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2023. 9. 4 성 베드로 대성당을 향해 출발
피에트라산타에서 로마까지는 차로 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바티칸 설치 전문 회사인 민구치(Minguzzi)의 대형 트럭을 통해 약 40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였다.
2023. 9. 5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설치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설치된 위치는 성 베드로 대성전 오른쪽 외벽에 있는 4.5m 높이의 아치형 벽감이다. 전임 교황 대다수가 묻힌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 바티칸 기념품 가게와 가까워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목으로 500~600년동안 비워져 있던 곳이다. 현장에는 20여 명의 민구치 회사 직원들이 성상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4톤에 달하는 성상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철골 구조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 되어있는 벽감 앞에 대형 크레인으로 김대건 신부상을 들어 올려 벽감 정중앙에 놓아야 하고, 파손을 막기 위해 바닥과 180도 수평을 유지해서 놓아야 한다. 이 때부터는 바티칸 직원들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기계를 쓰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조각을 조금씩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고 했다. 벽감 안에 밀어 넣는 그 작업 방식은 2천년 전 로마시대부터 사용했던 비누칠 방식이라고 한다.
작품을 설치한 후에는 9월 16일 축복식 전까지 천으로 가려 두었다.
2023. 9. 1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
2023년 9월 16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상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김대건 신부 성상이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오전 10시에는 클레멘세 8세 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였다. 오후 3시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주례로 김대건 신부 바티칸 성상 설치 감사 미사가 있었다. 그리고 성상이 모셔진 현장에는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성 베드로 대성전 수석 사제)에 의해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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