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수: 벼룩 유령 The Ghost of a Flea
2024.01.13 ▶ 2024.02.03
2024.01.13 ▶ 2024.02.03
전시 포스터
이병수
자유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the Freeport 2024 multi channel video, color, sound 3분 24초 반복재생
이병수
자유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the Freeport 2024 multi channel video, color, sound 3분 24초 반복재생
이병수
예술품을 수집하는 뉴비를 위한 안내서 The Kindly Guide for Newbies Collecting the Works of Art 2024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21분
이병수
《벼룩 유령》전시전경 2024
벼룩 유령
김민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큐레이터)
이병수의 작업은 장소성을 기반하여 감각과 사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실재하거나 가상의 장소에서 발현되는 독특한 인상, 장소에 내재된 추상적 개념이나 역사적 이데올로기를 결합하여 작품의 다양한 도달지점을 창출해간다. 작가의 작업은 현실과 가상, 허구와 실재가 교차되는 경계 지점 위에 구축된다. 이번 개인전 《벼룩 유령》에서 작가는 스위스에 위치한 자유무역항 포트 프랑(Ports Francs)을 주목한다. 고가의 예술작품의 거래 및 보관이 이뤄지는 이곳은 실재하지만, 소수만이 접근 가능하기에 은폐되어 있으며, 실질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비가시적 장소이다. 신분의 익명성, 관세로부터의 자유 등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곳에서 예술작품 또한 최고의 투자상품으로 자리한다. 부호층의 사적 소유물로 전락한 예술작품은 전시 가치의 상실을 시작으로 모든 문화적 역할과 기능을 제거당한다. 작가는 극단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드리운 현대미술의 풍경을 조망하고 이곳에서 발견 가능한 가치들의 충돌을 제시한다.
전시 《벼룩 유령》은 차분하지만, 매혹적인 영상으로 시작된다. 영상 작업 〈자유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예술작품 운송 및 보관 전문 기업 나튀랄 르쿨트르(Natural le Coultre)의 정보를 기반으로 제작된 가상의 홍보 영상이다. 이 ‘택배 회사’는 초호화 예술작품의 안전한 운송을 위한 모든 서비스를 이행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의 물류창고를 자유 무역항, 곧 포트 프랑에 둔다는 것이다. 철저한 보험 가입과 작품 전문 복원 및 항온 시스템을 갖춘 물류창고까지, 이들의 서비스는 완벽에 가깝다. 또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고객이 소유한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프라이빗 쇼룸의 제공이다. 그리하여 포트 프랑에는 작품의 보관과 감상 그리고 매매를 통한 수익 창출에 이르는 이들만의 시스템이 구축된다. 더욱이 법적으로 운송 중인 상태에서 관세와 부가세 면제는 마치 혜택처럼 제공된다. 이렇게 나튀랄 르쿨트르는 작품 운송의 ‘무한한 지연’을 제안한다. 작가는 결코 ‘대중성’을 지향하지 않는 이들의 ‘대중적 홍보 영상’을 통해 현시대 부유층이 어떻게 예술작품을 자본화하고, 소유하며, 향유하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폭로한다.
8천만 달러가 1억 2천만 달러가 되고 곧 4억 5천만 달러로 수정되는 곳, 포트 프랑은 손쉬운 자본의 증대를 보장하고 심미적 감상은 보너스처럼 쥐여주는 곳이다. 포트 프랑의 가치는 숫자로 증명된다. 〈예술품을 수집하는 뉴비를 위한 안내서〉는 친절한 눈높이 설명으로 예술작품의 소유와 투자의 가치를 역설한다. 이곳에 존재하는 수만 점의 작품과 천문학적 가격 폭등의 역사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종속된 현대미술의 증거로 활용된다. 아트 딜러로 등장하는 제인 캐슬턴1)은 포트 프랑이 곧 지상 최대의 미술관이 될 것이라 외친다. 영상에 등장하는 두 캐릭터의 대화에서 포트 프랑은 제약 없는 소유, 자유로운 거래, 이윤 창출 등의 자본주의 논리로 찬양 받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익명성, 조세 피난처, 폐쇄성과 같은 극단적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이 함께 노출되고 있다. 영상의 독특한 지점은 세계 최고의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이 대상인 영상이 유아용 인형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인데, 초보 투자자를 위한 눈높이 설명임을 참작해도 이 과한 설정은 편향된 가치 기준으로 어리석은 판단과 그릇된 선택을 하는 거대 자본가의 풍자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앞서 친절한 안내서를 통해 예술작품의 투자 가치를 배웠고, 포트 프랑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나튀랄 르쿨트르에 관한 정보를 습득했다. 그리고 작품 〈매트릭스〉는 우리에게 포트 프랑을 보여준다. 거대한 창고가 된 전시장에는 고급스러운 목재 상자들이 일렬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전시장 벽면을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상자들의 행렬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이 수만 점의 미술품이 보관되어 있는 포트 프랑의 일부분임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작품들은 상자 안에 얌전히 보관된 채 자신의 소유자를 위한 충실한 자본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작품의 전시 가치를 비롯하여, 그 어떤 인문학적 해석이나 문화 담론의 형성도 기대할 수 없다. 〈매트릭스〉는 자본으로 치환된 예술이 상실하는 고유한 의미들을 가시화한다. 박물관의 전신인 분더카머(Wunder Kammer)는 유럽의 왕족과 귀족이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진귀한 물건을 보관하고 은밀히 공개하는 공간으로, 부와 권력 그리고 특권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의 포드 프랑에서 근대의 분더카머를 떠올린다. 과거 신분제 사회와 현대 자본주의 시대는 기묘한 대칭 지점을 이루고 있다.
포트 프랑은 자본 지향적 가치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여타의 가치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가리운다. 이 교묘한 지휘는 포트 프랑의 존재 근원에 자리하여 은밀하고도 강력하게 추진된다. 작가는 자세한 설명 대신, 하나의 고전 작품을 통해 이곳의 지휘자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끝없이 이어지는 포트 프랑의 풍경 위로 이들을 조망하는 작품 〈The Ghost of a Flea〉2)가 있다. 튀어나온 눈알과 날름거리는 혓바닥, 파충류와 뒤섞인 듯한 근육질의 벌거벗은 기괴한 생김새는 괴물 혹은 작은 악마를 연상케 한다. 생물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는 기생충 벼룩의 형상화인 이 존재는 한 손에는 피 그릇을, 다른 손에는 가시를 들고 먹어 치울 것을 갈망하며 배회하고 있다. 그는 불결함과 타락의 상징으로 탐욕과 집착에 대한 경고를 보여준다. 자본을 향한 탐닉과 무한한 소유의 욕망은 포트 프랑을 세우고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자리한다.
시장의 형성과 화폐 경제의 탄생은 개인의 독립과 자유, 이동과 교류를 선사했고 다양한 사회 문화 조직의 형성과 발전을 이루게 했다. 분명 시작은 그러했고 모두가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피케티(Thomas Piketty)3)의 주장과 같이 자본주의는 부의 불평등이라는 근원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에 의하면 이 결함을 저지할 자생적인 방법은 없으며, 극단으로 치붙어 오른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쌓아온 개개인의 존재 가치와 공공의 문화를 훼손하기에 이른다. 짐멜(Georg Simmel)은 일찍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실되는 사물 및 인격의 가치를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노동을 비롯하여 벌금에 이르는 사회적 의무까지 돈으로 교환하지 못할 것이 없는 세상에서 돈은 절대적으로 추구할 목표가 되었으며, 유형의 사물에서 무형의 개념까지 모든 것이 투자의 가치로 판단된다. 자본에 의한 가치의 수평화는 개별자와 사물의 특수성을 가리우지만, 우리는 자주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병수는 포트 프랑의 형성을 위한 유무형의 기반을 투명하게 제시한다. 예술작품 투자를 돕는 서비스, 소유와 투자의 가치를 주장하는 자본주의 논리, 그리고 자본이 된 작품을 내세우며 포트 프랑의 구조화를 이뤄간다. 이병수가 구현한 포트 프랑은 예술의 자본화를 긍정하는 외피를 입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화려한 주장 아래 가리어진 개별자의 가치 상실의 발견을 유도한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자발적 발견은 고전 작품 〈The Ghost of a Flea〉에서 명확해진다. 전시 《벼룩 유령》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 그리고 실재와 허구의 경계 위에서, 극단적 자본주의에 내재된 양면성을 중심으로 현대 미술 혹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간다.
1) 제인 캐슬턴(Jane Castleton)은 안드레아 프레이저(Andrea Fraser)의 퍼포먼스 작품 〈Museum Highlights: A Gallery Talk〉(1989)에 등장하는 도슨트 역할의 캐릭터이다. 작가 자신이 연기하였다.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미술관의 고상하고 현학적인 언어를 활용해 권력과 자본의 온상이 된 현대 미술관을 풍자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이들의 우월주의와 제도화를 비판한 바 있다.
2) 원작은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로 활동한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9)의 〈The Ghost of a Flea〉(1819-20, 테이트 박물관 소장)이다. 전시에서 이병수는 원작의 인쇄본을 전시한다.
3)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1971-)는 프랑스의 경제학자이다. 주요 저서로는 『21세기 자본』(2014),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가 있다.
이병수(b.1980)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언더커런트》(2021, 탈영역우정국, 서울), 《임시극장》(2020,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인천), 《이음새 없는 세계》(2019, 더레퍼런스, 서울), 《우리 세계를 위한 송시》(2018, 사루비아다방, 서울)가 있다. 단체전으로는 《방향감각》(2023, 청주시립미술관, 청주), 《존경하는 ( ) 여러분》(2022, 공간 힘, 부산), 《전시후도록》(2021, 웨스, 서울), 《유령걸음》(2019, 경기창작센터, 안산), 《퍼폼2019: 린킨아웃》(2019,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일민미술관, 서울), 《거짓말》(2019, 서울대미술관, 서울)등이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2020),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2019),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2012),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2010)에 입주작가로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사업 시각예술분야(2021, 2019),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SO.S(Sarubia Outreach & Support) 작가지원 프로그램”(2017),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2014)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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