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킴
Untitled 2024, acrylic and glue on canvas, 200 x 200cm
씨킴
Untitled 2023, acrylic and glue on canvas, 200 x 200cm
씨킴
Untitled 2023, acrylic and glue on canvas, 72 x 60cm
씨킴
Untitled 2024, acrylic and glue on canvas, 130 x 97cm
씨킴
Untitled 2024, acrylic and glue on canvas, 250 x 200cm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씨킴(CI KIM, b. 1951)의 열일곱 번째 개인전 《레인보우(RAINBOW)》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신작 170여 점을 선보인다.
씨킴은 어린 시절 하늘에서 보았던 무지개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비가 그치고 떠오른 태양 뒤로 펼쳐진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예술적 영감의 원천임을 그는 오랜 기간 고백해 왔다. 씨킴의 작업과 삶 전반에 ‘무지개’는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간 ‘무지개’가 ‘꿈’, ‘희망’, ‘아름다움’, ‘예술’ 등의 추상적인 개념의 형태로만 머물렀다면, 최근 작업에서 그는 무지개가 자아내는 다채로운 빛깔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색의 매력에 흠뻑 빠져 각각의 색이 주는 감각과 기쁨을 하나하나 맛보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씨킴의 대형 회화들은 이러한 색에 대한 본능적 끌림과 충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색에 대한 강한 끌림은 인간이 거스르기 어려운 본능적 욕구이다. 기원전 2~3만 년 전에 발견된 원시 동굴벽화에서부터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중국 황하 문명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인류가 남긴 무수한 회화, 조각, 건축에는 색의 사용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고찰이 인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수천 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색에 대한 본능적 끌림이 내재되어 있음을 다소 명백하게 보여준다.
색채를 이론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된다. 모든 사물이 물(水), 공기(風), 불(火), 흙(土)이라는 4대 원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기원전 490~430년경)는 세상을 이루는 모든 색 역시 4대 원소를 상징하는 흰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의 조합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분석적 접근은 히포크라테스,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년)로 이어졌다. 이후, 뉴턴(Isaac Newton, 1642~1726)이 태양 광선의 스펙트럼을 발견하기까지 약 2,000년 동안이나 서구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색채 분류법을 사용해 온 것을 보면, 색채과학의 역사는 색채의 자연스러운 사용, 즉 인간의 본능이 발현되는 속도보다 훨씬 더딤을 알 수 있다.
한편, 뉴턴이 1974년 『광학(Opticks)』에 발표한 빛과 색채에 대한 논문은 근대 색채과학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연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오랫동안 인류에게 희망과 약속의 상징이자 전설과 신화의 모티프가 되던 ‘무지개’에 대한 환상을 산산조각 내어버린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뉴턴은 빛 자체에는 색이 없으며 색채는 굴절률이 다른 광선에 기인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프리즘을 통해 태양빛을 빨강부터 보라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7가지 무지개색으로 분류해 냈다. 그리고 색채를 “빛의 분할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라는 물리적인 용어로 정의했다. 무지개는 더 이상 인간의 염원이나 신비로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빛의 굴절로 인해 발생하는 ‘객관적 실체’가 된 것이다.
이러한 뉴턴에 정면으로 승부수를 던진 사람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이다. 괴테는 인간의 감각과 무관하게 객관적 실체로 존재하는 색채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색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적, 생리적 요인에 따라 각각 다르게 인식되는 감각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괴테는 인간의 감각과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반드시 색채는 인간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74)에서 베르테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 입고 있었던 옷이 푸른 연미복에 노란 조끼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다른 소설 『파우스트(Faust)』(1831)에서 사랑의 슬픔을 겪은 파우스트가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 사이로 기필코 피어나고야 마는 오색찬란한 무지개에 감탄하며 “인간의 노력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예찬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씨킴의 작품들은 ‘파우스트의 무지개’와 맞닿아있다. 씨킴 작업의 근간에 ‘꿈’과 ‘고통’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단어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무지개를 보며 꿈을 꾸면서도, 꿈으로 향하는 길에는 노력과 인내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씨킴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전시의 중심이 되는 ‘색’은 씨킴에게 큰 도전 과제이자 꿈이었다. 씨킴의 작업에서 빛은 색으로, 색은 물질로 변환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물질’은 화가의 생각대로 호락호락 움직이지 않는다. 노년의 화가는 그럼에도 매일 붓을 들고 땀을 흘리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아침, 빈 캔버스, 바닥의 카펫, 쓰다가 남은 빈 상자 등을 마주하고, 그 위에 색을 얹는다. 때로는 일상의 사물이나 사람을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색을 흘려 보내며 그것의 응집과 확산,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갈라짐 등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회화, 조각, 사진, 드로잉들은 씨킴이 빛과 어둠 사이에 피어난 색들의 향연에 매료되어 그 속에서 자신의 회화적 질서를 찾으려 한 수많은 노력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뉴턴의 도구적 합리주의 관점이든, 괴테의 생태론적 관점이든 인간이 색채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무한함과 신비로움의 창을 여는 색의 존재는 오늘날 씨킴의 예술적 충동을 자극하고 그를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약 17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대규모 개인전 《레인보우(RAINBOW)》에서 꿈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씨킴 작가의 무지개빛 파노라마를 만끽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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