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욱: 창신동의 달

2024.03.14 ▶ 2024.04.13

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15 (통의동, 갤러리 아트싸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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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책꽂이 3, The Bookshelf 3 2022, Oil on canvas, 90.9x65.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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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렌트 5, Rent 5 2022, Acrylic on canvas, 145.5x22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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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꿈을 꾸나요(물음표), Are You Dreaming 2023, Oil on canvas, 72.7x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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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내가 본 것 3, What I Saw 3 2023, Oil on canvas, 72.7x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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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위기의 작가 5, Artist on the Verge 5 2023, Acrylic on canvas, 145.5x112.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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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위기의 작가 7, Artist on the Verge 7 2023, Acrylic on canvas, 53.0x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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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창신동의 달 5, The Moon in Changsindong 5 2023, Acrylic on canvas, 193.9x13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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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눈 온 뒤 인왕산, Mt. Inwangsan after Snow 2024, Acrylic on canvas, 145.5x22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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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욱

    인왕산 그리기, Painting the Mt. Inwangsan 2024, Acrylic on canvas, 145.5x227.3cm

  • Press Release

    아트사이드 갤러리는 3월 14일부터 4월 13일까지 한국 미술의 “감성적 리얼리즘“을 개척하여 눈앞의 형상과 일상의 풍경을 생동감있게 작업에 녹여온 작가 최진욱(b.1956)의 개인전 <창신동의 달>을 개최한다. 아트사이드 갤러리 1층, 지하와 아트사이드 템포러리(3층) 총 3개의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대규모 개인전은 40년간 독자적 행보를 이어오며 감각적이고 회화적인 표현으로 주목받은 최진욱만의 시선을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3층 아트사이드 템포러리는 기존의 정형화된 전시장의 성격을 탈피하여 새롭고 도전적인 전시를 선보여온 공간으로 첫번째 스핀오프 프로젝트(Spin_off Project)를 최진욱과 함께 하여 아트사이드가 추구하는 개성과 예술의 다양성을 제안할 예정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를 담은 최진욱만의 감성적 리얼리티

    최진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감성적 리얼리즘은 일반적인 리얼리즘이 아닌 감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리얼리즘을 일컫는다. 그는 "단순히 재현을 벗어나 눈앞에 있는 사물을 눈으로 만지고, 볼로 비빌 수 있다면 그것이 리얼리즘이며, 내게 주어진 세상을 느껴질 때까지 그리는 일이 화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주제나 특정 대상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부터 신문, 사진, 현실의 풍경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 최진욱의 작품은 40년이 넘는 작업을 통해 쌓아온 풍부한 경험과 세련된 기술을 담고 있다. 그의 과감하고도 풍성한 색의 선택은 작품에 생생한 이미지를 부여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그는 리얼리즘의 형식과 모더니즘적 태도 사이에서 40년간의 탐구를 이어왔으며, 그 결과로써 한결같으면서도 색다른 시도와 시선을 제시하는 명확한 작가임을 입증했다.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는 최진욱

    이번 개인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담겨있는 서울, 창신동의 지역적 특색을 작가의 눈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장면을 통해 하나의 풍경이 이어지는 연속성과 인과관계를 드러낸다. 자본주의적 토지의 사적소유에 대해 회화적 언어로 담론한 2022년 ‘아마도 예술공간’의 전시 <렌트> 작품과 이어지는 ‘창신동의 달’ 시리즈는 아파트 고층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빠른 변화와 그 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모습들을 포착하거나,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만의 리얼함으로 표현되었다. 지하의 설치된 캔버스 2개를 이어 5m가 넘는 크기의 대형작품 ‘렌트7’은 노을이 지는 시간에 내려다 본 창신동이 담겨있는데 경쾌한 오렌지 빛 하늘과 어우러진 명과 암의 대비는 그동안 최진욱이 보여준 시원하고 압도적인 느낌을 극대화 시킨다. 또한, 일반적인 방법처럼 나란히 병치되지 않고 단차를 준 캔버스의 설치방식은 기존의 캔버스의 확장 개념을 벗어나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내 그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34년 이후 다시 한번 묻고 답하는 최진욱의 소회

    아트사이드 템포러리에서 진행되는 첫번째 ‘스핀 오프 프로젝트’로 작가는 3층 전시장을 17일간 작업실로 사용하며 서울의 종로, 서촌이 한눈에 보이는 공간에서 그가 바라본 서촌의 모습을 담았다. 관람자는 캔버스 속 서울의 풍경을 실제로 마주함과 동시에 최진욱이 어떻게 이 풍경을 담아냈는지, 작가의 시선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작품의 현장에 깊숙하게 개입이 되며, 그저 지나칠 수 있던 일상의 풍경에서 최진욱이 선보이는 “감성적 리얼리즘”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가가 90년에 쓴 작가노트 속 “나는 내 그림이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든 그럴 수 없든 개의치 않지만 나는 내 자신의 그림이 그 어떤 리얼리스트의 그림보다도 리얼하다고 믿고 있다.”라는 구절을 통해 작가가 작업을 대하는 신념을 찾아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실제 풍경을 보고 17일 간의 작업을 하며 작가로서 새로운 도전을 한 최진욱은 지난 34 년간의 작업기간에 대한 소회를 말하며 2024년, 이 전시에서 다시한번 자신의 작품에 대해 묻고 답한다.

    “나는 넓은 세상을 그렸을까? 오히려 나는 그림을 그림일 수 있게 하는 일에 몰입해왔다. 미술이 미술일 수 있게.”(24년 2월 24일 작가노트)

    이번 전시를 통해 빠르게 변화해 온 한국 미술의 흐름에서 40여년간 자신의 미술세계를 굳건히 보여주고 있는 최진욱의 작품은 미술 관계자들과 대중들에게 보다 가깝고 새롭게 닿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최진욱의 예술의 독창성과 작품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되어질 것으로, 그가 말하는 회화, 진정한 미술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예술의 존재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작가노트

    회색의 큰 붓 터치로 작업실 풍경을 그리고 있던 나는 그것을 리얼리즘보다 더 리얼한 '감성적 리얼리즘'이라 명명하며, 1990년 7월 8일 작가 노트 말미에 이렇게 썼다. "하지만 나도 넓은 세상을 그리고 싶다." 생각해보면 34세의 화가가 그때까지 작업실 안만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후, 화가는 과연 넓은 세상을 그렸을까? 이것은 필연적 질문이라 하겠다. 사실은, 1990년 자신만만하게 <그림의 시작>을 그린 후, 1991년 겨울부터 나는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느낌이 사라졌다.' 그리고 느낌이 사라진 채 32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시간은 정말 인정사정 보지 않고 흐른다.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느낌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불과 수년 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느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법론을 찾지 못한 것이다. 현실의 문제로 '피꺼솟'의 상태가 되면 갑자기 10분 정도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다. 녹색, 청색, 회색 등 단색으로 그림을 그릴 때, 지루해지기 전까지 그림이 잘 되곤 했다. 전체 화면을 부분적으로 잘라서 그릴 때, 무의미함을 느끼기 전까지 그림이 잘 되곤 했다. 90-91년에는 그림 그리는 내내 생생하던 느낌이 왜 고작 10분 내외로 쪼그라들었는가.

    2000년부터 약 7년간 이천 작업실에 일주일에 4번 가서 그림을 그렸는데,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에 가서 단 한 획의 붓 터치도 그리지 못하고 오는 날이 생겼다.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이렇게 막히는 걸 보면 길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면 뭔가 해결책이 떠오르곤 했는데, 그렇게 깨달을 때마다 메모해두었다. 깨달음의 효력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다시 깨달음을 얻기까지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깨달음이 흐물흐물, 뉘엿뉘엿 사라지고 나면 다시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다시 느낌이 되살아났다고 기뻐했다. 92년부터 32년간, 대략 2주마다 깨달아 오늘까지 900개의 깨달음을 작업 노트에 적었다. 더러 겹친 것도 있고, 지금 봐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것들도 있다. (단순한 메모와 그림과 상관없는 깨달음도 20개 정도 있다.) 그러나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로 깨달았다. 나는 내 그림이 우수한 건, 방법론에 의해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딸한테 자랑한 적이 있다. 제대로 된 방법이 발견되면 나는 잘 그리고, 그것의 효력이 다하면 다시 못 그리게 된다.

    2024년 2월 16일, 공사를 막 끝낸 아트사이드 3층에 미술도구를 옮기고, 그림은 2월 17일(토요일) 시작했고, 첫날 운 좋게 150호 M 두 장의 구도를 잡았다. 그동안 창신동을 그린 것처럼 인왕산을 그리면 되는데, 나흘 동안 맥 놓고 재현을 하다가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재현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추상', 문자 그대로 Abstract, '끄집어내야 한다.' 색이든 형태든. 리얼리즘도 그림이 되기 위해선 추상성을 얻어야 한다. 단순한 재현은 소위 자연주의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일요일 빼고, 닷새째가 되는 목요일 날, 일어나자마자 갤러리에 가려고 했는데, 창밖에 흰 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어버렸다. 갤러리에 와서 마치 화난 사람처럼 그림에 녹색을 칠하고, 인왕산에 눈이 쌓인 걸 그리기 시작했다. (전날 밤엔 인왕산을 '심해어'로, 인왕산 아래 집들을 '그물'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잘 되는 것 같았는데, 다음날, 그다음 날인 오늘까지 헤매고 있다. 문득 대학입시 보던 생각이 났다. 목탄으로 아폴로를 그리는데 점점 망해가던 기억. 하기야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그린 적이 없었다. 대략 한 달에 한 장 그렸는데, 일주일에 한 장을 그려야 하다니.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공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왕산을 눈앞에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 마다할 화가는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겸재! 겸재를 따라 인왕산을 그려본다는 흥분된 기분은 그림이 망해가는데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통조림처럼 변하지 않고.

    나는 넓은 세상을 그렸을까? 오히려 나는 그림을 그림일 수 있게 하는 일에 몰입해왔다. 미술이 미술일 수 있게.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만화와 다른 것. 앞의 세 가지와는 달리 '쓸모없는 것', 없어도 되는 것을 해야겠다는 자부심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미술은 공모의 산물이고, 거짓말이고, 도박이다. 미술은 자본주의와 반대의 방향으로 간다. 미술은 돈 벌기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없어도 되는 것이기에, 허구이기에, 상상이기에 가치를 갖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 돈을 향해 가지 않는 것이기에 미술은 진정한 미래의 가치를 가진다. 일단 그림이 망하진 말아야겠지만, 망하지만 않는다면 내 그림은 미래를 보여줄 것이다.
    (24년 2월 24일, 최진욱)



    전시 평론
    감성적 리얼리즘의 여정: 생성, 도약, 포괄


    신양희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최진욱은 40여 년의 화업 동안 리얼리즘적인 형식과 (포스트) 모더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둘 사이의 관계를 고심하는 작업을 해왔다. 즉 끊임없이 구상성을 개진하면서도 그것에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 여러 화법을 연구하고 갱신하며 회화적 재현과 개념을 쇄신해 온 것이다. 그것은 화가로서 자부심 혹은 선언이기도 했던 ‘감성적 리얼리즘’을 증명하기 위한 일이었고, (작가 자신을 포함하여) 모더니즘이 덧입힌 리얼리즘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에 부딪히고 맞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림에만 머물지 않도록 끝없이 회의(부정)하면서도 결국 대상(세계)을 보고, 다가가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자기화를 반복하는 운동이었다.
    작가는 작업의 시작부터 구상회화를 그렸다. 1976년 미술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추상회화가 화단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지배적 조형 언어였다. 구상회화는 현대미술적이지 못한 혹은 서구 미술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작가는 구상회화가 가진 힘을 찾고자 했으며, 미국으로 유학 가서 구상회화의 단단한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주로 눈앞의 사물 혹은 장면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창문, 자전거, 의자, 정물 등을 소재로 작업하였다. 의자와 다른 기물들과의 배치를 통해 사물 간 관계성을 드러낸 〈의자〉 연작(1984), 사물 간 위계를 두지 않고 장면을 연출한 〈정물〉 연작(1985) 등이 있다. 특히 〈자전거〉 연작(1983)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적 형식을 차용한 시작점의 작업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 석사 논문 「Artist and Object」도 작성되었다. 〈자전거〉 연작은 재현의 정확성을 바탕으로 하되 구도와 빛의 조절, 흐름과 운동성을 보유한 유화의 붓질로 하나의 대상을 다각적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눈앞에 보이는 사물, 장면을 그리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작업실이나 실내를 정경으로 다루거나 책꽂이, 구두, 책상 등의 소재를 취했으며, 아크릴을 주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수업중〉 연작(1987~1988)에서 인상주의, 큐비즘, 광선주의, 표현주의와 같이 색채를 통한 면 분할 등을 시도하면서 대상과 장면이 식별하기 어려운 쪽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그림의 시작〉 연작(1990), 〈생각과 그림〉(1990) 등을 통해 작가만의 구상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 작업들은 작업실을 전경화하거나 자기 모습을 함께 그림으로써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표현하고, 비교적 크고 자유로운 붓질과 회색 계열의 색을 사용하여 이후 회화 스타일의 한 계기를 만들게 된다. 같은 해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 혹은 나아갈 길을 ‘감성적 리얼리즘’이라 규정하고, 작가/작업실(주관)에만 머무르지 않고 바깥 세계(객관)를 그릴 것을 피력한다.

    90년의 전환을 계기로 객관적인 세계를 마주하고자 노력하고, 사회적인 주제를 그리는 일에도 천착한다. 바깥 세계에 대한 그림은 교실과 교내 풍경, 길과 도로, 하천 풍경 등 생활 주변에서 본 것으로 다양한 터치나 색채의 적용, 화면 내의 시각적 단절과 같은 미적 연구가 시도되었다. 특히 〈길〉(1991), 〈서울의 서쪽〉(1994)은 회화 내부에서 시각의 변화를 주면서도 소박하고 정겨운 시선을 바탕으로 한 장소가 지니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를 끌어낸다. 이와 함께 신문의 보도 사진과 일상 장면을 나열하거나 병치한 〈하교길 2〉(1991), 〈할아버지의 말씀〉(1991), 〈아침이슬〉(1993) 등은 사회상에 대한 복합적인 인식을 내비치고, 역사적 장소를 다룬 〈400년 후의 강변〉(1992), 〈조선총독부〉(1993), 〈시간을 찾아서〉(1994)에서는 현재성을 의미화하는 소재로서 과거가 사용된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자화상이나 바닥, 천장과 같이 작가에게 좀 더 가깝고 친밀한 소재들이 재등장하고 이전 작업을 훼손(?)하기도 하지만, 〈사람들〉(1995), 〈바닷가〉 연작 (1996-1997) 등을 통해 인물들에 대한 관찰과 초점화가 이루어지고, 〈제부도〉(1996), 〈동강은 흐른다〉(1999), 이탈리아 여행지 연작(2000-2001), 〈위대한 휴식〉(2001), 〈청계천의 형태〉(2003), 〈나의 천국〉(2004), 〈크레이지〉(2005), 〈러브 이즈 리얼〉(2005), 〈벚꽃 주차장〉(2005) 등 다방면으로 일상의 정경을 포착하는 작업들은 구상회화의 아름다운 힘을 드러낸다.

    2000년대 중후반 사회적 문제가 인물을 중심으로 명시화된 작업들이 등장한다. 〈네 청년 불국사를 나오다〉(2007), 〈취업 선배와의 대화〉(2008), 〈알바 천국〉 연작 (2008) 등은 청년 세대의 모습을 관찰자적 시선으로 제시하면서도 애정, 측은함의 시선을 화면에 담고, 〈이것이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2008)에서는 인물만으로 현실의 문제적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감정적 동조와 연민을 드러내고, 〈웃음〉 연작(2008-2015)은 젊은이들의 점프와 활기, 미소를 사랑스러운 붓질로 표현해낸다. 반면 〈임시정부〉 연작 (2009), 〈한국 관광객들 임시정부 앞에서 허둥대다〉 연작(2010)은 분단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적 혹은 회의적인 시선이 인물과 그 장소를 스치는 듯한 단상과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2010년대 이후의 작업은 작가와 세계, 주관과 객관을 명시적으로 제시했던 이전 작업과 달리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좀 더 복잡하고 개념이 강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작가에게 구상성과 재현성은 리얼리즘을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것이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즉 눈앞에 마주한, 살아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장면을 그린 그림이 과연 그림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에 이미 구상회화(재현)에 대한 고민은 화면 내외부의 단절, 몽타주식의 나열, 캔버스의 포갬, 설치적 시도, 그림 속 그림을 병치한 작업 등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 특히 2010년대 이후에는 현대미술의 비평적 용어나 현대철학의 개념에 대한 사유가 언어, 기호학, 환유 연쇄 등으로 명명되어 더 복잡한 방법적 시도가 이어진다.

    분단, 정치적 상황, 양극화, 재난, 공동체, 생태 문제 등 비판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던 작가의 의식은 위와 같은 방법을 취함으로써 전면화되지 않고, 즉각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형태를 띤다. 대비 혹은 충돌, 반복, 색의 비약(보색이나 원색) 등으로 표현될 뿐 아니라 캔버스 내외부 이미지와 언어의 연쇄가 자리하여 작가 의식의 내적 흐름을 추론하기 어렵게 한다. 현실 정치에 대한 소재도 전이를 통해 드러난다. 가령 현실에서 유보된 정치적 사안에 대한 갈망을 〈 Memento mori 2 〉(2008)를 표현적 색채로 재맥락화한 〈서서히〉(2013), 단순한 색감 대비나 화면과 이미지 충돌을 통해 모순된 현실을 다르게 보기를 요구하는 〈역사-되기〉(2014), 〈통일을 하겠다고 A, B〉(2014), 거침없이 강한 붓질과 대조적 색감으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심상을 외면화한 〈석양의 헌법재판소〉(2019) 등이 그렇다. 또한 〈남쪽으로부터-삼부작〉(2017)은 일상적 장면이지만 다른 소재의 부딪힘, 색채의 대비로 인해 생경한 현실을 마주하게 하고, 〈재난 공동체의 기호들-삼부작 2〉(2020)도 아파트 뒤편 풀과 나무, 축대의 단순하고 강한 색채 적용을 통해 당시 사회가 가진 내적 취약성과 불안전성을 은유하며, 작업실이 무대가 되는 삼부작들도 이전과는 다른 층위에서의 비약이 생기기도 한다.

    《창신동의 달》은 2022년 개인전 《학교를 떠나며》 이후 제작한 작업들이다. 2021년 이후 작업에서도 강한 색채 대비를 사용하고 삼부작 형식을 사용하지만, 미래에 화가가 될 제자들이 작업하는 모습이나 실내와 일상의 장면 등 어렵지 않은 소재로의 변화를 보인다. 특히 과거 사진과 이전 작품을 참조하여 재제작한 〈피, 땀, 눈물〉(2021), 〈한국의 3대 풍경-삼부작〉(2022)은 여전히 사회를 사유하는 작가적 태도가 삼부작 형식과 구상회화의 힘을 통해 감동적으로 구현되었다. 이번 전시되는 작품들은 작가가 마주한 일상의 장면과 풍경들로, 대상 세계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우연의 개입을 수용하는 마음으로 작업한 것들이다. 일상과 풍경은 조화로운 구성과 다성의 색과 자유로운 터치를 통해 회화적인 제모습을 드러낸다.

    〈위기의 작가〉 연작(2022-2023)은 2022년 고궁에 나들이 갔던 가족사진으로부터 비롯된 작업이다. 소재적으로는 〈학교를 떠나며〉 연작(2021-2022)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그 표현은 한층 더 정제되어 있다. 작가는 사진 속 딸이 균형 잡지 못해 기우뚱한 모습을 보며 (청년) 작가의 불안정한 상황과 연결한 〈위기의 작가 2〉(2022)를 그리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가족의 여행 사진을 바탕으로 연작을 이어간다.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조카의 손을 잡고 해변에 선 뒷모습의 〈위기의 작가 5〉(2023),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고자 엉거주춤하는 〈위기의 작가 6〉(2023)은 회색, 푸른색, 갈색의 안정적인 화면 분할과 간결한 터치로 인해 풍경과 인물이 조화를 이루지만, 인물이 처한 모종의 상황을 내보임으로써 이 장면들이 단순히 풍경화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한다.

    〈렌트〉 연작(2022-2023), 〈창신동의 달〉 연작(2023)은 창신동에서 본 도시의 풍광을 소재로 하지만, 대상 세계를 바라보던 생각이 다르게 이어져 새롭게 규정되는 반복성을 드러낸다. 도시 풍경은 〈렌트 2〉(2022)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창신동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수풀을 사이에 두고 대치되는 장면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도시 풍경은 연희동, 홍은동 등의 주택가나 산동네를 그리거나 정겨운 시선으로 동네를 한눈에 조망하던 90년대 작업들과도 연결성이 있다. 이번에 이미 내재해 있던 붓질이 되살아나면서도 새로운 장소가 전면화되고 여러 측면에서 그려진 창신동의 모습이 탄생한다. 〈렌트 5〉(2022)는 창신동의 즐비한 다세대 주택과 고층 아파트, 숭인동 동망산, 건설되고 있는 동대문 뉴타운 아파트, 그 뒤로 아차산이 보이는 풍광을 그린 것이다. 건물들에 가해진 단순하고 반복적인 채색, 수풀이나 산과 하늘의 자유로운 붓질은 회화적 리듬감과 경쾌함을 드러낸다. 동일한 방식으로 그려진 〈렌트 6〉(2022)은 주택과 건물의 크기를 줄이고 사면을 더 넓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특히 의도적으로 하늘 비중을 높이면서 하부의 도시와 대조적인 붓질로 인해 〈렌트 5〉와의 차이를 만든다.

    〈렌트〉 연작에서 심상적 점프를 이룬 것이 〈창신동의 달〉 연작이다. 여기에는 창신동을 찍은 사진 중 달이 있는 풍경을 매력적으로 그리기 위한 의도가 자리했다. 그런데 작가는 달 풍경을 그리기에 앞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고 그리는 방법을 먼저 적용한다. 〈창신동의 달 1〉에서 모니터 안, 책상 위 창신동과 달 사진은 책상 위 다른 기물들과 함께 유화로 그려진다. 모니터 화면을 더 크게 그려 반복한 것이 〈창신동의 달 2〉(2023)이다. 이들 그림 속에서 단순해진 풍경이 〈창신동의 달 3〉(2023)으로 다시 나타나고, 그로부터 짙은 회색으로 뭉개진 〈창신동의 달 4〉(2023)와 우울한 느낌을 의도한 〈창신동의 달 7〉(2023)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창신동의 달 5, 6, 8〉(2023)은 〈렌트 7〉(2023)의 삼부작 버전으로 다른 구도의 반복적인 제시이다. 하늘과 달의 자리와 도시의 자리에 다른 터치가 구사되지만 오히려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되게 한다. 렌트이든 창신동의 달이든 동일한 대상의 반복과 변주가 무상할 만큼 〈렌트 7〉은 작가가 보았던 한 세계를 웅장하게 그려낸다. 보라색 계열의 어두운 전경이 붉고 노란 계열의 후경을 감싸는 구도는 깊이감을 더하고, 색채(붓질) 하나하나가 살아 있지만 풍경의 기본 조건 마냥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이 그림은 이렇게는 존재하지 않을 창신동의 황혼을 감동적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재현의 장엄한 힘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일상을 포착한 장면들과 창신동 풍경들은 다양한 대상을 길어내고 수많은 화력으로 이루어낸 원환의 한 부분이자 감성적 리얼리즘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갤러리 3층 전시장에서 한 달간 인왕산을 직접 마주하고 그린 그림은 또 다른 도약이다.

    전시제목최진욱: 창신동의 달

    전시기간2024.03.14(목) - 2024.04.13(토)

    참여작가 최진욱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월,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아트사이드 갤러리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15 (통의동, 갤러리 아트싸이드) )

    연락처02-7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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