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물감 소진 프로젝트 23-3-1: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 2023 Acrylic on canvas, 194 x 13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김용익
물감 소진 프로젝트 24-2: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 2024 Acrylic on canvas, 82 x 10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김용익
아련한 유토피아 #17-2 2017 Mixed media on canvas , 112 x 145 cm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Keith Park,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유토피아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꿈이었다. 계몽주의로 각성된 인간의 이성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세계를 탐구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진보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는 꿈.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 프로젝트이다.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일부는 실현되었지만 그것이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는 인류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고,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간의 계급의 격차와 제국주의, 제 살 깎아먹기 식의 카니발리즘적 자본주의, 자연의 훼손이라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지금 이 어두운 그림자를 목도하고 있다.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기후 위기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실패를 예증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한국전쟁 이후 현대를 살아오면서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의식주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가용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
유토피아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꿈을 의미한다. 그것이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음을 뜻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미련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그 꿈이 희미해지고 있음을 내포한다.” – 김용익1
이념이나 진영 논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최근 들어 인류 생존의 위협과도 직결된 만큼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 이에 각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모색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술이 이에 대응하는 방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어떤 성격이나 태도여야 할까? 미술이 취할 수 있는 그 태도라는 것이 당연하게도 즉각성 혹은 적극성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직시하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충실하게 증거하는 일이 그에 주어진 본연의 역할이 아닐까? 김용익의 평생에 걸친 작업은 이 같은 미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고뇌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질문과 고뇌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련의 작업과정에서 절망을 맛보기도, 작은 희망의 징후를 발견하기도 하는 그는 동시에 그 둘 사이의 긴장감이 자신의 작업을 지속시켜주는 힘의 원천이라 여기기도 한다.
국제갤러리는 오는 2024년 3월 15일부터 4월 21일까지 김용익의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으로, 부산점과 서울 한옥 공간에서 동시에 선보인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의 근작 60여 점(부산점 19점, 서울 한옥 40여 점)을 다루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천착하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전시를 통해 처음 대중에게 소개하는 장이자, ‘땡땡이 화가’로 알려진 그의 작업이 전환을 맞이하게 된 여정을 함께 목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용익은 지난 2018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물감 소진 프로젝트(Exhausting Project)’라는 제목의 새 연작을 시작했다. 현재진행형인 이 연작은 지금 작가에게 남아있는 물감, 색연필 등 회구(繪具)들을 그의 여생에 걸쳐 모두 소진(消盡)하는 프로젝트이다. 남아있는 회구를 색깔별로 골고루 소진하고자 화폭을 잘게 나누어 작업한 결과,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의 모양을 띄며 김용익이 예술가로서 평생 추구해온 ‘저엔트로피(low entropy)적인’ 삶의 방식에 부합하는 형태를 드러낸다. 더불어 작가는 회구들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고자 아껴 쓰기 때문에, 그의 회화 표면을 이루는 물감의 두께가 얇아 흐릿하거나 균일해 보이고, 때로는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 가볍되 다소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는 경향을 띤다.
한 사람인 김용익에게 남은 생의 시간, 그리고 작가인 그에게 주어진 회구의 소진 시간이 실제로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김용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예술과 삶의 일체화를 꿈꾼다. 결과물로 포장되어 보여지는 개체로 존재하는 작품보다는 개인과 환경이 상호 작용하는 동일한 카테고리 내에서 생태학적으로 기능하는 작업을 도모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작가가 꾸준히 선보인 드로잉 작업이나 2000년에 처음 시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서 예술이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하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과정 한 가운데에 놓여 있음을 강조해 왔듯, ‘예술의 삶-되기’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다. 이처럼 김용익은 순수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분법이 만들어내는 위계와 권력의 패러다임을 해체하고자 시도하며 모더니즘적 관행의 지배적 특성에 균열을 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정은영 미술사학자는 이를 두고, 김용익에게 ‘탈예술 충동’이 예술 자체를 파괴하거나 소멸시키려는 파괴적 충동이기보다는 삶이 품고 있는 소멸의 과정과 죽음의 경로를 받아들임으로써 예술을 살리려는 추동력이 됨을 역설한 바 있다.2
기하학적 도형과 얇게 발린 물감 등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듯 보이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의 조형적 특성 이면에는 보다 광활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김용익의 관심이 깔려 있다. 잘 알려진 중국의 철학 서적인 『주역(周易)』은 하늘과 땅, 해와 달, 강한 것과 약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양과 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른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고서이다. 김용익은 여러 방면에서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실패하였음이 증명되는 현시점에 이에 맞설 대안을 찾아 동양 사상이나 철학으로 시선을 돌리고, 특히 『주역』이 전하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구한다. ‘물감 소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종이 혹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들은 실제 『주역』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괘(卦)3의 형태를 차용하거나, 중국의 전통 우주론의 바탕이 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개념에서 빌려온 원과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용익이 동양의 철학이나 이론을 참조하는 것은 현대의 삶과 문명을 성찰하고 예술이 그에 걸맞은 형태로 존재하여 살아남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최근 전인류가 겪은 팬데믹 상황이 그의 작업의 방향 전환을 촉진했다. 작가에 따르면 팬데믹은 인류가 그간 성장, 진보, 발전의 가치에 몰두하며 스스로 초래한 결과물 중 하나인데, 극심한 빈부격차가 빚어낸 계급 간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의 불안, 나라와 나라 간의 불화가 야기한 테러와 전쟁, 인류의 생존을 시한부로 몰아가고 있는 기후 위기도 이에 포함된다. 작가는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 직면한 현대가 진보와 발전, 경쟁과 지배와 같은 양의 가치를 조금 진정시키고(조양調陽) 돌봄과 섬김, 우애와 평등과 같은 음의 가치를 들어올려 양과 맞추는 율음(律陰)이 요구되는 후천(後天)시대임을 피력한다.4 그리고 캔버스 위에 땅을 상징하는 네모와 하늘과 방위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원을 배열하여 음과 양의 균형과 조화를 드러내고자 시도한다.
김용익의 신작 ‘물감 소진 프로젝트’에 담긴 의미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또한 그가 어떻게 ‘땡땡이’ 작업의 꾸준한 변주를 통해 모더니즘의 상징에 균열을 만들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물감 소진 프로젝트’가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부산점의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땡땡이 화가의 변신은 무죄?〉(2023) 연작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각각 땡땡이의 이미지를 반전시켜 네거티브 형식으로 그린 두 캔버스를 이어 붙인 후 프레임을 씌워 제작한 두 작품을 전시장 바닥에 서로 기대어 세워놓아 마치 조각 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게끔 했다. 각 작품의 좌측 캔버스에는 반전된 땡땡이 이미지 사이로 ‘물감 소진 프로젝트’ 작업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품의 제목이 말해주듯 작가는 땡땡이 화가에서 변신을 꾀하였지만, 결국은 근작(‘물감 소진 프로젝트’ 이전 연작을 의미)과 신작이 서로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외에 부산점에 설치된 〈아련한 유토피아 #17-2〉(2017), 〈침범당한 유토피아 #17-9〉(2017), 〈이것은 답이 아니다 #18-10)〉(2018)과 같은 작업들은 변색되고 중첩되고 훼손당한 땡땡이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모더니즘 회화의 권위에 ‘흠집’내는 작업만이 아니라 예술과 삶의 관계, 그리고 예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뇌를 이어 왔음을 상기시킨다. 여기에는 아련함, 슬픔,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배어 있는데, 모더니즘 문명을 비판만 하기에는 결단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에 기인하는 것들이다. 특히 〈절망의 미완수 22-1〉(2016-2022)의 경우 기존에 완성한 그림을 검정색 물감으로 덮되 완전히 덮어버리지 못하고 격자무늬로 덮는 ‘소심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옥에서 선보이는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소심한 긍정(혹은 부정)〉(2022) 연작은 ‘물감 소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을 옅게 칠한 후 윤이 나는 투명한 액체 재료를 무심하게 흘려 그 좁은 면적에 깨알 같은 글자들을 적어 내려갔다. 예술을 긍정도 부정도 하기 힘든 작가의 ‘소심한’ 성찰이 부각되는 연작으로, 여기에서 소심함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자기 갱신을 위한 자기부정을 기반으로 하기에 김용익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번 전시는 김용익이 예술과 삶의 간극을 줄이고자 소심함을 무기로 ‘어쨌든’ 예술 안에 머물고자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답들을 찾아가는 여정과 다름없다. 이를 통해 그가 스스로 증거하는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아련함과 그 꿈이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데에 대한 절망, 그리고 앞으로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입체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기를 권한다.
1 작가의 말, 2024.01.19.
2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 김용익》 전시연계 세미나 〈탈-이즘의 충동〉 (2023.10.05,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발췌.
3 동양 철학에서 음과 양을 상징하는 줄을 어울리게 놓아 만든 예순 네 가지의 글자.
4 양을 조절하고 음을 활성화시킴’을 뜻하는 조양율음(調陽律陰)은 정역(正易)이 소개하는 세계관으로, 정역은 조선후기 김항이 『주역』의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하여 주창한 역학사상이다. 또한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은 조선 말엽에 등장한 동학의 핵심 사상으로 ‘새로운 하늘이 열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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