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론디노네: BURN TO SHINE
2024.04.06 ▶ 2024.09.18
2024.04.06 ▶ 2024.09.18
전시 포스터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계절, 하루, 시간, 풀잎 소리, 파도 소리, 일몰, 하루의 끝, 그리고 고요함까지.”
- 우고 론디노네
한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뮤지엄 산(관장 안영주)이 오는 4월 6일부터 9월 18일까지 스위스 태생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BURN TO SHINE》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최대 규모 개인전이자 뮤지엄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전시로, 미술관의 세 갤러리는 물론, 백남준관, 야외 스톤가든을 아우르며 조각, 회화, 설치, 영상을 포함한 4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개별 작품에서 보여지는 폭넓은 매체와 색채, 그리고 시각적 언어와는 달리 전시는 전체가 하나의 포괄적인 작업으로서, 작가가 지난 30여 년의 작품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성찰해 온 삶과 자연의 순환,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이로써 형성되는 인간 존재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의 중심에는 동일 제목의 영상 < 번 투 샤인(burn to shine) >(2022)이 있다. 프랑스계 모로코인 안무가 푸아드 부수프와 협업한 이 퍼포먼스 영상은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무용을 결합하며, 강렬한 사운드와 신체의 움직임으로 관객에게 압도적인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영상에는 12명의 타악기 연주자와 18명의 남녀 무용가가 등장하고, 이들은 불꽃을 둘러싼 채 춤을 추며 신비로운 황홀경에 이른다. 무한 반복으로 재생되는 영상에서 이들의 의식은 불꽃이 타버리고 해가 뜨며 막을 내리다, 바로 또 밀려오는 어둠과 함께 다시 시작된다. 삶에 대한 축제이자 애도로서, 작품은 삶과 죽음의 연약한 경계를 탐색한다. 작가는 <번 투 샤인>은 변화(transformation)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으며, “제목은 존 지오르노의 시 < You Got to Burn to Shine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 >에서 처음 영감을 받았으나 이는 삶과 죽음에 공존에 대한 불교 격언이기도 하며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그리스 신화의 불사조를 연상시킨다. 순환적으로 부활하고 매번 새롭게 재탄생하는 이 불멸의 새는 태양과 연계되며, 전생의 재로부터 다시 태어나 새 생명을 얻는다”라고 설명한다.
삶의 순환에 대한 사유는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sun)>(2013-현재)와 <나의 나이, 너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moon)>(2020-현재)에서 이어진다. 미술관 1층과 2층에 위치한 동일한 구조의 갤러리에 전시되는 두 작품은 각각 태양과 달을 상징하며 화음과 불협화음으로 서로 공명한다. 이는 전시가 개최되는 지역의 어린이(3-12세)들을 초대하여 이들이 그린 드로잉으로 완성되는 참여 작품으로, 뮤지엄 산에서 선보이는 이번 프로젝트는 미술관이 위치한 원주시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그린 약 2,000장의 드로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진행형 프로젝트로서 아이들의 드로잉은 매 전시마다 작가에 의해 소장, 축적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한다.
해와 달의 모티브는 작가의 < 매티턱(mattituck) > 회화 시리즈에서 재등장한다. 작가가 거주하고 작업하는 뉴욕 롱 아일랜드 지역명을 제목으로 삼는 이 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그만의 시적인 감성으로 담아내며, 일몰과 월출의 풍경을 보색으로 이루어진 3색의 수채화로 포착한다. 각 작품은 작업이 완성된 날짜를 제목으로 하며 사적인 일기이자, 삶의 기록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같은 갤러리에는 푸른색유리로 주조된 11점의 말 조각 시리즈가 함께 전시된다. 세계 각지 바다의 명칭을 제목으로 삼는 이 작품들은 실물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각 작품마다 고유의 푸른색을 지닌다. 동시에 작품의 중앙에는 투명한 수평선이 말의 실루엣을 가로지르며, 이들은 곧 각각의 바다 풍경을 온전히 담은 그릇으로 거듭난다. 작가의 말 조각들은 그가 지난 30여 년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탐색해 온 공간, 시간, 그리고 자연의 개념을 상징한다. 각 작품은 물, 공기, (말의 형태로 표현된) 흙, 그리고 불이라는 4원소의 결합체로서, 이는 유리라는 물질로 응축된다. 반면 작품들은 완벽하게 마감된 유리 표면을 넘어 무한한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데, 전시장 곳곳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한한 푸른빛을 비추며 ‘빛의 풍경’을 창조하는 프리즘이 된다. 이 안에서 수직적이고 불투명한 관객의 존재는 마치 환영과 같은 말 사이를 이동하며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자연을 통한 정신적 사유를 추구하는 론디노네의 이 같은 시도는 < 수녀와 수도승(nuns+monks) > 시리즈에서 새로운 정점에 이른다. 백남준관에는 4m 높이의 <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yellow red monk) >이 원형의 천정으로 내려오는 자연광 아래 중세 시대 성인(聖人)의 엄숙함으로 관객을 맞이하며 야외 스톤가든에는 6점의 수녀와 수도승이 정원의 자연석과 어우러져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기둥을 연상시킨다. 3m가 넘는 크기의 이 기념비들은 청동으로 주조되었지만 작은 규모의 석회암 모형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돌은 내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재료이자 상징이다. 2013년 록펠러 광장에서 선보인 < 휴먼 네이처(human nature) >의 석상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고 2016년 네바다 사막에 설치한 < 세븐 매직 마운틴(Seven Magic Mountains) >으로 이어졌다. 두 작업 모두 자연석을 아름다움과 사유의 대상으로 탐구하고 감상하려는 시도로서,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바깥세상과 내면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매우 사적이며 명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나는 본다는 것이 물리적인 현상인지 혹은 형이상학적인 현상인지에 상관없이 그것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조각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수녀와 수도승> 역시 이러한 내면세계와 외부 자연 사이의 이중적 성찰을 이어 나간다. 한 사람이 바라보는 외부 세계가 그의 내적 자아와 분리될 수 없듯이, <수녀와 수도승>은 여러 층위의 의미들이 서로 가깝고 먼 곳에서 진동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이에게 순수한 색채와 형태, 규모에 완전히 몰입되는 감각적 경험과 더불어 동시대적 숭고함을 선사한다.
뮤지엄 산 관계자는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에서 우리는 삶, 인간, 그리고 자연이라는 세 꼭짓점이 조화롭게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삶을 성찰하는 총체적 예술을 표방하는 작가의 작품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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