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나른한 오후 시간, 따스한 햇빛으로 시야가 하얘질 때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두 볼에 스치는 바람이 움직임을 멈추고 귓속 터널을 헤매는 순간을 즐기신 적이 있나요. 저마다 다른 순간을 사는 오늘이지만 정해진 내일은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푸른 하늘 속에 놓여 있습니다. 매일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이고, 내일을 기다리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를 때, 우리는 마음에만 감춰 뒀던 속삭임을 꺼내 봅니다. 숨을 쉬는 이 순간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를요.
어느 이름 모를 나라에서 어느 이름 모를 사람이 태어났다면, 그 사람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세상을 유영하는 바람도 그 사람의 숨결을 가져다줄 순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또 그 사람과 같은 숨을 내쉴 때 우리의 존재는 비로소 증명됩니다. 홀로 서 있는 맞저울 위에선 어떠한 가치도 측정될 수 없으니까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서로의 부름에 대답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에 나타나는 각자가 됩니다. 여기 두 명의 작가도 마찬가지죠. 이번 기획전을 통해 이름 불린 두 작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삶을 조명합니다. 한 명은 지나간 삶의 한순간에 초점을 두고, 다른 한 명은 죽음 직전의 순간을 연출합니다. 대충 보면 별거 아닌 것 같기도, 언뜻 보면 조금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그들의 그림 속엔 각자가 지닌 삶을 담은 시선이 보입니다.
먼저, 한동국 작가의 그림은 어린 시절의 안타까운 사연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극단적 선택을 바라본 그의 시선엔 삶의 불확정적인 유한성이 자리 잡게 됩니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를 삶의 순환은 그 끝이 정해져 있지만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실현으로 다가옵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은 죽음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드러나게 되고, 화려한 색채를 배제한 담백한 소묘는 그의 손길로 빚어낸 죽음을 향한 숭고한 시선이 됩니다. 여전히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끝없이 죽음의 고통을 관측하는 그의 눈동자엔 삶의 유한함을 극복한 공포와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죽음을 관측하는 순간에서 멈추지 않고 죽음이 있기 전으로 나아갑니다. 무한한 삶을 가정한 기형적 인생을 거부하고 끝이 있는 순환을 직시하는 그의 시선은 비로소 삶의 유희와 순간을 포착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유한적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칫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삶의 유한성의 깨달음은 그것을 직시하는 것 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허탈함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허나, 그의 그림에선 설령 한 순간의 사고로 급작스레 끝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그렇기에 비로소 오늘을 즐겨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불확실한 죽음의 운명마저 유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그의 작품엔 빛과 어둠, 하양과 검정, 삶과 죽음, 구상과 추상으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한 그의 유희적 삶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설령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 갑작스레 핵폭탄이 터진다 할지라도 말이죠.
반면 최성우 작가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왜 왔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등 실존에 대한 의문으로 작품을 제작합니다. 이를 통해 존재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채 자아의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의 주요한 소재는 한동국 작가와 마찬가지로 일상적 풍경입니다. 과거의 편린을 소재로 작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두 작가의 공통점이지만, 각자가 주목하고 있는 시선의 시작점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부여됩니다.
최성우 작가는 아직 실감되지 않는 죽음을 주목하기 보단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상을 다시 화폭으로 불러옵니다. 이는 과거의 현실을 모방하여 제시하기보단 작품을 제작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면서 대상을 상상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자아의 형성이 있기 전, 우리 인간은 기억이 없는 미숙한 아기인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때 현실을 인식하는 자아의 존재는 육체와 정신의 차이와 분리를 통해 형성됩니다. 나라는 인식은 내가 아닌 것과의 비교 없인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 작가는 삶이란 허구적 상상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감정의 편린임을 직시하고, 회화작품에서 보다 앞서 존재하는 회화의 물질적 측면(물감, 캔버스 등)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그 실질을 없앰으로 우리의 상상적 현실을 인식하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의 없앰(무화)은 타자적 자아에 의한 허무주의적 관점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실존의 타자성을 직시하여 자유로운 삶의 유희를 즐길 수 있음을 표현합니다. 과거의 한 순간은 이미 지나가고 존재하지 않는 상상적 현실이지만, 그 순간의 여러 감정들은 지금의 실존을 만들어 주는 실질적 주체성을 만들고 자아를 확립시킵니다. 따라서 관람자는 작가의 상상적 현실을 관조하며 자신의 허구적 자아를 환기하고 실존보다 더 현실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시선은 일상적 순간의 감정을 생생히 불러내지만, 동시에 과거의 순간에 머물러 있기에 이미 지나가고 없어진 상상적 현실이자 대상의 부재, 과거의 아련함, 최종적으론 그로 인한 현실의 죽음으로 그 시선이 옮겨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두 작가의 접근은 서로 상반된 시작점을 가진 채 각자의 회화적 성격을 부여합니다. 삶과 죽음, 유채색과 무채색, 표현 중심의 화면과 묘사 중심의 화면, 과거의 순간과 생의 마지막 순간으로 대비되는 각자의 작품은 서로의 주제를 가로질러 상충합니다. 삶은 곧 죽음에 대한 암시로, 죽음은 곧 앞서 존재하는 삶을 제시하면서 서로의 시간을 이읍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러한 두 자아가 제시하는 삶의 순간을 경험하며 앞으로의 시간이 알맞게 흘러가길 바랍니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그런 적당한 온도의 티 타임과 함께 오늘도 무심하게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요.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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