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형관
꿈 뼈 재 2024, charcoal on paper, 210x150cm (each)
김형관
전시전경
김형관
남은 것 1, 2, 3 2024, oil on canvas, 40.9x31 (each)
김형관
어리석음에 대하여 2024, oil on canvas, 162.2x130
김형관
빗 2024, oil on canvas, 150x150cm
김형관
그래도 여전히 2024, oil on canvas, 162.2x130
10월 4일, 갤러리 소소는 서울 전시관 더 소소 4층에서 김형관 작가 개인전 《꿈 뼈 재》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김형관 작가의 16번째 개인전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조형방식의 과감한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조망한다.
평소 작가가 좋아하는 영국 밴드의 이름 Wishbone Ash를 Wish, Bone, Ash 세 개의 단어로 나눈 이번 전시 제목 ‘꿈 뼈 재’는 다양한 조형적 양상을 띄는 작가의 작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꿈 뼈 재’는 회화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자유롭게 확대시키고 그것을 적합한 조형방식으로 구축해 작업으로 실현시키며, 결과로 나타난 그 작업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의 세 단계를 은유한다. 이 세 단계는 작가로 하여금 주제와 표현양식에 있어 자유를 선사함과 동시에 단단한 작업적 토대가 된다. 때문에 김형관 작가는 그동안 확연하게 구별되는 조형방식의 변화를 겪어오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작업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가 해왔던 다양한 조형양식의 작업들을 동시에 선보인다. 거대한 검은 드로잉 작품 < 꿈 Wish >, < 뼈 Bone >, < 재 Ash >는 거친 목탄의 사용과 형상이 가진 상징으로 전체 전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더운 여름에 오감으로 느낀 심상을 화면에 옮긴 < 찐득하고 축축한 Wet and Stick y> 연작을 비롯한 표현적인 작품들은 화면을 덮은 강한 질감을 통해 감각적인 회화의 맛을 선보이고, 토마스 베르나르트의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 삶의 사람 Lebensmensch >은 반구상 형식으로 예술적 서사를 풀어낸다. 또한 작가의 초기 작업이자 빈 캔버스를 화면 가득히 그려 넣어 재현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작업 <실내>를 재해석한 < 아직도 여전히 But Still >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조형양식이나 주제로 수렴될 수 없는 작업들은 김형관 작가의 체계적이고 깊이있는 통찰과 완숙한 테크닉으로 하나의 공간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자신의 작업에 나타난 다양한 양상을 묻는 질문에 “‘그림이 아닌듯한 것을 그리기’에서 ‘전통적인 그리기’로 변화되었다.” 라고 말하는 김형관 작가는 시기적으로 변화했던 자신의 작업세계의 구획을 무너뜨리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단계에 서 있다. 한 작가의 자유롭고 폭넓은 작업세계를 만날 수 있는 《꿈 뼈 재》는 11월 1일까지 을지로 청계천의 더 소소에서 진행된다.
전시서문
이 사람이 사는 법 : 바라고 세우고 태우다.
‘꿈, 뼈, 재’라는 단어가 작가의 입에서 나왔을 때, 정처없이 작업실을 떠돌던 생각이 멈췄다. 은밀한 상징을 품고 있는 것 같은 검고 거대한 목탄 드로잉과 비가 오던 순간의 모든 감각-색채, 습도, 온도, 냄새 등-을 담으려 하는 물감의 질감이 두드러진 그림들과 그 사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선명하게 그려진 손들과 뻥 뚫린 빈 캔버스가 그려져 있는 캔버스와 작은 먹 드로잉들과 소위 반추상 혹은 반구상이라 불리우곤 하는 어렴풋한 형상이 그려지고 있는 그림들로 가득 찬 그의 작업실. 그 앞에서 방황하던 시선이 멈추고 문득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그것은 꿈이었구나. 뼈였구나. 재였구나.
김형관 작가가 좋아하는 영국 밴드인 WISHBONE ASH에서 가져왔다는 ‘꿈, 뼈, 재’는 이번 전시 제목을 구성하는 단어이자, 각각 하나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밴드 이름에서는 한 단어인 위시본을 떨어트려 세 개의 단어로 보았을 때 작가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보는 사람들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2021년 개인전의 < 바램 Wish >, < 세움 Bone >, < 태움 Ash > 3연작이 바로 작가가 이 단어를 염두하며 했던 작업이었던 것이다. 영어는 그대로 두고 한글을 동사형에서 명사형으로 바꾼 이번 제목은 좀 더 명시적이고 완결된 느낌을 준다. 조형적으로나 주제적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작품들과는 별개로 제목은 무척이나 확정적이다.
작가의 지난 작업을 떠올려보면 시기별로 확연하게 구별되는 조형적인 변화가 있었다. 관찰과 재현, 그리기의 문제를 다룬 초기 작업은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동시에 적용시킨 자화상이나 그림을 찍은 사진을 그린 그림, 빈 캔버스를 그린 작품과 같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후에는 실제 풍경이 아닌 엽서나 잡지에 흔히 나오는 에베레스트 산 이미지를 거대한 캔버스에 검은색 위주로 그린 < Long Slow Distance > 연작으로 인식과 재현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조형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상정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상념들 -그 공간의 설계, 공간을 구성하는 선과 면, 공간의 안과 밖에서의 시선 등-을 다룬 작품들은 화려한 색감의 기하 추상 형태로 수년에 걸쳐 개인전 《Lighthouse》, 《Linehouse》, 《Windows》, 《Brush Past》로 전개되었다. 그러다 문득 조형 형식을 바꿔 자유로운 붓질로 ‘그리기’에 충실한 작품들이 직전의 개인전 《끝없이 돌아가는 길》에 등장하였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다양한 양상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 바램 Wish >, < 세움 Bone >, < 태움 Ash >이 포함된 《끝없이 돌아가는 길》을 경계로 ‘그림이 아닌듯한 것을 그리기’에서 ‘전통적인 그리기’로 변화되었다고 답했다. 경험이나 생각에서 발생되는 그리기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연결되는 전통적인 그리기의 순서는 마치 세 사람 이상이 그린 것 같은 이번 전시 작품 구성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빈 캔버스를 그렸던 초기 작업을 모티브로 한 <그대로 여전히>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회화에 대한 고민을 그린 것이고, 유난히 덥고 습했던 여름에 대한 심상은 <찐득하고 축축한>에 담겼으며, 평소 좋아하는 책에서 <삶의 사람>, <어리석음에 대하여>와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작가의 머리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상념들은 하나의 이미지가 되고 그것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드로잉으로 빠르게 옮기기도 하고, 시간을 들여 색을 올림으로써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명쾌한 해답과 같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복잡했던 머리가 시원해지는 동시에 어둡게 입을 벌린 함정에 한 발 내딛은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그림을 읽어 내기 위해 행했던 일련의 사고가 되풀이되는 데자뷔. 확연하게 변화해온 조형방식에서 ‘본다’는 것과 ‘그리는 것’에 대한 공통된 고찰을 찾아냈을 때, 그것을 토대로 그의 그림을 읽어내려 했었다.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WISH로 하나의 일관된 BONE을 세웠던 사고는 그것을 벗어난 형상의 작품을 출품작 목록에서 발견했을 때 ASH가 되었다. 나는 또 한 번 그의 말 한마디에 꽤나 단단한 BONE을 순식간에 세워버렸다. 그 뼈대를 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자신에게 떠오르는 수많은 상념들을 각자의 형상으로 구축하고 그것의 한계를 찾아내 태워버린다. 그리고 남은 재를 보며 또다른 상상이 다시 시작된다. 과연 이 BONE은 그의 작업을 읽기 위한 최종판 해독서일까?
바라는 것을 세우고 그것을 태우는 이 3단계는 모든 것을 해석하는 마법의 열쇠 같다. 우선 한 사람의 다양한 작업 양상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 체계가 부정될 수 있음을 긍정하며, 나아가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의 사고체계에 대한 흐름을 지적한다. 모든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아주 단단하게 닫힌 설계도인 것이다. 《꿈 뼈 재》가 가지고 있는 이 기막힌 패러독스는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하고, 자기자신을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스스로 더욱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 당장은 이 패러독스를 깰 주문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검은 드로잉과 선명한 색감의 작은 캔버스가 맞서고 있는 전시장의 주술적인 상황에 서서 그가 바라는 꿈과 세우고 있는 뼈와 태워버리고 남을 재를 찾고 또 찾아볼 뿐이다.
전희정(갤러리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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