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2024.10.16 ▶ 2024.11.16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학고재 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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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93.9x25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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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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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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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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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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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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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30.3x16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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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16.8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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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90.9x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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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90.9x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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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16.8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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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90.9x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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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Untitled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3cm

  • Press Release

    1. 전시 개요
    학고재는 2024년 10월 16일(수)부터 11월 16일(토)까지 하정우 개인전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을 연다. 학고재에서 개최되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올해 제작한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하정우(HA Jung Woo)는 일상적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간결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표현되어, 단순화된 형태가 두드러진다. 과장된 얼굴에 눈, 코, 입을 강조함으로써 인물에 원시적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번 전시에서 하정우는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원시성을 바탕으로 순수한 정신과 원초적인 힘을 드러낸다. 카펫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은 규칙적인 선과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비로움과 순수성을 강조한다. 토속적 문양을 활용하여 인간 내면의 직관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한국 전통 탈과 같은 민속 소재를 현대의 감각으로 해석하여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하정우의 작업은 현대 문명 속에서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삶의 진솔함과 생명력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원시의 상징적 표현을 재해석하는 지점을 더듬으며,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울림을 전달하고 새로운 정서적 발견을 제안한다.


    2. 전시 주제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매체의 발전으로 인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여러 소셜 미디어와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내며, 끊임없이 자아를 재창조하고 확장해 나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을 탐색하고, 내면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는다. 하정우 또한 배우로서 수많은 인물을 연기하며 다양한 페르소나를 경험해 왔다. 그의 연기 경력은 무수한 역할과 삶을 체험하며 자신을 확장해 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하정우는 작가로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하며, 마음속에 담겨있던 감정과 이야기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는 영화 「대부」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전시 서문을 작성한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믿을 수 있는 식구 말고 누구한테도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는" 의미로, 이는 곧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와의 만남을 원하는" 마음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예술, 특히 그림의 세계가 나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예술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 수단을 넘어, 작가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감정과 진실을 끌어내는 통로가 된다. 하정우의 작업 역시 이러한 창조적 열망과 마음속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의 작품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감정과 경험을 자유로운 형태로 드러내며, 그 과정에서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그의 작품은 예술적 표현을 통해 감정의 교류를 이루고자 하며, 개인적이고도 깊이 있는 내면의 세계로 초대한다.


    3. 전시 서문
    내면의 극장과 필력의 연기
    - 하정우 작가의 회화 세계


    이진명 | 미술비평ㆍ철학박사

    회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외부 세계를 지시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회화이다. 또 하나는 내부 세계, 즉 화가의 내면을 매체에 드러내 의미의 해석을 요구하는 회화이다. 그런데 화가 또한 둘로 나뉜다. 하나는 그림을 그리기에 화가인 사람이다. 나머지 화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세상을 살 수 없기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이 고전적 분류에서 하정우(HA Jung Woo, 1978-) 작가는 후자에 속한다. 그는 전 세계가 인지하는 연기파 배우이다. 부족한 것 없고, 부러워질 바도 없다. 그럼에도 힘든 회화의 세계로 몸소 뛰어들었다. 우리는 하정우 작가의 그림을 보기 앞서 어째서 회화의 세계로 뛰어들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현재의 문화, 혹은 문명에 만족하는가? 만족하는 사람은 삶에 경탄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의 문화와 문명이 가르치는 길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동시대 문화, 그리고 문명은 삶의 문화이다. 여기에 죽음은 빠져있다. 동시대 문화는 물질과 육신, 그리고 젊음을 숭상한다. 사람들은 죽음과 어둠에 큰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아름다운 비례의 신체와 빛나는 피부, 풍만한 육감, 최상의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의 패션에 매몰된다. 대다수 사람은 텔레비전과 디지털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스타 시스템에 압도되어 자기 삶을 되돌아볼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과거의 문화와 문명은 이와 달랐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삶과 죽음을 함께 고려했다. 메소아메리카ㆍ페르시아ㆍ선불교ㆍ티베트 불교, 그리고 이집트의 『사자(死者)의 서』에 보이는 것처럼 옛사람은 죽음을 삶과 동등하게 중시했다. 우리에게 죽음은 존재의 끝이다. 존재의 절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옛사람에게 죽음은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이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철학의 출발점은 죽음에 대한 특별한 인식에 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간다. 동시에 죽어간다. 죽는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직시하고 직면하여 현재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 내가 가진 총체적 감수성을 모두 가용하여 세계와 사람과 자연과 마주해야 한다. 사랑의 눈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때 나의 자아는 진정한 자아로 거듭난다. 진정한 자아는 『성서』에서 말하는 카이로스(kairos)의 개념과 상통한다. 진정한 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는 불교의 불성 개념과도 통한다. ‘카이로스’는 하이데거와 만나면서 ‘보았던 순간’, 즉 ‘augenblick’ 개념이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아이겐틀리히카이트(eigentlichkeit), 즉 진정성이라는 개념으로 승화되었다. 진정성을 회복하는 길에 앞서 죽음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정우 작가는 배우로서 삶을 상찬하는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다. 우리는 인격체로서의 하정우와 만나기 어렵다. 액션과 공포와 낭만과 판타지를 연기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고 무대 뒤로 빠져나올 때의 하정우는 차기작을 위한 재충전의 의무감에 시달릴 것이다. 하정우 작가에게 회화의 세계란 진정한 시간과 만나서 진정한 자아로 태어나기 위한 긴 여행이다. 이때 배우로서의 페르소나는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새로운 자아의 페르소나가 탄생한다. 이때 삶과 죽음의 신선한 의미가 갈마드는 회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정우 작가는 영화 「대부(代父)」의 대사를 회화 작품에 옮겨적었다.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믿을 수 있는 식구 말고 누구한테도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는 뜻이다. 어째서 이 구절이 작가의 뇌리에 남았을까? 하나는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와의 만남을 원한다는 뜻이다. 나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있고, 진정한 나를 깨울 수 있는, 그것은 바로 그림의 세계다. 하정우에게 화가는 단순한 부(副)캐릭터가 아니다. 진정한 자아로 진입하는 관문이자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이다.

    배우가 쌀로 밥을 짓는 일이라면 화가는 그 찌꺼기로 술을 담그는 일 같다고 설명하면 어떨까. 같은 재료로 만드는 것이지만 그 방법에 따라 결과물은 전혀 다르게 나온다. 운동선수처럼 독하게 훈련하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로 영화를 찍는다. 그렇게 밥과 같은 연기가 만들어진다. 그러고 나면 몸과 마음에는 잔여물이 생긴다. 연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 그것을 끄집어내어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술과 같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림이 나를 회복시키고 다시 연기에 정진하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하정우 작가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쓴 작가 노트의 일부분이다. 자기의 본분을 둘로 나누고 있다. 배우는 밥이며, 화가는 술이다. 밥과 술은 자아에 관한 메타포이다. 하정우에게 자아는 광장(廣場)의 자아와 밀실(密室)의 자아로 나뉜다. 이 둘이 절묘하게 갈마들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영화예술과 회화예술이 모두 성공을 이룬다. 그런데 여기 역설이 있다. 밀실이 개인적이고 닫혀있는 공간이라면, 광장은 사회적이고 열려있는 공간이다. 동시에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라면,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하정우는 영화로 대중을 밀실에 가두고, 회화라는 밀실로써 자기 자신을 광장에 해방한다. 이러한 법칙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음(陰)과 양(陽)이 갈마드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그것을 잇는 것은 선(善)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성(性)이다. 어진 사람은 그것을 인(仁)이라고 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지(知)라고 말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매우 드물다.


    첫 구절부터 보면 진리는 변화에 있다는 뜻이며, 진리는 사랑의 에너지[善]로써 유전된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사랑을 이루려는 바람은 우리 내면에 이미 설계된 본성이다. 어진 사람은 세상을 총체적 감수성으로 받아들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을 이성적 분석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 둘을 모두 사용해야만 뜻있는 사람[君子]이 된다. 하정우에게 배우와 화가는 양(광장)과 음(밀실)이다. 작가가 이 둘을 모두 가용하는 이유는 사랑 에너지에서 비롯하며, 본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는 그림 그리기에 임할 때, 인(仁), 즉 시적 시선과 지(知), 즉 냉철한 사고를 동시에 구가한다. 주지하다시피 작가는 자신이 처한 실존에서 작품을 시작한다. 이번 전시회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의 주요 소재는 페르시아의 양탄자와 마스크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 어째서 페르시아 카펫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몇 가지로 짐작될 따름이다. 우선 페르시아 사람들은 절대자가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는 의인관(擬人觀)을 수용하지 않는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절대자를 모든 에너지인 동시에 모든 원리 그 자체라고 보았다. 절대자를 의인화해서 묘사하지 않은 근본 이유이다. 단지 패턴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페르시안 카펫은 절대자의 에너지와 우주가 운영되는 원리에 대한 강렬한 확신을 표상한 예술이다.
    페르시안 카펫은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첫째, 매달리온 문양과 아라베스크 패턴으로 절대자의 에너지와 원리를 극히 정밀하게 현현시킨 비단 카펫이다. 이는 외재하는 절대자에 대한 표현이다. 둘째, 절대자에 대한 사람들의 신심(信心)을 표현한 곤바드 문양의 카펫이 있다. 절대자를 믿는 신심이 황홀경으로 승화되는 장소는 모스크이다. 모스크는 절대자로부터 선사 받는 황홀경을 수여받는 장소이다. 모스크의 형상을 닮은 곤바드 문양은 절대자의 총체적 에너지와 하나가 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셋째, 유목민의 노마딕 카펫이 있다. 여인들이 주체가 되어 종교적 전범(典範)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카펫 형식 속에는 유목민의 강인한 삶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페르시안 카펫의 형식적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겨있는 철학적 사유는 하정우가 추구하는 세계와 부합한다. 하정우는 세계가 사랑의 에너지로 작동하며, 그 안에 사는 우리 역시 사랑의 시선으로 세계에 동참해야 한다고 믿는다. 작가는 수많은 자료를 사전에 조사해서 페르시아 카펫의 패턴과 구조를 파악한 후 다시 내면화한다. 작가는 타로(tarot card), 음악의 음률과 리듬이 추상화된 이미지, 기하학적 이미지, 전통적 도안 등을 배합하여 위용 넘치는 선적 회화를 재구성한다. 하정우의 페르시아 카펫 연작에서 우리는 구성의 완전한 조화와 함께 필력을 살펴보아야 한다. 수많은 필획은 스타일이 다양하면서도 같은 범주의 필획은 하나의 구역에 모이는데, 구역에 모인 필획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균제(均齊)를 이룬다. 더구나 필획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정확하여 작가가 지닌 화력(畵歷)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풍부한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중에서도 작가 자신의 실존을 다룬 자전적 작품이 있다. 〈무제〉 중에 이번 전시회의 표제(標題)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 「대부」의 대사가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작품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쌍생아처럼 동등한 구조를 구성하는 가운데,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속에서 두 얼굴이 서로를 바라본다. 마주하는 두 얼굴은 내면에 자리하는 두 개의 페르소나를 상징한다. 하나는 배우(양, 광장)의 페르소나이며, 또 하나는 화가(음, 밀실)의 페르소나이다. 이 둘은 대각선으로 짓누르는 칼의 공격을 받고 있다. 페르시아의 시미타(Scimitar)로 보인다. 칼은 권력을 상징하는 동시에 억압과 희생을 은유한다. 권위를 뜻하는 명문 가문의 문장, 그리고 그것이 현대적으로 응용된 축구 명가의 문장도 보인다. 상하 분단 구조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간 작가가 지내온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런데 작가는 하부에 신념(Faith), 상부에 사랑(Amore)이라는 단어를 배치한다. 여기에 핵심이 자리한다. 세상은 선악ㆍ미추ㆍ길흉ㆍ빈부ㆍ귀천ㆍ적서 등 음양과 명암이 동시에 깃들어 작용한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고 즐거움이 따르면 괴로움도 수반된다. 사람 사는 것이 그와 같다. 그렇지만 작가는 끝나는 날까지 놓을 수 없는 가치를 신념과 사랑에 둔다.

    마스크 연작 역시 실존적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사회적 현실에 구속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 현실을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라고 보며, 이러한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앙가주망(engagement)이라는 개념이 있다. 현실에 스스로 자기를 던져넣는 일종의 자기 구속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우리는 의지 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그러나 단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큰 무대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쳐야 한다. 때로는 아버지로서, 때로는 자식으로서, 때로는 은행원으로서, 때로는 애인으로서, 때로는 선배로서 마스크를 바꾸어쓰며 연기를 펼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배우이자 예술가이다. 하정우 작가는 아메리카ㆍ아시아ㆍ아프리카 각 대륙의 마스크를 화폭에 그렸다. 그것은 세계 전체 사람들을 표상한다. 선적이고 평면적인 마스크 또한 필력의 속도가 웅혼하고 구성의 짜임새가 옹골지다. 작가가 구성한 그 짜임새 있는 상상력에서 우리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작가의 모든 작품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생명감으로 가득하다. 그것의 영어 번역어는 ‘rhythmic vitality’이다. 작가가 출품한 대부분 작품은 작가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명 체험으로 충만하다. 또 하나, 그 에너지 넘치는 작가의 다이너미즘은 작가의 상상력과 친화력을 이룬다. 작가의 회화적 상상력은 범속한 우리의 물리적ㆍ통속적 한계를 넘는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작가가 그려낸 가상의 세계에 참여하여 통속적 세계가 강요하는 규제의 상식을 벗어나게 한다. 나는 작가의 에너지 넘치는 필력의 연기와 내면의 상상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듯 놀라운 실력을 지녔음에도 겸허한 자세로 세상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하정우 작가의 예술세계는 12세기 페르시아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 1048-1131)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어떤 이는 지금 이 세상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그러나 누군가는 예언가가 말했던 다가올 천국을 위해 탄식한다. 여기 있는 돈을 모두 가져도 좋다. 대신 나의 신념만은 놓아달라. 아니면 저 멀리서 울리는 북소리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나의 적들은 내가 철학자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신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 지구에 사는 일시적 체류자라는 사실만은 알겠다.


    오마르 하이얌은 겸손ㆍ신념ㆍ사랑ㆍ평화의 시인이다. 나는 작가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마스크는 자신의 페르소나로서의 자아를 표현한 연작이기도 하거니와 하루를 참되게 살아가는 모두에게 선사하는 찬가며, 페르시아 카펫 연작에는 신념과 사랑으로 가득한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한 번은 죽는다는 사실마저 단호하게 받아들이는 용기가 체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제목하정우: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전시기간2024.10.16(수) - 2024.11.16(토)

    참여작가 하정우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학고재 오룸)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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