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선
달항아리1-세상을 품다 72.7×60.6(20호)_Mixed media _2024
김선
달항아리-세상을 품다 135.0×120.0(80호)_Mixed media _2024
김선
달항아리2-세상을 품다 53.0×45.5(10호)_Mixed media _2024
달항아리, 빙렬감각(氷裂感覺)
안현정 |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내 그림은 반드시 보아야 진가(眞價;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다. 도공(陶工)의 마음 결을 평면 회화로 표현하기 위해 물성과 일체 된 십여 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의 달항아리는 달처럼 둥글어지는, 달항아리와 하나 되는 물아일체적(物我一體)적 감각이다.” - 김선 인터뷰 중에서
백자 달항아리를 평면 캔버스 위에 담백하고 순수하게 재현한 김선 작가는 <달항아리의 꿈>을 소재로 옅은 회백색과 푸른 에너지를 머금은 영롱한 빛을 빙열 효과(섬세한 갈라짐) 속에서 극대화 시켜 왔다. 축적된 재료들의 혼합으로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과학적인 재료학에 근거해 연구와 실천을 되새긴 결과다. 작가는 선조들의 정신세계까지 오롯이 ‘선과 형, 색과 빛’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마음의 결, 빙렬 드로잉
미세한 뉘앙스를 가진 모두 다른 달항아리, 실제 김선 작가의 작품들은 다 비슷해 보여도 같은 형태와 색이 단 하나도 없다. 달항아리에서 풍요의 심상을 표현한다는 작가는 10여 년 이상을 실제 달항아리와 유사한 평면성을 연구하기 위해 매진했다. 제목이 빙렬감각(氷裂感覺)인 이유는 달항아리를 ‘마음새-몸새-이음새’로 연결해온 작가의 투철한 태도를 감각적으로 느껴야 비로소 ‘달항아리 보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빙렬의 크기 역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이른바 시각효과, 미켈란젤로가 시대의 역작 <다비드상(david,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을 제작할 때, 2미터가 넘는 조각의 시각효과를 고려해 머리를 더 크게 제작한 것과 같은 논리다. 달항아리의 안정적 시야 확보를 위해 좁은 굽 위로 펼쳐낸 빙렬은 두텁고 크게 시작해 비대칭의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점차 작아진다. 상단부는 작고 미세하게 그려내 ‘감각의 층위’에 다양성을 부여한 것이다. 작가는 청년 시절 구상성 있는 다양한 장르를 그렸지만 내내 허무한 감성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달항아리는 ‘마음의 결’을 따스하게 채워주었고, 이때부터 시작된 자신만의 달항아리는 ‘실제 도공의 마음 결’을 좇아온 오랜 평면 실험의 결과를 완성 시켰다. 도자를 평면화한 듯한 작업, 초기 달항아리는 요철(凹凸)이 지금보다 두터워 ‘실제 도자로 제작하느냐’ 혹은 ‘평면에 실제 도자를 붙인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다. 작가는 이러한 상식적인 물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부조 같은 회화가 아니라, 평면을 고수하면서도 ‘얇디얇은 빙렬의 미감’을 자신만의 시그니쳐로 부각시킨 것이다. 실제 작가의 작품을 만져보면 표면이 도자기와 같은 느낌을 준다. 조선 도공이 제작한 50센치 전후의 달항아리는 실패율이 높아 실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김선 작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딛고 나온 ‘빙렬 드로잉(split drawing)’을 감각으로 연결한 작품들, 자신의 한계성을 인지하고 깨달은 철저한 노동은 이제 작가에게 달항아리가 시대를 넘나드는 자유의 상징임을 확인시켜 준다.
비균제와 균제의 조화, 달항아리가 주는 풍요
넉넉한 가을의 풍요를 닮은 김선의 달항아리, 보름달과 닮았지만 완전한 구형이 아닌 그 자연스러운 비대칭은 ‘개성어린 오늘의 풍요’와 닮았다. 이른바 비균제성. 이는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이 한국미의 정점으로 꼽은 요소 중 하나로, 정확하지 않아 더욱 매력넘치는 한국 특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얼핏 보기에 찌그러진 듯 보이는 김선의 달항아리는 정제된 빙렬의 시선을 담아 자유와 안정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작가의 비균제가 그럼에도 균형감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달항아리’가 가진 본체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대표 브랜딩으로 손꼽히는 달항아리는 상당히 많은 작가들이 선택한 소재이다. 하지만 다양한 달항아리 작가들과 차별성을 둔 김선의 작업은 조선백자가 가진 균제성을 작가의 노동으로 연결해서 더욱 가치가 있다. 달항아리의 공식 학명은 백자대호(白瓷大壺)이다, 달항아리라는 정겨운 이름을 붙인 이는 앞서 비균제성을 언급한 고유섭 선생이다. 하이얀 자기(磁器: 사기 그릇)이 달을 품었다는 의미다. 무광무색(無光無色)의 순수로 느껴지지만, 모양새와 색감이 같은 달항아리는 단 한 개도 없다. 미술사학자 김원룡(三佛 金元龍, 1922~1993)은 달항아리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 돌리다 보니 그리되었고, 바닥이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 놓으면 넘어지지 않을 게 아니오. 조선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달항아리에 담긴 무심(無心)의 미학은 비틀린 비대칭과 만나 21세기의 풍요와 맞닿는 것이다.
김선의 달항아리에 있는 유백색의 뉘앙스는 크게는 다섯에서 좁게는 셀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뉘앙스로 우리와 만난다. 실제 수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유백색을 지닌 달항아리는 평균 45~55센치 사이를 빼어난 수작으로 말한다. 조선 도공의 달항아리를 소유할 수 없다면, 작가의 현대화된 균형 미감을 풍요의 에너지 속에서 소장해 보는 것이 어떨까. 김선의 달항아리는 빙렬감각을 우리의 인생 드로잉처럼 새겨넣은 ‘백색 미감의 세련된 조화’가 아닐까 한다. 만인(滿人)을 비추는 만추(晩秋)의 감각 속에서 달빛처럼 넉넉하고 귀한 ‘김선의 달항아리’와 만나기 바란다.
[작가노트]
작업을 할 때면 늘 설렌다.
달 항아리 작업의 과정은 먼저 드로잉을 하고 기본색을 정하고 그 위에 구축된 혼합재료를 올린다. 혼합재료의 내구성에 따라 마르는 시간차이로 그 속성에 따라 갈라지는 효과가(빙열) 나타난다.
작업의 초반은 의도적으로 진행되지만 마르는 과정의 결과물은 나의 몫이 아니기에 긴장과 설레임으로 기다린다.
조선도공의 심정도 이러했을 거 같다.
거듭되는 밤샘과 오랜 시간 작업을
하더라도 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달 항아리의 부드러운 곡선과 여유로움에서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은 힘들지만 그 작업에서 다시 힘을 얻어 오늘도 설레고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 감사하다
-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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