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門) 한지에 채색, 162×130cm, 2010, 개인소장
전은희
~ 사이 한지에 채색, 110×100cm, 2010, 개인소장
전은희
가리워진 길 한지에 채색, 160×100cm, 2010, 개인소장
전은희
空 - 間 한지에 채색, 132×97cm, 2010, 개인소장
전은희
불가능 한지에 채색, 180×160cm, 2010, 개인소장
전은희
환기 한지에 채색, 162×130cm, 2010, 개인소장
전은희
휴식 한지에 채색, 61×73cm, 2010, 개인소장
벽(壁) ― 느린 감성의 기억
벽(壁) 풍경 시리즈 작품의 전시를 세 번째로 가지며 당분간 좀 더 벽 그림에 집착하고픈 전은희는 왜 이렇게 벽 풍경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그는 벽의 역사나 사회적 개념 또는 사건을 맥락화 하는 작업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존재하는 벽과 벽면 그리고 사이공간이 근대화에서 현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고 사라져가는 벽의 모습과 현상들을 눈으로 기록하고 표현할 뿐이다. 그러면서 그려지는 대상에서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다 또다시 찾아서 그리고 사유하며 빠져든다. 벽과 공간에서 인고의 세월과 자연의 현상에 의해 생겨난 흔적의 환영들이 미술의 오랜 역사를 지닌 ‘그림’이라는 프레임 속으로 이접(移接)된다. 개발되지 않은 서울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낡고 거친 벽들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고, 순간 기억되는 의미들을 기록하며 사라져가는 벽의 사사로운 얘기들을 서정적 풍경으로 때로는 서사적 풍경으로 그려 나간다.
전은희는 벽과 공간을 지나치게 변형?왜곡시키거나 극사실적인 표현을 구사하지 않는다. 거칠고 고지식한 성격답게 보여 지는 대상을 나름 프레임화 하여 자기 감성과 체질을 교접(交接)시키려 한다. 그래서 그림의 재현방식은 다소 서툴고 투박하며, 매끄럽지 못하고 탁하다. 하지만, 오히려 대상을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기만의 체질과 상상, 그리고 직관의 태도로 가져갈 수 있는 감성이 엿보이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한다. 그 근거는 그림의 구조를 이루는 형(形)이 아닌 감추고 있는 몸짓(態)의 움직임 때문이다. 가령, 벽면의 화려한 질감이 아닌 곰팡이, 습기, 이끼 등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굳게 닫혀 진 문이나 창문, 무너질 것 같은 벽 등의 음(陰)적인 것을 소재로 한다. 또 하나는 느린 시선의 태도이다. 벽으로부터, 벽과 벽 사이에서, 벽 너머의 공간에서 보이지 않고, 숨을 쉬며, 느린 움직임의 현상들을 쉼 없이 사유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아 어설퍼 보이지만 그 속에 머물고 있는 그러한 사유 태도의 관점에서 보다 다양하고 폭넓게 시선을 산책한다면 원하는 形의 움직임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할 것으로 본다. 막 접어든 불혹의 나이, 오래전 학창시절에 학습되지 않았던 동시대의 서정적?서사적인 풍경이 이제 다시 새로운 학습을 겪은 그에게 멈출 수 없는 가벼움으로 다가간다. 인생의 반을 살아온 전은희는 겁 없는 20대와는 다른 도전으로 망설임 없이 견고하게 발라진 바름벽(plastered wall)을 감성의 전율로 뒤엎을 때이다.
이관훈(큐레이터,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THE WRITTEN STORY
나의 기억과 수집한 풍경의 기억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며 기억하는 풍경과 비슷한 이미지 일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수집한 풍경들과 시간의 이야기를 작업한다.
낡고 오래된 벽에서 발견한 시간의 개념은 공간의 경계성과 함께 작품 전반에 걸쳐 중요한 모티브를 이루고, 나아가 일상적인 삶의 장소에서의 시간의 체험은 생활공간이 갖는 ‘역사적 시간성’을 작업으로 표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시간의 기억으로 시작한 작업은 직선적 시간의 의미와 회귀의 시간적 의미, 그리고 나선형의 시간의 의미 가운데 본인의 작업의 의미를 생성과 소멸을 말하는 나선형의 시간에 의미를 두고 작업했다. 시간이란 결코 새로움이 아니지만 삶 속의 새로운 체험과 발견을 통해 작업 안에 흐르는 원천이다. 흔적들은 과거의 시간과 존재하던 이들의 삶의 공간을 드러내는 것이다.
원동력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담은 벽은 우리들의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누구든 오래된 건물과 같은 곳의 내부에서 그 시간의 흔적들을 발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본인의 생활 장소에서 나아가 사람들의 생활현장을 찾게 되면서 아직 개발이라는 변화를 격지 않은 허름한 동네를 먼저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어렵게 찾은 허름한 건물들의 벽을 보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아찔함과 그 속에서 수십 년의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는 희열감을 느끼는 등, 이러한 발견의 과정 또한 작업의
담이 가지고 있던 긴긴 세월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공간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큰 캔버스인 양 그림 그리고 낙서한 댓가로 어른에게 야단맞는 담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았던 삶의 애환이 담긴 이끼 낀 아련한 벽도 있다. 이제 곧 무너져 흔적조차 사라지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나 남아있을 무시무시한 관념의 벽을, 본인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삶의 형태를 지닌 호흡하는 벽으로 인식하였다.
벽에 남은 궤적은 시간의 흐름과 흔적을 나타내며 시간은 ‘흔적’의 가시적인 형태로 보여 지게 된다. 벽은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노랗고 이끼 끼고 지저분한 벽은 시간과 공간의 퇴색된다. 그러나 벽은 다시 경계를 생성한다. 인간과 자연세계를 경계 짓고, 인간과 자연을 인식하게끔 한다. 곧 인간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물론 그 벽은 인간에 의해 다시 새로운 강력한 벽으로 대체되며, 다시 시간과 공간의 힘으로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흔적 없는 시골 철도역의 오래된 담처럼 아련함과 지나간 시대의 추억을 마치 내 존재의 안식처인양 끊임없이 내안의 타자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낡고, 지저분한 벽을 담아내고 있다
후미지고 빛도 거의 차단된 구석진 곳에 위치한 누구도 손보지 않은 듯한 낡은 벽에 오후의 그림자가 겨우 들고 있었다. 벽 그 자체로도 자연현상들을 몸 그대로 받아들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런 추상 작품을 대하는 것 같았다.
벽 앞에 존재하는 큰 나무의 존재가 벽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보랏빛 도는 이끼들과 벗겨진 페인트, 갈라진 틈들과 함께 어우러져 벽 자체에 스며들어 그 벽의 일부로 보여 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림자를 드리우는 대상은 실제 이미지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화면 밖에 즉 실제의 세계에 남아있는 어떤 것의 투사인 것이다. 그림자를 넣음으로 대면하고 있는 장소의 반대편을 표현해 화면의 확장을 시도해 보았다.
밀란 쿤데라는 대상은 풍경에서 사라지기 전에 먼저 사람의 영혼에서 사라진다 라고 했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그곳의 벽과 담장 그리고 내부의 여러 시설들은 이미 없어졌을 것이나 허물어지기 직전의 힘든 모습을 하고 서 있어도 그 장소는 과거의 모든 역사와 존재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남겨져 부서진 벽의 흔적들만큼의 시간을 간직하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의 무언의 여행을 하게 만드는 그 장소는 과거의 존재와 현실의 부재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햇빛과 공기의 소통을 위해 만들었던 창문은 뜯겨나가고 부서져 형태만 겨우 창문이었음을 암시하는 상태로 남겨지고 탄탄하고 견고했던 벽들은 어떤이들의 임의대로 무너져 내렸다. 여러 번의 덧칠을 경험한 벽도 이제는 이끼나 곰팡이들에게 몸을 내주었고 그들의 새로운 터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야기가 있는 벽이나 담을 찾아 여러 군데를 다녔다. 그런데 대부분의 낡은 담을 감추기 위해 칠해진 페인트의 색상은 흰색이 주를 이루었다. 진한 흔적들을 감추기에 흰색은 별로 용이한 색상이 아님에도 여러 번 칠해야 하는 수고를 마다않고 대부분은 흰색을 선택한 것이다. 낡고 지저분한 담을 아무것도 없는 깨끗함의 상징색인 흰색으로 감추고 싶어 하는 듯하다.
흰 담의 가운데와 아래의 벽돌이 한 장쯤 빠져 나간 듯한 구멍은 높은 담 안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소통의 갈망을 표현한 것으로 막힌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벽의 끝자락엔 작은 골목이 생겨난다. 그 골목은 무너진 벽을 쫓아 끝없이 길어진다. 그 길은 인간의 무의식과 연결된다. 그 무의식은 도시를 형성하는 벽과 사회를 형성하는 벽 사이에 세워진 경계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경계가 아니라 접합의 공간이며,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안의 타인을 모두 수용한다. 벽은 이제 벽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공간이 된다. 그리하여 작은 창을 내어 빛을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무너진 벽돌에 의한 뚫림의 공간들이 차츰 미리 구성된 창들로 대체된다. 벽은 이제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타자를 받아들이며, 벽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삶의 시간들을 기록하고, 그 무상한 담을 바라볼 때 약간의 회고의 시간이 필요함을 드러낸다. 벽은 타인을 향해, 인간을 향해 바라보는 만큼의 열린 공간과 소통의 길을 제공한다.
1972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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