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경
guide line mixed media, 11x18cm, 2010
이연경
Say a Word 가변설치, 2010
자기에의 배려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1.
이연경의 첫 개인전이다. 이전부터 그는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작업을 통해 내면의 깊은 곳에 접근하길 원하는데, 잠재된 욕망, 기쁨, 행복,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을 투명하게 나타내고, 그것을 한걸음 떨어져 마주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연경의 작업은 ‘가면을 벗고 정직한 나 자신이 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연경은 그런 감정을 몸으로 표현한다. 그는 몸이 원하는 바에 따라 손과 발을 움직이며, 다물고 있던 입이 갈망하는 무언가를 말하며, 그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메모하며,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물건을 모은다. 그의 이런 행동은 사회적 표준화, 통념, 논리적 사고 등에 종속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즉 그의 몸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말한다.
2.
2009년 봄, 문화일보 갤러리. 이연경은 하얀 거즈를 이어 붙여 네모난 공간을 만들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제법 큰 공간이다. (천정 부분은 위로 뚫려 있음) 그런데 연약한 거즈로 벽을 세웠기에 구조물이 다소 허술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 이 공간의 벽은 부드럽고 유동적이며, 더불어 밖에서 안의 물건을 살짝 엿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곳은 완전히 막히거나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안과 밖이 만나고 혼합되는 곳이다. I Love You 라고 명명한 이 공간에 작가는 여러 물건을 바닥에 놓거나 옷핀으로 벽에 부착시켰다. 여기에 물건들은 주로 그가 즐겨 먹었던 것과 관련된다. (과자 포장지, 음료수 통, 포장비닐 등 사람을 유혹하는 상품들 - 하얗거나 투명한 포장 용기 선호) 그 안에는 상자들도 있는데, 각각의 상자 속에는 그가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물건들이 쌓여 있다. 이연경은 이 물건을 하나씩 꺼내 볼 때마다 당시 여행하면서 가졌던 감정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는 전시 전 기본적인 것을 설치한 후, 전시 기간 동안 그 공간에서 지내면서 무언가를 덧붙이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2009년 가을, 서울대학교 전시실. 이연경은 하얀 장지로 방을 만들었다.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유동적이며 반투명한 공간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눕고 뒹굴고 말하고 노래하였다. 또한 그 모습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 전시장 한쪽에서 상영하였으며, 드로잉과 틈틈이 적은 글을 처음 공개하였다. 작품 제목은 Live As You Are이다.
3.
이번 전시의 주제는 ‘쉼(휴식)’이다. 이연경의 1차 목표는 자기 자신이 쉴 수 있는 아늑한 환경을 꾸미는 것이다. 이전 작업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설계했듯이, 이번에도 그는 전시장을 마치 방과 같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전시 개막 1주일 전부터 그는 공책, 실, 상자, 화분, 소파, 의자, 냉장고, 앰프 등 그가 좋아하거나 필요한 물건들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다. 이연경은 개막 이후에도 그곳에서 새로운 일을 벌일 예정이다. 영화를 보고, 친구를 초대하고, 그에게 간단한 요리도 대접하고, 앰프를 이용해 마음껏 소리 지를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는 모든 것은 그를 위한 것, 바로 제대로 쉬는 것이다.
4.
30여권의 공책에는 그의 글귀가 모아져 있다. 이연경은 평상시 메모한 것을 오려서 주제별로 각각의 공책에 붙였다. ‘솔직히 말하기’, ‘l Like It’, ‘나의 소망’, ‘Self Image’, ‘당신’, ‘맛, 멋’ 등. 동시에 실을 마스킹 테이프로 천정에 연결해 늘어뜨렸고, 이 실에도 글이 적힌 종이를 매달았다. 사실 실이란 재료는 가볍고 유약하며 미세한 바람에도 나풀거리는 특성이 있다. 마스킹 테이프 역시 임시적이다. 고정을 시켜도 시간에 따라 조금씩 떨어지면서 형태가 변하게 된다. 그리고 박스에는 이전 작품처럼 여행의 추억을 담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이번 전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화분이다. 작가는 식물이 가진 생명력을 주목하는데, 식물들이 주는 좋은 기운을 얻고 싶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선사하고자 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호흡하며 살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운다. 비록 그의 작업이 자신만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더라도, 그것은 결코 타인과 단절된 폐쇄적 행위가 아니다. 그의 작업에 있어 장지와 거즈로 만든 공간은 안과 밖이 서로 침투하고 있으며, 그가 적은 메모와 그가 모은 오브제는 타인의 감정과 교차되며, 그의 식물은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시사하며, 그의 독특한 전시 전개 방식은 그의 열린 태도를 지칭한다.
5.
이 전시는 철저히 작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전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스스로가 누군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진정한 ‘자기에의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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