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posed moment
2010.10.08 ▶ 2010.11.14
초대일시ㅣ 2010-10-08 17pm
2010.10.08 ▶ 2010.11.14
초대일시ㅣ 2010-10-08 17pm
이은미
Transposed Moment #1 ceramic, 39.5(φ)x46(h)cm, 2010
이은미
Transposed Moment #6 ceramic, 38(φ)x70(h)cm, 2010
이은미
Transposed Moment #12 ceramic, 37.5(φ)x64(h)cm, 2010
Transposed Moment
문유진(예술학, 한국도자재단 큐레이터)
이은미의 작업을 관통하는 단어는 흙, 시간, 그리고 공간이다. 작가에게 흙은 도자 재료이기보다는 작업의 재료이며, 공간은 작업 과정을 고스란히 품어내는 흙 오브제의 연장선으로서 오브제와 일련의 관계를 형성하며 작업을 완성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소리, 바람, 하늘, 물 등의 요소들이 활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은 흙 오브제의 중량감과 부동성을 보완하는 동시에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 외부와 내부 세계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결의 매개로 작가는 자연환경이나 거울을 주요 보조 재료로 사용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오브제와 공간과의 관계에 관람자라는 요소를 끌어들인다. 도자를 보다 적극적인 매체로 해석하고 건축이나 환경미술과 같은 인간의 생활 반경 내에 작품을 위치시켜 온 작가는 결국 관람자가 작품을 마주하는 상황 속에서 작품을 완성하고자 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 보이는 작업들은, 작가가 꾸준히 질문해 온 흙과 공간, 안과 밖, 나와 너,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에 대해 보다 충실하고 다각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일상 혹은 삶의 움직임 가운데 위치하는 도자에 대한 접근 방식은, '도자 작가'에게는 필연적인 질문, "실용인가 조형인가", 즉, "왜 도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응답이다. 이 응답들은 지난 작업들에서 부분적으로 표현해왔던 흙의 물성, 시간과 노동, 작업 과정과 결과물, 그것이 최종적으로 인식되는 맥락 등의 문제 의식을 종합해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릇'은 그 종합의 공통 형식으로 차용된다. 첫 번째 작업에서 흙 타래를 말아 올려 만든 일정한 크기의 그릇들을 다시 쌓아 올린 큰 병 형태의 기둥들은 집합을 이루면서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기(器)가 된다. 어떠한 물질을 담는 물건인 그릇은 자동적으로 안과 밖의 공간을 구분 짓는 경계가 된다. 이 작업에서 흙 타래로 된 기벽들은 흙을 말아 올리는 작업 과정이 점유한 시간과 시간만큼 점유된 공간을 표상하는 기표이다. 흙 타래를 말아 올리는 행위는 이은미의 작업에서 종종 등장하는 요소인데, 흙 타래가 구현하는 것은 완성된 후의 둔중한 흙 벽이 아니라, 말아 올리는 순간들과 작가의 에너지, 즉 살아있는 시간의 집성체이다. 그 시간 조각들은 타래 조각들과 같은 속도로 그릇의 형태를 완성해 나가고, 각각의 그릇들은 또 다른 단위가 되어 커다란 그릇의 형식을 향해 다시 한번 중첩된다. 결국, 살아있는 시간들은 그릇 안에 고스란히 담겨, 뚜껑을 열어보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서만 바깥의 공간으로 흘러 나오고, 그 순간에 의미를 되찾게 된다.
첫 번째 작업을 평면적으로 재해석한 두 번째 작업은 서로 다른 크기의 납작한 접시들을 겹쳐 놓음으로써 무한히 열린 공간 속에서 무수한 일련의 공간들을 '캡쳐'해 낸다. 이 작업의 개별 단위들은 벽면을 장식하는 타일인 동시에 온전히 독립적인 그릇이다. 접시와 발(bowl), 즉 실용 오브제를 반복과 집합을 통해 조형 작업으로 조직해내는 작가는 결국 도자 매체의 클리셰(cliché)를, 즉 실용이냐 조형이냐라는 구분 짓기를, 삶의 공간이라는 거대 범주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반문하는 것이다. 실내와 야외 공간에 나란히 설치되는 세 번째 작업은 흙의 자연성과 도자의 인공성을 병치시킴으로써, 이미 [Separate(2005)]이나 [Peace(2005)]를 통해 보여준 바 있는 흙 재료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 관심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낸다. 전시장 내부에 놓인 그릇들과 대응하는 야외 공간에 놓인 그릇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바람과 땅의 자연 작용에 따라 스러지거나 녹아내려, 그 흔적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유약처리와 번조하기 전 '날(raw)' 그릇들은 흙의 생명력 그대로 자연에 흡수되지만, 온전한 식기로 거듭난 그릇들은 더 이상 숨쉬지 않는다. 자연 속 흙 그릇들은, 전시장에 놓인 도자 그릇들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모습이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어느 곳에선가 발견될 모습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흙의 물리적 이행을 보여주는 이 작업은, 실용성과 대응하는 도자 매체의 인공성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의문을 표출한다. 이은미의 작업을 구성해 온 세 가지 요소, 흙, 시간, 공간은 이번 개인전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속에서 단위(unit)로 나뉘고, 그 각각의 단위들은 반복과 중첩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종합된다. 특히, 지금까지 쉴 틈 없이 계속된 다양한 도자 실험들을 요약하고 종합해내는 이번 개인전에서, 흙 오브제를 그릇으로, 작품의 공간 속으로 진입하는 관람자를 생활 공간 속 사용자로 치환하는 작업들을 통해 작가는 이미 도자 매체의 경계를 스스로 녹여내는 새로운 날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1967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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