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 - 사이공간
2010.10.21 ▶ 2010.11.16
2010.10.21 ▶ 2010.11.16
김현식
Illusion 에폭시 레진, 아크릴채색, 100×100cm, 2010
김현식
Illusion 에폭시 레진, 아크릴채색, 100x100cm, 2010
김현식
Illusion 에폭시 레진, 아크릴채색, 100x100cm, 2010
김현식
Illusion 에폭시 레진, 아크릴채색, 100x100cm, 2010
김현식
Illusion 에폭시 레진, 아크릴채색, 60x120cm, 2010
김현식
Beyond The Visible 에폭시 레진, 아크릴채색, 67x100cm, 2010
김현식
Beyond The Visible 에폭시 레진, 아크릴채색, 67x100cm, 2010
압축된 시간을 공간에 담는 현대의 장인_김현식 - 글(박경린)
검은 빛에 가까운 깊은 청색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묵직함을 시원한 폭포수의 물줄기가 화면을 가로질러 흘러내린다. 물의 흐름은 속도감을 가지며 화면 구석구석을 굽이쳐 흐르기도, 때로는 그 안에서 다시 깊은 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흑단 같은 긴 생머리를 가진 여인의 뒷모습으로 알려진 김현식의 새로운 작품들이다. 김현식은 그 동안 레진(resin)을 사용하여 2차원의 평면 속에 공간을 가두는 실험을 지속해왔다. 여기서 이미지는 이러한 여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자 과정의 하나였다. 머리카락의 섬세한 한 올 한 올은 공간의 세밀한 펼침과 겹침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장치였으며, 레진은 다른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물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하나의 작품을 구현해나가는데 있어서 셀 수 없는 인고의 순간을 극복하면서 얻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선보이는 전시 《Illusion》에서 김현식은 시간과 공간을 한 화면에 압축해 보여주며, 이전의 작업에서 보탬과 더함을 합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작업을 선 보임으로서 그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새로이 선보이는 이번 작품들에서도 이전 작업과 마찬가지로 90년대 초반부터 계속해서 써온 재료인 레진을 사용해서 현재의 시간을 정박시킨다. 여기서 레진이라는 매체의 사용은 시간성을 포착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순간은 도포된 레진과 함께 화면 위에 고착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한 겹의 레진을 덧입혀 시간의 테를 층층이 둘러 나간다. 쌓여가는 레진 위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하나씩 새겨나간 폭포의 강한 물줄기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겹겹이 쌓인 순간의 시간을 숨긴다. 지금 이 순간의 의미에 깃든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의 찰나적인 움직임을 가두면서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시간을 분할 가능한 그 무엇으로 환원시켜 정지된 것의 총합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과 순간 사이에 있는 흐름 속에 녹아 들어간 불명료하고 애매모호한 공간 속에 놓아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공간에 대한 그의 시각은 색과 빛으로 형상화 된다. 어둠이 스민 짙은 파란색의 배경에는 이국적인 외모를 한 사람들의 환영이 사라질 듯 나타난다. 배경은 현재 대중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각 이미지 중 하나인 패션 잡지를 잘라 붙였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해서 얻어낸 시각적 환영이다. 여기에 붓이 아닌 헝겊과 색을 사용해 잘라 붙여진 이미지들을 숨기고 가리면서 한정된 공간 속에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지속하며 빛을 가두고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한다. 여기서 공간은 시간성이 포함된 장소이자 사라진 장소이다. 매일 같이 발행되는 잡지들 속의 현대적 이미지, 현재의 순간은 짙은 푸른색의 물감으로 뒤덮여 사라진다. 그리고 강렬하게 대비되는 화면 속 물의 흐름은 배경의 이미지를 지우면서 드러낸다. 잠시 하얀 물의 흐름에 빼앗겼던 시간은 그 강렬한 대비로 인해 다시 배경 속에 숨겨진 이미지들을 재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시간과 공간의 층위에 대한 작가의 실험 속에 드러난 것이면서 동시에 흐름과 멈춤, 과거와 현재, 때로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경계 가운데 놓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그 무엇을 가리키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들의 제목인 Illusion은 현상적인 감각의 차원에서 환영, 환각이라는 뜻을 지니면서 동시에 우리가 보고 있지만 볼 수 없는 것, 흘러가는 역사적 시간 속에 놓인 개인의 시간과 시각과 같은 놓쳐지는 많은 것들에 대한 환영을 다시 꺼내 보인다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지난 작품들이 'beyond', 즉 우리가 보는 것 너머에 있는 그 무언가를 보기를 원한 작가의 의지가 반영되었다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붙잡히고 사라지는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환영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관람자들이 찾아내기를 원하고 있다. 두텁게 쌓아 올린 레진과 깊은 청색이 함께 만나는 김현식의 작품 앞에 마주서면 그 매끄러운 표면에 반사되는 자기 자신과 조우하게 됨을 발견한다. 이러한 마주섬은 작가와 관람자가 만나는 만남의 장소이자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공간 속에 스치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다. 이 잠깐의 스침 속에서 우리는 현대적 삶의 모습에 대한 자기 성찰의 과정에 잇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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