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서양미술사19C 근대미술
자유로운 감성의 움직임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19세기전반 유럽에서 전개된 광범위한 예술운동이었다.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접근보다는 역동적이고 생생함을 지성보다는 감성과 개성을 존중한다. 터너, 제리코, 컨스터블 등의 작품에서 강렬한 낭만성을 느낄 수 있다.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The 28th July:Liberty Leading the People)
들라크루아, 캔버스에 유채, 260×325㎝, 1830년, 루브르박물관
-
태고적부터 항상 계신이
블레이크, 1794년 ,릴리프 에칭 채색, 23.3x16.8cm, 워싱턴국회도서관
-
노예선
윌리엄 터너, 1840년, 캔버스에 유채, 121.9x90.8cm, 보스턴미술관
-
메두사 호의 뗏목
제리코, 1819년, 루브르박물관
-
건초마차
존 컨스터블, 캔버스에 유채, 130.5×185.5cm, 1821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악몽
헨리 푸셀리, 1790년, 캔버스에 유채, 64.1x74.9cm, 프랑크푸르트괴테미술관
-
까마귀떼가 앉아있는 나무
프리드리히, 1822년, 루브르박물관
-
Description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19세기전반 유럽에서 전개된 광범위한 예술운동이었다.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접근보다는 역동적이고 생생함을 지성보다는 감성과 개성을 존중한다. 터너, 제리코, 컨스터블 등의 작품에서 강렬한 낭만성을 느낄 수 있다.
낭만주의의 유래
낭만주의라는 사조의 기원에는 18세기 말에 유행했던 중세의 모험담(‘아서왕과 성배’와 같은)을 가리키는 ‘로망’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불규칙적이고 무계획적으로 보이는 영국식 정원에 대하여 “영국사람들은 정원을 낭만적으로 꾸미기를 원한다.”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세의 이야기가 로망으로 불린 이유는 라틴어가 아니라 고딕시대의 로망스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무시되어 왔던 고딕시대에 대한 이런 관심은 당시에 나타났던 일반적인 경향의 전조였다. 18세기 중엽에 기존의 사회질서와 종교제도에 반감을 느낀 사람들은 이성의 힘에 대한 신념을 발휘하여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고 시도하거나 아니면 감정적인 경험을 추구하기 위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소유했던 공통분모는 바로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한 욕구였다. 합리주의자들이 자연이란 이성의 궁극적인 원천임을 주장한 반면 낭만주의자들은 억제되지 않고 살아있으며 언제나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자연을 숭배하였다.
낭만주의의 자유로운 분위기
넓은 의미에서 ‘낭만주의’라고 했을때 이는 기분이나, 분위기, 직관 등 주관적인 정신상태가 지배적인 모든 예술작품을 가리킨다. 19세기 낭만주의의 이상이 되었던 것은 모든 경험에 대한 진정한 개인적인 표현을 뜻했는데, 인간의 경험이란 전적으로 이성적이거나 수학적인 방식으로 탐구되거나 판단될 수 없다는 믿음을 근거로 한다.
낭만주의는 보통 합리주의에 대한 거부로 해석된다. 하지만 낭만주의가 지닌 유물주의에 대한 혐오감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계몽주의자들이 교회를 공격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실용주의적 태도는 낭만주의자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낭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사회 안에서 미술의 ‘유용성’을 강조하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으로부터 미술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인간이 이성을 통해서 완전해질 수 있다는 신념은 이들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낭만주의는 또한 계몽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는데,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영적인, 다시 말해서 인간이 지닌 주관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을 이유로 삼았다.
낭만주의 그림의 소재
낭만주의는 인간 경험의 모든 단면들을 포용하고 그 위대함을 강조했다. 광활한 자연앞에선 인간이 자신의 무상함과 도덕상의 진면목을 깨닫게 되는 경험은 낭만주의자들이 특히 즐겨 다룬 소재였다. 풍경화 장르가 크게 발전한 데에는 이와 같은 낭만주의자들의 자연에 대한 동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포와 초자연적현상 또한 낭만주의에서 중요한 의미는 지니는데,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의 후유증이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화되면서 신화와 공상의 세계가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던 시대적 상황도 작용하였다. 중세적이거나 환상적인 또는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들 모두가 낭만주의 회화에서 즐겨 다루던 소재였다.
영국의 초기낭만주의의 중심인물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1757-1827)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1776-1837)은 낭만주의 풍경화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작품은 빛,공기,색채의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여 자연을 웅장하고 역동적으로 묘사해낸 것이 특징이다.
또한 프랑스화가였던 제리코(Jericault,1791-1824)는 <메두사의 땟목>에서 개인의 영웅적 행위와 고통을 극적으로 묘사하며 낭만주의를 실제적으로 이끌었으며, 들라크루와(Eugene Delacroix,1797-1863)는 자유분방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붓놀림,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와 역동적 구조를 사용하여 낭만주의 기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전까지 예술이라고 하면 당연히 정해진 원칙과 격식을 지키며 고도의 테크닉으로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훌륭하다고는 느낌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시기부터 그런 우아함에 흠집이 가는 것을 감수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추한것에도 ‘미’의식이 들어있음을 발견한 것은 가히 회화의 혁명이라 할만한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낭만주의자들은 만일 사람들이 자신의 충동을 자유롭게 발산하면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면 악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의 이름으로 자유와 권력, 사랑과 폭력, 그리스인과 중세를 예찬하였으며 감정을 목적 그 자체로 찬미하기도 하였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이하고 곤혹스런 현상을 야기하게 되었다.
낭만주의에 입각한 극단적인 태도는 예술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표현된다. 이렇게 본다면 어떤 예술가라도 진정한 낭만주의자는 될 수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아인식과 이성적인 배려 그리고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시대의 분위기는 자유를 지향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시대적이념을 적절히 배합하여 예술전반에 신선함을 불러일으킨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현대미술마저도 낭만주의를 벗어난 해석은 불가능하며 시대와 이념을 초월하여 예술이 간직해야할 의미는 낭만성이 아닐까.
뮤움 미술사연구팀 김선경
-
Relevant information
Current Shows (68)
-
폴린 부드리/레나테 로렌츠: 초상
리움미술관
2024.07.18 ~ 2024.11.24
-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서울대학교미술관
2024.09.12 ~ 2024.11.24
-
Mindscapes
가나아트센터
2024.10.16 ~ 2024.11.24
-
부산 청년예술가 3인전 《응시: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2024.10.26 ~ 2024.11.24
-
송준: Blue Eclipse Epi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2024.11.14 ~ 2024.11.24
-
Wherever : 순간이 새겨진 곳
이응노의 집
2024.10.29 ~ 2024.11.24
-
꽃 보다: 이철주의 작품세계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24.09.26 ~ 2024.11.24
-
송영규: I am nowhere
갤러리 그림손
2024.10.30 ~ 202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