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문
풀과 친구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릭, 98×33cm×4ea, 2009
강석문
큰나무작은나무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릭, 162x130cm, 2008
강석문
연인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릭, 101x34cm, 2009
강석문
나무와 친구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릭, 143x78cm, 2008
강석문
꽃과벌레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릭, 143x78cm, 2008
강석문
연인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릭, 78x143cm, 2008
강석문
할수있어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릭, 78x143cm, 2008
인사동 갤러리 쌈지에서는 2009년12월23일부터 2010년 01월10일까지 19일간 강석문 개인展을 전시합니다. 강석문은 삶의 터전(과수원)에서 늘 함께 하는 풀과 벌레와 나무의 모습들을, 하루하루 엮어가는 소소한 일상과 진정한 삶의 모습들로 작업의 화두를 삼고 있습니다. ‘안에서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자연 속에서 풀들과 대화하고 나무와 이야기하노라면 어느덧 자연과 동화된다’라고 말하며 작가는 화폭 속에 자연이 주는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애를 담아 표현합니다. 2009년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과 2010년의 새로운 다짐의 1월의 메시지는 사랑입니다. 작품을 통해 따뜻함을 나누고 행복을 전하는 작가 강석문의 작품 세계에서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기대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0호-100호 크기의 다양한 작품 30여 점이 전시됩니다. 또한 연말연시 선물 시즌을 맞아 20-30만원 가격대의 소품들도 선보입니다.
우주의 중심엔 나무가 있었네
강석문의 그림은 착하다. 하지만 그림을 ‘착하다’고 하면 비난이기 쉽다. ‘경쟁’이 세상을 움직이는 유일원리로, ‘경쟁력’을 지배적 가치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착함은 무능력이거나 무기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류적 가치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한 없이 착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착함’이, ‘착한 그림’이 흉이 되는 세상을 향해 풀벌레보다 작은 소리로 외친다.
생명의 본질은 경쟁이나 지배가 아니고 조화와 협력임을!
그리고 그 외침을 화폭으로 옮겨 작은 세상을 이루었다. 그 세상은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뭍 생명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과수원’이다. ‘과수원’이 품고 있는 작은 ‘생명’들과 그 생명의 존재 원리이자 기초인 ‘가족성’은 그의 작업의 근간이자 끝없이 천착해 오고 있는 화두이다. 나무, 풀, 새, 그리고 작은 곤충들, 가끔 씩은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자연과 구별되는 사람이 아니라 의인화된 나무에 벌레와 더불어 깃들여 사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은 평생을 나무와 더불어 살아 나무를 닮아 버린 사람-아버지(큰 나무)이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온 아들-강석문(작은 나무)이다. 사람이 있고, 사람과 구별되는 나무가 있고, 풀과 풀벌레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작은 울타리 안의 우주-과수원의 뭍 생명들이 더불어 한 가족인 세상이 화폭 안으로 옮아왔다.
의인화된 생명체들로 가득한 그의 그림은 <소란한 봄날, 2009>조차 요란스럽지 않다. 폭발하는 생명의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한 봄날의 분주한 하루일 망정 결코 시끄럽지 않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손으로 의인화된 나무와 벌레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 서로를 닮아버린 착한 자연-착한 생명만이 가득한 세상은 가을밤 암컷을 부르는 귀뚜라미의 애절한 소리조차 없다. 먹과 청과 적이 맞서는 것 같지만 결국 거친 붓 터치로 조화를 이루듯 갈등구조가 사라진 그의 화폭에서는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소리가 이내 잠잠해져 버린다. 그가 그려낸 세상은 산들바람에 풀잎 부딪는 작은 소리들, 풀벌레의 작은 몸을 쓸고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이 일으키는 작은 소리들만 가득한 청아한 세상이다. <키스, 2007>와 <연인, 2008>이 사랑과 화해를 보여준다면, <풀과 친구, 2009> <꽃과 벌레, 2008>는 모든 생명들 간의 연대,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인과 연으로 묶여있듯이 그의 작품 속에서 모든 사물과 생명들은 연인이자 친구다. 서로는 맞서거나 쟁투하지 않는다. <손을 잡다, 2009> <걱정마, 2007>라고 다독거리고 <할 수 있어, 2008>라고 격려한다. 모든 부정적인 가치가 사라진 그의 화폭에서는 세상의 그렇지 못함을 탓하지 않는다. 착함이 흉이 되는 세상과 맞서지 않고 그냥 착한 세계를 살아가는 화가의 눈길은 그 착한 눈빛으로 세상과 조우한다. 그는 세상을 향해 ‘평화’를 외치지 않지만 봄날 매화꽃 향기마냥 낮은 쥐똥나무 울타리를 넘어 세상 밖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를 퍼뜨린다.
강석문의 그림은 이슈를 선점하고, 주목을 받기 위한 오버액션이 없다. 풀벌레보다 몸을 낮춰 이슬이 촉촉한 땅을 벌레와 더불어 기어가는 그의 붓 끝에는 항상 생명의 원천인 흙이 묻어있다. 묵향보다 더 진한 흙 냄새가 묻어나는 그의 붓질은 빠른 손놀림으로 무작위적 흔적을 화폭에 남기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가벼움’조차 작위 하지 않는 원초적 가벼움, 근원적 가벼움을 구현한다는 것이 형용모순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화폭에 이룬 그 가벼움은 의식되거나 추구되지 않아 그냥 然하다.
그의 화폭은 먹의 엄숙함이나 근엄함이 사라진 풀밭이다. 포스트모던 하지 않은 가벼움은 수묵의 엄숙함조차 마음 가는 대로 휘저은 붓 놀림 속에 사라져버리게 한다. 풀 끝은 뾰족하나 날카롭지 않고, 먹은 무거우나 위압적이지 않다. 먹이 가득하나 적과 청을 누르지 않고, 아크릴 물감은 날렵하나 비작위적 붓 터치로 먹과 하나가 된다. 나무와 풀조차도 눈 코 입을 가지나 발랄한 붓 터치에 뭉개져 버려 벌레의 다리와 날개와 눈 코 입이 그가 서식하는 나뭇가지와 그 경계가 모연해졌다. 무한 조화의 세계인 그의 화폭에서는 식물성과 동물성은 물론 생명 개체들 간의 경계조차 뭉개져 버린다. 풀과 나무는 눈 코 입을 가지고 곧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듯 하고, 새와 벌과 벌레들의 사지는 나뭇가지와 겹치고, 나무 역시 벌레의 사지를 자신의 가지로 삼았다. 사람이 벌레를 닮고 풀을 닮고 나무를 닮았듯 과수원의 뭍 생명들은 또한 사람을 닮았다.
IMF대란 중이던 1998년에 가진 첫 개인전 “일그러진 사물들에 관하여”에서 그는 세상의 아픔에 반향 한다. 쓰임을 잃어버린 연장들과 세상으로부터 가해지는 고통에 일그러진 인간 군상을 담은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세상의 아픔을 안고 고향인 풍기로 낙향한다. 낙향 후, 부친과 더불어 과수원을 경작하게 된 그는 농부이면서 화가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탐색하는 작업성과를 모아 2004년 두 번째 개인전 “나도 군자”와 2005년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그는 이 두 번의 개인전에서 자신의 삶이 속한 물리적 공간이동에 따라 친숙하게 된 온갖 풀과 벌레를 통해 자아를 탐색한다. 현대화된 문인화라 해도 좋을 그의 작품은 한 포기 한 포기의 풀과 매화 그리고 벌레의 흔적을 통해, 변화된 존재 조건 속에서 화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갈구하고 모색한다.
2008년 네 번째 개인전 “소소함과 따뜻함 그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작은 세계-과수원의 뭍 생명들과의 유대와 소통을 통해 화가의 정체성을 찾은 듯 사물을 보는 눈에 온기가 살아나고, 한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필치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번 다섯 번째 개인전은 고스란히 네 번째 개인전의 주제의식을 이어받는다. 더 완숙한 평화라고 해도 좋을까? 모든 쟁투가 사라진 공간으로서의 과수원, 그는 그 속에서 생명의 연대와 그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가족에 시야를 모은다. 여전히 화두는 가족이고 근원적 생명현상이지만 그 중심에서 아버지인 나무를 발견한다. 온갖 생명이 깃들여 사는 과수원의 중심에는 나무가 있고 그 나무는 곧 가족이 살아온 생계의 기반이자 삶의 원천이다. 그래서 그 나무는 곧 ‘아버지’다. 뭍 생명을 보듬고 생명의 끈을 켜켜이 꼬아 만든 우주의 근원적 바탕이자 강석문에게 삶을 부여했고 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했던 가족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다. 나무는 강석문이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이지만 타 생명이나 사물에 대해 지배적이지 않고 위엄 하지 않다. 아버지-나무는 가부장적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중심이다. 그래서 강석문의 나뭇가지는 뭍 생명을 잔뜩 이고 살지만 무겁거나 힘겹지 않다. 그냥 然하다. 아버지라는 큰 나무의 그늘아래 뭍 생명의 연대와 소통으로 이룬 과수원-우주의 큰 평화가 화폭 가득 그윽하다.
강석문의 세계-과수원이 매화꽃 가득 넘치는 환희의 봄날을 맞듯 그의 그림세계도 그렇게 활짝 꽃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그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의 성실함과 철저함, 그리고 세상을 향한 화가로서의 따스한 눈길과 손길 때문이다.
그림은 무엇인지, 화가는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낮은 쥐똥나무 울타리 넘어 늘 희구네 과수원을 들여다보고 사는 이웃마을 비나리 농부 송성일 감히 쓰다.
-송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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