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춤추는 국화, 그 숭고의 몸짓
2010.11.18 ▶ 2010.12.05
2010.11.18 ▶ 2010.12.05
윤정원
sublime 비단에 골드, 35x31cm, 2010
윤정원
sublime 한지에 먹, 130x130cm, 2009
윤정원
sublime 한지에 먹, 110x110cm, 2009
윤정원
sublime 한지에 골드, 먹, 130x130cm, 2010
윤정원
sublime 한지에 먹, 130x190cm, 2010
윤정원
sublime 비단에 금, 먹, 39x45cm, 2010
춤추는 국화, 그 숭고의 몸짓
박 옥 생(한원미술관 큐레이터, 미술평론)
1. 별(別, 별)을 찾아서
화가가 우주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깊은 관조로 바라 볼 때, 화가의 시선에 맞닿은 신비는 화가의 내면 속에서 새로운 하나의 세계로 탄생된다. 그 생경한 세계는 화가의 내면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됨으로써, 우리의 잃어버린 원초적인 기억, 상징, 신화의 세계를 일깨우며 구조화 된다. 작가 윤정원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은유와 상징과 신화의 언어들을 가지고 와 실재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국화 작가로 알려진 윤정원은 별 먼지(stardust) 시리즈들을 선보임으로써 풍성한 국화와 부유하는 날개의 이미지를 선보였다.
국화와 날개의 도상 적 결합과 해체를 시도한 그의 작품들은 먹으로 구현하는 동양화의 재료적, 기법 적 의미들을 함축시키며 비상(飛翔)을 통한 신화의 뉘앙스들을 부가(附加)하고 있다. 옛 선인들은 국화를 서리에 오연(傲然)하고 가을을 능멸하는 기개와 그윽한 향기를 앞세우고 군자다운 꽃잎을 가짐에 칭송하였다. 그러나 윤정원의 국화는 고전적인 국화의 이미지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의 국화는 둥글고 풍성하며 혓바닥을 내밀거나 귀를 세우고 바람의 촉각을 음미하거나 인간의 오감(五感)과도 같은 꽃잎의 표정들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감동받고 있는 측량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국화를 통해 구체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일관되게 자신을 매혹시킨 우주의 이미지에 천착하고 있으며 국화는 그 경이와 신비를 함축하고 있는 상질물인 것이다.
사실, 윤정원의 살아 있는 국화가 탄생하기 까지 하늘에 관한 동경은 별로 대표되는 주제들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오각형의 별은 밤하늘에서 반짝이며 화가의 무궁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영감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아름다움의 극치이자 신의 존재, 지고한 존재, 영원한 것으로, 과거의 원형(原型, archetype)을 일깨우는 대상물이다. 이러한 별은 원(circle)과 같은 의미와 완전성을 가지고 마력(魔力)이나 자연의 영험적인 힘이 결합되어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별은 맑고 깨끗한 지고지순한 우리의 어릴 적 순수와 동일시되었으며 잃어버렸던 기억의 태고의 동심을 일깨우는 존재인 것이다. 너는 나에게 별이 되었다. 너는 내게 꽃이 되었다와 같은 시적 언어의 교환이 가능하듯이, 작가는 별에게서 꽃의 이미지와 교차 되는 문학적 경험이 이루어진 듯하다. 이렇듯 국화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별의 형상을 쫒아가거나 별의 형상을 덧입히는 작업들은 논리적인 작업의 추이로 보여 진다. 그래서 완성된 국화들은 작가의 흉중(胸中)에서 재구조화된 잃어버린 순수를 일깨우며 아득한 신화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別), 별인 것이다.
2. 은유에서 상징으로
그의 국화는 마치 태양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 타오르거나 밝거나 역동적이다. 신화에서는 국화의 둥근 형태에서 자아, 우주의 알,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언어학자가 이야기 하듯이 우리는 은유적으로 사고할지의 여부에 대해 선택권이 없다고 한다. 은유적인 지도는 우리 뇌의 부위이기 때문에,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우리는 은유적으로 사고하고 말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회화는 도상(icon)에서 기호(sign)로 다시 갖가지 의미들을 뒤집어 쓴 은유(metaphor)들은 상징(symbol)으로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윤정원의 화면이 고전과 모던의 미묘한 경계를 보이는 것은 국화로 대표된 태양이미지와 날개를 결합한 특정 도상의 연출에서 기인한다.
이는 이미 우리가 태양에 새가 들어 앉은 삼족오(三足烏)와 같은 역사 속 신화 이미지들을 경험하고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기도 하다. 즉, 원과 새의 결합은 정(靜)과 동(動)의 결합이자 우주적 불변의 진리인 체(體)와 진리의 가변체인 용(用)의 도상화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날개는 좀 더 사실적인 형상을 구현하고 있다. 그래서 윤정원의 국화가 단순히 태양을 닮은 국화에서 벗어나 태양과 같은 신적, 영적인 생명력을 품고 있는 태고(太古)로의 회귀본능이 강한 살아 있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양에서의 새는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신적 존재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날개를 다는 것은 공중 부양하는 새와 같은 신성한 존재로의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은 현실의 초월이자 궁극적인 정신의 완전한 자유와 해방의 충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절대 자유에로의 갈망은 요술모자와 같은 기물을 쓰고 변신하는 변신신화나 이카루스의 날개와 같은 비행신화에서 그 오랜 인간의 욕망을 볼 수 있다. 종교와 예술을 통해 드러나는 자유의 추구는 통상 애매하고 불투명한 상징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하듯이, 어쩌면 다양한 은유적 의미들이 결합된 국화는 순수를 꿈꾸며 자유를 희구하는 작가 그 자신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천상계로의 상승이나 날개를 달고 현실이나 현상계를 초월함으로써, 높은 하늘에 올라 바람의 살갗을 느끼고 하늘의 숨소리를 들으며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모든 유한한 한계의 테두리를 부셔버리고 절대 자유를 만끽하는 것 말이다. 숨(息)을 불어 넣어 인간처럼 호흡하는 부유하는 몰입된 국화에서 작가는 우주의 품안으로 들어가 안락의 휴식을 취하는지도 모른다.
3. 춤추는 숭고
근자에 보여주는 사막에서 비행하는 국화의 유영들은 작가가 천착해 온 인류 역사의 원형들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사실 그의 사막은 마음의 사막이나 마음의 바다와 같은 한층 정서적으로 정화되거나 깊어진 안락한 감정이 머무르는 휴식의 무대이기도 한데, 척박함 속에서 피어나는 찬란한 인류의 역사들이 사막과 무관 할 수 없으며, 이는 경이로운 분출하는 생명력과의 대척점으로 볼 수 있다. 즉, 거친 사막에서의 설정은 국화의 극적인 생명력과 신화적인 상징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막=기원=신화=원형=순수는 동일선상에서 이해되는 의미들로, 이는 신비한 우주와 생명의 아름다움을 지극히 설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바다와 같은 숙성된 내면에서 건져 올려 진 숭고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우주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숭고라는 이름으로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 숭고는 미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느끼는 무한에서 오는 신비하고 초월적인 감정으로, 천상의 뜻을 지상에 알리는 새의 이미지들을 결합시키고 있듯이 작가는 존재의 ‘구원’으로써 국화의 의미까지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숭고는 자유를 만끽하며 춤을 추듯 천상을 유영한다. 춤추는 숭고들은 우주, 자연, 신과 같은 무한 신성(神性)의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노래이자 미약한 작가로 대표되는 인간존재에로의 연민의 손짓들이다.
국화에서 출발한 그림이 현실의 국화와 닮지 않은 상징이 되고 있다. 이는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과정이나 형사(形似)에서 사의(寫意)로의 변모와 같은 것으로, 국화는 심중화(心中花)로의 적막 속에서 탄생한 꽃인 것이다. 그의 화면은 흐릿하고 몽환적이며 시적 상상력이 증폭된 아득한 세계인데, 꿈을 깨면 너무도 선명하고 뚜렷해서 꽃잎 하나하나의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기억하게 된다. 이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문학적 상상력이나 안견의 몽유도원(夢遊桃源)의 흐릿하지만 선명하고 아찔한 감성들과 연결되고 있는데, 이는 윤정원의 의인화된 국화들이 고요에 무쳐진 비가시적인 은일자(隱逸者)의 모습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곧 되풀이 되고 있는 기원으로의 회귀, 신화로의 되새김, 순수로의 복귀와 같은 의미인 것이다. 물(物)을 그리는데 있어 그 형(形)을 얻는 것은 세(勢)를 얻는 것만 못하고 세를 얻는 것은 운(韻)을 얻는 것만 못하며, 그 운을 얻는 것은 그 성(性)을 얻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지고한 우주의 본성(本性)과 아름다움을 국화의 풍성한 형상으로 은유함으로써 순수나 자유와 같은 미묘한 상징들을 드러내는 작가의 작품들은 먹으로 구현하는 동양화의 세계의 확장을 보여준다. 인간과 우주, 유한과 무한의 대립된 관념들은 그것을 감득(感得)하는 인간의 감성에 기쁨, 슬픔, 행복, 안락, 희망과 같은 무한한 감정의 변주들을 토해 낸다. 향후 이러한 작가의 국화 변주들은 계속될 것이라 믿으며, 그 깊이와 폭의 영역에서 오는 감동과 파장은 오래도록 두고 볼 일이다.(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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