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열
코리아 드림 합지, 함석, 106x125cm, 2010
김진열
하얀 저고리 합지, 함석, 130x106cm, 2010
김진열
사분위 합지, 함석, 34x70cm, 2010
김진열
사오정 합지, 함석, 110x190cm, 2010
투박한 삶에의 존엄성
김진하/나무화랑 대표, 우리미술연구소 품 소장
프레데릭 벡의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는 사람’과 ‘위대한 강’은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이다. 순연한 생명을 위해 어떤 노력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그 지난한 실천을 이 작가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진실한 마음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삶과 뭇 생명에 대한 존엄의 위대함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진정한 휴머니즘이 결코 자연과 배치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진열의 최근작 ‘빼앗긴 강’은 자연과 인간에 가하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통찰과 한과 저항을 저변에 깔고 있다. 액티브한 몸짓의 거침없는 회화적 표현력과, 질료의 물성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으로 말이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된 현상들에 대한 그의 입장이 그동안의 드로잉 중심에서, 다시 종합적 시각언어인 회화로 그의 작업 궤적을 바꾸어 놓은 것 같다. 직장으로 인해 원주로 이주 한 후 십 수 년 간 환경운동에 몸담아 온 이력처럼 이 작품은 현재 진행 중인 4대강사업에 대한 그의 입장과 감정을 담아낸다. 이 작품 이외 작품의 소재를 보면, 그의 관심사가 다양하게 우리사회 저변을 훑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리안 드림’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우리들의 편향된 시각과 폭력성을 고발한다. ‘젊은 그대’, ‘사오정’에서는 청년 실업에 대한 아버지 세대로서의 안타까움을, ‘사분위 思糞委’에서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그가 몸담고 있는 상지대 이사진을 과거 비리주역들로 용인한 것을 똥으로 풍자한다. 그런가 하면 ‘가면의 생’과 ‘하얀 저고리’에서는 이 땅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낮은 곳 사람들의 한과 비애를 서정적으로 포착해 낸다. 모두가 우리 땅에서 소외된 투박한 삶들에 대한 그의 입장이자, 권력의 부조리한 오·남용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다.
그의 작품을 보며 이야기하자니, 불현듯 지금이 30여 년 전인 80년대처럼 느껴진다. 그랬다. 80년대가 그렇지 않았던가. 합리적 인권이나 이성적인 제도의 집행이 없던 시절 아니었는가? 우린 특정한 이들을 위한 권력에 숱하게 유린당했고, 그런 권력에 의한 폭력적 제도로 굴종을 강요받았고, 또 그런 부조리한 힘의 공포를 경험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때와 유사한 폭력적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물신의 유혹처럼 좀 더 은밀하고 달콤한 얼굴에 의해서 말이다. 김진열은 과거 투사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합리적인 환경운동가이자, 학생들에게 좀 더 밝은 미래를 열어주고픈 교육자이고, 그런 모든 입장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화가일 뿐이다. 그래서 지난 10여 년 간 자신의 조형방식에 대한 반성과 실험을 드로잉의 방식으로 조용히 모색해 왔었다. 이런 그의 입장이 최근 바뀐 것이다.
민주화과정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일궈온 많은 가치들이 훼손되고, 자연과 뭇 생명이 파괴되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폄훼와 폭력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림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화가로서의 임무이자 가장 정직한 태도이니 당연히 그림으로 이런 현실에 대해 입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는 자신을 못살게 구는 힘에 저항하는 것이 생명현상이니, 적어도 김진열의 작업이 그런 죽임에 대한 가역적인 생존의 반응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임은 분명하다. 이순(耳順)이 다 된 기성세대가 이런 능동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말이다. 화가가 그림으로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보신하는 세태에 비추어 보면 김진열의 이런 태도는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다. 특히, 언제부턴가 우리 미술계에서 사라져 버린 ‘양심’이란 어휘와 ‘가치’에 대해서, 이웃의 삶을 바라보는 ‘마음’을 드러내는 점에서, 그리고 형상회화의 표현성에 대하여 이번 김진열의 회화로의 귀환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하겠다.
지난 8, 90년대 김진열의 작업은 한국현대회화에서 독특한 지점을 차지한다. 80년대 한강미술관을 중심으로, 그리고 90년대 금호미술관의 개인전을 통해서 그가 마주했던 현실과 이웃의 애환에 대해서, 질료의 물성과 강렬한 주관적 표현성이 어우러진 형상회화는 그 전/후 다른 작가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독자성을 가진 것이었다. 자신의 경험과, 세계에 대한 입장과, 체질을 온존하고 자유롭게 증명하는 회화였다. 거칠고, 직접적이고, 투박하고, 격렬하게 현실세계를 마주한 작가의 인식과 감정이 진솔하게 진술된 것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다. 종이를 여러 겹 겹쳐서 만든 두터운 합지와 뻘겋게 녹이 슨 쇠락한 함석판을 베이스로 해서, 호방하고 큰 터치로 안료를 입힌 화면의 물성과 표현성이 빚어내는 원초적인 야성과 충동성을 발하는 화면은, 역설적으로 애잔한 서정을 돋우어 낸다. 특히 ‘하얀 저고리’, ‘코리아 드림’에서의 붓질과 함석판과의 어우러짐은 가히 화장하지 않은 날 것이 제공하는 미적 쾌감의 진수를 보여준다. 낮은 곳의 한(恨)을 향하는 작가의 투박한 애정과, 그런 낮은 곳의 이웃을 핍박하는 권력과 구조에 대한 분노가 작가자신의 마음과 합일되면서도 그 결은 곱고 잔잔하다.
형상회화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발언하면서도 그 회화적인 형식에의 접근과 표현의 정직성이 빚어내는 맛이 작업의 내용을 감각에서도 증폭시켜 주어서다. 누가 알까?, 얇디얇은 화장술로 조물거리며 회화를 그저 가볍고 흥미로운 기생처럼 눈요기의 대상쯤으로 전락시킨 상업적 회화의 조류속에서, 이토록 투박한 진심을 담지하고 있는 회화의 깊은 맛을. 기껏 인테리어를 위한 소도구나 장식물로 전락한 회화를 찾는 이들의 얇은 눈에 이런 두터운 문법과 태도가 읽혀질까. 아무튼 김진열의 근작은 여전히 그의 체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체질. 작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작업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물론 그 가운데 현대미술의 다양한 논점이 있고, 내용이 있고, 비유가 있고, 또 형식이 있다. 체질로부터 유래하는 독자적인 표현의 차이들이야 말로 모든 작가들의 존재가치일 것이다. 김진열의 체질은 바로 이 강도 높은 직진의 투박함과 직접적인 어법이다. 굳이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내용에 비례하는 핵심적 형상과 거기에 맞는 표현법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바탕은 몸이 움직여서 흔적을 남기는 노동과 같은 힘과, 질료와 합일하는 섬세하고 민감한 피부와 같은 촉지(觸知)의 어울림이 빚은 조형적 감수성이다. 큰 액션으로부터 작은 느낌까지 동시에 전체와 부분을 느끼고 감지한다. 마찬가지로 형태와 붓질의 둔중함과, 날카롭고 예민한 물질감이 어울려서 만들어 내는 묘한 감촉의 시각성이 새롭다.
회화는 가장 원시적인 낙서나 그리기에서 부터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꿰뚫는 것에 이르기까지 작업과정에 있어서 ‘법’이 없다. 규칙이나 틀이 없다는 것. 그만큼 자유롭다. 그러나 미적 쾌감이 그냥 생기지는 않는 법, 그만큼의 훈련이나 내공이 필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으되 누구나 되지 않는 것이 바로 회화의 매력이다. 김진열의 회화는 그 즉흥적인 표현성만큼이나 그의 내부에 축적된 화면 장악력이 작동됨으로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서 물질이, 안료가, 붓질이 뒤범벅이 되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다. 미적 쾌감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김진열의 냉정한 시선과, 소외되고 낮은 곳의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품성이 끈질긴 정서를 배태해 냄으로 형상미술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
체질로부터 유래하는 주관적 미감과 사회를 바라보는 객관적 문제의식이 변증적으로 결합한 형상성의 한 전형으로 김진열의 표현적 회화는 중요하다. 1980년대 비판적·당파적 리얼리즘의 민중미술과는 다른 궤적, 4촌 정도의 거리에 있던 표현주의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입장의 형상미술의 등장에서 김진열은 굵직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흥덕, 김보중, 권칠인, 장경호, 정복수, 고경훈 등과 함께 김진열은 한강미술관의 중심적 작가였다. 그 바탕에, 질료를 버무려서 자신의 감성대로 모두어 내는 탁월한 표현력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미술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미학적 입장에서의 작업과정이며, 적어도 김진열은 이 부분에서 정확한 자기지점을 확보하고 있었다. 포토샵과 같은 얇은 감성으로 상업공간을 휘 젓는 최근의 가벼운 장식물 같은 평면작업에 비하면, 그 가치가 더 돋보이는 것이 김진열의 작업과 같은 ‘회화’다. 긴 침묵을 깨고 돌아온 이 작가에게 기대가 생기는 건 이 때문이다. 시각과 물질에 반응하는 감각의 층위를 마음껏 넘나드는 그의 작업이 한국의 작가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기에 더 그렇다. 보고 싶은 작업이 있고, 그래서 좀 더 우리미술이 풍성해 지는 건 즐거운 일이다. 김진열의 근작을 보며 지금이 그런 기대의 지점임을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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