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경
병5 oil on canvas, 162.2x112.1cm, 2005
장파
drawings for The end of the world acrylic & chinese ink on canvas, 130.3x80.3cm, 2010
장파‧이연경, Drawing
마음속에 뭔가 부끄러운 감정이 있다. 부끄러움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내면적 갈등이다. 욕심을 부릴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켰을 때, 못된 마음을 품었을 때, 또는 방귀를 뀌는 것 같은 생리 작용을 표출 했을 때 부끄럽다고 느낀다. 심지어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 자체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다. 역사학자 엘리아스에 의하면 수치심은 문명화 과정의 촉매제이다. 수치심은 자연적인 충동을 억제한다. 내면화 과정으로서 문명화 과정은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사회적 규율을 내면적 규율로 이행시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외부통제가 자기통제로 바뀌고 본능적인 욕구를 부끄럽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련됨은 이 부끄러울 만한 것을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어 꼬리를 감추게 한 뒤, 자신과 그것이 좀 상관없는 듯 구는 것일 테다. 여기 ‘세련’되지 않은 두 작가가 있다. 이들은 부끄러운 것에 무심하지 못하다. 이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든 처리해보겠다 맘먹었다. 이연경과 장파의 작업은 부끄러움을 처리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하나는 먹어 치우기이고, 또 하나는 뱉어내기 이다. 먹어 치우기는 외부에서 섭취한 에너지원을 소화과정을 통해서 신체조직의 일부로 변화시키는 동화과정이며, 뱉어내기는 자신의 몸에서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신진대사의 찌꺼기를 세포로부터 분리시켜 몸 밖으로 버리는 이화과정이다.
이연경은 물건들을 모았다. 물건들의 색과 디자인은 지나가는 이를 유혹한다. 이 유혹은 그 포장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와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뇌에 도달하기에 앞서 피부에 직접, 즉 촉각적으로 행해진다. 마치 시각적 신호를 인지할 수 있는 감관이 눈이 아닌 피부에 달려있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여기서 직면해야 하는 것은 유혹하는 색과 포장지들도, 포장지 속의 내용물도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가져’라는 목소리, 또 한편에서 ‘안돼’라는 목소리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연경은 병을 그린다. 투명한 유리병에 알록달록한 라벨이 붙어있는 유연하고 둥그런 병들이다. 그는 병을 그리며 이 목소리들을 먹어 치우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그의 그리기를 먹는 행위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한 듯하다. 아주 예민한 미각까지도 만족시킬 만한 재료를 선택하듯 물감을 고르고 요리하듯 색을 만든다. 그는 색을 유희하듯 또는 먹듯 그림을 그리고 색들의 풍부한 느낌을 잔치같이 즐긴다.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유혹하던 색들과 다수의 감정들은 한데 섞이고 소화되어 신체의 일부로, 모순 없는 하나의 것으로 통합된다.
장파는 <세계의 끝>은 텅 빈 공간이다. 이 공간은 검은 뒷면, 나무결로 된 바닥과 천장, 양쪽 벽, 그리고 관객을 향해 뚫린 정면으로 이루어졌다. 바닥에는 어떤 사고가 일어 났었음을 암시하듯 구멍이 파여 있다. 이 공간에 물이 차 올랐다 다시 빠진다. 하지만 물이 찼다 빠진 후에도 이 공간에는 변한 것이 없다. 이 검은 공간은 작가의 슬픔의 공간이며, ‘언제나 그대로임’은 세계의 슬픔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다. 작가의 슬픔은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그래서 어느 누구도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간 존재에 대한 ‘전제’에서 연유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침수 전∙후의 공간뿐만이 아니다. 그가 뱉어내는 것 또한 변화하지 않는다. 이화과정으로서 뱉어내기는 스스로 정화되고자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작가의 바램은 매번 좌절되며 다시 뱉어낸 것은 이전의 것과 다름없다. 그는 마치 사건처럼 작품을 저지르고 사건의 잔해를 바라보듯 작품을 바라본다. 이 바라보는 순간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듯하다. 이 순간은 행위자에서 목격자로의 전환이 이루어 지는 순간, 즉, 자신이 저지른 것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자각의 순간이다. 슬픔은 사건의 내부와 외부를 순회하는 그의 여정 속에, 행위자에서 목격자로 또다시 목격자에서 행위자로의 반복적 전환의 과정 속에 드리워져 있다.
- 최혜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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