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Discovery of EROPS 디지털 프린트,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1, 개인소장
박재환
Invisible architecture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1, 개인소장
박재환
Solar eclipse 렌지, 곰팡이,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27x27x35cm, 2008, 개인소장
박재환
Solar eclipse 비디오, 2'18", 2011
곰팡이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관
박재환의 에뤼씨지옴(ERUSSISIOM)은 곰팡이의 세계관을 관찰하고 분석한 프로젝트이다. 에뤼씨지옴은 프랑스어 'moisissure'을 거꾸로 한 용어인데 곰팡이, 부패를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음식물이 부패하는 과정을 소멸, 혹은 퇴행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곰팡이의 입장에서는 생성이자 증식의 과정이다. 박재환은 바로 이러한 곰팡이의 탄생에 주목한다. 그의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곰팡이의 생성을 생명과 소우주의 탄생으로 본다는 점과 둘째, 축소된 비율에 의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낸다는 점, 셋째, 곰팡이의 탄생과정을 지구와 인류역사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가 곰팡이를 관찰함으로써 경험한 내용들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1. 실험
곰팡이는 진균류에 속하는 미생물로 음식물이나 동식물의 사체에 모여 증식한다. 곰팡이는 뿌리에 해당하는 균사, 줄기, 그리고 포자로 구성되는데 포자(Spore)가 발아하여 번식을 한다. 박재환은 곰팡이 생성의 주요 에너지원인 포자를 우주를 이루는 하나의 원소로 보고 포자의 생성과 증식을 촬영, 기록한다. 무한분열에 의해 확장되는 포자의 운동은 우주의 생성과정의 축소판이다. 그는 이러한 포자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세포분열을 일으키는 마이크로 세계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의 기록 영상은 ‘포자의 발견’과 ‘곰팡이의 이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곰팡이의 이동과 확장을 지구의 대륙이동설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대륙이동설을 살펴보자. 최초에 빅뱅이 있은 후 대륙이 생성된다. 그리고 우기의 시작과 종결, 그리고 곰팡이의 출현에 이어 포자의 발견, 문명의 형성, 개체수의 증가와 갑작스러운 온도 상승에 의한 개체 수의 감소 등 인류역사의 축소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과학적인 실험과 그 증거물들을 세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온도변화에 따른 다른 종류의 곰팡이의 생성에 대한 그래프와 분포도까지 선보이고 있어 과학적 실험의 신빙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샬레에 담긴 곰팡이의 시기별 변화과정과 사진자료, 영상자료를 통한 과학적 분석은 마치 과학관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2. 검증
사실 그의 작품은 모두 조작된 것이다. 그는 과학적 실험을 근거로 한 가상 시뮬레이션의 결과물들을 펼쳐놓았다. 실험을 통해 나온 데이터의 통계나 과학적 분석과 검증의 단계는 애초부터 조작되고 기획된 것이었다. 그가 선보인 대륙이동설과 온도변화, 개체수의 증가 등 세포 분열에 의한 특징들은 실제 인류의 역사와 맞아 떨어지지 않으며, 여러 변화들은 그가 직접 유도하고 짜깁기 한 것이다. 가령 ‘우기의 시작’이라는 사건에서 그는 직접 곰팡이에 물을 뿌려 변화를 주고 ‘지각의 이동’에서 직접 곰팡이가 피고 있는 빵을 찢어 지구의 대륙과 흡사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실험을 하는 것일까? 물론 곰팡이의 변화는 가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자연현상이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그의 실험이 과학 분야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아트씬에서 작품으로 선보인다는 점이다. 곰팡이의 관찰을 통한 이미지의 생성과정을 담은 도큐멘테이션이 미술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근거는 무엇인가? 일반 관객들의 입장에서 똑 같은 작품을 과학관과 미술관에 놓았다고 했을 때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그 실마리를 풀어보자. 우선 그의 작품이 가상의 실험이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 또한 그가 곰팡이를 대륙이동설과 매치시켜 거대한 지질처럼 접근한다는 것을 염두해 보자.
서두에서 거론한 두 번째 관점, ‘축소된 비율에 의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해답이다. 그는 ‘축소된 비율’에 관심이 있다. 여기서 비율이라는 것은 기준점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의 변화가 주요 쟁점이라 할 수 있다. 곰팡이가 확대되고 인간이 이러한 풍경을 대자연으로 맞이할 때 마이크로(micro)의 세계는 인간의 눈을 넘어 거대한 창조물이 된다. 그가 <에뤼씨지옴-보이지 않는 건축물>이라고 명명한 이 프로젝트의 방향은 이미 마이크로 세계, 즉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실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비율의 변화는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킨다. 마이크로는 말 그대로 아주 작은 것들을 표현하는 것인데, 여기서 ‘작다’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마이크로의 관점은 비율을 변화시켜 사물이나 현상의 참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 마이크로의 세계관은 인간을 중심으로 사물이 작아지거나 커지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박재환의 경우 작은 사물을 인간의 눈높이로 끌어올려 그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하나의 건축물, 가상적으로 구성된 정보의 구조물인 것이다. 그의 가상실험이 실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끔 만들고 이를 통해 곰팡이의 세계관이 인류역사의 세계관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재환의 실험은 곰팡이에 대한 것이지만 곰팡이라는 이미지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에 관계된 에너지의 변화와 흐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기에 그의 실험은 지구의 대륙이동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작은 곰팡이의 세계관에 대입하여 보여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가시적 세계로 끌어올리는 것은 가상의 세계를 실재화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다. 비율의 변화를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점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재확인하고 재인식하게 만든다. 박재환의 실험은 이러한 인간의 시선과 인식에 대한 변화보다는 현상에 대한 작은 관심을 기울일 것을 유도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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