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산다-하늘 정원에 핀 백만 송이의 꽃
2011.02.10 ▶ 2011.03.05
2011.02.10 ▶ 2011.03.05
박경란
하늘 정원에 핀 백만 송이의 꽃 2010
박경란
하늘 정원에 핀 백만 송이의 꽃 2010
박경란
하늘 정원에 핀 백만 송이의 꽃 2010
박경란
하늘 정원에 핀 백만 송이의 꽃 2010
그림을 그리기’에서 ‘그림을 잃기’까지
박경란 화가의 열 두 번 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회는, 다양한 오브제 실험을 해온 이전 작업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 이미지가 한층 단순, 강열해지고, 작품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이고 있다.
박경란에게 있어 오브제는 표현의 출발점이다. 화가가 일찍이 캔버스를 박차고 자연 속으로 뛰어든 것은 자연적 질료 안에 이미 생동하는 숨결,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과 조화, 보이지 않는 운율이 있어,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어 조합하고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할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나무(장작_1981년), 돌(1981년), 천(삼베_1985년), 짚(새끼_1985년), 흙(2000년), 구은 흙(2005년)을 오브제로 하여 작업을 해온 긴 세월 동안, 화가는 질료 하나하나가 지닌 물성의 특징을 알게 되었고, 보이는 것 너머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는 것, 이미지 또는 숨결’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그 숨결을 이미지화하여 사물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작업을 해왔다.
이즈음 작가는 빗물이 흘러내리는 유리창만 봐도 이미지가 보이고, 배추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만 봐도 이미지가 보였다. 소용돌이치는 시궁창 물에 떠서 부유하는 스티로폼을 봐도 이미지가 보였고,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달려가는 이삿짐을 봐도 그 안에서 이미지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가 선택한 오브제는 그것 자체로서 다듬어진 완성품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한차례의 완성 단계를 거친 뒤, 깨어지고 부숴져서 더 깊은 데서 소통하고,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사랑함으로써(타다만 장작, 낡은 새끼 등) 그 본연의 물성을 자연회귀의 긴 도정에 올려놓고 미완의 기다림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전기(前期) 작업이, 오브제 자체가 지닌 메시지가 너무 강해 선언적 성격이 짙었던 데 비해, 후기엔 화가 자신의 말대로, 오브제 안에 숨겨진 물성의 꿈을 이미지로 실현시키면서, 오브제는 뒤로 숨고 이미지가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여러 겹, 즉 오케스트라적 소통의 장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5년 전부터 근무지에서 학생들에게 도자기 수업을 하게 되면서 흙을 입체적 종합적으로 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전의 흙 작업이 평면 작업인데 비해, 가마가 있음으로 해서 ‘빚어서 구을 수 있는’ 조형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흙의 부드러운 속살을 치대고 뭉치는 동안, 이전의 오브제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한 밀착된 감각의 황홀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것은 우주적 깊이의 사유를 가능케 했다.
작가는 흙이 빚어내는 일차적 방정식에는 별 관심이 없다. 흙이 빚어져 구워진 형태가 꽃이든, 컵이든 접시든 주전자든 국그릇 밥그릇이든, 그것은 질료의 일차적 운명이고, 동시에 일차적 운명은 깨어져서 본연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의 한 부분이 깨어지고 우그러지고 비틀어진 파편을 오브제로 삼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한,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꽃은 형태로서의 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물화(物化)된 것이다. 때문에 ‘꽃의 무덤’ ‘꽃의 부활’(이층 전시장)을 ‘하늘 정원에 핀 백만 송이의 꽃’(아래층 전시장)으로 연결시킨 것은 화가의 작업이 ‘그림을 그리다’에서 ‘그림을 잃다’ 라는 명제로 이동했음을 말해주고, 그것은 동시에, 땅과 하늘, 소멸과 생성, 죽음과 삶의 거대한 환(環)의 어느 자락에 그의 작업이 위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 서영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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