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희
U.F.O-unfinished object mixed media, 가변크기, 2010
이상미
My Studio 09 캔버스에 실, 33.4x24.2cm , 2009
이남희
Untitled mixed media, 가변크기, 2010
이상미
Sunnyside 40-05 #101 여행가방 가변설치,실,캔버스에실, 130.3x162.2cm, 2009
한 올의 실을 따라 니트 속으로 - 전시회를 앞두고 이남희 작가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교통사고라고 한다. 삼중추돌 사고에서 작가의 차량은 가운데 있었고, 차량이 앞뒤로 많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차량 파손에 비하여 작가는 놀랍게도 건강했고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전시회를 생각하면 없던 힘도 난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우린 만남의 아쉬움을 달래며, 전화기를 통해 작품과 전시회에 대해 할 말 많은 연인처럼 오랜 대화를 나눴다. 작가는 소박하고 담담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겸손한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최근 ‘니트’를 재료로 한 작품들의 얼개를 한 꺼풀씩 벗기고, 올올의 실을 풀어 본다면 말하고 보이는 것처럼 그리 단순한 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일상적 삶을 통해 얻은 깊은 사유,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 그리고 배경 지식에 대한 연구가 총망라되었다. 이 깊고 넓은 작품 속으로 한 올의 실을 잡고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걸어 보자.
한 올의 실을 따라 니트 밖으로- 작가와 끝나지 않을 듯한 대화는 시계의 분침이 몇 바퀴를 돌고서야 마침표를 향했다. 어쩜 작가의 ‘포용과 치유’라는 주제는 남은 실과 더 이상 짜나아갈 수 없어 망쳐버린 니트를 결합하여 제작한 <유에프오 U.F.O>(주: UnFinished Object의 약자로 편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끝내지 못한 채 진행을 잠시 멈춘 뜨개작업을 일컫는다)라는 한 작품에서 함축적으로 살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내 머릿 속에는 ‘산’을 주제로 시를 쓰던 이성부 시인의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산을 오르다보면 바위가 말을 걸고 생물로 인지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이성부 시인의 이야기는 어느덧 모든 사물이 인간과 함께 호흡한다는 이남희 작가와 맥이 닿아있었다. 작가는 작업이 끝나갈 때쯤 되면 마음 속에 남았던 앙금은 어느덧 사라진다고 한다. 그녀는 작업 제작 과정을 마치 샤머니스트들의 치유로 여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며, 그녀는 지금쯤 어떤 사물에 마음앓이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겹을 쌓고 있는 손은 지금까지 실의 특성에 갇혀 재료가 주는 에너지에 익숙해졌고 어느덧 길을 텄다. 접착제의 지저분함을 조심하며 실이 가는 길을 찾아 드로잉을 하고 있다. 하나의 선이 참으로 진지하고 지루한 시간을 묵도하게 만든다. 시간은 실과 같고 그 실은 그늘을 갖고 있다. 이 그늘이 사물의 무게를 만들어 실재하도록 한다. 감정은 지극히 가까운 곳, 일상에서 발생하는 마찰과 같다. 일상은 반복되고 있다. 큰 변화가 있기보다는 익숙한 길과 같다. 그렇게 사물성에 고착된 그늘은 시선의 외면에서 ‘시선의 행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상미의 작업에서 진정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캔버스 화면에는 실의 드로잉이 있다. 누구든 부담 없이 사적인 시선이 가능하면서 드로잉을 쫓는다. ‘포착’(prehension)이다. 포착된 이미지는 평면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시선이 이미지를 포착할 때 이미지의 단면을 볼 뿐이다. 그럼에도 그 시선은 장소성을 이미지에게 바라고 있다. 포착은 순간에 가깝고 재현은 지루하다. 궁극적으로 일상이 체험되기 위해서는 현실이 되어야 하는데 캔버스 화면은 더 이상 스틸 컷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일상을 구성해 내었다. 더군다나 무게를 갖는 사물이 입체가 되어 현실공간에 화면의 일상을 재현하고 있다. 현실공간에 오브제가 등장하면서 실의 드로잉은 감는 것으로 바뀐다. 사물을 감는 드로잉은 그 도구적 기능성을 잃게 하면서 일방적으로 화면을 향하도록 요구한다. 또한 그 오브제로 말미암아 주어진 화면의 기억과 교차되길 바라고 있다
그 오브제는 평면의 풍경에서 입체로 튀어 나온 중요한 실마리로, 그것은 형태라는 것이며 그것으로 관객은 화면에 참여하게 된다. 사적이지만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사물의 형태를 통하여 우리의 시선은 다시 화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비로소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평면에서의 사물 이미지와 공간에 놓인 사물 오브제에서 오는 유비였다. 이 둘은 동일한 형태를 갖고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포착되어 있다. 전시공간에 있는 의자나 여행용 가방은 평면에서 포착되어 나왔으며 화면이 암시하는 사적 내러티브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이 ‘단면’에 대한 고민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 역시 시간의 단면이다. 그의 풍경은 평면이며 단면이다. 단지 실재성을 갖고 있는 단면이기에 사물을 거리와 면적으로 파악한다. 평면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으나 벽을 타고 불쑥 튀어 나온 정도에서 그친다. 즉, 일상의 포착이다.
- 김용민 (아트스페이스볼트 큐레이터)
1966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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