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휘
上瀑 한지에 수묵담채, 55x46cm, 2011
조평휘
遠瀑 한지에 수묵담채, 55x45cm, 2011
조평휘
산경 수묵담채, 55x43cm, 2011
조평휘
小瀑 한지에 수묵담채, 82x55cm, 2010
조평휘
주왕산 한지에 수묵담채, 47x55cm, 2009
조평휘
深谷 한지에 수묵담채, 55x94cm, 2010
조평휘
雲谷 한지에 수묵담채, 55x41cm, 2010
조평휘-自然 스스로 그려내는 山水를 그리다
장정란(미술사, 문학박사)
조평휘는 일관되게 수묵산수를 그려온 작가다. 활달한 필력으로 거대한 大觀산수를 대작위주로 그려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소품위주이고 산수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 시켜서 산수의 미세한 부분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되는 점이다
이번 전시의 메인 주제는 폭포와 계곡이다. 분출하듯 쏟아지는 폭포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 들은, 작품마다 각기 다른 정감으로 그려져 물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불러 일으킨다.
老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표본은 물 같은 것’이라 하였고(상선약수,上善若水) 언제나 높은 데서 머물지 않고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겸손의 미덕을 상징한다 하였다. 웅장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도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그 물살을 조절한다. 이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곡물이 된다. 그래서 孔子도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 한다’(지자요수,知者樂水}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조평휘의 이번 전시는 그가 팔순이 되어 바라보는 산수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종심(從心)의 나이를 지나 八旬의 마음으로 그려내는 강렬한 폭포는 작가의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내지만 계곡으로 흐르며 피어내는 물안개의 그윽함은 일견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읽게 해준다.
(푸른폭포)는 폭포의 표정을 가장 가까이서 그려낸 작품이다. 물살이 강렬하게 교차하면서 희고 푸른 빛깔을 만들어 낸다. 상부에서 흘러내리는 물살이 계곡 중간으로 들어오는 작은 물살과 합쳐지면서 더욱 강한 기운으로 하부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물의 빛깔은 아주 투명하다. 계곡의 바위는 형태를 자세히 그리지 않았고 濃墨으로 검게 처리하여 폭포의 강렬하고 투명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출품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단순한 화면경영 이지만 시각적으로는 가장 강렬하다.
(上瀑)은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높이 솟은 산속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그린 것이다. 폭포는 산 밑으로 쏟아지면서 장대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폭포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빠른 물살이 순식간에 집합되어 커다란 물연못을 만들고 있고, 변화무쌍한 물길의 성정이 사방으로 발산되며 거대한 雲霧를 뿜어내고 있다.
(계곡 폭포)는 바위로 인식되는 화면 상단부의 검은 묵색 부분의 사이를 뚫고 나오는 폭포를 그린 그림이다. 푸른 물보라를 일으키며 마치 산속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듯 힘차게 분출하지만, 계곡에 합류되면서 부드러운 물살로 바뀌어 일정한 리듬을 만들고 있다. 감상자들에게 문득 삶의 행로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雲谷)이나 (遠瀑)은 구름과 폭포를 대비시킨 작품이다. 불확실한 형상을 만들며 산속으로 퍼져 나가는 구름과, 계곡에 떨어져서 일정한 크기를 만들어가며 흐르는 물살을 그린 것으로 우주의 명료성과 모호함의 대비를 보여준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분방함과 그들만의 질서를 읽게 하는 그림들이다.
화면의 구성방식은 비어있음(虛)의 공간인 空白이 主体이다. 폭포나 계곡은 하얀 虛의 공간으로 화면의 메인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바위나, 산, 나무, 가옥들은 검정 묵색으로 面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다. 산이나 바위들의 형상은 사실적이지 않고 다만 검정묵색의 거대한 덩어리로 인식된다. 농묵의 깊이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시키려고 한 의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水墨만이 줄 수 있는 정서적 해방감으로 시원하고 호방하게 유도되고 있다.
그러나 농묵의 강렬함은 하얀 공백으로 드러난, 분출하듯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나 크고 작은 파동을 만들며 흐르는 계곡의 물살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이다. 감상자들은 조평휘의 화면에서 푸른 물보라를 만들며 떨어지는 하얀 폭포의 웅장한 속도에 우선 시선이 간다.
실(實,사물의 실체)속에서 허(虛, 우주의 비어있음)를 구하는 동양화법의 근본방식이 조평휘 식으로 전환되어 허(폭포,계곡)로 인하여 실(산, 바위)이 드러나고 있다.
조평휘식으로 산수를 보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自然 스스로 그 실체를 말하게 하려는 방식이다
예컨대 (푸른폭포)에서 보이는 미세한 물살들의 다양한 층차의 표현이나, 여러 작품에서 목격되는- 강하게 떨어지는 폭포가 계곡과 합류하며 생성되는 물결의 완급의 관찰이나, 산등성이를 가르고 나오는 하얀 구름의 여러 표정들은, 산수를 그려낸다는 태도 보다는 산수 스스로 만들어가는 형상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평휘가 일관되게 수묵산수를 그려오면서 창조한 새로운 형식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시대에도 수묵산수의 진화가 가능한가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대답일 것이다
전통화법에 기반을 둔 현대 수묵산수 작가들이 줄어들고 새로운 트랜드를 찾아 수묵의 유전자가 이종교배 되고 있는 현재의 동양화단에서 조평휘의 수묵산수는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濃墨과 潑墨의 완숙한 구사와 거침없는 분방한 필선들은, 조평휘식 허(虛)중심의 화면경영에서 모던한 감각으로 새롭게 운용되고 있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나, 산이나 바위의 형상을 지우거나 하나의 面으로 배치하는 것, 강렬한 폭포의 물줄기와 부드러운 계곡물의 리듬감을 조화하는 것, 진한 농묵의 산이나 계곡의 바위들에 미세한 묵색의 층차를 내는 것 등 시각성을 강화하면서 寫意였던 전통산수화의 畵境에서 새로운 이 시대의 존재감으로의 산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존재감의 시각성을 “그려낸다”라는 자세보다는 자연이 “토해내고”있는 그들의 기운과 질서를, 스스로 발산하도록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폭포는 장쾌하게 쏟아지고 하얀 구름들은 변화 무쌍하며, 큰 계곡의 물은 푸른 물보라를 일으키며, 작은 계곡의 물살들은 부드럽지만 생동감이 있다. 진한 농묵의 큰 산들은 묵묵한 무게감을 줄뿐 압도하지 않는다. 각자 크고 작은 기운들을 토해내며 그들만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의경(意境)은 긴 시간 수묵의 통로를 건너 완숙한 묵법과 필법을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평휘의 수묵산수 그림은 빠르고 현란한 문화만을 소비하는 이 시대의 관객들에게 잠시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쉼표 같은 신선함을 선사한다.
즉 조평휘의 산수세계는 오늘의 우리에게 필묵의 아름다움을 새삼 확인 시키고, 自然에 대한 모두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내고, 강렬한 시각성으로 水墨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1932년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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