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네 개의 판화 포트폴리오 1961-1977

2011.10.06 ▶ 2011.11.27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미술관

Map

초대일시ㅣ 2011-10-06 17pm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아이콘
  • 작품 썸네일

    데이비드 호크니

    WHAT IS THIS PICASSO HARDGROUND AND SOFTGROUND ETCHING AND AQUATINT, 45.7x52.3cm, 1977

  • 작품 썸네일

    데이비드 호크니

    THE DRINKING SCENE ETCHING, 30.5x41cm, 1961

  • 작품 썸네일

    데이비드 호크니

    FIGURE WITH STILL LIFE HARDGROUND AND SOFTGROUND ETCHING AND AQUATINT, 172, 52.3x45cm, 1977

  • 작품 썸네일

    데이비드 호크니

    DISCORD MERELY MAGNIFIES HARDGROUND AND SOFTGROUND ETCHING AND AQUATINT, 45.7x52cm, 1977

  • 작품 썸네일

    데이비드 호크니

    A BLACK CAT LEAPING ETCHING AND AQUATINT, 23.5x27cm, 1979

  • Press Release

    데이비드 호크니: 네 개의 판화 포트폴리오 1961-1977
     
    1950년 12월, 당시 13살이던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1937–)에 대해 그의 영어 교사는 생활기록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고 있다: “그는 예술가도 때로는 글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지 않고 있다.” 암묵의 비난이었지만, 그 교사는 어린 호크니의 관심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는 또한 그의 예술적 재능과 열망을 조기에 발견했던 언급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호크니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작가들보다도 명쾌하고, 통찰력 있으며, 평범하면서도, 건조한 유머를 가미한 자기만의 독특한 단어들을 써왔다. — 그는 광범위하게 자신의 삶과 작품, 그리고 예술에 대한 생각들을 인터뷰 등을 통해 말로 전하기도 하고, 자서전을 비롯한 저서들을 통해 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는 어릴 시절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독서는 분명 그의 일생 동안 중요한 활동이 되었다. 그의 작품 활동 중 초기 20년 동안 그의 가장 탁월한 판화 작업들의 소재가 되어준 것이 바로 문학이었으며, 이번 전시는 1961년에서 1977년 사이에 제작된 4개의 주요 판화모음집 — <탕아의 행적 A Rake's Progress>, <콘스탄틴 카바피의 14개의 시를 위한 삽화 Illustrations for 14 Poems by C.P. Cavafy>, <그림 형제의 여섯 편의 동화를 위한 삽화 Illustrations for Six Fairy Tales from the Brothers Grimm >, 그리고 <푸른 기타 The Blue Guitar > — 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브래드포드 미술대학 (1953–1957)과 런던 왕립미술학교 (1959–1962) 재학시절, 호크니는 양심적 참전 거부자로서 군복무 대신 2년 동안 병원에서 근무하였으며 그 기간 동안 시를 비롯한 많은 문학작품을 탐독하였다. 그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를 읽었던 것도 바로 이 때였다: “처음엔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겨우 책을 읽어나갔다. 당시 외국에 나가본 적은 없었지만, 그것이 20세기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들었다.” 몇 년 후 그가 프루스트를 다시 읽었을 때, 그는 그가 처음 그것을 읽었을 때에는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했지만 그 첫 경험은 심오한 문학을 읽고 발견하는 것에 대한 그의 열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1959년 가을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호크니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회화적 시도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이 무렵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The Tate Gallery)와 화이트채플 아트 갤러리 (The White Art Gallery)에서 열린 새로운 미국 회화의 흐름을 보여준 대규모의 전시들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호크니는 당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앨런 데이비 (Alan Davie)와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로저 힐튼 (Roger Hilton) 등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미술의 경향과 작가들의 경향을 결합시키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작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줄곧 그리는 것을 계속해 나갔다.

    호크니보다 1년 일찍 왕립미술학교에 들어온 키타이 (R.B.Kitaj)는 미국 태생으로 호크니가 처음으로 사귄 동료들 중 한 명이었다. 호크니보다 5살 정도 나이가 많았던 키타이는 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을 호크니와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호크니로 하여금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소재를 그릴 수 있도록 북돋아 주었던 것도 바로 그였다. 1960년대 초반부터 호크니는 다시 문학적인 소재들을 회화의 주제로 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구상회화를 그린다는 것이 당시 미술계의 주류였던 추상적 표현 위주의 경향을 거스르는 것이었기에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구상회화라는 발상은 반 모던적인 것(Anti-modern)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글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 위에 글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림 위에 글자를 삽입한다는 것은 구상적 표현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보는 이가 즉시 읽을 수 있는 조금 더 인간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그냥 그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호크니는 시구, 신문 기사, 공중화장실의 벽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낙서 (graffiti)들을 소재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밀착된 우리 두 소년들 We Two Boys Together Clinging> (1961)의 제목은 19세기 미국의 시인인 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1819–1892)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함께 끌어안은 우리 둘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절대 떠나지 않는….
    팔짱을 끼고 두려움도 없이, 먹고, 마시고, 잠들고, 사랑하며
     
    같은 시기에 그는 작업실 공간에 ‘밤새도록 절벽에 매달린 두 소년’이라는 신문기사 헤드라인을 당시 팝 우상이었던 클리프 리차드 (Cliff Richard)의 사진 위에 붙여놓았다. 호크니는 등반 사고라는 기사의 사실적 내용보다도 소년들이 가수에게 매달리는 열성 팬이라는 발상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림의 내러티브 안으로 뒤섞여 나타나는 이와 같은 신문이나 잡지에서 발췌된 사진이나 문구의 사용은, 그 당시 영국에서는 여전히 불법이었으며 급진적 제스처로 간주되어 금기시되었던 동성애에 대한 호크니 자신의 공공연한 선전적 운동이기도 했다.

    왕립미술학교 재학시절 제작한 호크니의 첫 판화작업 <나와 나의 영웅들 Myself and My Heroes>이라는 제목의 동판화 작품 또한 1961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판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단지 돈과 재료가 부족했고, 판화과에서는 재료가 공짜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자주 인용되어 왔다. 그는 1954년에 제작한 자화상과 브래드포드 미술학교에서 제작한 여러 점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경향이 강하게 묻어있는 석판화들을 비롯하여 이전에도 판화작업을 해왔지만, 왕립미술학교에서는 동판화 위주로 작업하였다. <나와 나의 영웅들> 속의 영웅들은 월트 휘트먼과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1869–1948)였으며, 동판화와 아쿼틴트로 흑색으로 인쇄되었다. 제목과 텍스트로부터 발췌된 다른 구절들이 세 명의 인물 주위에 적혀있었다. 휘트먼에게는 “동료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위해. (When I thy ports run out/ for the dear love of comarades/ love)” 간디에게는 “채식주의자이며 타지마할에 있는. (Vegetarian as well/ down with the Tajimahal)”, 그리고 호크니 자신에게는 “나는 23살이며 안경을 쓰고 있다. (I am 23 years old and I wear glass)”라고 적어 놓았다.
     
    호크니는 동판화라는 매체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선 드로잉이 갖는 감성과도 잘 맞았다. 그리고 곧 <나와 나의 영웅들>에 이어 1961년에 또 다른 7개의 동판화 작품이 제작되었다. 여기에는 <격렬한 욕망의 불꽃 The Fires of Furious Desires>과 동성애를 다루는 다른 자화상이 포함되는데, 이 제목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격렬한 욕망의 불꽃The Flames of Furious Desire>와 <그의 모든 아름다움을 지닌 카이사리온 Kaisarion and all his beauty>에서 나왔으며, 콘스탄틴 카바피 (C.P. Cavafy, 1863–1933)의 <알렉산드리아 왕들Alexandrian Kings>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을 바탕으로 하여 두 가지 색의 동판화와 아쿼틴트로 제작된 작품도 있다. 그 무렵 호크니는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그리스 시인인 카바피의 작품에 눈을 뜨게 되었고, 실제 이 시기의 많은 회화와 판화 작품들이 카바피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호크니는 런던 웨스트 엔드에 위치한 세인트 조지 갤러리 (The St. George’s Gallery)에서 열렸던 한 전시에서 보여졌던 <세 명의 왕과 한 왕비Three Kings and A Queen> (1961)라는 작품으로 100파운드 상당의 상금을 받게 되는데, 그 때 이미 그는 미국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중이었다. 세인트 조지 갤러리 초기 창립자였던 로버트 어스킨(Robert Erskine)은 판화 딜러이자 출판업자로서, 1950–60년대 영국 판화 시장의 성장에 있어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상금을 가지고 호크니는 뉴욕으로 떠나1961년 여름의3개월을 보내게 되는데, 어스킨은 호크니로 하여금 뉴욕 현대미술관의 판화와 드로잉 담당 책임자였던 윌리엄 리버만 (William Lieberman )에게 그가 제작한 동판화 몇 점을 가져가 보여주도록 줄곧 조언해 왔었다. 이 일을 계기로 리버만은 호크니의 동판화를 많이 구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호크니가 훗날 그의 새로운 동판화 작업 <나의 바니는 저기 바다 건너에 살아요My Bonnie lies over the ocean>를 제작하게 되는 프랫 그래픽 워크샵 (The Pratt Graphic Workshop)을 그에게 처음으로 소개해주기도 했다.

    런던으로 돌아온 이후, 호크니는 카바피의 시 <바바리언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Barbarians>의 구절에 영감을 받은 대형 작품, <반(半) 이집트 양식으로 그려진 성직자들의 장엄한 행렬 A Grand Procession of Dignitaries in the Semi-Egyptian Style> 을 제작하게 된다. 또한 그는 뉴욕에서의 경험을 다룬 <탕아의 행적 A Rake's Progress>이라는 첫 판화집 작업에 들어갔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1735년에 제작된 윌리엄 호가스 (William Hogarth, 1697–1764))의 판화집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는 방탕한 삶에 대한 도덕적 교훈을 담은 동판화 8부작이었다. 호크니의 원래 의도는 호가스의 제목을 빌어 8개의 동판화 작품을 만들어 그만의 연작을 제작하는 것이었으나, 작품 수를 늘려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에 24점의 동판화를 제작하기로 계획했다가 그 후 2년여의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16점으로 줄였다.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탕아의 행적>은 호크니가 작업을 마치고 도판을 제작하고 난 뒤 Editions Alecto 에서 한정판 포트폴리오로 출판되었다. 연작의 각 도판에는 제목이 적혀 있는데, 16장의 도판들은 호가스의 8부작에 좀 더 충실하기 위해 1에서 16까지가 아닌 plate1, plate1a에서 plate8, plate8a로 번호가 매겨졌다.
     
    뉴욕으로 옮겨가면서, 호크니는 자서전적인 주인공 ‘탕아’를 내세워 자신의 상속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전락해 가는 어느 젊은 귀족의 모습을 여러 가지 개인적 경험과 사건, 현대 미국의 도시 뉴욕이라는 상황적 배경으로 기록하고 있다. 처음 젊은 나이에는 모든 것이 그저 순조롭기만 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자신의 판화를 팔기도 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된다. 유행에 들뜬 뉴욕의 유혹에 빠져 생애 처음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게이 바를 들락거리고, 마침내 결혼도 했다. 그러나 흥청거려 돈이 바닥나고 ‘좋은 사람들’이 그를 꺼리자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두 판에 그려진 최후의 운명은 호가스의 이야기와 같이 퇴폐적 쾌락을 추구하는 방탕한 중산계급의 몰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자아정체감의 상실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아무 생각 없는 군중, 즉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Plate 8a에 그려진 <대혼란 Bedlam>에서 로봇과 같은 다른 인물들과 ‘탕아’를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머리 위에 그려진 조그만 화살표뿐이며, 그는 결국 개성이 사라진 획일화된 군중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만다.
     
    <탕아의 행적>을 완성한 직후, 호크니는 썬데이 타임즈 (The Sunday Times)로부터 신문의 새로운 컬러 잡지 증보판에 들어갈 그림 연작을 주문 받아 이집트로 가게 된다. 1963년 9월과 10월 4주 동안을 이집트에 머물면서 카이로와 룩소르, 그리고 카바피의 고향인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으며 이 시기 동안 40점의 드로잉을 제작했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동경했던 카바피의 시에 들어갈 삽화 연작을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거의 3년이 지나서였다. 그는 이 전부터 출판을 계획하고 있던 중이었고, 1966년 1월 마침내 베이루트의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떠나는데, 이 도시는 1960년대 중반 거의 사라져버린 ‘카바피의 날’로 잘 알려진 국제적인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그림들에 나타나는 형식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아마도 이를 원했을 것이다. 나는 아마 이제 회화는 잠시 그만두고 판화를 해보자고 결심했던 것 같다. ”

    호크니가 언급해 온 작품들은 1964년 캘리포니아를 처음으로 방문한 이후의 집중적인 창작 활동 시기에 만들어졌다. 수영장과 샤워하는 남자들, 거기에 좀 더 양식화된 풍경들, 실내풍경들, 그리고 최초의 큐비즘적인 정물 그림들이 그 작업의 주제가 되었다. 또한 그는 이 시기 6점의 석판화로 된 작품집, <헐리우드 콜렉션 A Hollywood Collection>을 만들었는데 이는 로스앤젤레스 Gemini Ltd.에서 1965년 인쇄되었다.
     
    호크니는 니코스 스탠고스 (Nikos Stangos)와 스티븐 스펜서 (Stephen Spencer)가 새롭게 번역한 카바피의 시에서14점을 선정하여 카바피의14점의 시를 위한 삽화를 1966년 초부터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전의 동판화 작업에서보다 더욱 순수한 선을 사용해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긴장감 있게 드러내는 데에 전념했고, 20점의 선으로 된 삽화를 구리판 위에 직접 그리기도 했다. 그 중 13점은 1967년 Editions Alecto에서 한정판 책과 6장의 루스리프 형식의 포트폴리오로 출판되었다. Plate 13, <카바피의 초상II Portrait of Cavafy II >는 베이루트에서 제작된 드로잉을 기반으로 하는데, 특정판으로만 구할 수 있었다. 호크니는 프랑스의 상징주의와 낭만주의 퇴폐주의 영향 아래에서 창작된 카바피의 시가 갖는 고유의 분위기와 관능성을 드러내기 위해 본인의 개인적인 감각적 경험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4개의 삽화만이 실제 중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런던에 있는 그의 친구들을 그린 매우 친밀한 드로잉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카바피의 시 구절을 가장 글자 그대로 해석한 것은 Plate 3, <그는 어떤지 물어봤다He enquired after the quality>에서 보여진다.
     
    그는 손수건이 어떤지 물어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얼마냐고 물었다
    욕망으로 숨이 막힐 듯이.
    뒤따르는 응답이 어울린다
    멍하니, 목 멘 목소리로
    넌지시 보이는 의향.
     
    그들은 계속했다, 물건에 대한 속삭임을 - 그러나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
    손수건 너머로; 얼굴을 가까이하기 위해
    그리고 입술을 가까이하기 위해, 마치 우연인 것처럼:
    순간적인 팔다리의 접촉.
    빠르고 은밀하게, 저 끝에 앉아있는 가게 주인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카바피 동판화 외에도, 이 시기 호크니는 처음으로 무대디자인을 맡아, 런던 로열 코트 극장에서 올려진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희극 <위뷔 왕 Ubu Roi>의 무대와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듯 회화에서 오랫동안 벗어나 있다가, 그는 그만두었던 그것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게 된다. 여전히 물의 표면에 있는 물결에 비쳐지는 빛의 효과를 포착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빛이 비치는 수영장 물의 패턴의 움직임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1967년 작품, <더 큰 첨벙 A Bigger Splash>은 이 시기 제작된 수영장 그림 연작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있는 작품일 것이다. 그는 점차 더 실제 일상과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생활, 수영장, 초상, 집, 실내와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렸으며, 이는 모두 자연주의적 기법으로 그려져 <클락 부부와 퍼시 Mr and Mrs Clark and Percy> (1971)와 같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의 대형 2인 초상화 작품들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사실 이 작품을 1969년 초반부터 준비하기는 했지만, 그 해에는 그의 가장 야심 찬 판화 프로젝트였던 <그림 형제의 여섯 편의 동화를 위한 삽화 Illustrations for Six Fairy Tales from the Brothers Grimm> 작업을 위해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야코프 루트드비히 카를(Jakob Ludwig Karl, 1778–1865)과 빌헬름 카를(Wilhelm Karl, 1787–1859) 그림(Grimm)이 수집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들의 삽화를 그린 것은 호크니가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해주었다. 그는 350여 점 정도되는 모든 이야기를 다 읽었는데, 글의 단순하고 단도직입적인 스타일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1961년과 1962년에 <룸펠슈틸츠첸 Rupelstiltszhen>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판화를 제작했고, 새로운 연작으로 12점의 동화 삽화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는 마침내 6개의 제목으로 정해졌다: <작은 바다 달팽이The Little Sea Hare>, <푼데포겔 Fundevogel>, <라푼젤 Rapunzel>,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가출한 소년The Boy Who Left Home to Learn Fear>, <늙은 링크랭크Old Rinkrank>, < 룸펠슈틸츠첸 Rumpelstiltszhen>. 그는 모두 80점의 동판화를 제작했고 그 중 39점이1970년에 페테르스부르그 출판사에서 책과 루스리프식 포트폴리오로 출판 되었다.
     
    카바피 동판화에서와 같이, 그는 즉흥적인 느낌을 더욱 살리기 위해 대부분 구리 판 위에 바로 작업을 하였다. 그는 아주 가끔씩 예비 드로잉을 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작은 바다 달팽이 The Little Sea Hare> 이야기를 위한 두 삽화, <알 속에 숨어있는 소년 The boy hidden in an egg >과 <물고기 안에 숨어있는 소년 The boy hidden in a fish>의 인물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기술적인 부분들을 실험하기 위해 예비 드로잉을 했다.
     
    이 동판화들은 이전의 판화들보다 더 복합적이며, 아쿼틴트에 전통적인 크로스 해칭 (cross-hatching) 기법이 더해졌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기법이 작품에 적용된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는 거의 10년도 전에 호가스의 판화 <탕아의 행적>을 연구했을 때부터 이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74년 호가스의 판화로 다시 되돌아오는데, 글라인드본(Glyndebourne)에서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의 오페라 <탕아의 행적>을 새롭게 선보였을 때 무대 세트와 의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크로스 해칭을 거대한 스케일로 이용함으로써 호가스의 판화를 실제의 장관으로 만들어냈다.

    1973년에서 1975년 사이에는 과거 피카소가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함께 판화를 만들었던 알도(Aldo)와 페이로(Peiro) 크로멜링크(Crommelynck) 형제에 의해 세워진 아틀리에 크로멜링크에서 동판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호크니는 파리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작업실에서 처음 세달 동안은 에칭과 아쿼틴트를 이용한 검은 화면들과 '슈가 리프트 (sugar-lift)' 기법에 의해 부분적으로 표현된 다색의 표면들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거나 완전히 숙달하지 못했던 동판화 기법들을 배워나갔다. 전통적인 아쿼틴트의 변용인 ‘슈가 리프트’ 기법은 설탕과 수용성 재료를 섞어 붓으로 바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은 매우 즉흥적인 작업방법으로 피카소가 즐겨 사용했으며, 한번 처리되고 새겨져서 인쇄되고 나면 도판에 원래 붓 자국의 다양한 느낌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호크니는 1973년 4월 타계한 피카소를 추모하기 위해 <학생: 피카소에 대한 경의 The student: homage to Picasso> (1973)과 <화가와 모델 Artist and model> (1973–74), 이 두 점의 동판화를 제작하는데, 두 점 모두 ‘슈가 리프트’ 기법을 포함한 다양한 동판화 기법들이 활용되었다. 알도 크로멜링크는 각각의 색을 각기 다른 판으로 표현하는 방법보다는 하나의 판으로 다양한 색의 동판화를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호크니에게 있어서 이것은 경의할 만한 발견을 증명해 보이는 것으로, 그는 1974년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한 <단순화된 얼굴 Simplified Faces>을 비롯한 많은 다색동판화를 제작했는데, 이는 조형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에 있어 1976-77년 제작될 중요한 다색 동판화모음집, <푸른 기타 The Blue Guitar>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동판화들은 미국 시인 월러스 스티븐스 (Wallace Stevens, 1979–1955)의 시, <푸른 기타를 가진 노인 The Man with the Blue Guitar>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1936년에 쓰여진 이 시는 1903년에 제작된 피카소의 청색시대 회화, <늙은 기타 연주자 The Old Guitarist> 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예술과 삶, 상상력과 현실에 대한 해석 간의 복잡한 관계들을 다루고 있다. 호크니는 1976년 여름, 처음으로 이 시를 읽고는 곧바로 몇 점의 드로잉을 그렸고 이는 후에 동판화로 제작되었다: “이 동판화들은 시를 문자 그대로 그린 삽화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시의 주제를 해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동안 호크니는 자신의 회화가 자연주의적 관습에 갇힌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판화는 그에게 양식적인 엄격함의 어떤 관념들을 깨고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특별히 피카소를 연상시키는 내용들로 가득했고 다양한 형상들과 양식들이 호크니의 기술적 기교와 결합되었으며, 이는 스페인 대가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는 총 20개의 동판화를 제작했는데, 각각은 크로멜링크 기법을 사용하여 다섯 가지 선별된 색으로 인쇄되었다. 이는 1977년 10월에 페테르스부르그 출판사에서 한정판 포트폴리오로 출간되었다.

    회화와 판화에서의 발상과 해법들은 종종 서로 서로에게 반영되었다. 동판화 <푸른 기타>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시기와 같은 시기 제작된 회화의 수뿐만 아니라, 판화에서도 좀 더 이른 시기의 작품을 언급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가 4점의 판화 (plate 12, A picture of ourselves; plate 14, Etching is the subject; plate 15, Tick it, tock it, turn it true; and plate 20, What is this Picasso?)에 사용한 커튼 모티프는 1963–65년에 제작된 회화들에서도 끊임없는 장치로서 사용된다. 그는 그림의 윗단에 커튼의 술을 그려 넣음으로써 화면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연극적인 그림을 시도하고 있었다. 대표작(Plate1)에 사용된 테두리 장식은 <푸른 실내와 두 개의 정물 Blue Interior and Two Still Lifes> 같은 1965년의 캘리포니아 그림들을 다시 가리키고 있으며, Plate 4 <자신의 길을 택하다It picks its way>에서의 텅 비고, 단조로운 구도는 1964년과 1965년에 제작된 수영장 안으로 쏟아지는 물을 표현한 회화와 두 점의 드로잉, 석판화의 추상적 표현기법과 연관되어 보인다.
     
    <푸른 기타> 동판화 작업들은 대규모 판화 회고전에 포함된 가장 최근의 판화들로, 1979년 1월부터 1980년 3월까지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스에 걸쳐 10곳을 순회하며 전시되었다. 그 전시는 1954년에서1977년까지의 기간을 총 망라하고, 218점의 이 시기 제작된 모든 판화들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에는 1954년에 제작된 그의 초기 판화 세 점 외에도, 1961년부터 1977년까지 16년 동안 제작된 동판화와 석판화, ICA 포트폴리오를 위해 1964년 제작된 실크스크린 한 점이 포함되었다. 비록 그는 “나는 판화가가 아니다, 나는 단지 약간의 판화작업을 일삼는 화가일 뿐이다.”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 시기에 제작된 판화들은 호크니가 20세기 후반의 판화에 진정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한 몇 안 되는 중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호크니의 다재 다능함과 열정은 식지 않고 계속된다. 1980년대에는 사진이 그의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이 되면서 화면에 있어서의 공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내고 있으며 이 시기 작업은 이후 그의 회화 작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컴퓨터와 사무실 컬러복사기, 팩스밀리, 흔히 정보기술과 인쇄 매체와 관련된 장치와 공정들을 거치는 대안적인 방법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항상 그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작품의 양식적인 변화를 시도해 왔으며, 1989년 제 20회 상 파울로 비엔날레에서는 단순히 브라질로 팩스로 보낼 수 있는 대형 사진 한 점만을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전시에 대한 반응과 계속되는 작업의 본질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의 팩스 전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인 측면과 흥미로운 측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판화를 이용한 점 등을 보았다. 사람들이 나의 작품이 꽤나 인기 있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실험하고 있는지 아는 데에는 종종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며, 또한 이것이 그저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으로 나온 어떤 것이며 또 다른 무언가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리차드 라일리 (Richard Riley)

    전시제목데이비드 호크니: 네 개의 판화 포트폴리오 1961-1977

    전시기간2011.10.06(목) - 2011.11.27(일)

    참여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초대일시2011-10-06 17pm

    관람시간10:00am~18:00pm 입장마감 17시 30분

    휴관일월요일 국정공휴일 휴관

    장르회화와 조각

    장소서울대학교미술관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미술관)

    연락처02-880-9504

  • Artists in This Show

서울대학교미술관(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Shows on Mu:umView All

  • 작품 썸네일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서울대학교미술관

    2024.09.12 ~ 2024.11.24

  • 작품 썸네일

    Protect Me From What I Want – 예술, 실패한 신화

    서울대학교미술관

    2024.03.22 ~ 2024.05.26

  • 작품 썸네일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 - 작가편

    서울대학교미술관

    2023.06.23 ~ 2023.09.10

  • 작품 썸네일

    시간의 두 증명 - 모순과 순리

    서울대학교미술관

    2023.03.24 ~ 2023.05.28

Current Shows

  • 작품 썸네일

    폴린 부드리/레나테 로렌츠: 초상

    리움미술관

    2024.07.18 ~ 2024.11.24

  • 작품 썸네일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서울대학교미술관

    2024.09.12 ~ 2024.11.24

  • 작품 썸네일

    Mindscapes

    가나아트센터

    2024.10.16 ~ 2024.11.24

  • 작품 썸네일

    부산 청년예술가 3인전 《응시: 세 방향의 시선》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2024.10.26 ~ 2024.11.24

  • 작품 썸네일

    송준: Blue Eclipse Episode 3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2024.11.14 ~ 2024.11.24

  • 작품 썸네일

    Wherever : 순간이 새겨진 곳

    이응노의 집

    2024.10.29 ~ 2024.11.24

  • 작품 썸네일

    꽃 보다: 이철주의 작품세계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24.09.26 ~ 2024.11.24

  • 작품 썸네일

    송영규: I am nowhere

    갤러리 그림손

    2024.10.30 ~ 202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