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Enumerated Void(부분) 50x25x35cm, 2009
김병주
Enumerated Void steel, 50x25x35cm, 2009
김병주
Projected blueprint 2 painted steel, 60x10x45cm, 2009
김병주
Projected blueprint 3 painted steel, 72x10x40cm_60x5x27cm, 2010
김병주
Enumerated Void steel, 45x45x140cm, 2009
김병주 작가의 작업은 공간에서 시작 된다. 닫혀있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공간을 이루고 있는 구조를 허물고 그 구조의 경계에 주목하고 있다. 공간[空間, space]은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상식적인 개념으로 상하 ·전후 ·좌우 3방향으로 퍼져 있는 빈 곳을 말한다. 공간은 단순히 형태적 지칭이나 비어있는 그 자체이기보다 인간의 존재와 연결 지을 수 있는데, 하이데거는 짓다(건축하다)는 독일어 Bauen의 어원이 Bin(Be 동사의 독일식 표현)과 관련이 있다는 추적을 통해 ‘건축하다’는 곧 ‘존재하다’라는 말과 상통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공간과 존재 그리고 건축이라는 단어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간 속에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공간 안에서 움직임이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공간은 관계에 의해 구성되며,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유연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내재한 무엇이다. 김병주 작가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을 건축적 구조물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다. 사물함과 같은 일상적인 오브제의 닫힘에서 출발한 작가의 호기심은 닫혀 있는 방의 드러나지 않는 공간을 넘어 건축적 구조물에 이르렀다.
김병주 작가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드러내기 위해 부수적인 장식을 배제하고 선을 이용하여 형태를 구성한다. 선은 점의 움직임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서, 기하학적으로 생각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다. 김병주 작가는 주로 직선을 사용하는데, 직선은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지닌 가장 간결한 형태이다. 이러한 선을 이용해 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면을 상상하게 한다. 선을 이용해 기본구조와 형을 만들고, 선의 겹쳐짐을 통해 면을 구성한다. 겹쳐진 선을 통한 표현은 이미 뭔가 면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면은 막 생겨나려는 상태에 있고 선들은 이를 위한 하나의 다리가 되고 있다. 가득 찬 선으로 만들어진 면은 우리의 시선을 가로 막지만, 망의 구조를 통해 선적으로 이루어진 조형물은 그 내부의 형태와 공간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호한 경계가 생기게 된다. 공간은 그 경계에 따라 지각되는데, 경계는 그 공간을 한정하는 것으로서 공간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계를 통해 서로 다른 공간들이 구분되고 연결되며 관계를 맺기도 한다. 건축에서는 이러한 경계의 역할이 바닥 ·천정 ·벽과 같은 면적요소로서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게 한다. 그런데 김병주 작가는 이러한 면적요소를 선적요소로 대치하거나 생략하기도 하면서 경계의 영역을 해체하고 확장한다.
또한 2차원적 요소인 선이 3차원의 공간적 구조물로 조형화되면서 선과 선 사이가 면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음으로 존재하게 된다. 비어있음은 선과 면 그리고 공간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비어있다는 것은 구조부분 즉 채워져 있는 부분(solid)부분 립해서 비워져 있는 부분(void)이라 할 수 있는데, 비어있는 부분은 언제나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 비어있는 부분과 공간사이에 존재하며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 , 상상하게 만든다. 채워짐과 비어있는 공간 안에서 우리의 시선은 어디든 자유롭게 가 닿을 수 있다. 자유로운 시선은 우리에게 외부와 내부의 형태를 동시에 인식하게 한다. 뿐 만 아니라 수직이나 수평의 선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기울기를 가질 수 있으며, 선이 성하게 한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교차되고 중첩되며 보여 지는 이미지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모호한 경계와 자유로운 시선은 기존 질서부분 즉 해체와 혼돈 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시각적 풍부함을 가져다주며 내부와 외부를 소통하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전 작업들에 비해 선의 강약과 배치, 사용 방법 등에 변화를 시도하여 선이 가지는 힘이나 방향성, 조화와 균형감이 더 잘 표현 되어 있다. 그리고 선으로만 만들어졌던 구조물에 면적요소가 개입하는데 그 면적요소는 바로 계단이다. 계단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형태와 기울기를 가지며 구성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계단은 높이가 다른 두 곳을 이어주는 발걸음의 수직이동 수단이다. 편리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지만 계단은 소통과 교류의 관점에서 연결의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예전 작업에도 계단이 있었지만 선들의 무수한 중첩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계단은 면적이면서도 선적이다. 천정이나 바닥, 벽과 같은 면적요소는 우리의 시선을 차단하지만, 계단은 시선의 이동을 유도한다. 작품 내부에서 시작된 시선의 이동은 작품 외부 공간으로 까지 확장된다. 여기에 빛과 그림자가 더해져 조형물과 갤러리 공간의 경계를 다시 한 번 모호하게 만든다. 공간적 조형물에서 시작된 그림자는 갤러리 공간 전체를 조형화 한다.
김병주 작가는 하나의 전체 속에서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복합성을 만들어 내며,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되며 공간화 하는 공간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경계의 모호성은 공간이 규정된 의미를 가진 고정된 것이 아닌, 대상의 관계 속에서 공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한히 해석 가능한 자율성을 담고 있으며 공간을 새롭게 생성하는데 의의가 있다.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무한한 공간적 상상을 경험 할 수 있다.
■ 신선정, 노암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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