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중심을 열다

2010.01.08 ▶ 2010.02.10

팔레 드 서울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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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느린풍경-배꽃 길 장지위에 분채, 144.5x67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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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중

    몽환적 풍경 캔버스에 유채, 116.7x72.7cm, 2009

  • Press Release

    팔레 드 서울 개관기념전'2010 庚寅年, 韓國美術의 中心을 열다展

    ‘2010 庚寅年, 韓國美術의 中心을 열다’展은 한국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문헌에서 우리의 한국미술을 폐허에서 핀 야생화와 같다고 표현한 글귀를 보았다. 한국미술은 우리의 미술이다. 한국화냐 서양화이냐, 구상회화이냐 추상회화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모습이 축적되어있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결합되어 있다. 비록 우리의 역사는 끊임없는 불안과 위태로운 상황으로 빚어져 왔으나 그 안에서 우리의 역사와 동거해온 예술가들은 주어진 시대의 사명감을 안고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해 왔다.

    참여 작가는 해방전후에 태어나 식민의 잔해도 채 가시기전에 전쟁과 민족분단을 체험하고 혼돈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세대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40~50년대 출생, 현재 50대 이상의 작가들로 한정 지었다. 또한 이들 작가군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출발한 1950년대를 시작으로 외세의 영향아래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시도와 한국적 정착을 향한 한국현대미술의 전개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던 1970~80년대 즉,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뿌리내리는 시기로 평가되는 시대(1970~80년대)에 활발한 두각을 드러낸 작가들로 선정하였다. 무분별적으로 들어온 서구의 영향 가운데서도 한국의 정체성을 뿌리에 두고 우리의 전통과 현대의 시대흐름을 잘 반영하여 새로운 한국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룩해온 작가들의 궤적을 보이고자 한다.

    본 기획자는 한국미술을 ‘매난국죽’에 은유해 본다. 혹한 추위와 바람 속에서도 맑은 향을 뿜으며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 깊고 어두운 산속에서도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는 난초, 늦은 가을 찬서리를 견디고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국화, 시린 겨울 가운데에도 언제나 푸른 잎을 유지하는 대나무와 같이 고결한 군자의 인품을 닮은 미술, 그것이 한국의 역사이며, 한국의 미술이다.
    이번 개관전을 통해 한국화와 서양화, 구상과 회화의 구분없이 한국현대미술의 시작을 다시금 되돌아 보고, 성찰하며, 한국현대 미술의 중심을 찾고자 애쓴 흔적이 전시를 통해 그리고 앞으로 기획될 갤러리 팔레 드 서울의 전시를 통해 비춰지길 기대해 본다.

    영원히 피고 또 피어 지지 않는다
    ■서영주(팔레 드 서울 큐레이터)


    다만 국경이 없는 미술이라 할지라도 그 민족의 미술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 민족다운 특이한 민족성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것이다. 한국 미술이 아름답다는 것도 한국 민족의 특성이 미술작품을 통하여 여실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것이니...”

    ■김용준『조선미술대요』의 서문 ‘한국 미술은 어떠한 것인가’中

    20세기의 한반도는 격동의 시대였다. 500년의 긴 왕조의 마감과 일본의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 상황, 항일운동과 광복, 전쟁 그리고 남북분단, 그 후 전후의 혼란과 강압적인 군사정권의 시대로 이어졌다. 지구상의 어느 민족보다도 수난과 갈등을 겪은 나라가 한국이다. 이토록 계속된 상실의 시대를 겪은 우리민족의 역사적 특수상황에는 언제나 외세의 영향이 크게 미쳤다. 질곡으로 얼룩진 시대적 상황은 모든 것을 앗아갔을지 모르나 예술가들의 시대적 사명감은 더욱 몰아치게 만들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를 역사 앞에서 예술가들은 미술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시키고자 했다. 우리민족이 지니고 있는 역사·사회적 특성이나 한국의 정서가 묻어나는 예술의 존재는 미술분야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문제였다. 한국성의 모색,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우리민족에게는 중대한 일이다.

    한국미술은 1950년대를 시작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미술의 현대화를 구축하여 새로운 우리 미술을 창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힘써 왔다. 한국미술의 현대회화에 첫발걸음을 내딛은 50년대의 미술은 표현적 격렬성, 거친 표면의 요철효과, 극단적인 정서의 투여 등 전후에 감돌던 시대적 위기감이 반영되어 있다. 60년대에는 전후에 감돌던 불안감과 붕괴된 가치관에 대한 위기의식이 서서히 누그러지면서 온화하고 안정된 미술로 변해 갔다. 70년대 중반에 이르면 한국현대미술은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현대미술이 신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한국적 정서와 서구미술과의 접목으로 한국의 특수한 역사성이 창조해낸 한국현대미술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서승원(徐承元, 1941~)은 1963년 대학 2년부터 <오리진Origin: 우리나라 최초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양식화하는데 기여>과 의 그룹활동을 통해 한국미술의 모더니즘에 이론적 기반을 제시하였다. ‘동시성(同時性)’이라는 주제로 주로 백색의 절제있는 기하학적인 추상회화를 보이고 있다. 우리민족에게 있어 백색은 빛깔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이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은 한국민족을 지칭하던 호칭이었다. 흰 옷 입기를 좋아한 한국민족의 습속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히 기록된 바는 없다. 다만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임이 강조된 것은 일제시대로 우리를 억압하던 일본인의 옷이 무색이기 때문에 그와 대조적인 백의는 항일정신(抗日精神)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관청에서 반강제로 백의 착용을 금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듯 백색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한국의 정신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송수련(宋秀璉, 1945~)은 1976년 첫 개인전 이후 30년 동안 ‘관조’라는 주제로 내적시선을 탐구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정체성이 역사라는 연못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나기를 희망한다. 무의식 속에서 숨쉬고 있는 정서 즉, 내적시선을 통하여 우리의 정체성이 배어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환으로 한지의 앞면이 아닌 뒷면에 부단한 붓질을 통하여 색채를 물들인다. 화면위로 스미지 않고 뒷면에서 서서히 물들여 앞면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더디고, 오랜 시간과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한다. 무수한 붓질, 깊이있는 색조, 분위기를 우려내기 위한 시간은 고통, 기쁨, 그리움 등의 상념을 점의 형태로 담는 것으로 점(点)을 찍는 행위는 스스로를 비워내고 쓸어내리는 수행의 한 과정이다. 또한 화면에 수직으로 찍힌 무수한 점은 분청사기의 인화문을 응용한 것으로, 작품의 형상을 보는 이들에게 그들 내면에 스며있는 우주, 세계, 역사의 한자락을 볼 수 있는 내적시선으로 이끌고 있다.

    한만영(韓萬榮, 1946~)은 한국 미술계의 집단적 흐름 가운데에서도 이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화가이다. 70년대 말에는 당시의 추상적인 미술흐름과는 정반대인 정밀묘사 기법의 <공간의 시원>연작을 보였으며, 80년대 이후에는 <시간의 복제>라는 명제로 과거의 역사성을 회상시키는 고전적인 이미지들과 일상적인 오브제를 결합하여 비현실적인 화면을 연출한다. 모나리자와 비너스, 겸제의 인왕제색도, 신선도, 사신도, 가야의 갑옷, 병마도용, 민화, 산수화 등의 이미지, 녹슨 청동유물에서 나온 듯한 녹청색, 황토색과 잿빛은 그의 오브제와 합성되어 어울릴 수 없는 두 개의 상이한 세계가 동일한 순간에 결합된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창조와 모방과 같은 서로 상반된 요소에 대한 의도된 혼란이다. 과거의 역사성을 연상시키게 하고, 현재라는 상황과 병치시키는 시도는 한국적 정서와 서구적인 방법이 결합되어 새로운 회화를 형성하고 있는 현재 현대미술의 상황을 독특한 방법으로 패러디화 하고 있는 것이다.

    한운성(韓雲晟, 1946~)은 1970년대 후반 판화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판화의 발전과 확산을 이룩하였다. 작품의 주요소재는 일그러진 캔 깡통, 가로수의 버팀목, 팽팽하게 당겨진 매듭, 네거리의 신호등 등 생활주변과 현대문명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들 오브제의 공통점은 형상성이다. 찌그러뜨려지고 얽매여지거나 비틀어 매어진 매듭의 형상은 모두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일그러진 모습이다. 찌그러뜨려지고 망가진 상황의 모습이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성을 강하게 반영함으로써 비판적 리얼리즘 또는 문명비평적 시각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 격변기 상황에서 대다수의 작가들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제작한 80년대에 작가는 80년대라는 특수한 시대적, 역사적 현실 속에서 시각적 재현의 문제가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옮기는 감성적인 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재현을 통해 이성과 지성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한국의 상황과 현실을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아내고자하는 작가의 의지는 아래의 글에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자기가 소속된 그 시대의 혹은 그 사회의 대변인이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시대의 대변인이기 위해서는 다른 시대 혹은 다른 사회가 아닌, 우리가 호흡하는 이 시대를, 이 사회를, 다른 방법이 아닌 바로 이 방법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내적 필연성을 가져야 한다.”

    ■ 공간 1993 9월호에서 한운성이 쓴 ‘진짜그림 가짜그림’ 中


    김용중(金龍中, 1950~)은 학연과 연고주의가 지배하는 미술계에서 제도권 미술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않고, 199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다. 수상작은 ‘팀’이라는 주제로 97년 IMF의 힘겨운 시절에 현대인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가장들의 심리와 여성들의 당당한 사회진출로 위축된 남성상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 극사실주의 작품이었다. 그 후 실제 모래를 캔버스에 부착하여 그 위에 유화를 이용하여 자연의 시냇물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Origin(근원)’ 시리즈와 투명한 유리와 과일을 소재로 사실적이나 형상과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한 ‘A WORK’ 시리즈를 보이고 있다. ‘A WORK’ 시리즈의 완성도 높은 묘사력에 모호한 이미지와 차분한 색채의 표현은 형태가 불투명하게 보이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을 몽환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이렇듯 작가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선을 오가며 현실적 삶과 이상적 자연을 제시하고 있다.

    석철주(石鐵周, 1950~)는 16세때 청전(靑田)의 문하에 들어가 산수화에 필요한 기본기를 익혔다. 어깨너머로 보여졌던 청전의 안개 속에 아련히 드러나는 우리산하의 그림은 작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면서 인물, 주변의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물에 몰두해 있던 중 탈춤의 몸동작에 빠져 탈춤이 열리는 마당은 모두 쫓아다니면서 그렸던 것을 처음 개인전에 선보이고, 서서히 주변의 물건, 특히 옛것에 대한 관심이 작품으로 표출되었다. 그 후 99년부터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받은 우리산하의 감동을 버릴 수 없어 캔바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옛 문인의 그림과 산수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지금의 재료와 접목시켜 현대적 느낌을 더했다. 한국화가들이 금기시하는 아크릴릭 물감사용과 실험적인 기법은 한국화의 현대적 변모를 위한 것이며, 전통적 소재를 어떻게 현대적 어법으로 변환시켜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채색과 수묵의 경계를 허물고, 철저하게 우리 미술의 정신적 뿌리를 검증하면서 이것을 형상적으로 전이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라지는 것들, 특히 사라지고 있는 옛것들, 우리의 것에 대한 재인식의 태도이며, 전통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의 작업인 것이다.

    진옥선(秦玉先, 1950~)은 1970년대 백색모노크롬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작가는 획일적인 직선으로 ‘작은상자’를 반복적으로 채워나가는 ‘답’시리즈를 대학 재학 때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손의 흔적은 없애고, 작가의 참여가 제거되어 읽혀지길 원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모노크롬회화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서구에서 보여지는 모노크롬 회화는 인위적, 기계적, 비인간적인 면을 보이는 반면, 진옥선의 회화에는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는 획일적인 직선들이 모여 하나의 입방체를 만들고, 그 입방체들이 반복되어 가득 채워진 하나의 화면을 이루고 있으나 정적이고, 인간적이며, 정신적인 면을 보인다. 이것은 바로 내면을 중요시 여기는 한국정서의 특수성이 스며있는 것이다.

    강경구(姜敬求, 1952~)는 한국화를 독자적인 수묵의 표현으로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시대의 땅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북한, 낙산, 인왕, 관악, 도봉, 수락산 등을 강하고, 두텁게 중첩된 붓질과 힘차고 둔중한 힘으로 절제된 구성과 가득 찬 양괴감을 자아내는 색채의 흔적을 표현한다. 산뿐만 아니라 한강, 밀집된 아파트, 서울풍경, 도시인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화법은 무엇보다 힘찬 에너지, 대담함, 거친 필선과 중후한 먹의 자유로운 구사가 특징이다. 단순한 필획과 중첩된 농묵으로 대상을 화면에 집약하는 화법은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 스며있으며, 작가의 시대미감이 결합함으로써 표출되어진 것이다. 겸재의 인왕제색도가 지닌 강인하고 힘 있는 필치를 드러내듯이, 서양화의 영향을 수용하면서 옛 선인들의 조형의식을 이어가는 것이다. 동양화의 맥락이면서도 여백과 농담의 차이를 살리던 전통에서 벗어나 화면을 꽉 채우고, 거침없는 덧칠로 현대적인 한국화를 창안해내었다. 예전의 실경산수에서 탈피하여 현재의 도시공간을 사생에 입각해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동양화가 지닌 특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우리미술의 전통을 찾아 나서는 시도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석주(李石柱, 1953~)는 1970년대 극사실주의 세대 가운데 기념비적 주역으로 손꼽힌다. 작업의 초기 70, 80년대에는 벽돌, 익명의 도시인들, 삶의 현장을 주제로 정치적 격변기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있다. 작가는 고뇌하고, 방황하며, 절규하고, 침묵하며, 멍하니 바라보며, 웅크리고 앉아있거나 뻣뻣하게 서 있는 무표정의 경직된 뒷모습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하는 인간의 초상화를 기록하려하였다. 90년 이후에는 미국의 극사실주의 회화의 중성적이고 차가운 특징과 다른 작가특유의 서정적, 관조적인 분위기를 가미시켜 풍경, 창, 책 등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석주의 회화에는 언제나 오늘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 작가의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 문명 속에 매몰되어 가는 자연을 다시 독자적인 시각으로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초기회화에 드러난 기존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질서와 패러다임을 위해 치열하게 부딪혔던 시대의 문명에 대한 냉소와 회의의 표출과 현재의 도시 문명적 일상에서 자연적 일상으로, 외면적 일상에서 내면적 일상으로 여유와 관조의 정취를 표현한 것은 현실의 인간적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을 회화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석철(池石哲, 1953~)은 한국화단의 1970~80년대 극사실주의 세대의 대표적 화가로서 80년대의 쿠션을 소재로 한 <반작용>, 90년대의 <미니의자>를 거쳐 <부재>의 연작에 이른다. 90년대의 미니의자는 이 땅을 지나간 숱한 사람들, 누군가가 앉았다가 떠나간 빈 의자들의 부재를 보여준다.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초라한 고물차 한 대가 간신히 몸을 버티고 서 있다.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미니 의자들의 잔상은 미미한 인간의 존재처럼 언제나 애틋하고 쓸쓸하다” 는 작가의 작업노트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각박한 현실에서의 도피와 꿈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가 기용한 의자는 뼈대만 남은 노인처럼 간신히 서 있는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의자는 현대인의 삶의 고독, 단절, 소외를 상징화한 것이다. 이렇듯 지석철의 대상에 대한 상징성과 감정의 이입은 지극히 한국적 정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희중(李凞中, 1956~)은 1985년 독일로 건너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 지도교수가 던진 다음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유럽화가들의 그림을 닮으려 하지 말라. 동양의 역사와 문화가 깊으므로 그 안에서 좋은 것을 끄집어내면 되지 않겠느냐“ 요셉보이스, 임멘도르프, 안젤름 키퍼, 게하르트 리히터 등 독일의 거장들이 수업했고, 플렉서스 운동이 처음 시작된 그곳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정서적 원형을 찾아낸 것이다. 6년간의 독일유학 후 1987년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중심과제 아래 민화의 현대적 번안을 위해 민화에 등장하는 형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하고 있다. 18~9세기 조선 후기의 민화나 문자도, 고구려 고분벽화, 도자기 문양, 무속화 또는 마야나 잉카, 인디언들의 각종 문양과 도상, 상징기호를 재해석하여 만화경 같은 세계를 그려놓는다. 행복, 축원, 장수에 대한 기원, 질병, 재해, 악귀 등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도상 등 기복과 축원, 벽사적인 의미로써의 상징을 지니고 있는 이미지들이다. 작가는 민화나 벽화에 들어있는 보편성의 세계를 추출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통해 우주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희중은 새로운 전통의 해석과 미술적 차용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이룬 것이다.

    김선두(金善斗, 1958~)는 1984년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한 <일그러진 달>을 이후로 도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을 소재로 실험적인 구도와 형상, 색감을 형성해 나간다. 작가는 특히 유랑극단의 곡예사의 모습에서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들에 깊은 감동을 받고, 이를 소재로 한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지면서 “내 그림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이어야 나다운 그림이 될까? 더 나아가 우리 그림의 뿌리는 어디에 있으며, 오늘의 우리 그림은 어찌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림은 가슴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미적 정서를 처음 싹 틔워준 고향을 찾아가보고, 그곳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남도연작들이다. 역사에서 소외되어 한도 많고 눈물도 많지만 그만큼 생활의 억척스러움과 끈기도 많은 전라도. 작가의 남도연작은 그들의 생활이 짙게 묻어나는 그림이다. 남도연작을 통해 땅의 따스함과 애정을 내면의 바탕에 두고 행(行), 그리운 잡풀들, 느린풍경을 주제로 산과 언덕의 부드러운 곡선, 휘돌아 가는 강의 유려한 흐름, 잔바람에 나부끼는 들풀과 소나무의 율동 등 자연이 만들어낸 가락을 시각의 변형, 비정상적인 구도, 추상적인 대상의 표현을 통해 독자적인 현대적 진경산수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체질에 맞는 한국회화를 구축한 것이다. 우리의 땅과 그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는 김선두의 예술성을 가늠케 하는 작가의 글을 인용해 본다.

    “나의 그림은 이렇게 사라져 가는 노래를 잉태하였던 땅과 그 땅에 살았던 이들의 마음을 찾아가는 작업의 편린들이다. 나는 이 국제화 시대에 자꾸만 잊혀지고 왜소해지는 우리들의 본 모습과 마음을 오늘에 생생히 되살리고 싶을 뿐이다.”

    ‘2010 庚寅年, 韓國美術의 中心을 열다’展은 한국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문헌에서 우리의 한국미술을 폐허에서 핀 야생화와 같다고 표현한 글귀를 보았다. 한국미술은 우리의 미술이다.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모습이 축적되어있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결합되어 있다. 비록 우리의 역사는 끊임없는 불안과 위태로운 상황으로 빚어져 왔으나 그 안에서 우리의 역사와 동거해온 예술가들은 주어진 시대의 사명감을 안고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였다.
    해방전후에 태어나 식민의 잔해도 채 가시기전에 전쟁과 민족분단을 체험하고 혼돈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세대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현대회화가 출발한 1950년대를 시작으로 서구의 영향아래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예술가들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국적 정착’을 향한 한국현대미술의 전개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던 1970~80년대 즉,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뿌리내리는 시기로 평가되는 시대에 활발한 두각을 드러낸 작가들을 선정하여 무분별하게 들어온 서구의 영향 가운데서도 한국의 정체성을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세계를 이룩해 온 작가들의 궤적을 보이고자 하였다.
    필자는 한국미술을 ‘매난국죽’에 은유해 본다. 혹한 추위와 바람 속에서도 맑은 향을 뿜으며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 깊고 어두운 산속에서도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린다는 난초, 늦은 가을 찬서리를 견디고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국화, 시린 겨울 가운데에도 언제나 푸른 잎을 유지하는 대나무와 같이 고결한 군자의 인품을 닮은 미술, 그것이 한국 미술이다. 끝으로 한국 미술을 아래과 같이 우리 국화(國花)인 ‘무궁화’의 의미로 담아본다.

    ‘영. 원. 히. 피. 고. 또. 피. 어. 지. 지. 않. 는. 다’

    전시제목한국미술의 중심을 열다

    전시기간2010.01.08(금) - 2010.02.10(수)

    참여작가 김선두, 송수련, 이희중, 한만영

    관람시간10:00am~22: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éoul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30 )

    연락처02-730-7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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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20 ~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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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lling Eyes: Proposals for Media Façade 눈 홉뜨기: 미디어 파사드를 위한 제안들

    대안공간 루프

    2024.11.13 ~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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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과 색의 시선 Perspective of Lines and Colors

    필갤러리

    2024.10.10 ~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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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회 畵歌 《플롯: 풀과 벌의 이야기 Plot: The Story of Wild Grasses and Bees》

    한원미술관

    2024.08.29 ~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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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종 개인전 《white》

    페리지갤러리

    2024.10.11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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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세동보 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 삼아

    간송미술관

    2024.09.03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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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광주비엔날레 기념특별전 《시천여민 侍天與民》

    광주시립미술관

    2024.09.06 ~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