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미
태교2 장지에 채색, 105x141cm, 2010
신선미
도움의 손길1-2 장지에 채색, 79x85cm, 2010
신선미
그들만의 사정 장지에 채색, 79x181cm, 2010
신선미
오르골 3-1 장지에 채색, 56x73cm, 2010
신선미
오르골 3-2 장지에 채색, 56x73cm, 2010
신선미
오르골 3-3 장지에 채색, 56x73cm, 2010
신선미
태교1 장지에 채색, 105x141cm, 2010
신선미
태교3 장지에 채색, 69x143cm, 2010
신선미
도움의 손길 1 장지에 채색, 79x85cm, 2010
신선미
행복한 방2 장지에 채색, 128x78cm, 2010
신선미
welcome 장지에 채색, 130x162cm, 2010
신선미
welcome 2 장지에 채색, 106.5x194.5cm, 2010
신선미-일탈과 유머가 깃든 여성풍속화
박영택 (경기대학교교수, 미술평론)
가냘픈 고양이 울음 소리, 아이의 옹알거리는 소리, 곤한 잠을 자는 이의 숨소리, 머리를 쓸어 넘기는 참빗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적막한 공간에 그런 음향만이 떠도는 풍경이다. 그렇게 곱게 빗어 넘긴 깔끔한 머리와 화사한 한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세수를 하거나 졸고 있거나 아이를 돌보고 있다. 그 옆의 고양이가 이를 따라한다. 주변 풍경은 사라지고 인물과 소도구들만이 자리하고 있는 화면은 은은한 황토장지의 색상으로 절여져 있다. 그 위로 정교하게 묘사되고 차분하게 착색된 젊은 새댁의 비근한 일상 풍경이 응고되어 있다.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와 채색은 화면을 순도 높은 완성도로 이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묘사력이 두드러진다. 여기까지라면 일반적인 묘사 중심의, 진부할 수 있는 채색화일 텐데 화면 안의 상황 설정, 이야기성이 좀 특이하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 비일상적인 장면의 유머러스한 개입이 주는 파격의 맛이 있다. 이 상반된 두 요소의 자연스러운 결합과 섞임, 그리고 정교한 작품의 완성도가 신선미 작업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근작은 아이를 키우는 자신의 경험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자기 삶의 경험이 좀더 구체성을 띄는 부분이다. “내 삶의 테두리 안에서든 밖에서든 일어나는 일들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이러한 일들을 그림 형식의 이야기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면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작가노트) 화면 구성도 단일 프레임이 아니라 그 옆에 위치한 작은 화면으로 연결되어 나가는 연출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여성의 복식고증에 충실한 것만이 아니라 동양 삼국의 여성 복식, 규방 문화도 반영 (작품‘welcome’) 하고자 한다.
혼자만의 무료하면서도 조금은 반복되는 하루의 삶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주인공인 여자의 하루를, 일상의 삶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그 여자는 작가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매개다. 그래서 일종의 그림 일기에 해당한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혹은 그 일상에 상상된 장면을 겹쳐 올려 놓았다. 해서 누군가의 하루를 은밀히 엿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여자와 한 쌍을 이루는 고양이, 그리고 그 주변으로 매우 작은 여자들이 분주하다. 작가는 그녀들을 ‘개미요정’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삶 속에서 문득 발견하는 개미가 연상된다. 개미는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일상에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주변을 살피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모든 곳에서 바삐 움직이는 개미들을 발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고, 크지 않다고 없는 것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이는 것만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사유한다. 이 그림은 ‘망막중심주의’에 은연중 딴지를 건다. 볼 수 없고 보여지지 않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 준다.
“어느 날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 나타난 개미들이 자기 몫을 챙겨 이내 사라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렇듯 방심한 틈을 노리고 나타나는 존재들이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꿈과 현실의 경계,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조용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우리 자신은 그런 알듯 모를 듯 스쳐가는 장면을 우연한 착각이거나 자신의 실수로 여기며 부정하려 한다. ‘개미요정 시리즈’는 점점 커 가면서 무언가를 잃어 가는 우리들의 어릴 적 순수함을 되찾고 싶고, 주위에서 잠시간에 스쳐 놓칠 수 있는 또 다른 기적들의 존재를 그림으로 옮겨 보았다.”(작가노트)
현실적 풍경에 느닷없이 비현실적인 장면이 개입되어 버린 형국이다. 익숙한 그림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현실과 꿈, 실제와 가상이 공존하고 실제 크기의 사람과 너무 작은 사람들이 뒤섞였다. 작가에 의하면 그녀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할 것 같은 이들이란다. 아니 순수한 이의 눈에만 보이는 그런 존재란다. 그 요정들은 이곳저곳에 출몰해서 기웃거리고 배회하고 웅성거린다. 특히 주인공이 자고 있으면 그 주변에서 마치 방해를 놓듯이 분주하다. 요정들은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더욱 활기차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을 때 요정들은 활발히 살아난다. 어쨌든 이 작은 요정들이 그림에 활력을, 재미를 불어넣어 준다. 동일한 한복을 입고 나타나는 그 작은 여자들의 몸짓과 표정이 그림 안에 생동하는 이야기를, 상황을 맥박 치게 하는 것이다.
신선미의 그림은 한복 입은 여자의 초상화다. 생활 속의 여자상이다. 외형적으로는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의 전형을 보여 준다. 마치 복식을 고증하듯 정교하게 재현한 한복은 이 그림 안 풍경을 과거의 시간대로 몰고 가거나 전통회화의 한 자락을 엿보게 한다. 마치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런데 그 사이로 현재의 풍경들이 문득 출몰한다. 전통과 현재가 기이하게 스며들어 있다. 전통회화의 패러디라고 보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 전통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하고 있고 그 문맥을 은근히 비틀고 있다. 한편 한복을 재현하는 솜씨가 돋보이는데 작가는 말하기를 어린 시절부터 한복에 매료되었고 그 복식에 깃든 색채와 문양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런 한복을 입고 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과거의 여자들을 현재의 문맥 안으로 불러들여 가상의 삶을 연기해 보게 한다. 아니면 작가 자신이 과거 전통적인 여인으로 변신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대표적 그림은 산수화, 사군자, 초상화 등이다. 한결같이 남성들의 몸을 재현하고 있으며 남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다. 인물산수화에는 남성들만이 거주하는 자연 공간이 그려져 있다. 자고로 군자가 되기 위해 좋은 산수에 은둔하며 사는 장면, 혹은 수양과 깨달음의 포즈들 이다. 세속의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난 은사는 만물과 내가 하나 되는 경지를 꿈꾸며 천지자연의 정신과 합일하는 궁극적 즐거움을 희구한다. 자연과 일체가 되어 심미적 자유를 얻고자 하는 남성 사대부들의 욕망이 투사된 그림이 바로 산수화다. 그것은 오로지 남성들에게만 허용된 공간이자 남성 육체만이 재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성 이미지는 가부장제 하의 가치관에 의해 열녀 이미지로 혹은 양반 사대부 계층의 노리개였던 기생 이미지로 국한되어 묘사되었다. 아니면 풍속화에 등장하는 일하는 여자들, 생활 속의 여자들이 더러 있을 뿐이다. 그들은 결국 남성의 시선에 의해 재현된 여자들이다.
신선미가 보여주는 여성 이미지는 전통적인 복식을 하고 있지만 이전의 미인도나 풍속화 속이 여성 이미지를 단순히 복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인도의 전통을 분명 의식하고 있어 보인다.) 전통시대를 살던 여자들이 지금 이 순간으로 이동해 온 듯 한데 그 안에서 한복이란 전통 복식으로 옭죄임을 당했던 여인들의 삶을 슬쩍 흐트러뜨린다. 그녀들의 오랜 체증을 풀어 주려는 것도 같다. 단아한 한복과 화려한 장신구로 곱게 치장한 여자가 세수를 하거나 잠을 청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순간 옷 매무세가 조금 흐트러져 있거나 버선발 위로 맨 살이 드러나거나 얼핏 치마가 들춰져 있는 상황을 약간의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이 부분이 실소를 동반시키고 해학적인 요소가 비집고 들어가는 공간이다. 또한 어느 정도의 에로틱한 분위기가 은근히 떠돈다. 바로 이러한 작은 일탈이 이 그림을 흥미롭게 대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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