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보기
2010.02.19 ▶ 2010.03.10
2010.02.19 ▶ 2010.03.10
남현주
공존Ⅲ 도침장지에 수간채색_은분, 66x53cm, 2008
남현주
공존Ⅳ 도침장지에 수간채색_금분, 66x53cm, 2008
남현주
그들이 사는 세상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73x61cm, 2009
남현주
그의 방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61x73cm, 2009
남현주
근대보기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53x45.5cm, 2009
남현주
근대보기Ⅲ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53x45.5cm, 2009
남현주
낙원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45.5x53cm, 2009
남현주
루소보기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60x72.5cm, 2007
남현주
세상속으로 도첨장지에 수간채색, 116x91cm, 2008
남현주
아름다운 공존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45.5x53cm, 2009
남현주
핑크빛 꿈을 꾸다Ⅰ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116x91cm, 2008
남현주
핑크빛 꿈을 꾸다Ⅱ 도침장지에 수간채색, 61x73cm, 2009
필자는 개인적으로 미술작품 감상하기를 시작할 때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이며 현대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대표적 책, 《모래의 책》에 비유하기를 즐긴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문학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문학의 다원성, 혹은 텍스트의 다원성을 '모래의 책'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즉 모래시계가 언제나 다시 뒤집을 수 있는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 《모래의 책》은 모래처럼 언제나 지웠다가 다시 읽을 수 있고 다시 쓸 수 있는, 읽는 이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지식에 따라 변하는 카멜레온과 같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인식한 대표적 작품이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미술을 인식하고 감상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 남현주는 작품 안에 의자와 창문, 혹은 전면에 내세운 공간과는 확연히 이질적인 공간을 상충시킴으로써 보르헤스의 화자話者가 마을에서 샀던 모래의 책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연출한다. 작가는 스스로 설정한 구도와 사물, 이중적 의미들을 사용함으로써 관람자의 환상과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도록 종용한다. 그림은 이렇게 시작한다.
작가 남현주는 일상의 소재를 일상적이지 않은, 혹은 일상이 병치되어 부유하는 공간에 상충시킴으로써 특정한 공간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공존(2009)>이나 <공존 3, 4(2008)>의 작품처럼 민화(民畵)병풍으로 가려진 공간 뒤로 보이는 허공의 조합이라든가, <근대보기(2009)>시리즈에서 보이듯 단순한 색면 공간의 한 면을 전원적인 근대 풍경화로 병치한다. 그는 민화를 통해서는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색감을, 그리고 전원적 풍경화에서는 작가의 이상과 환상을 구현하는 듯 하다. 현실에서는 구성상 불가능한 설정을 그림에서는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 읽기를 여기서 멈춰야 한다면 재미가 덜 할 것이다.
그녀의 공간에 들어서면 손에 잡힐 것 같은 묘사력과 흡입력으로 관람자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늘 상 그곳을 드나들었던 것처럼 우리는 들어가 빈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제1공간 너머의 공간을 다시 한번 관람한다. 작품 안 병풍 뒤의 푸른 허공과 나비들의 군무群舞에서 자유를, 그리고 근대여인의 반가운 마중과 바람따라 휘어진 빨랫감에서 그리움과 향수를(<근대보기1,2,3> 각2008), 작품 속에 차용한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의 그림에서 허구가 주는 환영(<루소보기,2007>)을 떠올리게 된다. 즉 좀더 찬찬히 둘러보면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단순한 ‘공간의 중첩’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우선 다중의 함의를 내포하는 소재들을 차용함으로써 관람자의 인상을 분산시킨다. 여기서 분산시킨다는 것은 관람자가 수용한 인상이 일률적인 감상을 도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람자 각자의 다양한 감상하기를 종용함을 의미한다. 즉 화면 안에 배치된 의자, 달, 의자를 압도하는 꽃은 그들의 일상성과 함께 존재하는 비일상성, 혹은 현실과 환상의 중간통로로 거기 그려져 있는 셈이다.
분명히 남현주의 작품들은 안과 밖, 뜨거움과 차가움, 건과 습이라는 이중적 경계가 불명확한 사물들이나 공간을 취사선택함으로써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써 일상을 ‘비일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불명확한 사물들의 역시 모호한 경계는 화면구성 상의 문제로 우리의 인식을 이동하게 한다. 작가는 일상의 ‘정지장면’을 주로 그려왔는데 이는 매우 정적인 순간이어서 긴 호흡을 가지고 관찰한다 하더라도 별 미동이 없어 보이는 공간과 상황, 시간을 그린다. 주로 짙은 원색과 평면적으로 단순화된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화면은 전혀 동적이지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깊은 곳의 동요를 일으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멈춤'과 ‘움직임’의 모호한 경계는 앞서 언급한 소재적 경계와 함께 그가 겨냥하고 있는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 작업의지를 보다 확고히 한다.
현실과 환상을 오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이미 예술의 오래된 매력이다. 그 매력이 마음껏 발산된 남현주의 이번 전시에서 일상에 숨겨진 환상의 통로를 발견하고, 시공간적인 환영을 경험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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