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남 개인전
2012.07.03 ▶ 2012.07.17
2012.07.03 ▶ 2012.07.17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162x97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130x70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116x73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116x73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116x73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116x73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110x70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60.8x91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65x53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61x41.3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53.3x34.0cm, 2012
박상남
걷다, 얻다, 나누다 혼합재료, 53.3x45.8cm, 2012
도시의 길 위에서 발굴한 시간(時間)의 유적(遺跡)
추상적인 화면 앞에 선 관객은 당황하기 쉽다. 구체적인 대상과 그 대상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생경한 화면을 이해해가며 편안하게 관람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추상화 전시를 열어 보면 그저 보는 대로 느끼고 즐기면 되지 하다가도 무엇을 그렸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관객을 적잖이 보게 된다. 물론 화면을 대할 때 반드시 무엇을 그렸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알 필요는 없다. 추상화풍이라는 것이 본래 구체적인 대상과 이야기를 벗어나 기본적인 조형요소 즉 점, 선, 면, 색채 등만으로 대상을 해체 혹은 단순화하거나 이야기를 제거 혹은 숨기면서 표현해 내는 화법이기 때문이다.
박상남의 작품은 기본적인 조형요소들만의 변주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런 추상화풍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상과 동시에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과 그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간접적이지만 적극 드러내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구상화풍의 범주에도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두 가지 화풍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작업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추상적이면서도 구상적인 화풍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조형요소들만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은 곧 어떤 대상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나아가 그 모습 속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듯 추상과 구상을 동시에 내포한 이중적인 화면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대상과 이야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도시의 길 위에서 만나는 이미지들이고 그 이미지들 속에 담겨 있는 삶의 이야기다. 도시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빈번히 이용하는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색과 무늬들이고 그 위에 진하게 새겨진 삶의 이력들인 것이다. 매우 친숙하면서도 그러나 때론 벗어나고 싶은 회색빛 도시의 외면이자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내면인 것이다. 작가는 바로 그런 도시의 피부와 그 피부밑에서 뛰고 있는 도시인의 맥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회색빛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현대, 문명, 도시의 삶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질료다. 이 질료들을 통해 현대의 문명과 도시는 비로소 세워졌고 복잡다기한 생활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 생겨난 속도와 집적은 도시인에게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공해와 질병을 통해 괴로움도 유발했기에 또한 양면성을 지닌 질료들이다. 결국 이 질료들은 소유를 원하지만 소외되어 가는 도시인의 딜레마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회색빛 도시에는 대개 조증과 울증이 공존한다. 말하자면 도시에서의 삶이란 이런 조증과 울증의 교직으로 이루어진 복잡다단한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뒤섞여 켜켜이 쌓인 생활의 흔적이자 딱지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문명은 윤택할지 모르지만 정서는 황량한 도시에 무심하게 시간이 흐른다. 아스팔트 길과 콘크리트 벽면 위로 어김없이 시간의 자취가 수 놓인다. 자연스레 길과 벽면 위에는 긁히고 파인 무수한 생채기가 생겨나고 그 생채기는 다시 메워지고 덮여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시 쌓이기를 반복한다. 다양한 점, 선, 면 그리고 색채의 향연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 길 위를 걷고 그 길 위에서 만난다. 삶은 길 위에서 시작해 길 위에서 끝난다. 작가는 바람과 같이 도시의 도로망을 따라 길과 벽면을 휘감아 돌며 지나가는 시간의 지문을 들춰내고 그 속에 녹아 있는 감춰진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산책하듯 도시의 길을 따라나선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산재해 있는 이미지들을 만나고 그것들을 수거한다. 대부분 도로 위와 그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흔한 이미지들이자 시간으로 덧칠된 추상적인 조형요소들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작가의 특별한 의도와 기법을 통해 그만의 미감으로 치환된 개성적인 화면으로 표출된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 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시멘트와 종이라는 기본재료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눈에 띄는 조형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금색 조형이다. 도시의 길 위에서는 좀체 만나보기 어려운 금색 조형이 어엿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가 표출해낸 화면에는 종종 금색 조형이 특징적으로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래로 시간은 금이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은 존재를 가능케 하는 두 토대다. 삶은 그 존재의 두 토대 없이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 두 토대 중에서도 유독 시간은 흔적을 주도적으로 생산한다. 삶은 시간을 통해 계속되고 기록된다. 작가는 이런 시간의 특성과 중요성에 특히 주목하는 것이다. 금색 조형은 바로 공간 속에서 얻은 이미지들을 재구성한 화면처럼 보이는 작가의 작품이 실은 공간적인 이미지를 빌어 시간의 자취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드러내 주는 실마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어쩌면 화가라기보다는 고고학자가 아닐까 싶다. 도시의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이미지들을 그대로 그려내기보다는 그 속에 묻혀있는 시간의 유적을 발굴해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도시의 길과 건물 위에 남겨놓은 유물들을 수집, 분류하고 정리, 요약해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삶의 갖가지 흔적들을 솎아내고 추상과 구상이 혼합된 특유의 조형 언어로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파묻혀 잊혀가는 소소한 생활의 역사를 복원해 공간적인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간의 유적을 되살려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표본화와 같은 것이라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 주용범 빛갤러리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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