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현
꽃잎 Petal, Mixed Media, 165x133x315cm, 2012
이세현
해안선 Shoreline, Mixed Media, 136x150x243cm, 2012
이세현
Between Red-157 Oil on Linen, 300x200cm, 2012
이세현
Rainbow in Black Oil on Linen, 200x200cm, 2012
이세현
Between Red - 156 Oil on Linen, 60x200cm, 2012
Plastic Garden, 자연에 역사를 입히다.
이세현의 붉은 산수는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 비주얼이 강하다. 몇 년 전 런던에서 본 전시가 그랬다. 조그만 흰 방에 붉은 산수 네 점을 걸었는데, 흰 벽에 반사된 붉은색이 영롱한 형광 색을 띠면서 방 전체가 형언할 수 없는 핑크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SF 영화에 UFO가 등장할 때처럼 비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그런 몽환을 헤치고 한 발 더 다가가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사실적이고 익숙한 풍경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 주변의 자연, 건물, 마을, 사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아주 현실적이다. 그 현실은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하다. 근현대사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다. 그림의 어떤 부분은 마치 몸속의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뽑아내어 그려놓은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자연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한 장의 그림 속에 인간과 자연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학이나 건축, 음악이 가지지 못한, 성공적인 회화 작품만이 누릴 수 있는 큰 장점이자 특권이다.
이런 장점들은 오래된 편견 혹은 편의적 구분을 극복한 지점에서 태어났다. 작가가 문제 삼는 가장 큰 편견은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에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화의 삼원법은 풍경의 앞면, 뒷면, 윗면을 인간이 원하는 각도로 절개해서 봉합해놓은, 자연을 억압하고 이기적으로 지배하려는, 인간이 자연에 가한 가장 큰 시지각적 폭력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동양적 사유가 절대 자연 친화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서양보다 인간적이지도 못하다. 이런 비판은 동양 지식인 계층의 취미이자 애완의 대상이었던 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분재는 인간이 자연에 가장 직접적으로 손을 댄 조작이자 조각이다. 동양이 추구한 자연미의 최고 경지라는 분재에서 그는 아름다움보다는 인간의 잔혹함과 억압을 읽어내고 있다. 이런 고정관념에 대한 '살부 행위'를 통해서 탄생한 것이 붉은 산수와 분재 산수다. 이런 생각들은 다시 분재 조각으로 이어진다.
그의 작업은 그리기에 내재된 인간의 폭력적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자연에 각인된 역사의 상처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며,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내보인다. 그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의 상처 모두를 아우른다. 강한 비주얼에만 이목을 빼앗긴다면 작업 속에 녹아 있는 녹록지 않은 생각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다행인 것은 그가 자신의 작업 속에서 내용과 형식의 일치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을 넘나들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결적으로 만들어냈다. 그의 생각들은 상당히 도발적이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가 일궈낸 형식에는 선배들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이세현은 이런 작업들을 통해 자신만의 소화기관과 배설기관을 가진 작가가 되었다. ■ 윤재갑
1967년 경남 통영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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