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145x227cm, 2012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194x259cm, 2012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227x363cm, 2011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259x386cm, 2011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259x386cm, 2012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259x386cm, 2012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259x386cm, 2012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259x386cm, 2012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canvas, 259x594cm, 2012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paper, 315x381cm, 2011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paper, 318x381cm, 2011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paper, 364x381cm, 2011
오원배
무제 Untitled mixed pigment on paper, 364x381cm, 2011
오원배 wonbae, oh
금호미술관은 인간의 실존과 자아에 대한 탐색을 근간으로 사회와 인간 본질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는 작업들을 선보여온 작가 오원배의 초대전을 갖는다.
극적인 제스쳐의 고뇌하는 듯한 인물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의 회화 작업은 인물들이 전면에 배치되고, 모호하지만 입체적인 건물이나 공간이 배경이 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오원배의 회화작업은 화면속의 인물과 배경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작가의 내러티브가 전달되고 있다. 우선 인물들은 역동적인 몸짓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거나 고뇌하는 듯하다. 또한 인물들의 등장 배경이 되는 장소는 역동적인 산업 현장의 한 공간이긴 하나, 지금은 폐허가 된듯한 공장이나 교각 아래 등 사회 곳곳의 구조물들이다. 이러한 고뇌하는 유령과 같은 인물들과 어우둔 배경을 통해서,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실존에 관한 그의 지속적인 고민들을 담아왔다.
회화적 몸의 언어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Body in Painting
1.
작가는 이번 전시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실존에 관한 그의 지속적인 고민들을 담은 회화 작업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회화적 몸의 언어>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기존의 인간의 고독과 실존의 부조리함에 대한 표현뿐 아니라, 어두운 환경 속에서의 허망함과 함께 분출되는 인간의 억척스런 생명력과 같은 양가성을 더욱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인간의 생명력 혹은 생에 대한 의지를 2003년 금호미술관의 전시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을 토해 드러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화면 속에 담긴 인간들의 역동적인 동작과 극적인 제스쳐 등 신체 언어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때로는 괴로움에 뒤틀린 왜곡된 형상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순진무구하게 뛰어노는 소년의 모습으로 분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마저도 더욱 극적으로 그려졌는데, 기존의 작업들에서는 몸부림에 가까운 동작에도 불구하고 허공을 향한 허무한 시점이나 소극적인 시선을 담아왔지만, 전시되는 근작들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이 훨씬 더 정면을 향한 적극적이고 분명한 의지를 보이는 시선을 취하고 있다. 또한 극단적인 구도와 인물의 시점 그리고 관객이 보게 되는 작품 전체의 역동적인 시점 등이 기존의 작가의 작업들에서보다 더욱 극적인 구도를 취하면서, 생명성이 더욱 부각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공간 배경들보다 더욱 구체화된 배경들이 그려졌는데 정미소와 같은 산업 현장의 인공구조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 공장과 같은 산업 혁명의 결과물인 장소와 기계들이 인간의 소외와 고독을 설정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 파악하는 동시에 이들 공장들의 시설과 기계 구조물들이 가지는 조형성에도 집중했다.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기계화된 인간의 실존적인 고뇌를 제공하는 이 공간이 지닌 조형적인 형태를 시각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작가는 지금껏 드러내고자 했던 인간의 고독과 실존의 부조리함, 그리고 생명력을 더욱 함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 중에는 인물들이 배제되고, 공장과 그 내부의 기계 시설물들로만 구성된 대형 회회 작업들을 선보인다.
2.
작가의 인간의 실존에 대한 양가적 생각들을 담은 이번 전시는 700~1000호 정도의 대형 회화 20여점과 200여점의 드로잉 작업들로 구성된다.
1층 전시실에서는 역동적이지만 어두운 인물들과 공간이 등장하는 그의 대표적인 회화 작업들이, 2층 전시실에서는 인물들이 배제된 공간과 구조물만이 그려진 작업들이, 그리고 3층 전시실에서는 마치 마티스의
회화적 몸의 언어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Body in Painting
정 영 목(서울대 교수)
I.
이번 가을 금호미술관은 오원배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작가로서의 어느 정도 연륜도 쌓였거니와, 지금도 청춘처럼 그림에 임하는 화가의 모습에서 새삼 신선한 기운(氣運)을 느끼면서, 필자도 제의 받은 작품평을 새롭게 써보려 노력한다.
화가의 기존 작품들과 비교하여 이번 개인전의 작품들은 대작 위주의 스케일과 극단적인 위, 아래의 시점을 적용하여 표현적인 강도를 높였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원근의 의식적인 왜곡이 몸짓과 함께, 주제와 형식에 임하는 작가의 회화적 태도를 더욱 치열하고 돋보이게 한다. 때문에 작품에 밴 그 열정의 강도는 화가의 나이나 과거와 비교하여 더욱 거친 에너지를 발산한다. 말을 머금은, 혹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의 실존을, 아니면 어느 현실의 절정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의 언어 같은 것? 즉, 몸이 언어를 대신해 표현의 강도를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회화적 전략 같은 것이 작가가 추구한 이번 전시의 핵심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원배의 화두는 늘 인간이었다. 그것도 돌이켜보니 항상 어둡고 칙칙한, 일그러져 왜곡된 형상의 인간들이었다. 때로는 가면 같고, 어떤 때는 투명 인간처럼 윤곽선(outline)으로, 그러나 왠지 토종의 다듬지 않은 순수함의 모습으로 몸부림친다. 한편, 이 몸부림은 어둠과 허무의 단순한 발광이 아닌 듯. 오히려 어둠과 허무를 넘어, 투쟁과 고뇌를 감내한 이 시대, 우리의 토종적 “짜라투스트라” 같은 강인한 생명력의 발현이다. 마치, 어둠과 허무 너머의 원천적인 “생의 환희”를 마음으로 읽어내기를 바라는 듯, 화가가 그린 인간은 자신의 “몸”을 뒤틀어 “몸의 언어”로 말하려 한다.
II.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포함하여,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이 “몸”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발현자(發現者)로서의 주체적인 또는 대상으로서의 객체적인, 그것의 정신적인 또는 물리적인, 혹은 그 둘의 측면들이 혼합된 무엇이든 간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해부학상의 구조와 조직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Hómo sápiens)로서 우리의 몸에 관한 관심은 범세계적이며,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몸의 표피적인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인종(人種)으로서 다른 동물들과 다른 우리의 서로를 인식해 왔다. 그러나 몸을 둘러싼 서로 간의 인식은--그 바탕이 주관적/객관적, 감성적/이성적, 과학적/비과학적, 동양적/서구적이든 간에--자신(自身)과 타자(他者)와의 관계에서 발생한 엄청나고 복잡한 경험의 역사를 형성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험의 역사는 사회적인 수정과 변경의 결과로 빚어진 인위적인 문화에 둘러싸인 인간의 몸이 적응/반응하면서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토대로 무수히 갈라진 인식론적인 지식들을 동원하여 인간의 몸에 관하여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한다. 때문에 우리의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적응/반응하는 물리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적인 자원과 역량, 무수한 사회적 구성인자들이 상주하고 있는 일종의 저장탱크이자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몸은--그 스스로, 또는 인식론적인 지식들에 관련하여--거의 동시적으로 상당히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생각하기에 우리와 친숙한 것 같지만 위험스럽고,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신비스럽고, 상징적이면서도 직접적이고, 지극히 물질적이지만 신성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인간은 그들 몸과 관련된 인위적인 문화를 스스로 만들면서도, 이미 형성된 인위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거나 거부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사회에 노출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시각적으로 치장하기도 하고, 언어와 행동 같은 보편적인 경험을 습득해감으로써 그들이 속한 사회와 문화의 일원으로서 활동한다. 이러한 활동은 인간의 몸을 단순히 생물학적이나 문화적인 영역에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관련하여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개성(個性)’이라는 또 다른 영역과 만나게 한다. 여기에서 ‘인간의 몸’이라는 광범위한 주제는 예술과 관련한 좀 더 직접적인 주제의식을 갖게 된다. 즉, ‘개성’을 가진 ‘나의 몸’은 내가 속한 그룹, 민족, 인종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표현하는 장소이자 도구이기도 하다. 육체적인 또는 문화적인 한계 내에서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신체와 더불어 ‘나’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때문에 ‘나’의 몸은 내 경험의 대상이기도 하거니와 내 경험의 매체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오원배가 그린 인간의 몸은 그 스스로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III.
그렇다면 “몸”의 주제적 일관성에 대한 작가의 집념과 끈기는 무엇일까? “몸”을 선택한 화가의 태도를 거창한 형이상학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화가와 가까운 불교적 심성이 근간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실존과 현실의 문제로서 한국현대사의 정치, 사회, 문화적 격동기를 감내한 그 세대 한 작가로서의 표현적 성찰이 “몸”으로의 긴 여행을 떠나게 한 것은 아닐까? 실존의 벽이 두꺼우면 두터울수록 작가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며 이율배반적일 수 있다. 아마도 이 “여행”만큼은, “몸”의 풍경화를 제작하는 시간만큼은, 작가는 자신의 실존을 치유하는, 이상과 현실의 벽을 허무는, 유일하게 시공간을 초월한, 마음의 전략으로서 “몸”을 상정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실존의 명암과 순환의 경험 속에서, 과거 하나의 대상(인간)을 표상했던 “몸”의 표현적 성찰이 자기와 세계를 분리시킨 관점이었다면, 지금은 자신 속에 “몸”이, “몸” 안에 자신이 함께 실존하고 있음을 화가는 체감하는 듯하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몸에 기대와 절망, 또는 생성과 소멸의 양면성이 공존함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화가가 궁극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을 포함한 우리의 인간이 잠시 “몸”에 머물다 사라지는 “허무”의 존재라는 인식과 함께 도달하는 생명에의 또 다른 원천이었을 것이다. 이제, 작가에게 “몸”은 그의 실존을 달래주는 은둔의 휴식처도, 표현적 성찰이 완결되는 이상(理想)으로서의 대상도 아닌, 자신의 삶 그 자체일 것이다.
1953년 인천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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