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카푸어
큰 나무와 눈 스테인리스 스틸, 15x5x5metres, 2011, ©Anish Kapoor,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아니쉬 카푸어
붉은 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 혼합재료와 안료, 800x800x200cm, 1981, ©Anish Kapoor, Courtesy the artist
아니쉬 카푸어
무제 섬유유리와 안료, 250x250x167cm, 1990, ©Anish Kapoor,밀라노 프라다 컬렉션 소장
아니쉬 카푸어
동굴 코텐스틸, 551x800x805cm, 2012, ©Anish Kapoor,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아니쉬 카푸어
나의 몸 너의 몸 섬유유리와 안료, 1999,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아니쉬 카푸어
나의 붉은 모국 왁스, 유성 물감, 철구조물과 모터, 2003, ©Anish Kapoor, Courtesy the artist and Lisson Gallery
아니쉬 카푸어
노랑 섬유유리와 안료, 600x600x300cm, 1999, ©Anish Kapoor, Courtesy the artist and Lisson Gallery
아니쉬 카푸어
현기증 스테인리스 스틸, 2012, ©Anish Kapoor, Collection of the artist
삼성미술관 Leeum은 2012년 10월 25일부터 2013년 1월 27일까지 세계 미술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작가의 초기작인 Pigment 작품부터 카푸어 작업의 핵심인 Void 시리즈, Auto-generation 시리즈, 최근작인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등 핵심적이고 중요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리움의 기획전시실은 물론 야외 정원까지, 전관을 이용하여 삼성미술관 Leeum의 건축 공간과 어우러지는 대작들이 전시되어 카푸어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감상할 기회가 될 것이다.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카푸어는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예술 개념과 정서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명상적인 작업을 선보여 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카푸어는 존재와 부재, 비움을 통한 채움, 육체를 통한 정신성의 고양 등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요소들이 서로 수렴하고 소통하는 융합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통해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선정, 1991년 터너상을 수상하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또한 2002년 런던 테이트 모던의 유니레버 시리즈로 소개된 거대한 <마르시아스 Marsyas>(2002),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의 대형 조각 <구름 대문 Cloud Gate>(2006), 2009년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의 생존 현대미술가 최초 개인전, 파리 그랑팔레의 <리바이어던 Leviathan>(2011)등 여러 성공적인 프로젝트와 전시로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의 기념 조형물 <궤도 Orbit>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최초의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으로, 작가로서의 존재를 알린 초기의 독창적인 안료 작업, 조각 내부의 빈 공간을 새롭게 인식시켜 준 보이드(Void) 작업, 존재의 자생적 발생에 대한 최근작 붉은 왁스 시리즈, 대형 스테인리스 조각 등 총 18점이 전시된다.
특히, 삼성미술관 Leeum의 건축물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고난도의 대규모 작품들이 설치되어 눈길을 끈다. 바닥을 실제로 뚫는 Void 시리즈 중 중요작의 하나인 <땅 The Earth>(1991)이 약 20년만에 처음으로 전시되며 건물의 전체 벽면을 이용한 <노랑 Yellow>(1999)과 <내가 임신했을 때 When I am Pregnant>(1992)가 설치되어 직선적이며 조각적인 렘 쿨하스의 건축에 역설적으로 부드러운 곡선과 강렬한 색상으로 건축화된 조각을 보여 준다.
또한, 런던 로열아카데미와 빌바오 구겐하임에서 소개된 카푸어의 <큰 나무와 눈 Tall Tree & the Eye>(2009)이 처음으로 리움 야외 정원에 설치된다. <큰 나무와 눈>은 15m 높이의 73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공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작품으로 주변 상황과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향,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작품이 선사하는 가지각색의 이미지들을 통해 관람객들은 작품과 만나는 순간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이로움을 경험할 것이다.
카푸어의 예술은 통상 동서양 문화의 만남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순히 이질적인 두 문화의 만남을 넘어, 보다 보편적이고 신비로운 우주적인 세계를 지향하며, 그것은 곧 인간과 자연 본연의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부박하고 현실적인 일상의 문제를 넘어 마음을 한 번 쯤 가다듬고 삶의 진리를 돌아보며 마음의 정화를 얻을 수 있는 예술, 카푸어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믿는다.
■ 아니쉬 카푸어의 예술 세계
아니쉬 카푸어는 1954년 인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에서 유태인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9세 때인 1973년, 그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혼지미술대학(Hornsey College of Art)을 졸업하고 첼시미술학교(Chelsea School of Art)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 영국 미술은 안소니 카로(Anthony Caro)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학창 시절 카푸어는 비물질적인 세계와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시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추구한 작가들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 서구의 미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예술 지상주의의 형식주의 미술보다는 심리적이고 우주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에 더 이끌린 것으로, 작업의 큰 방향은 이미 잡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79년, 학업을 마친 카푸어는 3주 간 모국 인도를 여행하면서 삶과 철학과 종교가 한데 어우러진 인도인들의 삶을 통해 “시적이고 철학적인 기원”, 근원적인 세계에 눈을 뜬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오랜 동안 서양 미술 교육을 받으면서 얻지 못했던 예술적인 의문에 스스로 해답을 얻고, 자신의 작업에 뿌리를 찾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강렬한 색상의 안료 작업을 시작한다. 이 작업은 인도인들이 힌두 사원에서 의식에 사용하는 원색의 물감가루 더미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작품은 물론 주변의 바닥에까지 뿌려진 안료로 인해 바닥과 작품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어 마치 작품이 바닥과 하나가 된 듯 보였다. 명상적이고 고요한 안료 작업으로 그는 80년대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고, 일약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안료 작업은 바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면서 바닥 아래의 보이지 않는 공간, 내부 등 이제까지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탐구로 발전하게 된다.
카푸어의 보이드 작업은 그의 예술 전개에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다. 조각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형태를 벗어나 조각의 내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작품으로 수용한 이 작업은 조각은 물론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했다. 내부가 텅 빈 보이드 작품에서는 마치 동양의 음양이론이 형상화된 듯이 안과 밖이 공존하고 비움과 채움의 역설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보이드 작업은 1990년대를 거치며 다양한 재료와 형식으로 전개되어, 관람객의 시선과 몸을 감싸는 환경적이고 체험적인 작업, 회화와 조각의 경계가 모호한 거대한 모노크롬 등이 등장한다. 또한 내부로 움푹 파인 빈 공간은 역설적으로 무엇인가가 채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생성의 의미를 포괄하게 되어 어머니의 자궁, 탄생의 원천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나아가 일반적인 우리의 몸 내부를 은유하기도 한다. 카푸어는 이러한 작업 개념을 건축 공간과 결합하여 유기적인 공간해석으로 펼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음의 공간은 카푸어의 창작의 원천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원성을 극복한 유기적이고 유동적이며 순환적인 삶의 진리를 추구한 카푸어에게 거울 같이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그의 작업 이념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재료였다. 작품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반사된 이미지이다. 물리적인 작품과 비물질적인 반사 이미지가 공존하는 거울같은 표면의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은 물질을 초월하고자 했던 카푸어의 작업 이념을 가장 잘 전달하는 작업이다.
형이상학적인 특성이 짙은 카푸어의 예술은 흔히 동양적 사유의 반영, 동서양 문화의 만남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해석들은 당연히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지만, 사실 카푸어의 작업은 범종교적이고 범문화적이다. 인간의 눈과 정신을 공통분모로 한 보편적 원리를 담고 있다. 그의 작업은 우리를 철학적인 사유의 세계로 이끌지만 그것은 논리와 이론의 세계가 아니라 현묘한 우주적이고 원초적인 이치에 대한 사유이며 체험과 감각의 세계이다. 카푸어가 데뷔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30여 년 간을 특정 시대와 세대의 작가로 규정되지 않고 늘 오늘의 작가로 여겨지는 이유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카푸어의 작업은 결코 구체성을 띠고 있지 않으며 일상적인 삶과 맞닿아 있지도 않다.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거의 망각되어 가는 우리의 보편적 질서에 맞닿아 있다. 현실을 반영하고 우리의 삶과 밀접한 예술이 오늘의 우리에게 중요한 만큼, 마음의 먼지를 닦아 내듯, 카푸어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정화의 시간을 제공한다. 보편적인 떨림과 파장을 담은 그의 작업은 하나하나가 작은 우주이며 우리는 거기에 빠져 들어 우주의 질서를 예술적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일상에서의 상실을 숭고한 감동과 사색을 통해 치유하게 될 것이다.
■ 전시 구성
이번 전시는 세 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시작은 그라운드 갤러리로, 작가의 초기작부터 보이드 작업을 선보인다. 블랙박스는 카푸어의 특징적인 작업인 자가발생 개념을 특화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리움의 야외 정원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여 그의 대표적인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을 설치하여 리움의 외관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가득 찬 빈 공간
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시작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거대한 코텐 스틸 작품은 <동굴 Cave>(2012)이다. 붉은 녹으로 뒤덮인 육중한 쇠덩어리가 상대적으로 가늘어 보이는 막대 위에 얹어져 있다. 지름 8미터, 무게 15톤의 거대한 타원형 작품이지만 철저한 공학적 계산에 따라 제작되고 설치되어 상식적인 중량감이 상쇄된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정해 보이는 자태와,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구멍, 머리 위를 뒤덮는 어둠은 경이로움과 불안감을 동시에 안겨 준다. 한편 표면을 뒤덮은 황갈색 녹가루는 강인한 강철과는 상반되는 취약하고 남루한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점차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자신을 가두는 거대하지만 좁다고 느낄 수도 있는 그저 텅 빈 타원형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다분히 거칠고 물질성 강한 작품임에도 작품 앞에서 우리는 미묘한 심리적인 변화를 느낀다. 어둠, 존재하면서 보이지는 않는 공간, 우리의 시각과 심리를 자극하는 이런 요소들은 일찍이 그의 초기작업에서부터 나타난다.
<붉은 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 To Reflect an Intimate Part of the Red>(1981)는 카푸어의 안료 작업의 대표작이다. 작품과 바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섬세한 분말 안료는 바닥 면을 작품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우리가 늘 조각작품 자체와는 별개로 분리하여 생각해왔던 현실의 공간을 작품에 끌어들인다. 또한, 가루를 매개로 바닥으로 이어진 작품은 바닥 아래의 세계를 암시한다. 카푸어의 표현에 따르면 이 형상들은 10분의 1만 수면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과 같은 것으로, 그에게 분말안료 작업은 가시적이고 관습적인 공간 너머를 탐색하게 하는 도정의 시작이었다.
세 개의 벽면에 설치된 <무제 Untitled>(1990)는 보이드 작업이 형식적 개념적으로 절정에 있던 시기의 작품으로, 안팎을 뒤덮은 검푸른 분말안료는 빛을 흡수해버리고 어두운 심연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눈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심연의 암흑을 헛돌며 "당신이 심연을 응시할 때, 심연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니체의 경고를 체험하게 한다. 카푸어의 말대로 그것은 "텅 빈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어둠은 일반적으로 종말 혹은 절망과 공포를 의미하며, 깊은 어둠은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운 대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둠은 공간의 물리적인 깊이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되는데, 카푸어는 그 무한 공간에서 인간이 느끼는 숭고함과 경외감 등의 근원적 체험을 유도한다. 또한 깊숙하고 어두운 빈 공간은 생명이 싹트는 어머니의 자궁을 은유한다. 이렇게 그의 보이드 작업은 모성 또는 여성성을 강하게 환기시키며, 작가의 표현대로 "창조와 에너지에 대한 모성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보이드 작업은 조각의 오랜 관습을 벗어나 조각의 표면을 열어 내부를 드러내고 그 안에 잠재된 숨은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비어있는 공간은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고, 특히 카푸어의 작업에서 그 곳은 무한한 정신성과 영적인 의미로 채워지는 공간이며, 또한 의미가 생성되는 곳이다. 호미 바바는 카푸어 작품의 빈 공간은 "그저 어둡고 빈 공간이 아닌 창조의 공간 space of making이고, 시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또한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이 담긴다. 비운다는 것은 곧 채우는 것이다."라는 카푸어의 말은 본질적으로 음과 양의 균형으로 우주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보는 동양의 공(空) 사상과도 다르지 않다. 보이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단지 공간을 점유한 물리적인 오브제를 초월하여 보다 무한한 세계, 시적이고 신비한 세계로의 창구가 되기를 희망하며, 조각 내부의 음의 공간은 바로 카푸어의 예술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를 훌륭하게 구현한다.
카푸어는 물리적인 조각 작업을 하면서도 미술 오브제가 물질적인 상태를 초월할 수 있을 다양한 방식과 재료를 탐색해왔다. 그 중에서도 독립된 오브제로 존재하던 음의 공간을 건축물에 융합시킨 시도는 보이드 작업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그 한 예가 전시장 흰 벽면 위에 예리한 칼에 베인 자상인 듯 보이는 <도마의 치유 The Healing of St. Thomas>(1989)로, 창에 찔린 예수의 상처를 직접 만져 보고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된 도마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카푸어는 이 작품을 ‘상처’가 아닌 ‘치유’라 칭함으로써 그 흠집의 즉물성을 초월하여 시적이고, 사유적인 차원으로 전이시킨다. 우리가 그 붉은 틈을 벽면의 흠집이 아닌 생명 현상으로, 벽의 내부를 유기체의 육신으로 느끼는 그 유동적인 인식의 순간에 우리의 고착되고 관습화된 인식 또한 치유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물의 벽면을 이용한 <내가 임신했을 때 When I am Pregnant>(1992) 는 의심과 불신을 넘어 신비를 경험하게 한다. 흰 벽면에서 아롱거리던 미지의 환영이나 신기루는 관람자의 시선이 측면으로 옮겨가면서 그 온전한 실체가 드러난다. 다른 보이드 작업처럼 물리적으로 내부의 빈 공간을 만드는 대신 벽의 외피를 불룩하게 부풀려, 보이지 않는 내부의 존재를 우리에게 인식시킨다. 육화된 벽면, 차가운 건축물과 생명을 잉태한 유기체의 신비로운 공존, 카푸어는 그 보이지 않는 공간의 신비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차가운 건물이면서 따뜻한 생명체인 유동적인 경계에 있는 이 작품은 카푸어의 표현대로 "생성의 상태에 있는 오브제"이며, 작품이 사물로 실재하면서도 사물성이 사라지는 '비-오브제 non-object' 로의 전환이다.
카푸어의 작품이 관람자를 몰입시키는 또다른 요소는 건축적인 규모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6미터 정방형의 거대한 작품 <노랑 Yellow>(1999)은 마치 거대한 모노크롬 회화를 입체화, 공간화한 듯, 회화이면서 네거티브 형태의 조각이고, 미술품이면서 건축물의 일부이다. 이 작품은 바넷 뉴먼의 거대한 모노크롬 회화의 숭고한 아우라에 공감하여 탄생한 작품으로, 우리는 빛을 발하는 거대한 색채와 텅 빈 공간 앞에서 그 빈 공간을 눈과 몸 전체로 인지하면서 회화와 조각이라는 예술의 관습화된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그 경이로움과 숭고함으로, 관람자의 시선과 상상으로 그 빈 공간 채워진다.
리움의 그라운드 갤러리는 직선적이고 각진 남성적인 공간이며, 어느 한 곳도 획일화되지 않은 매우 조각적인 건축이다. 반면 흑백과 회색의 단조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그 안에 설치된 <내가 임신했을 때>와 <노랑>은 역설적으로 부드러운 곡선과 강렬한 색상으로 건축 속에 파고들어 건축화된 조각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건축으로서의 조각이 아닌 건축과 동화된 새로운 또 하나의 존재로, 카푸어 자신의 표현대로 비-오브제이다.
그라운드 갤러리의 마지막 작품은 아예 건축의 일부가 되어 버린 <땅 The Earth>(1991)이다. 전시장 바닥의 검푸른 동그라미는 일루젼이 아닌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진짜 구멍이다. 코텐 스틸 작품 <동굴>이 머리 위로 어둠을 쏟아 부으며 우리를 압도하고 두려움을 야기한다면, 수미쌍관처럼 그라운드 갤러리의 끝에 위치한 이 작품은 바닥을 알 수없는 깊은 어둠으로 그 곁에 선 우리의 발끝 감각을 추락의 불안감으로 예민하게 한다. 바닥 아래의 빈 공간, 땅 밑의 보이지 않는 영역 등 <땅>은 우리로 하여금 새삼 <1000개의 이름들>을 다시 환기 시킨다.
만물 창조의 풍경
이번 전시에서 블랙박스의 내부는 역설적으로 밝은 창조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블랙박스에 들어서는 관람객의 눈 앞에 가장 먼저 펼쳐지는 것은 지름 12미터의 광대한 작품 <나의 붉은 모국 My Red Homeland>(2003)이다. 커다란 해머가 시계바늘처럼 한 바퀴를 회전하면서 왁스를 긁고 지나가면 그 궤적을 따라 작품의 형태가 유지된다. 작가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치 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듯 스스로 만들어지는 듯한 이 작품은 카푸어의 '자가생성 Auto-generation' 개념을 구현한 대표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거대하고 강렬한 ‘붉음’이다. 붉은 색은 카푸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색깔로, 그에게 붉은 색은 고향 인도의 토착적인 색채이지만, 무엇보다도 피의 색깔이고, 살아 있는 몸을 의미하며, 작가에게 있어서는 지극한 어둠으로 통하는 색깔이다. 결국, 문자 그대로의 붉은 대지와 같은 이 작품은 모국 인도의 풍경 만이기 보다는 보편적인 풍경이며, 너른 평원 같은 그 곳은 우리 모두가 비롯된 고향, 어머니로서의 대지이고 탄생의 장이다. 지극히 물성이 강한 재료인 왁스를 사용하여 오히려 근원적이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전달하며 미술 오브제에서 풍경과 환경으로 전이되는 이 작품은 그가 늘 관심 있어 하는 상반된 요소들의 공존과 유동적 세계를 여실히 구현하고 있다.
<나의 붉은 모국> 곁에 설치된 <스택 Stack>(2007)은 제목은 물론 형태에서도 도널드 저드의 <스택>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최소한의 작가 개입이라는 미니멀리즘의 강령을 제시한 저드의 작업을 카푸어가 자신의 자가생성 개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카푸어의 작업 중에서 보기 드물게 수직적인 작품이 된 이 작품은 낮은 지평선을 이루는 <나의 붉은 모국> 옆에서 더욱 수직성이 돋보이며, 대지를 어머니와 여성으로 해석할 때 지극히 남근적으로 읽힌다. 이러한 해석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그 곁에 설치된 <나의 몸 너의 몸 My Body Your Body>(1999)이다. 피할 수 없이 성적인 연상을 야기하는 이 작품은 남근적인 <스택>으로 인해 성적인 암시가 더욱 강렬해지는데, 사실상 상당히 많은 카푸어의 작품들이 여성의 생식기를 연상케 하며 에로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카푸어의 예술에서 여성, 어머니, 성적인 에너지는 무궁한 창조의 원동력이며 이 우주의 근원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나의 몸 너의 몸>의 서서히 함몰되는 중심부 구멍의 깊고 검붉은 어둠은 우리 몸의 내부로 통하는 구멍들, 몸 안의 장기들을 추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상기시킨다. 구멍 저 깊은 곳은 어둠의 공간이고, 카푸어에게 그 어둠의 공간은 우리의 몸 속과 같다. 어둠의 몸이고 우리의 몸이기도 한 셈이다. 또한 보이드 작업이 벽면과 융합되어 작품과 벽면이 일체화되어 있다. 붉은 색의 그림으로 생각했던 우리의 눈이 깊이를 감지하는 순간이 바로 작품에 현혹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벽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구멍의 실존을 확인하고 싶어진다면, 아마도 작품에 깃든 작가의 속삭임이 들린 것이다. "자 이리 다가와요. 난 당신을 깊숙하게 끌어들일 수 있어요. 그러면 내 공간과 당신의 공간이 함께 스며들 겁니다. Come on, come over here. I can engage you deeply and my space infiltrates yours."
그리고 그 곁에서 <우주를 위한 새로운 모델 실험실 Laboratory for a New Model of the Universe>(2007)은 성적 기운이 충만한 음과 양의 만남으로 막 태어나고 있는 미지의 생명체인지도 모른다. 단단하고 투명한 아크릴 한 가운데에 응결된 모호한 형상은 흡사 원생동물 같아 보이기도 하고, 생명체의 발생 단계의 모습 같기도 하다. 탄생, 생성, 생명 등 기원(origin)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어떤 ‘원형적인 오브제 proto-obje’를 구현하는 것이 작업의 중요한 목표인 카푸어는 생성과 창조의 서사를 함축적으로 그러나 한껏 풀어내어 블랙박스 갤러리를 생성의 에너지로 충만하게 하였다. 그는 “미술가의 소명이란 바로 이러한 창조와 탄생의 순간을 증언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전시장 전체를 통해 실천하고 있다.
물질을 넘어서
카푸어의 작업은 물질성 강렬한 재료로 물질을 뛰어넘는다. 거울처럼 윤나는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은 이 역설이 가장 극명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카푸어가 1995년 경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재료로서, 작품의 물리적 실재를 초월한, 실재와 부재의 경계를 흐리는 보이드 공간을 보다 더 다양하게 모색하고자 한 그의 소망을 여실히 실현시켜준다.
거울은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발휘한다. 인간의 나르시스 본능을 자극하며 우리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우리의 공간으로 침투한다. 그러나 오목 거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는 <여전히 위아래가 뒤집힌 Still Turned Upside Down>(2002)에서 보듯이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상하 좌우가 뒤집히기도, 바로 서기도 하며 마구 해체한다. 오목 거울의 반사 이미지를 통해 재료의 굳건한 물질성은 휘발되고 유동하는 이미지만 남아 비물질의 상태로 전이되는, '비-오브제' 상태에 이른다.
카푸어의 스테인리스 작품 중에서도 <현기증 Vertigo Ⅴ & Ⅶ>(2012)은 유동적인 전이로 가득한 작품이다. 사각의 오목 거울에 비친 왜곡된 이미지는 제목 그대로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은 이제까지 단독으로 설치되던 작품이었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독특하게 두 점이 등을 맞대게 설치되어 있다. 이 때문에 통상 내부로 여겨지던 오목한 면은 바깥 쪽이 되고, 볼록한 면이 안쪽이 된다. 내부면서 바깥이고, 바깥이면서 내부인, 안과 밖이 유동적으로 공존한다. 반사의 반사가 무한대로 일어나는 두 작품의 사이에서 관람자는 매력적인 아찔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기증’은 일찌감치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바로 어지러운 혼돈의 감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야외에 설치된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은 더욱 확장된 공간에 놓임으로써 의미의 층위가 더욱 두터워진다. <현기증>이 우리의 눈과 몸의 반응에 집중하고 있다면, 함께 설치된 <하늘 거울 Sky Mirror>(2009)은 보다 형이상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 <하늘 거울>은 카푸어의 대표적인 야외 조각으로, 2001년 첫 발표 이래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어 여러 장소에 설치되었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오목 원반은 보이는 그대로 하늘을 담은 그릇이다. 마치 돔 천장의 오큘리스를 땅 위로 내려놓은 듯 하늘 한 조각을 우리 눈 높이로 가져와, 새로운 시각으로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전시장과 야외의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들을 벽과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만, 시간에 따라, 작품 주변을 오가는 관람자들로 매 순간 순간이 다른 모습이다. 작가의 관심은 바로 "관람자를 시간, 공간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조각"이고, 카푸어의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을 통해 작품과 관람객은 서로를 완성시킨다. 이 모든 것이 무엇보다도 물질성이 강한 강철, 그 표면의 얇은 반사 효과로 일어나는 일이며, 물질과 비물질의 좁고도 넓은 모호한 경계 속에 그의 작업이 존재한다.
리움의 야외 정원에 높이 솟은 나무 <큰 나무와 눈 Tall Tree & the Eye>(2009)은 릴케의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땅 밑 죽음의 세계로 들어갔던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소재로 한 릴케의 시에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현실과 신화 등 대립적인 영역을 넘나드는 시인의 상상력과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 유동적이고 풍성한 시적 이미지들이 수십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공이 뭉게뭉게 증식하듯 표현되고, 높이 솟아오르게 할 만큼 빼어난 오르페우스의 거문고 연주를 칭송하는 시 구절이 제목으로 차용된 이 작품은 오르페우스와 릴케와 교감한 카푸어의 시정(詩情)을 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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