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윤 - Time Track
2012.12.07 ▶ 2012.12.30
2012.12.07 ▶ 2012.12.30
정해윤
Time track-Buoy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ocean pearl, 97x130.3cm, 2012
정해윤
Relation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182x227cm, 2012
정해윤
Curiosity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ocean pearl, 130x162cm, 2012
정해윤
Time Track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ocean pearl, 227x364cm, 2012
정해윤
Play of Sensibility and Rationality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182x227cm, 2012
우주 공간에서의 관계와 소통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별자리
2009년 말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었던 개인전을 통하여 정해윤은 한지 위에 풍부한 채색을 도입한 서랍 이미지들을 화면 가득히 채우고, 그 서랍들 사이로 새와 풍경, 인물상 등을 배치시킨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함께 전시되었던 스테인리스 그릇 이미지 역시 서랍과 같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용기로서 그 공간에는 가촉성을 가진 물건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감성을 촉발하는 언어와 기억 등도 담겨질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거기에는 작가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어떤 것이 담기게 되고, 그것은 다시 관람객의 관점과 해석에 의해 새로운 독자적인 의미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서랍 유닛들이 분명한 고유의 성격을 갖으면서 제 모양과 색깔대로 전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던 것처럼 정해윤은 서랍 공간에 담긴 기억과 의미를 통해 개개인의 사적 추억과 욕망을 사회적 화두로 개방하기도 하고 일정 부분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개인적인 추억과 사유의 영역을 유보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심리 상태를 말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크기를 가지고 열린 것과 닫힌 것이 한 화면 안에 제시된 작품을 통해 참새나 인물 형상들이 다양한 교감과 소통을 시도하는 가상의 공간을 연출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여는 것과 닫는 것이 곧 개방과 은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오브제로서의 서랍을 통해서 정해윤이 표현하는 것은 결국 서랍이라는 물건이 존재간의 소통을 매개하는 상징적인 오브제가 되는 것이고 그 서랍들의 총합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다양한 관계의 총체인 것이다.
이러한 정해윤의 작품들은 2011년 열린 다음 전시에서 정면을 향한 서랍의 단면이 단색으로 표현되지만, 미묘한 톤의 변화를 통해 화면의 율동감과 깊이의 다양성을 주는 이미지로 정리된다. 「relation」이라는 제목으로, 서랍 위에 앉은 다양한 표정의 참새들이 부리로 물고 있는 실을 서로 연결하고 있는 모습이 제시된 작품에서 실들은 일종의 관계의 신경망을 가시화한 이미지로 드러나며 결과적으로 작품들은 관람객에 대한 작가의 상호교감과 소통의 의지가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것으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작업 궤적의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정해윤이 제시하는 작품들은 이전의 서랍이 갖는 공간의 은폐와 개방, 소통의 상징적 의미, 그리고 실을 물고 있는 참새들을 통해 가시적으로 표현되었던 개체간의 상호 교감과 관계망 형성이라는 인간 중심의 소우주적인 대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좀 더 근본적이고 확장된 영역으로서의 우주라는, 보다 큰 물리적, 정신적 공간으로 확대시켜주는 내용을 담은 것들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수많은 관계망이 형성되는 것처럼 우주 속에 존재하는 개체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더 크고 광대하며 미처 알아낼 수 없는 불가사의의 경지로까지 확산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도전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우주의 신비는 언제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특히 오늘날의 우리들의 문화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과 과학 발달의 전성기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의 유럽에서 우주를 탐구하던 클리포드(W.K. Clifford)나 포앵카레(Henri Poincare)같은 학자들마저 우주는 너무 복잡한 나머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주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정 속의 상상의 공간이며 오로지 우리가 가정하는 범위 안에서만 서술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아쉬운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정해윤은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불가사의한 우주 공간에 눈을 돌린다. 이제까지 작가가 서랍으로 조형화하고 그곳에 부리로 끈을 물고 있는 새들을 배치하여 인간 사회의 소통의 의미를 가시화하고 관계망을 구축하던 작가의 관심이 우주 속의 별들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면서 서랍은 좀 더 커다란 공간, 즉 우주의 한 부분으로 전환되고 그 서랍을 차지하던 새들의 존재가 사라진 자리에다 우리가 문학과 신화와 과학에서 공통적으로 우주의 주인으로 간주해 온 별들을 배치하였다. 이제까지도 그래왔던 것처럼 정해윤은 화면 속의 색채의 미묘한 변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우주의 별자리를 가시화하는 시도인 만큼 별들이 갖는 광물성 혹은 금속성에 초점을 맞춰 그것들이 온도에 따라 색상을 달리하거나, 금속 원소의 분석과 재조합이라는 과학적 프로세스를 응용하여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이끌어내어는 방식으로 화면의 채색을 밀도있게 제시한다.
이번 작품들 안에서 보여주는 네모난 면들은 과거의 서랍의 형상에서 우주의 한 부분으로 변신한다. 그것은 이제 별들이 발산하거나 반사하는 빛을 받아낸 평면이면서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품는 우주 공간의 일부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의 주인공인 별들은 서랍의 손잡이가 위치하는 곳에 부착된 다양한 크기와 색상을 가진 핵진주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다 작가는 이전처럼 각각의 별들을 잇는 선을 도입하여 우리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별자리들을 형상화하고, 더 나아가 미지의 별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망을 추가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별자리들을 작가 스스로가 창조해 내기도 한다.
정해윤이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이전 작품들의 진화와 변천의 맥락에서 볼 때 소우주적인 인간을 중심으로 한 관찰과 사유를 대우주적인 무한공간과 그 곳에 주인으로 존재하는 별들로 전환하는 모멘텀을 차지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작가의 관심의 영역이 변화된 듯하지만 정해윤은 처음부터, 그것이 소우주건 대우주건 상관없이, 일관되게 개체 사이의 관계와 소통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정해윤은 우주 속에서의 존재간의 관계를 천착하고, 그러한 관계성을 추적하며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작가로서의 역할을 실험하는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하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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