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LING : 씨킴 개인전
2013.07.18 ▶ 2013.09.22
2013.07.18 ▶ 2013.09.22
씨킴
입양(Adoption) 캔버스에 아크릴, 토마토, 목탄, 냉장고, 네온, 혼합매체, 가변 크기, 2013
씨킴
AIDS is Going to Lose 캔버스에 토마토, 목탄, 종이, 혼합매체, 250x200cm, 2013
씨킴
Untitled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3
씨킴
무제 사다리,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3
씨킴
Untitled mixed media, 190(h)x55x47cm, 2013
씨킴
무제, , 냉장고, 해골, 혼합매체, 냉장고, 해골, 혼합매체,해골, 35(h)x18x18cm, 2010
씨킴
에드가 앨런 포 002(Edgar Allen Poe 002) 캔버스에 토마토, 아크릴, 200x200cm, 2012
제주도 발견
이번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의미의 항해(Sailing)에 관람객을 초대한다. 우선 제주도는 철새가 겨울을 나는 안식처이자 씨킴이 일년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곳이다. 작가는 제주도 성산 일출봉에서 하도리 작업실까지 두 시간이 넘는 길을 걸어다니고 아침과 점심, 저녁 작업을 시계태엽처럼 반복하면서 준비한 페인팅, 조각과 설치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들은 해안가에서 발견한 갖가지 물건들, 바람과 물에 쓸리고 햇빛에 바짝 말린 나무, 누군가가 버린 부표, 갯바닥을 뒹구는 플라스틱이나 고철 등을 주워 새로이 만든 작품들이다. 쓸모가 다하여 버려진 녹슨 냉장고나 짠 냄새를 풍기는 낡은 스티로폼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장화를 신거나 안경을 쓰면서 모두 그의 자화상으로 변화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이루어 독특한 설치작품으로 변화한다.
작가는 시간이 지나 일상의 쓰임이 사라지고 난 폐품들에서 지속된 시간의 자취를 발견하였고, 자연스러운 흔적이 남은 이 재료들을 모아 새로운 아트 오브제로 전환해왔다. 어쩌면 컬렉터와 사업가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전 세계를 다니며 30년 가까이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일이나 자연에 흩어져있는 오브제들을 모으는 일이나 그에게는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일 것이다.
죽음과 재난
자연에서 찾아낸 오브제들이 갖는 시간의 오랜 흔적들은 생명을 다한 죽음의 표식이기도 하지만 꺾이지 않는 삶의 열망이기도 하다. 작가는 끊임없이 죽음과 재난을 의식한다. 부장품으로 사용한 기마상을 확대하거나 연속된 텔레비전의 화면을 캡처하여 연속된 시간을 분절한다. 토마토를 문지른 캔버스는 곰팡이로 뒤덮여 화려한 색과 선이 뭉게지고, 밝은 색으로 매끈하게 칠해진 색면을 뜯어내 내부의 거친 면을 드러낸다.
이들은 죽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표현한다. 직접적으로 타임지에 게재된 병에 걸린 소년과 입양된 소녀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 비극을 확대하지만 동시에 “AIDS is going to lose” (에이즈는 지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통해 재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되새긴다.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세찬 파도와 그 이후의 고요함은 언제 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죽음과 재난은 그 자체로 공포이자 고통이지만 반대로 이를 맞서는 이들의 의지와 끈기를 상징한다.
역동적인 항해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는 제주도 작업들과 함께 십여 년이 넘는 작품 활동에서 주요 키워드가 되는 이전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작품 활동을 처음 시작하던 때, 사업가로 살아가던 그의 인생에 갑자기 등장한 ‘미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면서 스스로 미술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소화할지 골몰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작가는 사진 작업과 함께 캔버스에 뜯기, 붙이기, 찌르기, 물감 붓기, 균형잡기 등 단순하고 소박한 행위를 통해 표현의 방법을 실험하였다. 2000년대 초반의 레인보우 시리즈와 콜라주 시리즈가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후 작가는 토마토, 철가루 등의 새로운 소재를 실험하거나 일상적인 오브제를 변용하고 대중매체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차용였다. 그가 일상에서 주은 오브제들은 작가 자신을 비롯한 누군가의 초상이 되거나, 메시지가 담긴 패널 혹은 엉뚱해 보이는 조합으로 독특한 설치를 이루었다. 이러한 실험과정에서 작가는 미술을 접하면서 맨 처음 만났던 캔버스의 사각 프레임과, 색, 균형 등의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씨킴이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은 삼각형 형태의 골판지로 제작한 단색 회화로 공간의 질서와 힘의 집중, 그리고 긴장을 표현한다. 고대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일찍이 직각 삼각형의 완벽한 질서가 사실은 그것을 둘러싼 세 정사각형 사이의 공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씨킴의 삼각형 작업들 역시 하나의 사각형을 모태로 하는 다수의 삼각형들이 중첩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수평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공간에서 삼각형은 흩어진 힘들을 한 곳으로 모으며 공간의 중심을 점유한다. 이러한 형태와 색의 집중은 공간에서 힘의 균형과 긴장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작가의 인생에 있어 작품 활동은 미술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역동적인’ 항해(Sailing)이다. ‘항해’라는 단어가 가지는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이 역설적으로 들리는 것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스스로가 봉착한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세간의 눈길에 대한 의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는 많은 작품들과 다양한 시리즈 중에서 그간의 작품 경향과 이들 작품 과정에서 돌출된 여러 지점들을 들추어 작가의 과거와 현재가 어떤 식으로 일관되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전시는 7월 18일부터 9월 22일까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 기간 중 관람객들과 함께 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마련하며, 그간의 작품 활동을 정리한 도록 SAILING을 발간한다.
모름지기 예술은 자유로부터 비롯된다.
최은주(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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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예술을 향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스튜디오로 가는 복도와 출입문, 작업실 내부의 벽면 곳곳에는 직접 쓴 메모와 잡지에서 뜯어내거나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들, 길거리에서 주워 온 온갖 잡동사니들이 붙어 있었다. 작업을 위한 착상들이 부질없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보려는 그만의 방식인 것을 쉽게 알아 챌 수 있었다. 사업가와 콜렉터로 살아오던 그가 돌연 작가로서의 일상을 전개시키기 시작했던 것이 1999년부터이고 이후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선보인 작품 수만도 수백 점에 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도 아마추어적인 시도가 아니라 개인전마다 분명한 주제가 설정되고 그에 맞는 조형성이 진일보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가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어떤 예술적 충동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싶어 몇 주 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돌아온 바로 그날, 오래된 영화 한 편을 찾아내었다. 1981년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한 <불을 찾아서(Quest for Fire)>라는 영화이다. 8만 년 전, 맘모스와 인간이 공존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 진화의 단서를 탐구한 영화이다. 철저한 고증과 감독의 상상력이 잘 어우러져 이 영화는 아노 감독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명화로서 인정받게 된 데에는, 단지 인류의 진화와 문명의 발생 등을 척박하고 위험천만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려는 인간의 투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서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영화의 주제는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속에서 예술의 기원을 유추해 보는 일은 흥미롭다. ‘인간의 예술행위는 언제 어떻게 시작 됐을까?, ‘최초의 예술적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원시인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들에게 미적 감동과 예술적 희열은 어떻게 체험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좀 더 문명화된 원시인 부족이 진흙으로 자신들의 얼굴과 몸에 장식 문양을 그려 넣었다든가, 음식을 저장하는 토기가 등장하는 등의 장면에서 원시적 예술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아노 감독은 예술적 본능의 단서를 영화 속 ‘웃음’ 장면에서 암시하고자 한 것 같다. 남자원시인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떨어지자 이를 본 여자 원시인이 웃음을 터뜨리고 그때까지 ‘웃음’의 감각을 모르던 남자 원시인이 웃음을 배우게 되면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는 착상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지식 하나 하나를 더해 가는 인간의 지적 진화의 양상하고는 사뭇 다른 것이다. ‘웃음’이라는 본능적 감각의 인지 혹은 이를 감정적으로 드러내려는 표현 욕구는 이제 무엇인가를 만들고 표시하는 영역으로 향하면서 ‘예술’의 기원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적 충동은 ‘웃음'처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어서 어떤 사람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예술적 행위를 시작했느냐 대해서는 사실 우리 모두가 관용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개개인이 문화와 예술의 생산자가 되기를 기꺼이 원하고 실제로 되어가고 있는 이즈음 삶의 양상들을 살펴볼 때, CI KIM의 예술적 몰입은 오히려 ‘현대적 삶(Contemporary Life)’의 정수를 보여주는 정직하고 용감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토마토 그림’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성적 잣대를 조롱하고 파괴하는 예술가로서 삶을 선택한 CI KIM 자신을 투영시킨 메타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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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KIM이 본격적으로 주제를 갖고 작업을 전개한 것은 2004년 무렵인 듯하다. 당시
이어진 2005년의
2007년 전시에서 보여준 내러티브는 CI KIM의 예술가로서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우선 자신과 동일시되는 토마토를 먹는 호랑이를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육식동물인 호랑이가 야채인 토마토를 빵에 발라 토스트하려는 동화를 등장시켜 마치 자신이 그 호랑이처럼, 그래서 그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의 가장 놀라운 반전은 토마토를 물감처럼 재료로서 직접 사용하게 된 그의 무모한 도전-호랑이가 토마토를 빵에 바르려는 시도 같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전시를 위한 비평문을 계속해서 써 왔던 곽준영은 해당 도록의 서문에서 CI KIM의 토마토 그림은 ‘한 작가의 습격’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후 토마토를 구우려다 실패를 거듭한 호랑이의 포효가 시작되었고 그의 캔버스도 같이 울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정성스레 그려진 것들이 던져지고 문들어진 토마토들과 함께 흘러 내렸다.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그의 과격한 액션과 함께 추상의 모습을 띠어 갔다. 그 가운데 그는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을 만끽하게 되었다. 토마토가 흥건한 그의 액션 동화드로잉은 사실 어떤 이론의 잣대를 들이대도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현대미술의 망가, 애니마 영향을 얘기하기도, 팝적인 차용과 복제에 대해 얘기하기도, 그 모든 것을 액션과 함께 뒤섞어 버렸다고 단순히 정의하기도 애매한 지극히 사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에서 한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일종의 스타성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고 한들, 그런 전략들을 거론하기에는 지극히 천진난만해 보인다. 오히려 그것은 매일 매일의 구체적 삶이 깊이 배어있는 한 어른의 그림일기 같은 것이며,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좌절과 희열을 번복하는 한 미술가의 울고 웃는 자화상 같은 것이다.”
어떤 설명보다도 CI KIM의 모습을 잘 설명한 위의 글은 이 작가의 예술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열쇄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 전시에서 "I don't know myself" 같은 자신을 표현하는 자화상 혹은 자소상이 등장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호랑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한 작가는 깨진 거울가구에 안경을 씌운다든지, 스치로폼 위에 모자를 얹는다든지 아니면 귀에 붕대를 감은 고흐에 자화상과 자신의 자화상을 중첩시킨다든지 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운명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2009년 "Memoir meets Memory"개인전에서 토마토그림은 거듭된 실험을 통해 CI KIM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에 일정기간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일에 집중해왔던 CI KIM의 시선이 사회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음을 뉴스위크지에 등장하는 정치, 사회적 이슈들을 담은 사진들의 활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전투 중의 극적인 장면이나 기아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대형 캔버스의 바탕 화면으로 자리 잡고 그 위에 토마토를 던져 그림을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CI KIM은 여러 대작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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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제주도에 작업실을 마련한 CI KIM은 해안가를 거닐다가 파도에 이리 저리 쓸려 해안가에 도달한 그물, 부표, 신발, 심지어 자동차 시트나 냉장고 같은 산업폐기물마저도 자신의 작업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이번 개인전 "Sailing"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CI KIM의 사물의 발견과 그 사물에 대한 예술적 의미부여를 보여준다. 한 예술가가 그의 예술적 영감을 반영하는 방식으로서 사물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혹은 다른 생명체의 형상성을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작업은 단순하지만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 온 예술적 행위이다. 원시시대 벽화에서부터 백남준의 TV 조각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판단이나 추론 등을 개재시키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예술적 직관(intuition)과 연결되어 왔다. CI KIM의 이번 항해는 이러한 예술적 직관의 결과들을 보여줄 것이다. 인간 안에서 무매개적으로 솟구치는 예술 충동으로서 모든 제한과 형식을 넘어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여,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지향하는 디오니소스적 충동을 실현시킨 작품들이다. 토마토그림으로 보다 명징한 자아 확인과 예술적 자유를 체험한 그의 눈과 손에 머무는 모든 재료와 사물들은 예술적으로 치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폐품과 오브제를 활용한 자화상의 표현은 여전히 재미있고 “AIDS IS GOING TO LOSE(에이즈는 극복될 수 있다.)”라는 사회적 텍스트, 만화적인 그래픽, 자유분방한 드리핑, 하드에지의 삼각형 도형까지 온갖 조형적 요소들이 뒤범벅이 된 그의 배를 함께 타고 항해를 하는 일은 진심으로 흥미롭다. CI KIM의 예술적 충동, 직관 그리고 영감으로 장식된 ‘자유의 배’는 이 세상에 오로지 단 한 척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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