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훈
강화 연미정 Gelatin Silver Print, 20x24inch, 2010
김심훈
신륵사 강월헌 Gelatin Silver Print, 20x24inch, 2010
김심훈
제천 영호정 Gelatin Silver Print, 20x24inch, 2009
김심훈
영암 영팔정 Gelatin Silver Print, 20x24inch, 2008
‘와유(臥遊)’, 사진으로 즐기는 한국의 정자들
- 김심훈 사진전, 7년 동안 찍은 전국의 ‘정자’ 중 정수 20여 점 전시
수령 오랜 느티나무가 잔가지마다 잎 대신 흰 눈을 얹고 있다. 그 아래, 녹음 무성한 계절에는 푸른 그늘에 잠겨있었을 연미정의 형태가 오롯하다. 강화도 북쪽 한강과 강화해협이 만나는 언덕에 자리한 연미정은 몇 해 전까지도 민통선 안에 속해 있어서 쉽게 가닿을 수가 없었다. 그런 연미정을 사진으로 보게 된 것도 반가운데, 기와골마다 흰 눈을 얹은 채 두 그루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겨울 서정이 또한 그윽하다.
주천강이 흐르는 영월의 절벽 위에 자리한 정자 요선정. 조선시대 선비 양사언이 ‘신선이 놀다가는 곳’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니, 둘러보지 않아도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 있다. 정자 옆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불신은 선각으로 불두는 돋을새김 되어, 마치 머리부터 곧 바위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것처럼 보인다. 측면에서 비쳐드는 햇살로 음영이 두드러지니 그 생생함이 더하다. 흑백의 콘트라스트 속에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을 지나 이어져 온 천 년여의 시간이 정지해있다.
이제는 사진이, 직접 명승지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겼던 선인들의 ‘와유(臥遊)’를 가능케 한다.
김심훈은 지난 2008년부터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해있는 정자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정자 마루에 올라 주변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시원하게 트이는 느낌이었다. 주변 산수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정자의 단순한 형상도 멋스러웠다. 피세의 보금자리로 또는 문화와 풍류의 장으로 정자를 짓고 노닐었던 옛 선비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처음엔 그저 좋아서, 선비들이 절로 붓을 놀리듯 그는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여름에 들른 정자의 가을 풍광도 겨울 풍광도 보고 싶었고, 그렇게 한 계절 두 계절 한 해 두 해 정자를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이 쌓이다보니 충실한 기록자로서의 의무감이 생겨났다. 그동안 다닌 정자가 도합 60개소.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파주의 화석정부터 강원과 경상, 호남지역의 여러 정자들이 두루 그의 사진에 담긴 것이다. 오래된 것과는 오래된 방식으로 조우하는 것이 맞는 화법 같아서, 아날로그 카메라(대형 4*5 필드카메라)와 필름을 고집했다. Gelatin Silver Print 방식의 인화를 위한 암실작업도 꼬박 1년여에 걸쳐서 직접 했다.
전국의 여러 정자들 중에서, 또 그 정자의 사계절 풍경 중에서도 정수 20여 점을 뽑아서 선보이는 것이 김심훈 사진전 <한국의 정자>다. 오는 3월 25일부터 30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린다. 오셔서, 사진으로 우리 정자들의 ‘와유(臥遊)’를 즐겨보심이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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