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기억의 숲 장지에 먹, 한지꼴라주, 112x145cm, 2010
김명진
land-escape 장지에 홍묵, 한지꼴라주, 130x162cm, 2010
김명진
land-escape 장지에 홍묵, 한지꼴라주, 145x112cm, 2010
김명진
organscape 장지에 먹_한지꼴라주, 122.5x66cm, 2010
한지 꼴라주로 연출한 객관적 우연
그의 한지 꼴라주는 몇몇 작품에서 두터운 물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탕 면에 밀착되어 있어 붓으로 그린 것 같은 효과를 준다.
다양한 굵기로 잘려지거나 찢어진 탁본 종이 뭉치가 들어있는 통은 팔렛트를 대신한다. 이 통은 장인에게 익숙한 다양한 기구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연장통을 생각나게 한다. 무질서한 듯하나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끄집어내서 뚝딱 해치우는 것이다. 몇 가지로 한정된 재료이지만 조합의 수는 무한하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정확함보다는 장인적인 융통성이 두드러진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브리콜라주bricolage를 행하는 브리콜뢰르bricoleur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브리콜뢰르는 아무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손재주꾼이 사용하는 재료의 세계는 한정되어 있어서 손쉽게 갖고 있는 것으로 하는 게 승부의 원칙이다. 말하자면 그가 갖고 있는 도구와 재료는 항상 얼마 안 되고 그나마 잡다한 것들이다.
각 부품은 실제적이면서도 가능한 관계들의 집합을 나타낸다. 그 부품들은 조작매체이다. 그러나 동일한 유형에 속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조작에라도 쓸 수 있는 매체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브리꼴뢰르의 활동을 신화적 사고와 연결시킨다. 신화적 사고의 특성은 그 구성이 잡다하며 광범위하고, 그러면서도 한정된 재료로 스스로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김명진은 한지 꼴라주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일정한 굵기의 탁본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점차 구성요소들은 복잡해져 갔다. 명확한 계획에 따라 사전에 결정된 재료를 사용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융통성을 발휘한다. 상황은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만나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성요소들이 복잡하긴 해도 무한하지는 않으며, 임의적이긴 해도 익숙한 방식으로 계열화되고, 동일한 방법론을 관철함으로서 일관성이 유지된다. 그의 브리꼴라주의 기구들은 구체적인 동시에 잠재적인 관계의 총체로서 폐쇄된 체계를 통해 해결책을 강구한다. [야생의 사고]가 예시하듯이, 김명진의 브리꼴라주적인 작업은 과학이나 예술과도 다른 방식, 곧 신화적인 방식에 가깝다.
일정한 구성요소들의 재조합과 사건의 잔재들을 구조적으로 배열하는 김명진의 「움직이는 풍경」은, 내부와 외부, 소우주와 대우주를 구별하는 가시적인 외관의 질서에 길들여지지 않고, 그것을 무너뜨리며 원초적인 에너지로 충전되어 있는 형상이며, 그것은 신화적 사고와 브리꼴뢰르의 활동이 교차하는 야생의 사고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적 사고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용 가능한 수단들의 총체가 암묵적으로 목록화 되거나 구상되어야 하며, 그 결과 재료 집합의 구조와 계획의 구조 사이에 절충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계획의 구조는 일단 만들어지면 당초의 의도로부터 어쩔 수 없이 유리된다. 이 현상을 초현실주의자는 ‘객관적 우연’이라고 표현 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명진의 탁본의 조합이라는 방식과 초현실주의의 관계를 지적할 수 있다. 그의 탁본은 초현실주의의 프로타주 기법을 떠오르게 하는데, 사물의 표피를 베껴낸 형태와 작가의 무의식이 공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명은 초현실주의 미학에서 '객관적인 우연'처럼, 주관적이고 객관적 요소의 융합을 이룬다.
김명진에게 꼴라주의 재료는 그자체가 조각보 쪼가리 같은 조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잘려지고 연결되며 중첩되면서 예상치 못한 이미지들이 탄생한다. 반 정도만 가공된 소재를 정돈하고 이를 표면에 부착시키면서 반복과 변형의 과정을 거친다. 한 형태는 또 다른 형태를, 한 색채는 또 다른 색채를 연이어 산출한다. 작품은 무의식이 기록되는 수용기가 된다. 꼴라주의 방식이 관철되는 그의 작품에서 떠도는 환영은 사실주의적 환영이 아니라, 시각적인optical 환영이다. 그것은 화면의 수수께끼같은 불투과성을 더욱 강조한다. 꼴라주를 통해 잠재된 무의식을 방출시키는 김명진의 방식은 회화의 질료적 동질성을 파괴함으로서, 그가 한 때 부정했던 회화를 다시 규정하고 있다. (2009년 움직이는 풍경 전 평론 발췌)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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