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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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만남

비잔틴미술이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로 옮긴 기원후 330년경부터
투르크족에게 멸망하는 1453년까지 지속되었던 지중해 동부지방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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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마돈나

    12세기, 나무에 채색, 77.5x53.3cm, 모스크바국립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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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이어

    520년경, 이탈리아 라벤나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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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이어

    520년경, 이탈리아 라벤나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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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지배자 예수

    1080-1100년경, 도르미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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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지배자 예수

    1080-1100년경, 도르미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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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기아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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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 설명

  • Description

    비잔틴미술이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로 옮긴 기원후 330년경부터 투르크족에게 멸망하는 1453년까지 지속되었던 지중해 동부지방의 예술이다.

     

    비잔틴 미술 _ 동.서양의 만남

    비잔틴Byzantine은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의 옛이름이다. 비잔틴미술이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로 옮긴 기원후 330년경부터 투르크족에게 멸망하는 1453년까지 지속되었던 지중해 동부지방의 예술이다. 로마가 야만족에 의해 멸망하여 잿더미에 파묻혀 있는 동안 비잔티움은 화려한 색채와 장식성을 띈 동방 그리스 취향의 기독교 미술을 발전시켰다.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치는 동안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미술이 상대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적인 몰락을 겪은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에서 6세기에 이르러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그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를 비잔틴 미술이라고 부르고 있다. 

     

    비잔틴미술_중세미술의 황금기

    -모자이크

    비잔틴 미술의 특징은 모자이크의 발전에 있다. 로마의 모자이크는 돌조각으로 제작된 반면 비잔틴의 모자이크는 색유리를 불에 구워 만들었는데 거대한 채색효과를 낸다는 점과 멀리서 볼수록 효과적 이라는 점, 특히 강렬하고 풍부한 색채를 지닌 비잔틴 모자이크의 색유리 파편은 빛을 반사하는 반사경 역할을 하여 보는 사람의 환상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신비적인 분위기는 서유럽 크리스트 미술(로마네스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모자이크가 터키의 비잔티움과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제작되었다. 내용은 대부분 종교와 관련된 것이고 예수는 전지전능의 지배자나 설교자로 묘사되었다. 726년 성상금지령이 내려지고 모자이크제작이 주춤하였으나 850년~1200년 제2의 황금시대를 맞게 된다. 

     

    -성상화(Icons)

    성상화는 자그마한 나무판에 그려지는 그림으로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나 성모를 판자 위에 예배의 대상으로 그린 이콘 -성상화가 그려졌는데 템페라나 납화법으로 나무에 그려진 호화로운 이콘들은 작은 모자이크 타일로 대체되면서 더욱 화려해졌다. 특히 황제의 선물로 사용되기 위해 디자인된 이콘들은 값비싼 금속과 에나멜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풍부해졌다. 성상에 대한 숭배가 강하게 퍼지자 726년~843년간은 우상숭배라고 금지시키기도 했다. 

     

    -하기아 소피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세계최대의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에 장대한 교회를 세우기로 마음먹고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루스라는 수학자에게 건축을 위임했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를 지닌 하기아 소피아는 축구장 크기의 3배가 넘으며 로마의 직사각형 바실리카위에 돔을 올려놓은 형태로써 비잔틴 건축공학인 삼각궁륭에 의해 가능했다. 4개의 아치가 정사각형모양을 형성하여 돔을 지탱하는 구조는 처음 시행된 것이며 이러한 구조의 혁신으로 돔을 더 높게 올릴 수 있었고 그 결과 내부는 더욱 넓고 확 트인 느낌을 준다. 

     

    중세의 미술에서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성서의 내용과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고, 현실이란 언제나 덧없고 순간적이라고 생각한 중세 미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박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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