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환상 (Immaterial fantasies),
그 또 다른 가설에 대하여
언젠가부터 우리는 미술 작품 앞에서의 순수한 경험과 멀어진 듯 하다.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수많은 장치들이 그것을 방해하곤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작가 장은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모색해온 작가이다. 그동안 영상작업을 선보인 작가는 “새롭고 근사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눌려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리는 것이 좋아 업으로 삼은 작가적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그림으로 향해가는 여행”을 계획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 가설을 세운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감상자의 눈과 작가의 손을 독립변수로 취했다. 갤러리 벽의 빈 액자 가운데 구멍을 뚫어 거리풍경을 보게 한 2008년 작품,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눈에서 작가는 감상의 주체를 부각시키는 매개자로만 존재한다. 갤러리를 경계로 감상자의 눈이 감상의 주체이자 작품이 되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작가-작품-관람자라는 미술의 순차적 관례를 무너트렸다. 프로젝트 플레이어스에서 장은의는 다른 작가들의 작업 중인 손을 추적했다. 미술을 둘러싼 철학적, 미학적 맥락들을 관철시키고 작가들의 작업행위를 현재화함으로써 잉여적 행위의 유의미성을 밝혀내고자 했다. 작품을 둘러싼 소모적 맥락들이 생산적 행위였음을 드러내며, “그림이란 작가의 생각하는 손”이라고 말하는 작가. 그는 그렇게 자신의 가설에 대한 통계적 유의성을 검증한다.
또 다른 독립변수는 바로 작가의 선택. 이번 개인전, <사소한 환상>이 그 실험연구이다. “마음을 움직인 순간”과 관련될 거라는 회화의 조건들과 이론체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검증적인 절차를 위해, 작가는 일상적 감성의 단편들을 표본추출한다. 사진 이미지가 그 일차적 자료이다. 작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들은 사진이라는 ‘편리한 문명’의 도구를 통해 “생각과 감정이 혼재되어 기록”된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재현 도구가 오히려 “(진정한) 나의 시간”을 빼앗은 듯 하다고 말하는 작가. 그 잃어버린 시간을 캔버스 위에 재-현(re-presentation)한다. 엄마의 배, 따뜻한 사탕, 엄마의 별들이 놓인 밥상에 대한 추억은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불러들이고, ‘서슬 퍼런’ 푸른산은 간판 위 구호에 따라 ‘셀프’ 넘기를 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청소 1,2,3은 비워냄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했던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손금 위로 고인 오아시스의 물은 마치 지도 위의 기호처럼 기록된다. “영원을 욕망”하는 작가는 직관에 의해 기록된 일상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순간을 환기시키고 각인시킨다.
작가는 문득 옛 앨범을 떠올린다. 앨범은 나의 특별한 일상들을 기억하고 공개하는 작은 장이자, 나만이 알 수 있는 단편적 맥락들이 순간과 영원이 중첩되어 불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곳이다. 마치 앨범을 정리하듯 작가는 일상의 편린들을 재구성한다. 그 검증의 과정에서 취사선택된 순간들이 그림으로 다시 현전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 공간에 빔 프로젝트로 작품의 소재가 되는 사진 이미지를 제시한 것 또한 이러한 재현과 재-현의 문제를 건드리기 위함이다. 그러나 일상의 모습을 SNS에 올려 ‘허세글’로 치장하는 디지털 세대의 기록과는 달리, 그림에 대한 사랑을 쫓는 작가는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그림으로 재현함으로써 영원에 대한 불가능”을 시도한다. 그 캔버스 위의 이미지는 가식적이지도, 설명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다. 작품 완성 이전의 시간으로 소급해 가는 작가의 일련의 작업과정 속에서, 일상적 사물들은 기억과 시간으로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바랜 사진에서 오히려 시간의 흐름과 그 과거의 현실적 일상성이 더 강하게 환기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농도나 채도 면에서 강렬하지 않은 작가의 그림 이미지는 빛 바램의 비워냄처럼, 어렵고 무거운 역사나 주제의 강령을 벗어내어 편안하다.
“하늘 위 무지개를 만드는 대신 길에서 발견한 무지개 색 우산을 따라 그리고 싶다”는 작가의 염원 어린 가정은 높은 작가적 이상 대신, ‘사소한 환상’을 제공하는 일상적 단편들을 재-현해냈다. 또한 벽면 위의 순간적 재현과 캔버스 위의 지속적인 재-현, 그 두 이미지 간의 간극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작가적 선택에 작동하는 요인들에 대한 가설을 다시 입증했다. 장은의의 <사소한 환상>은 덧없음과 아름다움, 순간과 지속성, 일상과 그림 사이에서 사소함의 유의미성이라는 작가적 통찰에 대한 타당성과 신뢰성을 검증해 낸 것이다.
-미술비평 박윤조
작가노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시대. 너무나 손쉽게, 선명하게 기억을 소유하고 항시 꺼내볼 수 있는 시대이다.
무언가를 손쉽게 소유한다는 것은 편리하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소중함이 덜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많은 이미지들을 기록하지만,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순간을 기록한 사진은 그 장소의 이름도, 시간도 아니다.
분명 마음이 움직였기에 기록한 이미지들인데 그 순간의 느낌과 감정은 제대로 기억할 수 없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식욕을 채운 듯, 영원에 대한 욕망 역시 피상적으로 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주 연락하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쉬운 길도 잘 찾지 못하는 상태.
문명의 편리함은 나의 기억을 가져간 것 같았고, 많은 것을 신속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시간을 절약하는 듯하지만 ‘나'의 시간은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나에게 있는 수많은 사진들-누구에게나 있을 법한-가운데 몇을 골라 그림으로 재현하여 잃어버린 것 같은 나의 시간을 되찾아보기로 하였다.
그것은 마치 디지털 사진 이전의 시대, 지금보다 더 조심스럽게 찍은 사진들 가운데 고르고 또 골라서 앨범에 사진을 남기며, 그 정성스런 과정을 통해 기록의 순간과 재차 만나게 되고 마음과 조우하던 때의 경험과 유사하다.
그림을 그리며 태초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초의 그림 역시 지금의 사진처럼, 그러나 지금보다 더 진지한 인간의 영원에 대한 욕망을 향한 시도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의 그림 역시 개인의 시간과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영원에 대한 불가능한 시도가 될 것이다.
1974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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