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ólĭum 엠볼리움
2014.12.24 ▶ 2014.12.30
2014.12.24 ▶ 2014.12.30
윤정선
에필로그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2014, 개인소장
윤정선
저음 캔버스에 유채, 145.5x97.0cm, 2014, 개인소장
윤정선
주르륵! Ooze! 캔버스에 유채, 65.1x91cm, 2014, 개인소장
윤정선
엠볼리움 캔버스 위에 유채, 227.3x545.4cm, 2014, 개인소장
윤정선
귀가길 No.1, 2, 3 캔버스 위에 유채 , 각 53.0x45.5cm, 2014, 개인소장
윤정선
밤의 온도 시리즈 캔버스 위에 유채, 33.4x21.2cm, 2014, 개인소장
윤정선
전시전경 캔버스 위에 유채 , 각 72.7x53.0cm, 2014, 개인소장
윤정선
전시전경 2014, 개인소장
윤정선의 상상력 풍부한 순례의 눈길
작가 윤정선은 이미지의 순례자처럼 우리 생활공간의 곳곳을 찾아다닌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뒤 작가는 영국으로 조형수업을 떠났다가 돌아왔으며, 얼마 뒤 다시 중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작가는 수없이 국내외의 여러 곳으로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해줄 만한 관심지역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 순례의 궤적은 작가가 열었던 몇 차례의 전시회를 통해 그림 속에 기록되어왔다. 그동안 유화와 아크릴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화면을 구성하기 위하여 노력해왔던 윤정선이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들은 유화작품들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유화작품들은 이전 작품들보다 크기 면에서 대형화된 것이 눈에 띈다. 재료와 형식면에서의 변화에 비하여 윤정선이 모티브를 선정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은 이전에 비하여 별로 변함이 없다. 얼마 전부터 윤정선은 유화의 깊은 맛과 분위기를 다시 탐구해가고 있으며, 그러한 탐구의 가시화 대상을 명동 성당 언덕 부근의 야경에서 찾은 듯하다. 작가는 화면 안에 이곳의 야경을 위주로 하여 공간의 표정과 그로부터 연상되는 상상의 내러티브를 담아내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윤정선은 주변의 야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단순한 작가적 향수나 우울감이 아니라 오히려 밤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공간에서 상쾌한 호흡을 누릴 수 있었고 세상과의 소통의 접점으로서의 거리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실 안에서의 소통의 단절감을 털어내고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귀가 길을 따라 전개되는 인적 드문 야경에서 작가는 오히려 사물과의 교감과 소통을 체험하고, 밤의 이미지 안에서 차분한 침잠의 명상을 통해 긴 역사적 서사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이 담긴 상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번에 출품된 윤정선의 작품들 역시 과거의 작품들처럼 자신이 머물렀거나 다녀온 장소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느낌이나 기억을 화면에 담거나 그 장소에서 떠올려지는 사건과 인물들을 이야기해준다. 이제까지의 윤정선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작가가 유학하였던 런던의 거리들이 화면에 담겼었고, 그 뒤로는 다시 북경의 거리와 자금성의 한 모퉁이가,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집 근처의 모습과 고궁, 그리고 북촌 부근의 오래된 집들의 모습이 자신의 작품 속 공간을 차지하였었다.
외국의 체류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울에 돌아와서도 작가는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포착되는 공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하여 시각의 순례를 수행하였으며 지금도 그 작업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윤정선의 눈길을 사로잡은 대상은 명동성당 언덕 발치에 자리 잡은 사도회관이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올 때 명동 성당보다 먼저 지어졌던 오래된 벽돌 건물에 해가 저물고 밤이 내려온 모습에서 작가는 마치 연극 무대의 배경같은 공간의 기운을 감지한다. 거의 좌우대칭을 이루는 르네상스식 건물 외관과 그 바로 앞에 양쪽으로 세워진 가로등에서 쏟아지는 빛이 연출해내는 공간의 표정은 정말로 누가 보아도 연극 무대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작가는 배우도 되고 관객도 되면서 상상의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마치 지금 막 한 세션이 끝나 잠시 쉬고 있는 무대처럼 고요하고, 그러면서도 이층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거나 곧 저쪽 문을 통해 다음 세션을 시작하는 배우가 들어설 것 같은 장면이다. 중세의 교회극에서는 막간의 진행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엠볼리움(embolium)이라는 짧은 공연이 이루어졌다. 주로 종교나 정치의 시사성 있는 현안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짧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은 다음 장면을 위한 분장과 의상 교체나 소품 준비 등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작가의 마음의 눈에는 지금 이 공간에서 이러한 막간극이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정선이 서울 시내 한복판으로 저녁 나들이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업지역이며 관광 명소라고 할 수 있는 명동에서 수많은 인파와 마주치는 경험의 끝에 도달한 사도회관은 주변의 소란스럽고 번잡한 분위기를 일시에 뒤집어 놓는 마법같은 비현실감을 안겨주는 공간처럼 보인다. 작가는 갑작스럽게 이 공간에 투입되고 스스로가 공간의 주인공처럼 무대를 배회해보지만 이내 그 공간은 과거를 되불러오는 힘을 가진 연극적 공간으로 탈바꿈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윤정선의 감성에 입각한 낭만적 상상력이라는 열쇠로 개방되어서 조선 말기의 천주교 사제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발길과, 공포를 초월하려는 순교자의 포박당한 신앙의 기도, 전쟁의 폐허 위에 펼쳐지는 소시민들의 힘겨운 하루살이 광경 등등을 묵묵히 목격하는 건물로서의 사도회관의 긴 역사와 기억을 담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우리들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 하계훈
197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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