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섭
Lollipop#7 Pigment Print on Cotton Paper, 110x145cm, 2008
김형섭
M&M#7 Pigment Print on Cotton Paper, 60x80cm, 2008
이경
a faraway land_purple acrylic on canvas, 50x100cm, 2009
이경
Misty Landscape_blue grey acrylic on canvas, 80.3x116.7cm, 2009
이경
이 경에게 ‘색채’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언어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도구다. 이로써 색채는 작가와 그 주변의 공간 혹은 대상을 내밀하게 연결하는 직관과 감성의 통로가 된다. 여기서 작가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공간 내지 대상이란 곧 그의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를테면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거나 달리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어떤 초원 또는 하늘이다. 또한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보다가 발견하게 되는 우연적이며, 즉각적인 인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미루어 우리는 색채언어로써 이뤄진 그의 풍경이 지극히 사적이고도, 사소한 토대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의 외적 형상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가시적(추상적)인 반면, 구체적 풍경에 잠재된 보편의 색채적 감성, 이른바 ‘평등한 매력’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시적(구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그의 작품이 주변의 풍경을 색채와 수평의 띠로써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일련의 색면회화를 연상케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그와 구별될 수 있는 일종의 차별점을 확보하는 근거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작품은 색면추상이 아닌 넓은 의미의 풍경으로서 우리 앞에 자리하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이경의 작품이 드러내고 있는 그러한 양식적 이중성은 기존의 틀 지워진 체계 (애초에는 창의적, 전위적이었던 것이 반복 학습에 의해 매너리즘으로 변질된)에 대한 특정한 반성 없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를 거듭하고 있을지 모르는 예술계에 어쩌면 뽑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생선 가시와도 같다. 오독(misinterpretation)의 가장 큰 주범은 내용의 복잡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한 것을 단순히 보지 못하게 하는 지식(미술사)의 무거움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작품 혹은 이번 전시의 어떤 의도된 전략이나 목적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그 있음으로 하여 자연히 발생될 수 있는 진동이다.
윤두현(前 영은미술관 큐레이터)
또 다른 해석으로, 무언가를 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건축한다는 의미처럼 들리기 쉽다. 들뢰즈가 자주 거론했던 지층화 (stratification)는 깊이와 표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었다. 들뢰즈의 지층은 쌓여짐을 의미하지만, 높이와 크기 또는 신성이나 힘의 상징을 대변하기 위한 은유가 아니었다. 그의 지층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표면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며, 모든 표면은 그만큼의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들뢰즈의 지층화는 시간성과 공간성의 깊이이며 끊임없이 살아 움직여야만하는 생성의 논리를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경이 그려내는 지층은 두께를 가진 풍경이다.
이 경은 풍경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경험한 주관적 인식의 토대는 자연의 스펙타클임은 분명하다. 그녀가 감지한 스펙타클은 신비주의적 환영이 아닌 마치 보르헤스가 보았던 색의 세계와 유사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경이 그려낸 색띠의 조합은 '경험의 재현'이라기 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새로운 시공간에 재배치한다는 의미로서 '경험의 재영토화'로 해석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정현(미술비평)
김형섭
우리는 흔히 오감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감각은 다섯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밖에 없다. 눈으로 보는 시각, 귀로 듣는 청각, 코로 냄새 맡는 후각이 그것이다. 다른 두 감각, 즉 미각과 촉각은 감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각은 혀로 대봐야 알 수 있고 촉각은 건드려 보아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순수한 감각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각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다. 학습되고 경험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각은 만져보거나 검사한다는 뜻을 가진 중세 영어 ‘tasten’을 어원으로 한다. ‘날카롭게 접촉한다’는 뜻의 라틴어 ‘taxare'에서 파생한 이 단어에 의하면 맛보는 것은 항상 시험 혹은 평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경험적으로 획득되고 이해된다. 또한 미각은 무엇보다도 친밀함의 감각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먹는 다는 것은 그만큼 친하다는 뜻이다. 낯선 사람과의 식사는 부담스럽고 불편하며 맛을 잘 못 느끼게 하지만 좋은 사람과는 늘 식사를 함께 나누고 싶고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 벗compain은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식구 食口란 말도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김형섭은 사탕과 초콜릿, 아이스크림, 껌 등이 입안에서 녹거나 물에 번지는 장면을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순수한 색채의 환각으로 가득하다. 엠 앤 엠 초콜릿, 폴로사탕, 막대사탕 또는 아이스크림, 껌의 피부로 육박해 들어가 일으켜 세운, 확대된 사진이다. 침이 엉켜있는 씹던 껌, 화려한 색채를 지닌 초콜릿이나 사탕이 녹아 흐르는 장면, 아이스크림 토핑들이 화면 가득 펼쳐져 색채 추상같은 효과를 내거나 폴로사탕이나 마시멜로가 마치 오브제 미술처럼 구축적으로 쌓여있는 것 등이다. 그것은 특정 음식물 사진이기에 앞서 매혹적인 시각이미지 자체로 충만하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배경 화면에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지닌 물질이 녹아드는 장면은 매우 감각적이면서 관능적이기도 하다. 음식들은 지금 막 단 맛을 내면서 녹고 흐르고 보는 이를 유혹한다. 아름다운 색상과 전면적으로 확대된 모양에 의해 그 단 것의 욕망은 극대화되는 편이다. 침이나 물에 의해서 서서히 형태변화를 일으키는 단 것들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제 막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얼핏 보여준다. 혀끝에서 녹거나 물에 의해 서서히 침식되는 장면이 정지되어 응고되어 있는 형국이다. 그것은 시간의 기록이자 단 물질이 용해되는 화학적 작용의 기록이기도 하다. 김형섭은 단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사진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단지 특정 음식물을 대상으로 촬영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지닌 달콤한 맛, 미각을 시각과 촉각 등으로 전이시킨다. 시각과 미각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며 얽혀있다. 사실 이 사진은 부드럽고 유혹적이며 환상적인 색채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만큼 색을 매력적인 장으로 연출하고 있다. 광고사진의 어법으로 순수한 시각상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경계에서 선 이 사진은 이미 그런 구분조차 무화시켜나가면서 정물사진 혹은 사물의 피부에 육박해 들어가 펼쳐 보이는 또 다른 세계상을 흥미롭게 제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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