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
메두사와 속 눈섭 혼합재료, 58×58×115cm , 2012, 개인소장
민정수
백일몽 혼합재료, 80×70×75cm , 2012, 개인소장
민정수
에로스의 의자-2 나무의자,프라스틱인형, 47×51×97cm , 2011, 개인소장
민정수
위태로운 신전의 여신 혼합재료, 60×50×120cm, 2012, 개인소장
민정수
텅빈 껍데기-1 나무액자, 프라스틱 인형, 82×97×20cm , 2011, 개인소장
민정수
애견 요피를 사랑한 남자 나무액자, 프라스틱 인형, 47×68×18cm , 2012, 개인소장
결핍과 욕망이 빚어낸 환상적 상보계(相補界)
1.
민정수는 이런저런 잡동사니들로 비현실적, 반현실적 환상을 빚어낸다. 조각가로서 이른바 매스(mass)에 대한 지적(知的) 관심과 조형적 실천, 천착을 거듭하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속심(俗心)과 현실의 심리적 경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양계(兩界)의 양태를 물리적으로 중개하거나 그들이 충돌, 대립하며 파생하는 갈등구조와 양상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매개하며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민정수 작업의 키워드, 혹은 직접적인 모티프는 욕망과 결핍, 애정과 애증, 의식과 무의식 등이다. 자연스레 이들의 상흔(傷痕)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묻어나는 생활 속 오브제들을 사용했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잡동사니들은 개별적, 집합적으로 이들 감정을 호소, 대변하거나 변호, 옹호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삶을 살아내면서 더해가는 지혜와 욕망으로부터 절대적 상실과 고독에 이르기까지 삶의 현실적 경험풍경을 이끌어내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민정수는 갖가지 이유로 삶의 둘레 밖으로 내동댕이처진, 혹은 소임을 다하기 전에 준거(準據)맥락에서 강제 탈거(脫據)된, 용도 폐기되어 버려진 생활오브제를 차분히 다듬어내어 사용한다. 일방적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오브제의 물리적 가소성을 거스르지 않고 존중한다. 태생이 다른 이들 이질적 사물들을 완전한 화학적 통일체로서의 피조물로 구현해내기 위함이다. 일부 갓 생산된 생경한 기성 오브제를 사용하는 이유도 완전한 리메이크 구조물을 창조하려는 작가 특유의 작업지향으로 이해된다.
민정수의 작업은 이렇듯 소비되듯 버려지고 던져지고 있는 우리네 억압된 욕구충동과 의식(意識), 시선 등을 그것들의 온기가 남아 있는 오브제들을 통해 가감 없이 털어 놓는다. 이들이 하나로 통합된 구조 속에서 길항하며 빚어내는 이야기는 엄연한 당대의 현실욕망풍경일 것이다. 우리가 무심한 척 은폐시켜온 절박한 욕망과 열정, 일탈에의 격정을 한곳에 모으고 갈무리하는, 민정수가 선사하는 뜨거운 세례(洗禮)이자 의식(儀式)이다.
민정수의 작업에는 현실의 시공과 가상의 시공이 중첩되어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충돌이 빚어진다. 때론 화해의 제스처가 더해지며 평정의 기운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부딪고 꿈틀거리며 공명한다. 이질적 세계의 충돌은 작업의 역동성을 매개하고 중개한다. 민정수는 세상의 파열음과 불협화음, 또는 협화음을 빚어내는 창조자로 기능한다. 그가 빚어내는, 자아내는 피조물과 이미지들은 자신의 모습이자 현실, 현재의 직간접적 투영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현실태를 응시하고 탐하는 또다른 욕망주체로서 자신을 개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민정수는 사회와 가정, 자신을 지탱하는 신념, 내규, 규칙, 질서, 법칙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의지와 일탈에의 감정을 가히 가학적이라 할 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가 창조한 현실풍경은 답답한 준거로부터 매력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합법적 일탈, 혹은 비합리적 이탈에의 의지표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내적 무의식과 욕망의 발현 또는 표출양태는 작가는 몰론, 인간이 지닌 원초적 본능과 그것의 구현충동의지를 분명하고 뚜렷하게 환기시킨다.
2.
민정수의 작업은, 앞서 지적했듯, 이질적인 사물들의 결합에 의해 완성된다. 마치 그림을 그려나가듯, 하나하나 붓질과 획을 더해나가듯 크고 작은 오브제를 더해냈다. 마치 인생이라는 커다란 연극무대에 올려놓을 소품을 제작하듯 특정 장면을 염두에 두고 완성시켜나가는 작업이다. 그 염두라는 것은 치밀한 계획과 시나리오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즉흥적이고 유희적인 호흡과 창발적 아이디어에 의해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은근한 노골적 긴장감으로 되살아난다. 판에 박힌 희로애락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임기응변식 애드립과 탄탄한 기승전결의 완전한 구색으로 무장한 삶의 플롯구성을 비틀면서 배태된 것이다. 즉흥적이지만 일정한 프레임 내에서의 발현을 전제로 했다. 전체적인 균형도 놓치지 않았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개인적인 경험이 효과적으로 결합, 밀착되었다.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음이다.
조형적 질서와 균형, 나아가 재료적, 시각적인 안배에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다. 소재와 재료에 대한 이해와 해석력이 탄탄하다는 반증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와 오브제를 선택하는 순발력과 감각, 그로부터 상기될 판타지에 대한 예지력이 민첩하고 치밀하다. 민정수의 작업은 오브제를 통해서 빚어나가는 ‘오브제소조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민정수의 호흡에 문학적 상상력과 경험이 녹아든다. 그가 펼치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관람객의 멜랑콜리와 우수, 문학적 상상력을 반추할 것이다. 일견 장식적으로 보이지만 지나침이 없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자연스런 마음도 묻어난다. 거침이 없다. 그러나 자연스럽다. 이질적인 재료들이고 부조화가 능히 짐작되지만 물리적으로 태생적으로 생김새나 쓰임새가 다른 것들을 합치고 녹이고 펼치며 하나의 덩어리로 커다란 무엇으로 용착, 통합한다.
민정수의 작업은 흡사 모노드라마. 혹은 그 각본과 극본의 극적인 부분을 시각적으로 발췌해 놓은 듯한 장면, 연극의 포스터를 보는 듯하다. 또는 소품과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작업실은 쉬르한, 초현실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연극적인 설정과 극적인 반전이 여기저기 출몰한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를 자랑하지 않는다. 민정수는 분장사와도 같다. 화장, 분장이라도 하고 작업에 임하는 듯, 마음을 숨기고 나름의 성형술을 구사한다. 민정수가 다룬 오브제들은 집에서 동네 골목에서 나뒹구는 이런저런 물건들이다. 일종의 기념품, 전리품, 나름의 독특한 모뉴멘트, 기념비다. 민정수가 바라본 오늘날의 일상, 세상의 기념비요, 심상의 기록비(記錄碑)다. 심리적 갈등구조와 세상에 대한, 외계에 대한, 외세에 대한 기록이자 지적반응, 기념이다. 물리적 구조로 담아낸 심리적 지형이다. 총체적 현실표상이다.
3.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욕망이다. 또한 사랑이다. 민정수는 욕망과 사랑을 향한 무한 보충과 결핍을 노정했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본질적으로 다른 욕망과 결핍의 태생적, 현실적 차이를 상상력이라는 치유의 힘으로 봉합하고 두툼한 완충지대를 만들어냈다. 이는 오브제와 스스로를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용기를 주고받는 희망의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자기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건강한 현실과 현재, 미래를 다져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본능이지만 과잉일 수도 있는 (일그러진) 욕망구조, (왜곡된) 욕망충동을 현실의 장에 던져 놓았다. 누군가에 의해 짓눌려 있었던, 혹은 스스로 억압시키고 은폐시켜온 감정을 까발린 진솔한 자기 고백이자 반성의 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965년 출생
송영규: I am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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