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
교감-1,2,3 나무액자,혼합재료, 195x110x33cm , 2010, 개인소장
민정수
교감-1 나무액자,혼합재료, 65x110x26cm, 2010, 개인소장
민정수
교감-2 나무액자,혼합재료, 65x110x31cm, 2010, 개인소장
민정수
억압 프라스틱인형,혼합재료, 35x25x53cm, 2010, 개인소장
민 정 수 | 불가사의한 모순
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교수)
민정수는 이미 만들어진, 대량생산된 레디메이드 인형을 이용해 낯선 인간을 보여주고 색다른 사물들의 반란과 혼돈을 창출한다. 연한 분홍빛이 번지는 피부(고무질감)를 지닌 인형이란 오브제, 레디메이드를 주된 대상으로 삼아 이를 일상의 온갖 작고 자잘한 사물들, 예를들어 컴퓨터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계부품과 전선줄 등으로 연결하고 접속시켜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액자틀 안에 가득 채워 넣었다. 미니어춰로 이루어진 풍경조각이다. 일상용품과 인형이 만나 이룬 또 다른 기이한 세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이 유사인간인 인형의 신체는 무참히 절개되고 분절되는가 하면 말랑거리는 피부는 얇게 저며지고 펴져서 낯선 사물들에 붙어있다. 매달려있다. 피 없는 유사인간의 몸은 그렇게 자유로이 해체되고 원래의 몸통은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어 떨어져 나와 평면의 피부로 펼쳐져서 화면,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벽에 거는 작품이 되었다. 물감과 붓질을 대신해 오브제들이 ‘그림’을 만들고 있다. 텅 빈 화면에 프레임만이 자리하고 있고 그 프레임으로부터 선들이 연결되어 오브제를 걸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 매달린 오브제이자 그물처럼, 망처럼 오브제들이 짜여지며 서로 연루된 상황을 드러낸다. 이는 무수히 많은 존재, 너무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 그러나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되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은유로도 다가온다.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작동되고 종속되는 현실에 대한 은유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고정된 실체를 지우고 그 어떤 것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며 타자와 접속되어 또 다른 존재로 파생되는 무수한 산란을 경험하게 한다.
그것은 주어진 화면의 틀 안에서 유희하는 오브제의 향연, 축제, 난장이다. 그런가 하면 그 화면은 총체성을 분쇄시키는 화면이다. 그러니까 어디에 시선을 두고 주목하기가 어렵다. 온갖 자잘한 사물, 오브제가 얇고 차가우며 강한 금속선과 전선줄에 매달려 있다. 마치 거미줄에 포획된 부드러운 날개를 가진 곤충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줄에 의해 제각각의 오브제들은 공존한다. 이 기이한, 다소 불편해 보이는 공존은 기존 오브제들을 무척이나 낯선 존재로 보여주는 동시에 원래의 상태에서 벗어나 당혹스러운 상황성이나 질감을 안긴다. 온갖 작은 사물들을 정신없이 긁어 모아 붙이고 연결하는 브리콜라주 스타일이 낯설지는 않지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인형의 신체를 훼손하는, 정확히는 피부를 다르게 보여주는 방법론과 그것들이 금속성(기계)과 결합되어 연출되는 지점이다. 우선 작가는 아기인형을 주된 오브제로 선택했다. 그 인형은 이른바 인형의 전형성을 지닌다. 둥근 얼굴에 민머리, 직립한 통통한 몸, 다섯 손가락을 단풍잎처럼 펼치고 있고 매끈하고 밋밋한 피부를 지녔다. 그 인형은 영원히 시간이 정지된 유아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성적 구분으로부터 탈각되어 있다. 인형에는 성기가 없다. 그것은 모호한 유사인간이다.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인조)피부, 더없이 깨끗한 몸이자 귀엽고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그 인형/마네킹은 묘한 경계에 위치한 기이한 존재다. 인간을 모방한 이 기계인간, 오브제인간은 생명 없는 것이 생명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아이들은 인형놀이를 통해 인형에게 말을 건네고 그것을 산 자와 동일시한다. 어른들도 인형을 대리인간으로 다루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인형은 주술적인 존재다. 인형은 산 자를 대신해 기꺼이 인간의 손 안에서 희생되고 다루어지고 편애된다. 누구나 유년기에 인형놀이를 했던 체험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새삼 그 인형놀이를 상기시킨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구입한 인형을 놓고 그것을 마음껏 ‘훼손’한다. 잘게 잘라 또 다른 오브제들과 접속시키고 금속선과 전선으로 연결한다. 신체에서 부분적으로 절취된 부위들을 여러 겹으로 눌려놓거나 접목해서 낯선 몸, 기관을 보여준다. 이 말랑거리는 질감의 피부, 물질은 본래의 상태에서 자유롭게 빠져나와 기존 오브제의 표면을 뒤덮는가 하면 인간(인형)의 살이 주변의 온갖 사물들의 피부로 전이되고 그것들과 접속되고 또한 그것 자체로 반란을 꾀하는 듯한 극적 장면을 만들기 위해 산포된다. 피부의 이동과 떠돎이라는 이 착란적인 놀이, 행위 속에는 작가가 지닌 동시대 인간과 현실에 대한 여러 상념과 신랄한 메시지가 깔려있는 것 같다. 주제의식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주제가 그렇게 무겁거나 강박적이지는 않다. 사실 나로서는 작업의 메시지보다는 작가가 자기 앞에 놓인 오브제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연결하고 접속해나가면서 놀이하는 그 유희성과 인형의 피부, 물성을 색다르게 뒤바꿔놓은 물성의 전복적 연출이 흥미로워 보인다. 작가 역시도 주제나 이야기를 의도해서 만들어나가기 보다는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그것들끼리의 우연한 만남에서 오는 생경한 상황에 매료되고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초현실주의적 연출이다.
인형은 작가에 의해 자유로이 조작하고 변형될 수 있는 손쉬운 재료, 오브제가 되었다. 사실 인형은 어린 시절부터 친숙한 존재이자 물질이다. 작가는 인형의 피부를 절개하고 펴고 돌돌 말고 상상해낼 수 있는 한에서 마음껏 변형했다. 계획이나 의도, 주어진 선험적인 어떤 생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순응해서 그 인형과 주변의 일상적 오브제들을 연결한 것이다. 인형과 조리기구나 컴퓨터 부품 같은 것들을 떠오르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연결하고 접속하고 배열했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오브제놀이이자 순수한 유희다. 작가는 그 같은 초현실주의적 만남에 주목한다. 작가의 제작방식은 무의식이나 욕망의 표현을 중시하는 자동기술의 시도와 유사하다. 초현실주의에서는 예를들어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심층이나 '세계의 신비스러움'과 일치되고 소통되는 방법으로써, 그리고 현실적 세계에 종속되지 않는 방법으로써 미술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한 것으로 강조된다. 이성의 통제 아래 가려져 있었던 무의식과 욕망이 전하는 전언, 그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받아쓴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감춰진 욕망을 일깨우고 인간으로 하여금 인습과 체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현실에 대한 다른 인식, 다른 세계관의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의식적이고 의미 지향적인 제작 대신에 무의식적이고 반미학적인 미술의 표현을 모색한다. 또한 초현실적 이미지는 물질을 역동화 시키고, 사고를 물질화시키면서 사고와 물질의 경계를 지우고 인간과 세계를 자유롭게 소통시키는 상상력의 출발점이다.
민정수는 인형과 일상의 오브제들을 본래의 맥락에서 탈각시키고 전혀 다른 틀 안에서 재맥락화 한다. 아니 두서없고 중심도 없으며 온갖 만화경 같고 혼돈 같은 이미지의 폭발적 힘을 창출하려 한다. 작가의 이 초현실주의적 오브제들의 연출은 독립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연관성 없이 이어지면서 빠르게 전환되는 충격적인 꿈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기여한다. 그러니까 미술작품이 외부적 대상을 재현하는 것, 특정한 주제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과 꿈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과 본능, 순수한 영감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다분히 편집증 환자다. 현실세계에 순응해 사는 대부분의 정상인들과는 달리 세계를 자신의 의식 속에 통제하면서 자기의 욕망에 따라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인형과 오브제를 통해 그 길을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196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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