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
가족 2 캔버스에 유채, 131x162cm, 1982
오윤
낮도깨비 목판, 54.5x36cm, 1985
오윤
달과 호랑이 종이에 먹선, 채색, 26.1x19.3cm, 1973-1975
오윤
도깨비 광목에 채색, 판화, 132.6x244cm, 1985
오윤
마케팅-지옥도 1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x131cm, 1980
오윤
칼노래 광목에 목판화, 채색, 47x31.6cm, 연도미상
오윤
통일대원도 캔버스에 유채, 349x138cm, 1985
오윤 30주기 기념전을 열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는가. 오윤(1946-1986) 서거 30년, 한 세대가 흘러갔다. 40세의 요절. 하지만 오윤의 육신은 갔는지 몰라도 그의 예술은 살아 있다. 아니 그의 예술정신은 계속 살아서 일렁거리고 있다. 그래서 오윤 예술은 끊임없이 재평가의 대상으로 부상되면서 전시의 '단골'처럼 출품되고 있다. 사실 '오윤 팬'도 적지 않다. 특히 미술시장에서의 뜨거운 반응은 날로 작품가격을 경신하고 있다. 현재 한국 미술계는 판화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의 경우만은 예외인 것처럼 옥션의 총아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그만큼 오윤 예술이 미술사적 평가의 대상으로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윤 서거 30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전시를 마련한다. 오윤 예술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목판화, 그것도 생전 판화를 중심축으로 하여 '오윤의 발언'을 듣는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발굴 드로잉의 공개'이다. 오윤의 친지가 비장하고 있었던 스케치북 가운데 대표적 드로잉 1백여 점을 선정했다. 와, 오윤의 미공개 작품! 그것도 엄청난 수량의 드로잉, 모색기인 젊은 시절의 드로잉! 이번 드로잉은 오윤 예술의 원형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소재는 주로 사람들, 이는 뒤에 목판화의 소재로 심화 발전된 내용들이다. 그래서 발굴 드로잉의 가치는 매우 높다.
오윤은 평소 본격작품을 위한 토대구축과 탐구의 과정을 중요시 하였다. 그것은 논리적 철학으로 귀결되었지만, 무엇보다 드로잉 작업으로 나타났다. 독자적 예술세계로 가기 위한 모색 과정, 그것은 한마디로 '난투(亂鬪)의 현장'이었다. 오늘날 두툼하게 남아 있는 스케치북은 이 점을 입증해 준다. 이번 공개하는 드로잉은 20대 '모색기'의 결과물이다. 오윤은 미대를 졸업하고 벽돌공장이나 전통가마 등지에서 흙 작업에 몰두했다. 그런 과정에서 테라코타 작품도 얻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오윤 예술'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20대 중반 오윤은 친지들과 상업은행 건물의 테라코타 작업을 남겼다. 이런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오윤은 경주의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 집의 동거인이 되기도 했다. 윤광주, 임세택, 오경환 등과 의기투합했던 시절, 대략 1970년- 75년 무렵이었다. 그런 무렵 이들의 '모색기'는 스케치북에 담겨졌다. 오윤, 임세택, 오경환 등은 대학 재학시절(1969년) '현실 동인' 전시를 추진하다 불발되었고, 그 정신은 선언문으로 남게 한 '역사적 사건의 동지들'이기도 했다.
오윤 드로잉의 특색은 무엇보다 역동성의 구현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운생동하는 화면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연필, 색연필, 크레파스, 모필, 채색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이들 그림은 기(氣)를 중히 여겼기 때문에 선묘(線描)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면(面) 처리보다 선을, 그것도 굵고 힘으로 넘치는 선을 구사하여 대상을 표현했다. 세부 묘사보다 대상의 주요 특징만 커다란 덩어리로 집약했기 때문에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역동성을 담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윤 드로잉의 또 다른 특색은 인물 중심이라는 점이다. 스케치라고 하면 대개 자연을 주요 소재로 하는 풍경화가 주종을 이루었다. 아니면 정태적(靜態的) 인물상으로 채워졌다. 비현실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에 만족할 수 없었던 시대 상황에의 반응, 그래서 오윤의 경우는 자연보다 '보통 사람들'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었다. 후에 판화작업에서 이 같은 관심은 '춤' 연작으로, 혹은 '대지' 연작으로 연결되었다. 오윤의 인물은 건강한 보통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에 애정을 두고 그려졌다. 인물은 남녀의 전신상이거나, 얼굴만 표현했거나, 혹은 건강미 있는 누드까지 다양한 편이었다. 물론 사람 소재 이외 호랑이 같은 동물이나 불상과 같은 전통적 소재 등도 있다.
오윤 서거 30주기 기념전의 구성은 이런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내용은 오윤의 대표적 장르인 목판화를 중심으로 하여 발굴 드로잉, 그리고 「통일대원도」 같은 유화 작품과 조소 작품 등이다. 여기서 언급할 중요사항 가운데 하나는 오윤 목판화 가운데 생전 판화와 사후 판화의 문제이다. 우선 사후 판화는 오윤 10주기 전시(1996, 학고재) 당시 유족과 친지들에 의해 원판을 이용해 다량으로 찍은 목판화를 일컫는다. 하지만 생전 판화는 작가 자신에 의해 찍히고 완성된 판화를 의미한다. 다만 오윤은 판화작품을 판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판화시장의 관례와 무관한 편이었다. 이른바 에디션(edition)이 없어 판화 제작의 총 발행 점수를 표기하지 않았고, 또 서명이나 낙관 등을 하지 않으려 했다. 유족작품 가운데 드물게 작품 제목, 친필서명, 그리고 도장까지 찍은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예외사항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미술운동 시대의 목판화는 상품이라기보다 순수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는 유족 소장 80여 종의 생전 판화만 진열했다. 서명이 없는 경우는 유족의 철인을 찍어 구분했다. 기준을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윤은 현실주의 미술가로 미술의 언어의 기능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소통이라는 열쇠말을 가슴에 새기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전통의 창조적 계승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목판화라는 장르로 일가를 이루어 후진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고, 결국 80년대 미술운동의 상징적 미술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오윤 서거 30주기, 이제 또 다른 역사를 위하여 지난 30년을 기억하고, 또 앞으로의 30년을 기약하고자 한다. 오윤의 발언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목판화도 그렇지만 발굴 드로잉 작품이 이 점을 암시하고 있다. ■ 윤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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