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준
Before-Sunset Cinema(1) 피그먼트 프린트, 나무틀, 145×210cm, 2016
지호준
Before-Sunset Cinema(2) 피그먼트 프린트, 나무틀, 85×120cm, 2016
지호준
Birth of Tornado 피그먼트 프린트, 나무틀, 75×80cm, 2016
이것은 나무가 아니다 ● Nanography의 생성 (보는 행위에 대한 의문의 제시)
지호준 작가는 현미경으로 촬영한 나노이미지를 현실의 공간에 투사하고, 그 장면을 사진 촬영한 Nanography(Nano와 Photography의 합성어) 연작(2009)을 선보였다. 마치 나무 형상 같은 나노이미지를 일상의 공간에 투사했을 때 우리는 무심코 자연물이 투사된 것이라 믿게 되는데, 투사된 이미지는 사실 나무와는 무관한 화학물질이다. 이는 마치 르네 마그리트가 파이프 그림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텍스트를 첨부하였듯이, 우리가 보는 대상이 당연히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인식의 틀을 깨고자 하는 의도이다. 보이는 세계에 절대적 진실이 부재하다는 의문과 보는 행위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다른 차원의 사고를 이끌어내는 시도를 구현한 첫 번째 단계이다.
Coin-cidence의 전개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상상들)
2011년에는 나노그라피의 개념을 동전이라는 특정 주제에 접목한 연작을 전시했다. 동전을 광학현미경으로 바라보았더니 흠집과 녹슨 부분들의 생생함으로 인해 마치 시간의 흔적이 스민 거대한 조각처럼 다가왔고, 나노단위의 전자현미경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결코 같은 대상이라 인지할 수 없는 3차원의 세계가 나타났다. 동일 사물을 서로 다른 스케일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간 제약을 뛰어넘어 하나의 화면에 공존시키는 작업은 더 나아가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동전에 조각된 존재들은 모두 역사적, 사회적인 인물들로 한 시대의 뉴스의 일부라는 점이 상상을 자극했다. 신문1면을 장식하는 뉴스와 동전의 주인공이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는 순간을 주선한 것이다. 만약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와 미국 주화 1센트에 새겨진 링컨 대통령, 몽골 화폐 1투 그릭의 주인공 칼막스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사건, 영국 주화 2파운드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다이애나 비가 만난다면 어떨까 하는 가상의 이야기를 연출해서 풍자 내지 감동을 의도해보았다. 너무 흔해서 우습게 여겨지는 동전과 신문이라는 소재를 현미경을 통해 재해석한 결과물들은 서울에서 뉴욕의 갤러리, 뉴욕은행, 뉴욕 주미스위스 영사관, 뉴욕 911메모리얼센터까지 뻗어나간 성과를 만들었다.
Cinematic Projection의 확장 (보는 행위를 기초로 한 다양한 실험들)
2016년 12월,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보는 행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시도가 다방면의 무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의미가 크다. 주요 신작은 오래된 한지와 갓 생산된 한지를 전자현미경으로 비교 관찰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한지에서는 시간의 누적에 따라 대자연이 오롯이 녹아있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흙이 있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대자연의 시간적 섭리가 종이에서도 나타나는 모습이 우리가 흔히 보는 산속의 풍경과 닮아있었다. 이를 모티브로 이번 작업의 배경은 대자연으로 향했다. 시간대별, 계절별로 전국을 돌며 촬영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수확한 그림들은 의도성 보다는 우연성을 부각시키며, 숲 속인지 가상 공간을 합성한 연출인지 유추가 모호해짐으로써 허구성을 강화시킨다. 야생의 한 지점에 스크린이 스미듯 떠오른 장면이 마치 외부 영화 상영관의 설정이라 해석해 보면 어떨까. 이는 허구의 드라마라는 감성적 코드를 자극하여 특정 상황을 테마로 한 영화들을 떠올리고 싶어진다. 이 작업은 작가가 현장에서의 즉흥성과 연출성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나아가 타 문화 영역에 접목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그의 나노이미지는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무대 위 장면 뒤로, 연극 무대 세트의 일부로, 제주도의 어떤 작은 마을에, 승효상 건축가가 18년 전 설계한 주택에 투사되었다. 잠시나마 입혀지는 허구의 옷으로 인해 삶의 공간과 허구의 공간은 보다 낭만적으로 변신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록 과학적 기반에 문화적 감성의 농도가 짙어지는 느낌이다.
지호준 작업의 확장성을 한층 더 유익한 방향으로 발현시키기 위해 이번 전시에 특별한 기획을 가미하였다. '인간이 정의하는 의미의 한계에 갇히길 거부하는 퍼포먼스'에 세대를 넘어선 동참을 이루어보기로 한 것이다. 올해12살인 윤관우는 현미경으로 초근접하여 바라본 세상에서 멀리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우주를 만나게 되는 경험을 출력하여 세상과 소통해오는 중이다. 말랑말랑한 상상력이 어린 아이의 순수함에 의해 극대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기능하고 있다. 윤관우는 지호준 작가를 만나면서 본래의 이미지에 다채로운 빛깔의 옷을 입히게 되었고, 언젠가는 철학적 의미를 담아 어엿한 예술작품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연하게 되었다. 이 기획을 통해 현미경으로 바라본 세상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확장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긍정적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준 증표들을 통해서 우리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엄청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용기를 얻는다. 시간을 거슬러서 연결 불가능한 것을 연결하는 용기를 얻는 것이 곧 상상력인 셈이다. (상상력- 미지와 경계를 과학하는 마음)" (김소연『시옷의 세계』 중에서) ■ 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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