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풍경 Slow Landscape
2017.05.27 ▶ 2017.07.23
초대일시ㅣ 2017년 05월 27일 토요일 04:00pm
2017.05.27 ▶ 2017.07.23
초대일시ㅣ 2017년 05월 27일 토요일 04:00pm
김선두
느린 풍경-동산에 올라 장지에 먹, 분채, 109×77cm, 2017
너에게로 U턴하다
시간은 흘러가며 쌓인다. 김선두의 그림에서는 시간의 두 축을 선묘와 색면이 드러낸다. 묵선의 속성을 지닌 그의 선은 시간의 흐름을 매우 효과적으로 가시화한다. 뿐만 아니라 색이 층층이 스미고 번지고 우러나오는 장지화의 면만큼 시간의 쌓임을 잘 나타내는 것도 드물다. 거칠고 마른 붓길에 따라 쌓인 색의 겹침과 어긋남 위에 선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색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림은 역동성을 얻는다. 그의 어떤 그림은 보다 맑은데, 그런 그림에서 선은 숫자도 적고 정돈되어 있다. 덧칠이 가능한 색면은 고칠 수 있는 가역적인 것이다. 색면이 쌓인 삶에 대한 반성적 생각과 닮았다면, 선은 일회적이고 불가역적인 흘러가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느린 풍경」은 고향에 뿌리를 둔 삶과 사람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런 화면에서 선은 동력, 근원적 에너지의 흐름, 고칠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순간순간의 내달림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선은 '살다'라는 동사이며 행동의 현현(顯現)이다. 어떤 그림 속의 현은 우리의 눈길을 따라 그림 밖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때 그림 밖에서 시작해 그림을 거쳐 다시 그림 밖을 나가는 선은 안과 밖을 이어줌으로써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 시골(고향)과 도시(타향)을 잇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에 보이게 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화폭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선의 자유분방한 움직임은 사유로 교정된 정신의 움직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 선들이 없다면 그림은 때로 고인 물 같거나, 아름답지만 정지된 풍경 같을 것이다.
선과 색면이 겹쳐진 것이 우리의 삶이다. 우리 삶에서 둘을 분명히 나누기는 어렵다. 김선두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이 식물적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농촌 출신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농촌이 고향인 사람의 상상력이 식물적이라면 도시출신 사람은 동물적인 상상력을 가졌나? 문득 서울출신 소설가의 「식물적 상상력」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상상력은 사람에 따라 특정한 물질적 원소에 치우친다는 이론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상상력은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을 넘어서는 정신의 힘이다. 예술은 그 힘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에게는 장르의 구분을 넘어 그 힘이 태어나 잘 자랄 수 있는 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선두는 귀감이 될 만하다. 그의 그림에서는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벼려진 정신이 느껴진다. 이제 우리가 그 그림 속 먼 향기를 눈으로 맛볼 차례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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