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담
2017.06.10 ▶ 2017.07.09
2017.06.10 ▶ 2017.07.09
윤정선
리모델링 Remodeling 22.7x18.0cm, Acrylic on canvas, 2016
윤정선
7:00 P.M 28.0x36.0x3.0cm, Acrylic on canvas, 2017
윤정선
단기4290년의 문양 Pattern of BCE 4290 28.0x36.0x3.0cm, Acrylic on canvas, 2017
윤정선
17-20번지 #17-20 130.3x193.9cm, Acrylic on canvas, 2017
윤정선
선잠로Seonjam-ro 130.3x193.9cm, Acrylic on canvas, 2016
윤정선
17-13번지 #17-13 130.3x193.9cmx2, Acrylic on canvas, 2017
윤정선
17-24번지 #17-24 45.5x37.9cm, Acrylic on canvas, 2017
윤정선
33-8번지 #33-8 130.3x193.9cm, Acrylic on canvas, 2017
윤정선
31번지 #31 130.3x162.2cm, Acrylic on canvas, 2017
윤정선
38번지 #38 130.3x193.9cm, Acrylic on canvas, 2017
-하계훈(미술비평)
몇 해 전 나는 윤정선의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작가를 ‘이미지의 순례자’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때까지 실제로 윤정선은 이러한 표현에 걸맞게 자신의 화가로서의 활동 궤적을 순례자의 일기처럼 작품 속에 담아왔다. 이제까지 윤정선의 작품 안에는 유학시절의 런던 시내 풍경과 북경의 자금성, 귀국 후에 둥지를 튼 작업실과 집 근처의 표정, 그리고 국내에서 작가가 이미지 사냥을 하듯 찾아 나섰던 명동의 가톨릭 사제관과 북촌의 한옥마을 등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장소에서 작가는 개인적 경험과 정서에 공명(共鳴)하는 모티브와 이미지를 사실주의적 재현에 입각하여 유화와 아크릴로 묘사해왔다. 윤정선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공감은 작가의 작품에 풍부한 서사와 상상을 부여해줄 수 있었고, 작가 자신도 어느새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는 단계에서 점차 대상의 서사를 읽어내고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에 윤정선이 찾아낸 소재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이 고즈넉하게 둥지를 틀고 있었던 동네의 풍경이다. 종로 3가 지하철역 근처 뒷길로 들어서면 한 블록 정도 면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오래된 한옥들이 인근의 고층빌딩들 사이로 오고가는 사람들과 차들이 빚어내는 도심의 부산스러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나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나타난다. 오랫동안 이 동네의 앞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최근에 재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보존으로 정책이 확정된 종로구 익선동이다. 보존 정책이 발표된 이후로 한옥의 외형을 보존한 채 급속하게 카페와 상점으로 변신해가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윤정선은 오히려 어린 시절의 골목길의 아련한 모습을 발견한다.
오후의 햇볕이 비스듬히 내려쬐는 좁은 골목의 담들은 1930년대에 조성된 한옥마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중장년층에게는 어린 시절에 그곳에서 뛰어놀며 웃고 떠들다가 때로는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 저녁밥을 챙겨 먹이려는 엄마의 호출로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던 골목길의 추억을 불러일으켜준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그들에게는 낮선 공간이 불러일으켜주는 야릇한 호기심과 함께 그 낮고 좁은 공간이 주는 아늑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 윤정선이 담아낸 풍경은 거대도시 서울의 뒷길에서 마주친 이곳 골목의 담벼락들이다. 원래 벽은 공간의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경계지점에 말뚝을 박고 벽돌이나 흙을 쌓아놓은 구조로서 보통 그 위에는 지붕이 얹히게 되는 건축물의 한 부분이다. 나라마다 벽을 뜻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벽을 통해서 분리되는 공간의 내부와 외부에 접하는 각각의 벽의 명칭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어나 스페인어에서는 내벽과 외벽의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가 별도로 존재한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중립적인 성격의 용어로서 ‘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여기에 ‘외(外)’나 ‘내(內)’라는 수식을 덧붙여서 벽의 위치를 필요에 따라 좀 더 자세히 지정해주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에 윤정선이 익선동에서 마주치는 벽들은 외벽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외벽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는데 비하여 내벽은 공간 점유자의 의지에 의해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낯선 방문자로서 개인의 사적 공간의 내벽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작가는 외벽의 표정을 담아내고 있지만, 벽의 저편을 둘러볼 수 없는 입장에서 이 벽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내벽보다 더 사적인 추억과 경험을 불러일으켜주는 공간일 수 있으며 오히려 벽의 저편에 있는 내벽이 낯선 타자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공간의 경계를 지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벽이기에 이 벽에 뚫린 작은 창과 그 위에 덧씌워진 격자무늬의 창살은 방어와 소통을 함께 의미하는 흥미로운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러한 벽들의 표정을 마주하는 작가의 시선을 담아낸 까닭에 화면의 평면성이 두드러지며 색채의 변화도 드문 편이다. 따라서 감상자의 취향이나 경험에 따라서는 이러한 작품들이 주는 시각적 자극이 약하게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이러한 점에 있기보다는 벽을 마주하는 작가가 관람자들과 시각을 넘어서는 공감각적 대화를 통해 공간의 의미와 존재에 대한 사유, 추억과 정서의 교감 등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윤정선의 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할 수 있다. 작가는 벽에 붙여놓은 타일과 벽돌의 미묘한 표정이나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금이 간 모습, 그리고 불법 게시물이 할퀴고 간 흔적 같은 테이프 자국 등의 디테일에서 이 골목의 지나온 삶을 상상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공간이 박제화된 풍경이 아니라는 것은 화면의 귀퉁이에 살짝 휘날리는 치맛자락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함께 출품된 타원형의 캔버스에 담긴 꽃무늬 작품들은 작가가 용도변경을 위해 수리중인 익선동 주택의 내부에서 포착한 벽지의 무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들이다.
이번 작품들을 통해 윤정선은 자신이 이제까지 일관되게 추구해 온 이미지의 순례 과정을 심화시켜가는 작업을 보여준다. 작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적 표정을 읽는 순례의 비중을 줄여가면서 보다 더 공간의 내부와 그 공간의 추억과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사유적 순례에 비중을 높여가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공감각적 내향 작업의 궤적은 필연적으로 대상과 작가의 시선과 거리의 변화라든가 화면에 담겨지는 이미지에 있어서 재현과 추상의 비중의 조절이 수반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윤정선의 작품을 따라가며 읽는 관람자들에게도 감상의 방법과 사유적 공감의 태도가 점진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윤정선이 바라보는 이미지의 순례에서 앞으로 작가의 시선과 사유가 어떻게 변화해 나아갈 것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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